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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07화 (107/420)

< <107화> 수습 선원 오펜의 하루 >

리버티 호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선원이자, 수습 선원 중에 가장 경험이 많은 오펜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마지막 야간 당직자가 수습 선원들을 깨우는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친구들과는 달리 오펜에게는 발로 차거나 손찌검을 하지는 않는다.

선장님과의 친분이나 먼저 배를 탄 선원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벌떡벌떡 잘 일어나서인지는 잘 모른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은 바라, 카드먼, 슈렌이라고 하는데, 대충 오펜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소년들이었다.

세 친구와 다른 선원들을 다 깨운 오펜은, 바로 선장실을 향한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선장님의 식사 여부를 확인하고, 귀빈실로 가서 선주님의 식사를 확인한다.

가끔은 두 분이 같이 선장실이나 귀빈실에서 드실 때도 있고, 일등항해사님, 갑판장님 등 다른 분들과 함께 드실 때도 있다.

하여간 두 분의 식사 여부를 확인하고, 다른 수습 선원들이 나머지 간부님들의 식사 여부를 확인하면, 내용을 취합해서 조리장님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대로 조리장님을 도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쉽비스킷, 염장 육포, 시큼한 피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따뜻한 수프(조리장인 시에론이 일찍 일어났을 때인 것 같다)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선장님이나 선주님께 따로 나가는 식사에는 치즈나 샐러드, 구운 양파나 감자 같은 것이 더해지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면 수습 선원 두 명은 식후 정리를 돕고, 나머지 두 명은 하루에 얼마 안 되는 휴식을 만끽한다.

꿀맛 같은 짧은 휴식이 지나면 정신없이 뛰어다닐 시간이다.

로프를 정리하고, 돛 줄 다루는 법을 배우다가, 견시대로 잡혀 올라가서 지나가는 선박이나 부유물의 각도와 거리를 재는 법을 배운다.

바닥 청소에도 동원되고 물품 정리, 간단한 도구 제작을 하다가 갑판장님이 지정한 격실 청소를 하기도 하고 배에 들어찬 물을 퍼내기도 한다.

우르타 포술장님이 대포 청소를 시키거나 포갑판 바닥에 깔 젖은 짚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어차피 포탄과 화약이 없어서 포를 못 쏘는데 왜 준비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틈틈이 다른 선원들이 시키는 심부름도 해야 한다.

그렇게 녹초가 될 때쯤이면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오펜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다른 수습 선원들은 이맘때면 울 것 같은 얼굴로 배에 괜히 탔다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하지만 다른 항구에 도착하기 전까지 탈출할 수도 없는 곳이 바로 배라는 곳이다.

그리고 다른 선원들이 말하기를, 리버티 호의 수습 선원들은 굉장히 편하게 일하는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오펜이 고향을 떠난 뒤로 보았던 다른 배의 ‘수습 선원’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은 진짜 오펜보다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았다.

가끔 오펜보다 더 어려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선장님은 화를 내며 욕을 내뱉고는 했다.

오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동 인권’이나 ‘노동 착취’ 같은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화를 내시는데, 역시 선장님은 뭔가 다른 것 같다.

아침보다 낫기는 하지만 맛있다고 하기 어려운 점심을 마치고 나면, 아침에 식사 정리를 했던 두 명에게는 쉴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갑판장님이나 일등항해사님이 뭔가를 시키면 시간에 상관없이 일해야 하기는 한다.

특히 카드먼은 갑판장님을 진짜 무서워해서, 갑판장님이 말만 걸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굳어버린다.

오후가 되면 다른 수습 선원들은 오전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오펜은 보통 선장실이나 일등항해사실에 불려간다.

그리고 항해술에 대해 공부하거나 설명을 듣는다.

가끔은 관련된 책을 읽으라고 하고 다른 일을 하시기도 하는데, 그때는 정말 행복했다.

가만히 책만 읽으면 된다니, 꿈만 같은 시간 아닌가?

특히나 다른 수습 선원들은 힘들게 일하는 시간이다 보니 왠지 특별해진 기분이 들어서 더 좋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는 돌격대장님께 체력 단련을 빙자한 고문을 당하거나 검술 훈련을 빙자한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면 보통 다른 수습 선원들처럼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작업에 투입되거나 청소를 하게 된다.

네이선 돌격대장님은 평소에는 참 좋은 분이신데 칼만 들면 사람이 바뀐다.

오펜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원들도 훈련을 받는데, 다들 훈련받기를 싫어했다.

아무리 진짜 칼이 아니라지만, 묵직한 목검으로 몇 대를 맞고 나면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갈 지경이니까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 참, 요즘에는 더 힘든 일이 추가되었다.

바로 게론드 회계사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서류 정리나 재고 파악, 좁은 회계사실 청소 정도는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오펜이 하는 일 중에서는 굉장히 쉽고 편한 쪽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내내 회계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고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선장님이나 다른 분들이 회계사님이 말을 시작하면 질색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나면, 나름 여유 있는 시간이 된다.

선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술을 마시거나, 자거나, 도박을 하거나, 잡담을 했다.

물론 수습 선원들은 다른 선원들의 사소한 심부름도 해야 하고, 조범수나 조타수, 견시수를 맡은 선원들에게 일을 받기도 한다.

그나마 가장 좋은 일은 비에론 조리장님이 일을 시키는 경우인데, 일을 마치면 육포나 딱딱한 빵(쉽비스킷에 비하면 솜처럼 부드럽다) 또는 치즈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넉넉한 편이고 선장님이 가끔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데도 오펜은 항상 배가 고팠다.

선장님은 그런 오펜을 보며 ‘한창 배고플 나이’라고 말씀하시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오펜은 워트 형이 살아 있을 때도 늘 배가 고팠다.

배고프지 않은 나이라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해가 지면 배의 좌, 우현에 유등을 매단다.

기름과 불은 배에서 워낙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것이라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맞거나 크게 혼났다.

등을 단단히 고정하고 주변에 실화 방지가 잘 되어있는지 두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갑판장님에게 보고를 한다.

그러면 갑판장님은 등을 확인한 다음 그날의 당직자를 알려주었다.

모든 당직자들에게 당직 시간과 다음 당직자가 누구인지 전달이 끝나면, 비로소 공식적인 수습 선원 오펜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특별한 일(심부름이나 선장님의 추가 교육)이 없다면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다른 수습 선원들과 갑판장님께 일과 종료 보고를 하고 선실로 돌아간다.

사실 이미 몇 시간 전부터 몸은 한계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에, 틈만 나면 불평불만을 내뱉던 다른 수습 선원들도 이때만큼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그나마 창문이라도 열어놓아서 어렴풋이 실루엣이라도 보이던 선실은 이제 눈앞에 손을 갖다 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가을도 다 끝나가는 지금 선실의 창문을 열고 잠을 청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본토는 향료 제도보다 더 추웠고, 바다는 육지보다 더 빨리 추워졌다.

오펜은 자신에게 할당된 상자에서 두툼한 외투를 꺼내서 덮었다.

이번에 선장님이 선물한 외투가 아니었다면 잠을 잘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 * *

- 리버티 호 선장실 -

마지막으로 들어온 갑판장이 내게 살짝 목례하는 것을 받아 주며 나는 말문을 열었다.

“이제 제법 춥네요, 조만간 눈이 내릴 것 같아요.”

“네, 선장님. 식재료 보관이 조금 더 용이하겠군요.”

본토는 대충 12월 말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눈이 내린다.

영하까지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 향료 제도에서만 살아온 오펜은 아마 인생에서 처음 겪는 혹독한 추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두꺼운 외투를 사주기는 했지만, 지구의 방한 의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계속 걱정이 된다.

그러고 보니 다른 선원들은 어떤지 모르겠네?

“갑판장, 선원들 방한 장비는 잘 갖추고 있던가요? 괜히 감기나 동상에 걸리는 사람이 나오고 그러면 곤란한데.”

에른스트 갑판장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어, 음, 그게··· 다 있지 않겠습니까? 놈들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 정도는 준비했을 겁니다.”

고용인에 대한 복지나 배려 따위는 없는 세상에서 갑판장이 그걸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오늘 낮에 일하는 선원들 중의 몇몇은 약간 얇은 느낌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낮에는 선선하고 밤에는 쌀쌀한 15 ~ 5도 정도지만,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밤에는 영하까지 기온이 떨어질 거다.

방한 의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선원들은 분명히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회계사, 이번에 입항하면 선원들이 입을 방한 장비 좀 구입하지.”

“방한 장비라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종류별로 다 갖추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체형의 차이도 있고 해서 각자 옷가게에서 옷을 골라야···.”

“게론드 회계사! 그냥 제일 큰 사이즈와 중간 사이즈로 외. 투. 만! 몇 벌 사면 될 것 같아. 벵가로쉬 쪽도 모피랑 가죽은 꽤 괜찮지 않아?”

“아무래도 모피로 유명한 것은 일레드 왕국의···.”

나는 신나서 모피와 가죽론을 설파하는 게론드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갑판장에게 물었다.

“방한 장비가 준비되면 당직자들은 돌려가며 입게 하죠. 아무래도 밤에 당직을 서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밤에 선실에서 잠만 자면 얇은 옷이라도 몇 겹 껴입기만 하면 상관없다.

당장 비좁은 선실에 36.5도나 되는 난로가 수십 개나 있는데 선실 온도가 쉽게 떨어질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무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서는 당직은, 제대로 된 외투가 없으면 정말 버티기 힘들다.

옷감이 워낙 성기다 보니, 옷을 몇 겹 입어도 바람이 숭숭 새 들어오는 거다.

나도 처음에 바닷바람을 만만하게 보고 옷을 몇 겹 껴입는 정도로 버티려고 했다가 된통 박살 난 적이 있다.

“일등항해사, 보고할 사항이 있나?”

“낮에 바람이 좋아서 순풍에 맞추어 움직여 본 결과 최고 속도는 9.4노트입니다. 이 상태라면 사흘 정도 후에 벵가로쉬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급 상황은?”

“날씨가 선선해서인지 파기한 식료품이 별로 없었습니다. 식수 상태도 좋습니다. 식량은 6일분, 식수는 5일분 남았습니다.”

“약간 애매하네. 중간에 훈련 기동을 너무 많이 했나?”

우리가 가는 항로가 워낙 지나가는 선박도 많아서 위험이 거의 없는 곳이라 식량과 식수를 약간 빠듯하게 담았더니 남은 거리에 비해 식량과 식수가 간당간당하게 남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훈련이라고 선원들을 굴리면서 항로를 자주 이탈했던 것이 원인인 듯하다.

그래도 뭐, 환경이 좋으니까 굶어 죽거나 하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막말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남쪽으로 내달려서 아무 육지에나 정박하고 먹을 것을 구하거나 지나가는 선박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는 일이다.

“돌격대장은 요즘 몇 명 붙잡고 굴리는 것 같던데, 어때?”

“아, 네. 일단 괜찮아 보이는 세 사람에게 조금 더 집중적으로 전투 준비를 시키고 있습니다. 갑판장과 이야기해서 세 사람의 일반 업무를 조금 줄였습니다.”

“갑판장님, 문제없나요?”

“네, 다른 선원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는 선에서 일을 줄인 것이라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돌격대장에게 매일같이 얻어터지니 다른 녀석들이 불쌍해하는 모양입니다.”

매일 얻어터지다니, 말씀이 과하시네.

아니지? 네이선 이놈이 그냥 자기 스트레스 풀려고 두들겨 패는 거 아냐?

심지어 그 세 놈 중에 한 놈은 전에 덤비다가 얻어터진 녀석 같은데.

“이봐, 돌격대장. 혹시 너 그냥 애들 두들겨 패고 싶어서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아! 거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그냥 제가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이 새끼, 항생제 생겼을 때 다친 데 없다고 한 거 분명히 거짓말이다.

“포술장은··· 음···.”

나는 자연스럽게 포술장을 맡은 우르타에게 보고를 시키려다가 황급히 눈을 피했다.

얼굴에 심통이 덕지덕지 붙은 것이 괜히 물어보면 우는소리만 할 것 같다.

“포술장은 대포를 열심히 닦고 있습니다!”

“음, 그래. 고생이 많네.”

“관리할 화약도 없고, 점검할 포탄도 없는데 포술장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으음···.”

“요즘 오펜이 대포 청소를 잘하던데 그냥 오펜에게 포술장을 시키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민망해서 차마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에른스트가 나섰다.

“어흠, 포술장. 그만하게. 선장님도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말이야. 다음에는 준비해 주시겠지.”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이번에 입항하는 벵가로쉬 항구는 일단 내전 중인 국가의 항구라는 말이지.

아무리 후방이라지만 전쟁이라는 대박 이슈가 있는데 설마 포탄과 화약이 싸지는 않을 것 아니야?

굳이 벵가로쉬에서 비싸게 포탄이랑 화약을 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 <107화> 수습 선원 오펜의 하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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