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강도와 도둑의 차이점 >
우리를 확인한 드웰 등은 난리가 났다.
“여어, 여기야! 좀 늦었··· 자네들 무슨 일인가!”
“어서오···! 후작 저택에 간다더니 전쟁터에 다녀왔나?!”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세 명 중 두 명이 팔에 두툼한 붕대를 감고 왔으니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이미 아인델프와 아무 일 없이 다녀온 길인만큼 후작 저택으로 가는 길이 위험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겨우 자리에 모여 앉자 에른스트가 우르타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어제 술집에서 최근 그쪽에 산적으로 전업한 용병들이 많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하필 네놈이 거기에 기어들어 갈 줄이야···.”
“에에잇! 밥 먹는데 왜 때려요!”
“이놈아, 그쪽은 얼마 전에 영지전을 벌인 리든 자작과 뭐시기 남작의 영지로 가는 길 아니냐! 영지전이 끝났으니 정신 나간 용병들이 바글바글할 텐데 거기를 왜 기어들어 가?!”
“내가 알고 들어갔나 뭐···. 맨날 나만 뭐라고 그래!”
“에라이!”
에른스트가 또 손을 치켜들자 우르타가 먹던 빵을 내팽개치며 번개같이 도망가고, 웃으며 이 꼴을 보던 드웬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군. 그 타이밍에 후작의 군대가 나타나다니 말이야.”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후작가도 그쪽에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기사에 정예병을 동원해서 위치가 파악된 산적, 아니, 용병 놈들을 토벌하러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생겨나는 모양입니다만···.”
“양 측에 동원된 용병이 합쳐서 1,000명이 넘는다는군. 전쟁이 끝났으니 대충 500명쯤 되는 무장 실업자들이 생긴 꼴이지. 당분간 그쪽 방향 육상 교역은 끝장일걸?”
“그렇겠죠? 흠, 그쪽에 항구가··· 잘하면 단거리로 돈 좀 되겠는데요?”
“오호? 내일 회계사를 불러서 바로 이야기해 보지.”
눈치를 보던 우르타가 에른스트를 피해 네이선의 옆자리에 끼어 앉고, 다시 술을 마시며 잡담을 하던 드웰이 나를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낮에 기막힌 소문을 들었는데···.”
“뭐, 거대 오징어라도 잡혔답니까? 한 200미터쯤 되는?”
“마예도르 조선소에서 신비의 나무, 아이렌 목재라는 것을 취급한다고 하네. 포탄에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가볍다지 아마? 크크크큭.”
“포탄에 맞아도 멀쩡한 나무가 어디 있어요? 그딴 게 있으면 대포를 왜 가지고··· 잠깐, 마예도르 조선소요? 그, 마이스터 보건이 있는 그곳?”
“그래, 이제 감이 잡히나?”
“와··· 역시 술집 소문이란···. 마이스터 보건이 매일 함박웃음을 짓겠네요.”
마예도르 조선소라면 리버티 호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곳이며, 내가 이름 모를 목재를 나름대로의 상술로 비싸게 팔아 치운 그 조선소다.
페리아 족이 잘 말려서 좋은 목재로 만들어 놓은 것을 얻어왔는데, 그 사이에 아이렌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모양이다.
그런데 원목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니까 좀 웃기다.
···사실 나도 그 목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렇지, 마예도르 조선소에 수리, 개조는 물론 신규 건조 건까지 몰려서, 건선거가 비는 날이 없다더군.”
“그나저나 그거 다 해봐야 양이 얼마 안 될 텐데, 보건은 어쩌려는 걸까요?”
“그거야 뭐, 그자가 알아서 하겠지. 하여튼 당분간은 조선소 쪽은 얼씬도 말게. 괜히 붙잡혀서 더 구해달라고 엉겨들면 피곤해져.”
“에이, 당연히 그 정도는 알죠. 게론드 회계사랑 이야기해서 내일 당장 교역품 사서 뜨죠?”
선주와 선장이 낄낄거리며 쿵짝을 맞추더니 갑자기 내일 출항이라는 뚱딴지같은 결정을 내려버리자, 당황한 아인델프가 끼어들었다.
“저, 선장님, 선주님. 지금 선원들을 내일 바로 복귀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최소한 이틀은 여유를 주셔야···.”
“아인델프 일등항해사님, 내가 내일 마법을 보여줄 테니 걱정 말라고.”
“네? 마법이라니 무슨···.”
“자, 자, 신경 끄고 마셔! 선원은 나랑 갑판장님이 알아서 할 거니까. 배는 문제없지?”
“물론입니다. 제가 오늘 낮에도 확인하고 왔습니다.”
“좋아, 좋아! 역시 믿고 쓰는 일등항해사야! 마셔!”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콰앙!
부서질 듯 열리는 여관 문짝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특히 여관 주인의 눈에서는 레이저라도 나올 기세였는데, 애석하게도 들어온 사람이 내게 너무 낯익은 얼굴이었다.
비타민이었나, 슈가였나?
하여간 리버티 호의 공용 노예, 아니, 수습 선원 중의 한 명이었다.
“서, 선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래, 딱 봐도 그냥 큰일 난 것 같아.
그리고 다행히 문짝이 안 부서져서 작은 일은 피한 것 같구나.
“뭐야?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봐.”
“배가, 리버티 호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열려있는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컴컴하다.
불빛이 몇 군데 보이기는 하는데, 일단 매우 어둡다.
그리고 바다도 아니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데 무슨 습격이야?
항구에 정박한 배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해일과 징발, 전쟁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습격이라니 도저히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몇 놈이냐?”
에른스트가 앞으로 나서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묻자, 수습 선원이 공포에 질려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오펜이, 오펜이 일단 서, 선장님께 알리라고···.”
“오펜?”
오펜이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상황 판단도 빠르고 진중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사람을 보낼 정도면 보통 상황은 아니라는 뜻.
나와 생각이 일치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에른스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선장님과 돌격대장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일등항해사님, 우르타. 함께 가보도록 하지.”
그러자 아인델프와 우르타가 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드웰이 함께 일어나며 말했다.
아, 호명되지 않은 삼등항해사 슬레어도 엉거주춤하며 일어섰다.
“갑판장, 내 배요. 나도 함께 가지.”
드웰의 선언에 에른스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섯 사람은 말없이 여관을 나섰다.
나는 빠르게 문밖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다가, 망부석처럼 서 있는 수습 선원에게 은화 하나를 던졌다.
“고생했는데, 일 조금만 더 하자. 술집 돌아다니면서 술에 안 취한 선원들 있으면 복귀하라고 전해. 어서!”
“네, 넷! 선장님!”
이 시간에 술에 안 마신 놈이 몇 놈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만취만 아니면 싸울 수는 있겠지.
시대를 막론하고 싸울 때는 무조건 머릿수가 많은 편이 좋다.
그리고 나는 움찔거리는 네이선을 보고 말했다.
“싸움은 못 해도 상황은 봐야지. 일어서, 네이선.”
“그렇지? 가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에른스트 일행은 헐레벌떡 뛰어오는 우리를 보고 한마디씩 잔소리를 했지만, 그렇다고 발걸음을 멈추거나 하지는 않았다.
체력 보존을 위해 뛰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만큼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어둠 속에서 리버티 호의 실루엣이 보일 때쯤, 배 위의 소란이 감지되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횃불이 몇 개 보였고, 그 빛을 반사하는 번쩍이는 칼날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용한 부두를 오염시키는 날카로운 고함이 계속 터져 나왔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나 비명이 없는 것으로 봐서 상황이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제발 죽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선장님은 이쯤에서 기다리시죠. 아무래도 전투는 끝났고 습격자들이 배를 점거한 모양입니다. 저와 우르타가 가까이 접근해 보겠습니다.”
다친 팔에 힘을 줘 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통증이면 극단적인 상황을 맞아 체내에 아드레날린 폭탄이 터지지 않는 이상에야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
그런 상처를 입은 주제에 약도 안 챙겨 먹고 술을 퍼마셨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원래 배 타는 놈들이 몸을 좀 막 굴리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는 선장으로서 위신을 고려해 약한 척을 할 수가··· 그냥 개소리고, 당장 열이 안 나니까 약을 가지러 배에 가기 귀찮았다.
에른스트를 선두로 아인델프와 우르타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리버티 호 쪽으로 사라지고 한 참 후에 세 사람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배에서 뭔가를 찾는 모양입니다. 선장님, 혹시 선장실이나 금고에 중요한 물건을 두셨습니까?”
“그, 글쎄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머리를 굴렸다.
교역품은 다 팔았고, 게론드가 정신이 회까닥 해서 금화를 쌓아놓지 않은 이상에야 금고에는 동전 몇 개나 남아 있을 거다.
선장실에는 뭐, 다른 선장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과소비와 사치를 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굉장히 소박하다.
중요한 거라면 약 정도겠지만··· 설마?
내 표정을 관찰하던 에른스트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뭔가 있는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그걸 찾는 모양인데··· 선장실에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배 전체를 다 뒤지고 있더군요.”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항생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진짜 몇 명 안 된다.
네이선과 우르타, 이클로나의 선의였던 닥터 롱베르, 그리고 오펜 정도인데···. 오펜은 정확하게 항생제가 뭔지 모르고, 롱베르는 내가 리버티 호를 타고 있는 것도 모를 거다.
테일러에게 잔뜩 골이 난 롱베르는 힐로템에 도착하기 무섭게 이클로나에서 내려 학교로 돌아가 버렸거든.
물론 약을 먹은 사람은 많다.
전 이클로나 선원들, 특히 나와 함께 섬을 탈출한 선원 중에 적지 않은 수가 항생제를 먹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항생제를 먹은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그 약의 출처가 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니까 저들이 노리는 것은 항생제는 확실히 아니라는 거다.
만약 진짜 항생제를 노리고 왔다면 뭐 한다고 저렇게 난리까지 치겠나?
부피가 큰 물건도 아니니 실력 좋은 도둑 하나를 고용해서 선장실만 따면 되는데.
“놈들이 뭘 노리는지는 일단 쥐어 팬 다음에 물어보면 되는 거고, 우리 애들은 어때요?”
“배 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모두 죽거나 감금당한 것 같습니다.”
“주, 죽어요? 전부?”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놈들의 수가 열 명은 확실히 넘습니다. 당직 서던 놈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가 아니죠.”
“으음···.”
내가 침울해하자 에른스트가 위로하듯이 말을 건넸다.
“어쩌면 창고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리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기를 바래야죠. 그럼 이제 어떻게 수습하죠?”
일행을 한 번 둘러 본 에른스트가 난감하다는 듯 수염을 쥐어짰다.
“돌격대장이 멀쩡했다면 기습으로 격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쟤 관통상이에요. 괜히 심하게 움직이다가 덧나면 어떡해요?”
“으음, 솔직히 이 인원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겠군요.”
갑판장님도 한 칼질 하고 아인델프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규격 외 전력이라고 할 사람이 없다 보니, 최소 열댓 명, 최악의 경우 서른 명 이상일 수도 있는 적에게 돌격하기에는 조금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그런데 왜 경비대에 신고를 안 하시는 겁니까?”
잠자코 있던 슬레어가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경비대? 그놈들이 올 때쯤이면 저쪽에서 해님이 까꿍 하고 인사할걸.”
“이 밤중에 그놈들 끌어내려면 슬레어 항해사의 한 달 치 급여 정도는 우습게 깨질 거요.”
“경비대에 신고하면 놈들은 놓치고 우리만 조사를 받는다고 귀찮아져.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게.”
드웰이 냉소했고, 에른스트가 비웃었으며, 아인델프가 꾸짖었다.
아니, 애가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지 다들 왜 그렇게 무안을 주고 난리람?
그런데 이건 슬레어가 약간 자초한 부분도 있다.
멀미가 심해서 일을 제대로 못 하는 항해사라니, 누가 예뻐하겠냐고.
“내가 선원들을 모으라고 보내기는 했는데, 기대하기 어렵겠죠?”
내 말에 별을 보던 에른스트가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아직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술에 덜 취한 놈들도 몇 놈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른스트도 ‘술에 안 취한’ 선원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뭘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외부를 경계하는 놈도 제대로 안 세우고 배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습공격이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필요한 최소 인원은 열 명 정도.
그 정도 인원이면 정신없는 놈들을 각개 격파하기에 충분한 숫자일 거다.
“슬레어, 부두 입구 쪽으로 나가서 혹시라도 오는 선원들이 있으면 모아서 조용히 와. 괜히 시끄러울 것 같은 놈들은 그냥 가서 술이나 더 처마시라고 하고, 반역자 한 놈을 죽일 때마다 베덴 은화 하나씩 준다고 말해.”
감히 내 리버티 호를 더럽힌 악당 놈들, 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다.
< <114화> 강도와 도둑의 차이점 > 끝
작가의말
드웰 : 내 리버티 호가 왜 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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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오늘 연참하려고 했는데
그 상황이 조금 꼬여서...
진짜 변명이 아니고 상황이 정말 안좋았습니다!
친구네 가게 알바 빵꾸나서 때우고, 아버지 생신도 있고...
진짜 조만간 꼭 연참할께요.
용서해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