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불청객 진압 작전 >
초초함에 입술이 말라비틀어질 때쯤, 약간의 소란과 함께 슬레어가 돌아왔다.
“시간을 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모인 인원만 데리고 왔습니다. 총 12명입니다, 선장님.”
“잘했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괜찮겠죠, 갑판장님?”
“네, 안 그래도 저쪽의 소란이 가라앉는 것 같으니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에른스트는 나와 대화를 마치고 모여든 선원들을 향해 낮지만 강경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입 다물고 따라와라. 도적놈 한 놈 잡을 때마다 은화 한 닢씩. 선장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부수입 좀 챙겨보자고. 참, 돈에 눈이 멀어서 혼자 나대다가 죽는 놈은 나한테 한 번 더 죽는다. 그러니까 알아서 몸 사려. 출발.”
드웰과 에른스트, 우르타까지 한목소리로 나와 네이선에게 그냥 자리에 있을 것을 권했지만, 우리는 미운 네 살처럼 꾸역꾸역 행렬의 후미에 붙어서 함께 움직였다.
네이선이야 몸이 근질근질한 것뿐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나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 끝에 움직이는 거다.
권위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충성심이야 돈으로 산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돈 잘 주는 사장님’보다는 ‘보상이 확실하고 믿을만한, 따르고 싶은 리더’ 쪽이 더 좋잖아?
그렇다면 필요한 것이 바로 권위와 리더쉽인데, 이런 자리에서 고작(?) 부상 좀 입었다고 뒤로 빼면 생기려던 권위도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까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더라도 일단 현장에서 지휘하는 듯한 모습 정도는 보여주는 것이 맞다.
현문 근처에서 상황을 보니, 지키는 녀석은 두 녀석밖에 없었고 심지어 둘은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며 주위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탈출한 녀석이 지원을 데리고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건가?
현실적으로 도망간 녀석이 그냥 내뺐을 확률이 더 높기는 한데, 그래도 나 같으면 최소한의 경계는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선원들에게 충성심을 바라는 사람이 없는 만큼 당직을 세우는 것도 그냥 좀도둑이나 밀항자를 막겠다는 정도지, 이런 본격적인 습격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한밤중에 이런 무장 조직(?)이 배를 습격한다는 것은 이전에 겪어보기는커녕 지나가는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다 죽여!”
“우아아아아!”
“죽어라, 도둑놈들!”
“이리 와서 내 용돈이 되거라!”
“밀리네를 위하여!”
“밀리네는 내 꺼야!”
마지막에 어떤 놈들이냐?!
왜 싸우기 전에 창, 아니, 여자 이름을 부르고 그걸로 경쟁하는데?!
현문으로 사용하는 널빤지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화물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튼튼하고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충분히 넓지만, 그렇다고 무장한 성인 남자 둘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경계를 하던 두 사람이 현문 입구에서 차분하게 틀어막았다면 우리를 저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음··· 그러니까 이쪽에 갑판장님이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갑판장님이 현문에 도달하고 나서야 상황을 눈치챈 녀석들은 ‘어, 어’만 연발하다가 질퍽한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비명을 듣고 다른 불청객들이 몰려왔을 때는 이미 원 주인인 우리 쪽 인원도 모두 배 위에 올라탄 상태였다.
의외의 기습에 당황한 것도 모자라 실력도 별로였던 불청객들은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배 위에 올라간 우리 일행은 갑판장님은 선수 쪽, 아인델프는 선미 쪽으로 각자 7~8명의 그룹을 만들어 차근차근 밀고 나갔다.
그에 반해, 고작 두세 명, 많아 봐야 네 명이서 중구난방으로 달려드는 녀석들은 제대로 된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갔다.
“이야, 갑판장님 실력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아인델프도 꽤 칼질 잘하지 않아?”
“······.”
“야,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응?”
아까부터 숨소리도 안 들리던 네이선이 있는 방향을 보니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어지럽게 흔들리는 횃불 사이로 잘 살펴보니, 팔에 흰 붕대를 감은 남자가 미친놈처럼 날뛰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내가 보는 그 짧은 시간에 또 한 놈을 처리했다.
“개가 똥을 참지··· 어휴.”
전투 끝나면 저놈도 항생제 먹이고 나도 먹어야겠다.
괜히 염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나는 천천히 현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투는 우리가 압도적 우위니까 여기에 혼자 있는 것보다 배에 있는 쪽이 나아 보였다.
그리고 내가 현문에 오를 때쯤 급박한 발소리와 함께 선원 네 명이 추가로 달려왔고, 난 그들에게 현문을 단단히 지킬 것을 명령하고 갑판장이 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음이 잦아드는 것을 보니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다.
대충 15분 정도가 더 흐른 뒤,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중앙 갑판에 모여든 선원들은 자기가 죽인 숫자를 자랑하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내 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다섯 명이 꿇어앉아 있었다.
“살아있는 놈들은 이놈들이 전부입니다. 사살한 적은 17명이고 우리 쪽은 선원 셋이 죽고 다섯 명이 다쳤습니다. 다행히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날이 밝는 대로 의사 섭외해서 치료받게 하고, 원한다면 배에서 내리게 해줘. 내리면 위로금으로 1,000로스 정도 쥐여주고. 사망자들은··· 혹시 알려진 유가족이 있는지 알아봐.”
“네, 선장님.”
죽은 선원들에게도 뭔가 보상을 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선원들은 대부분 연고가 없거나, 있더라도 다른 선원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 당직자들은?”
“다행히 함수 창고에 묶여있었습니다. 사망자 전원과 부상자 두 명이 그쪽에서 나왔습니다.
“쯧. 알았어. 그럼 이제 이 난장판이 벌어진 이유를 알아볼까?”
꿇어앉아서 연신 살려달라고 비는 놈들을 보자 불쌍하기보다는 참아왔던 울화통이 터진다.
불쌍한 건 영문도 모르고 죽어 나간 선원들이지, 이 개자식들이 아니다.
“말해, 왜 배를 공격한 거지? 사실대로 말하면 죽이지 않겠어.”
“저, 정말 살려주실 겁니까?”
“음, 지금 입 연 놈, 죽여.”
내 말이 떨어지자, 놈의 뒤에 있던 선원이 칼을 뽑아 들고 뒤에서 휘둘렀다.
단말마의 비명이 울리고, 남은 입은 네 개가 되었다.
곧 놈의 숨이 끊어졌고, 공포에 질린 남은 네 개의 입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난 너희가 나랑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가 아직 숨 쉬는 이유는 내 호기심이 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뭐, 말 안 해도 좋지. 습격한 이유 따위, 이제 별로 중요하지도 않거든.”
내 말이 끝나자 놈들은 서로 아는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놈이 다 하는 말이 비슷한 걸로 봐서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만! 전부 닥쳐!”
“······.”
“흠, 좋아. 약속은 지켜야지. 저놈들 꽁꽁 묶어서 마스트에 매달아.”
“분명히 살려주신다고···!”
“마스트에 매달린다고 안 죽어.”
“하지만···.”
나는 계속 칭얼거리는 녀석을 짜증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놈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제 깨달은 모양이다.
“저놈은 입도 같이 막아.”
선원들이 약간 불만 섞인 모습으로 나를 힐끗힐끗 보며 놈들을 묶기 시작하자, 에른스트가 뒤편에서 조용히 물었다.
“정말 저놈들을 살려주실 생각입니까?”
조금 더 크게 물어보셔도 되는데 말이지.
나는 다른 선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살려준다고는 안 했어요.”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아침에 경비대에 넘기세요. 항구에서 상선이 습격을 받았으니 그놈들도 뭔가 대외에 홍보할 거리가 필요할 테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 선원들의 웃음소리와 환호가 쩌렁쩌렁 울렸다.
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동네 양아치들인 모양인데, 이 정도 사건을 일으켰으면 최소 교수형, 그게 아니면 참수형이다.
든든한 뒷배가 있는 녀석들도 아니니까 경비대에 인계되는 순간 사망은 확정이라는 뜻이다.
내 말을 들은 남은 습격자 네 명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상큼하게 무시해 줬다.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나름의 고문일 거다.
“갑판장님은 배 정리 좀 해주시고, 일등항해사는 선원들 실적 좀 정리해서 보고해 줘. 죽은 놈들 숫자가 확실하니까 괜히 허풍에 놀아나지 말고.”
“네, 선장님.”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뒤,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주님도 이만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으음. 그래. 마무리를 부탁하지.”
“우르타, 너는 네이선이랑 내 방에 가 있어. 상처 난 곳 좀 확인해보고. 하여간 말 안 듣는 걸로는 세계 최고다, 진짜.”
“네! 선장님. 네이선, 가자.”
“그, 죄송합니다, 선장님.”
네이선이 민망한 표정을 한 채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왜 아직까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어, 멍청한 녀석.
“슬레어 항해사는 우리 아가씨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해 봐. 무례한 놈들이 올라왔으니 곱게 다루지는 않았을거야.”
마지막으로 슬레어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선실로 향했다.
“아, 선장님!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펜이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며 나를 맞이하자,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던 몇몇 선원들(당직을 서던 부상자들과 수습 선원들)이 몸을 일으키며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방문한 선실은 고향처럼 아늑하고 포근··· 하기는 개뿔, 그럴 리가 없잖아?
남자들만 우글거리고 청소도 마지못해 하는 이곳은, 여전히 냄새나고 더럽다.
“오펜, 네가 그 비타민인가 그놈을 보냈다며?”
“비타민이요?”
“아니, 그 뭐야, 수습 선원 있잖아. 귀 큰 애.”
“아, 바라요? 네, 무장한 남자들이 조용히 다가오길래 바라에게 선장님께 가서 알리라고 했어요.”
“그래? 잘했어. 그런데 놈들이 곱게 보내주지는 않았을 텐데?”
“네, 현문으로 나가기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계류색을 타고 내려가라고 했어요. 바라가 그런 것은 잘하거든요.”
역시 오펜 이놈은 난놈이다.
사실 당직자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눈에 밟히던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말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원석, 내가 잘 키우기만 하면 훗날 최고의 전력이 되어줄 것이다.
“역시 오펜이네. 정말 잘했다. 많이 다친 것은 아니지?”
“네, 걱정 마세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오펜의 한쪽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이없게도 습격자들에게 맞은 것이 아니고, 죽은 선원에게 맞았다고 한다.
왜 마음대로 전투 인원을 한 명 줄였냐고, 건방지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선원은 수습 선원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도 없고, 애초에 수습 선원들은 당직자들도 아니다.
그놈이 살아 있었으면 아마 나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들 편안하게 쉬어. 고생들 했어.”
* * *
선장실로 돌아오자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고 있는 우르타와 네이선이 보였다.
붕대가 깨끗한 것을 보니 우르타가 새것으로 갈아 준 모양이다.
“상처는? 다시 찢어지지 않았어?”
“응, 괜찮···.”
“선장님! 돌격대장 또 피 났어요! 악!”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고자질하던 우르타는 네이선에게 조인트를 까이고 팔짝팔짝 뛰었고, 나는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져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진짜 편두통이 오는 기분이다.
“그만해, 이것들아! 아니, 이제 간부니까 좀 무게감이 있어야지, 너희랑 오펜이 뭐가 달라?”
“에이, 오펜이랑은 다르지.”
“맞아! 오펜은 너무했네!”
내가 실수했네, 오펜이랑은 확실히 다르지.
오펜이 더 어른 같아, 이 겉만 어른인 꼬맹이들아.
우르타가 감아놓은 붕대를 풀어 출혈 정도를 확인한 나는 안심하고 항생제를 꺼내서 네이선에게 먹였다.
움직이면서 상처가 조금 벌어지며 출혈이 조금 있었던 모양인데, 다행히 지금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저기, 그런데 원래 도적놈들 목 하나에 은화 하나잖아.”
“어? 그렇지.”
갑자기 우르타가 배의 재정 상황에 급격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 죽은 도적이 17명이나 되니까 의외의 지출이 좀 크기는 하다.
거기에 사망과 부상자들의 사후 처리 비용과 파손된 부분의 수리 비용, 망가진 도구와 물자의 재보급 비용까지 더하면 진짜 눈물 날 정도이기는 한데, 우르타가 원래 이렇게 남 걱정을 해주는 애가 아닌데?
“나도 줘야지, 은화! 나 한 명 죽였어!”
“······.”
어, 시발. 그게 목적이었냐?
내가 뒷목을 잡으려는 순간, 네이선의 쑥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난 세 명···.”
< <115화> 불청객 진압 작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