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쥐덫 작전 >
조리장 비에론을 내보낸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리장이 내게 직접 보고를 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새벽이라 헐레벌떡 뛰어오는 조리장을 본 사람도 당직자 몇 명밖에 없을 거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더라도 그게 이런 대형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놈은 없을 거다.
상황을 인지한 나도 꿈을 꾸는 기분인데 다른 사람들이 예상할 리가 없잖아?
왜 이런 상황도 예상을 못 했냐고 해도 조금 억울한 것이, 배 위에서 선원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배 위의 상식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물론 항해에서 식량과 식수가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항해 중에 문제가 생겨서 누가 봐도 식량과 식수가 부족할 것이 뻔한 상황이 아니면 선원들은 굳이 먹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고 괜히 룰을 깨면 지옥이 될 수도 있어서 서로 눈치껏 자제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식량과 식수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욕심을 낼 거고, 그러면 높은 확률로 유령선 엔딩을 맞이하게 되잖아.
순간이동이나 물 위를 걷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배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증거도 없이 손님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최악의 수다.
그럼 증거를 잡아야겠지?
우리가 눈치 챘다는 것을 모르면 이 도둑고양이, 아니, 쥐새끼들은 오늘 밤에도 도둑질을 감행할 거다.
나는 쥐덫을 설치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용히 불러들였다.
이야기를 들은 갑판장이 분노를 터뜨리며 당장 ‘손놈’들을 바다로 밀어버리겠다고 소란을 피웠지만, 내가 생각한 쥐덫 작전을 설명하면서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 * *
그리고 그날 밤 뻑뻑해진 눈을 문지르며 지루함을 참고 있는데,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우르타가 들어왔다.
“리안, 놈들이 들어갔어. 갑판장이랑 네이선에게도 전달했고.”
“몇 명이야?”
“다섯 명.”
“다섯? 제대로 본 거야? 없어진 양은 고작 그 정도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던데. 그, 솔직히 육포가 맛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
내 의문에 우르타 역시 찝찝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응, 아무리 좋게 말해도 결코 맛있다고는 못하지. 그냥 배 채우는 용도지···.”
“일단 가자. 쥐새끼들을 잡아서 추궁하면 뭔가 나오겠지.”
나와 우르타가 갑판에 나왔을 때는 이미 20명이 넘는 인원이 조리실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약간 늦게 앙셀 씨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오펜의 안내를 받으며 합류했다.
“리안 선장님, 이 시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선원들은···.”
몇 개의 횃불에 선원들이 들고 있는 커틀라스가 빛나자 앙셀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괜히 그의 망상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설명했다.
“앙셀 씨. 오늘 새벽에 우리 조리장이 식품창고에서 쥐새끼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쥐새끼를 잡으려고 모인 것이고요.”
“쥐새끼? 쥐 말입니까? 그 쓰레기를 헤집거나 시체를 파먹는?”
“비슷하기는 한데, 지금 잡으려는 쥐새끼는 조금 크죠.”
“쥐를 잡는 것 치고는 과무장 아닙니까? 그리고 저를 왜···.”
의문을 표하던 앙셀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이제야 대충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설마 저 안에···.”
“그걸 지금 확인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앙셀 씨가 직접 그 쥐새끼들의 면상을 봐야 이후에 벌어질 제 소탕 작전을 이해하실 것 같아서 말이죠.”
경악한 표정의 앙셀을 뒤로하고 나는 네이선에게 눈짓을 했다.
횃불에 비친 음영이 네이선의 얼굴을 왠지 섬뜩하게 만들었고, 그는 주저 없이 조리실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서 식품 창고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뒤를 나와 앙셀, 아인델프와 에른스트가 따랐다.
횃불을 들고 온 에른스트가 들어서자 풀어 헤쳐진 자물쇠가 보였다.
“······.”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진 표정의 앙셀이 약간 안쓰러웠지만, 괜히 더 지체해서 쥐새끼들의 배를 불릴 여유는 없었다.
문이 열리고 저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지금 나오면 목숨은 살려주지.”
내가 분노를 담아 조용히 경고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화가 없었다.
“돌격대장, 전부 죽여··· 버리지는 말고 팔다리 하나씩만 잘라.”
“네!”
성큼성큼 발을 내딛던 네이선이 뒤를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조용하게 물었다.
“···그, 진짜 잘라?”
진짜 자르면 다 죽잖아, 멍청아!
쇼크사건, 과다출혈이건, 감염이건, 배 위에서 사지가 잘리고 살아남기는 힘들다.
“대충 겁만 주라고, 이 화상아···.”
“네! 선장님!”
에른스트가 백업을 위해 조용히 뒤를 따랐지만, 괜한 기우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상자 뒤편에 숨어 있다가 네이선을 기습적으로 덮친 녀석은 네이선이 피하자 벽과 진한 포옹을 했고, 그사이에 하단 태클을 걸려던 녀석은 목이 걷어차여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기습 공격을 감행한 두 사람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제압당하자, 다른 두 녀석은 단도를 들고 반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좁은 곳에서 두 사람의 공격이 유기적일 리가 없었고, 네이선은 여유롭게 그들의 팔과 손등을 베어 무기를 놓치게 만든 후, 짧은 커틀라스로 두 사람의 목을 동시에 위협하는 묘기를 해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끝까지 숨어있던 마지막 남자는 스스로 기어 나와 항복을 외침으로써 쥐새끼 퇴치 작전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라는 상쾌한 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건 게임이나 만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진짜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먼저 쥐새끼들의 부상을 대충 지혈하게 만들었다.
지혈하면서 선원들이 분노를 담아 사로잡힌 용병들을 쥐어박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상황을 아는 선원들이 놈들을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 훌륭하게 내 말을 따라주고 있는 거다.
그리고 툴툴거리는 선원들을 달래서 엉망이 된 창고를 정리했다.
당연히 조리장의 감독하에 남은 식량과 식수의 수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시켰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꽁꽁 묶인 용병들을 거칠게 끌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이미 갑판에는 소란을 듣고 나온 나머지 선원들과 손님들, 어쩌면 다른 쥐새끼일지도 모르는 자들이 나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꼴을 창백한 얼굴로 지켜보던 앙셀이 내게 조심스럽게, 하지만 약간의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선장님,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좋게 저에게 말씀하셨어도···.”
“······.”
나는 물끄러미 앙셀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앙셀 씨는 아마 이 상황을 인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쥐새끼들은 과연 인정했을까요? 절대 아니라는 것에 제 배도 걸 수 있습니다. 저런 자들의 습성은 뻔하죠.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 자기들을 핍박한다고 오히려 화를 낼 놈들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손님들께서는 절대로 이후의 제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리고 과연 쥐새끼가 고작 다섯 마리밖에 없을 것 같습니까?”
나는 차갑게 말을 마무리하고 턱짓으로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용병무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들을 약간의 원망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는 호위대 사람들도 함께.
내 앞에 무릎 꿇린 다섯 남자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들을 다 죽여도 우리가 인육을 먹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배식에 제한을 받게 될 선원들의 원망을 받아 줄 대상이 필요했다.
“자, 쥐새끼들, 너희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알고 있겠지?”
“선장, 우리는 그저 먹는 것이 조금 부족해서 약간, 아주 약간만, 커헉!”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던 녀석은 에른스트의 발길질 한 번에 침몰했고, 나는 뒤이어 평온한 말투로 명령을 내렸다.
“그놈 손가락 하나 잘라.”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이선이 깔끔한 칼솜씨로 바닥을 짚고 있던 남자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어찌나 빨랐는지 손가락을 잘린 녀석이 2초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비명도 지르지 못했을 정도였다.
“으아아악! 내, 내 손···!”
“시끄러워, 계속 소리 지르면 하나 더 자른다.”
순식간에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질문은 내가 하고, 너희는 대답을 하는 거야.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손가락을 하나씩 자를 거고, 더 이상 자를 게 없으면 목··· 을 자르는 것은 피가 많이 나니까 바다에 버려주지. 수영에 자신 있다면 살아나가서 복수해도 좋아.”
이 근처는 섬도 없고, 심지어 배도 없고, 가장 가까운 육지는 우리의 목적지인 일루딘 항구다.
손가락도 없는 인간이 바다에 빠져서 살아남을 확률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리안 선장!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아무리 저들이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당신이라도 우리 측 인원을 이렇게까지 벌할 수는 없어요!”
앙셀이 발작하듯이 소리쳤지만 나는 바로 칼을 뽑아 들고 대답했다.
“배에서 선장의 말이 절대적인 이유는, 한 명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위험한 곳이 배이기 때문이지. 앙셀, 당신이라면 상행 중에 배를 타 봤을 테니 잘 알 거요. 지금 저들은 그대의 소속이기 전에, 감히 이 리버티 호의 승선 인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대가 손님이 아니었다면 이미, 후··· 그만하죠.”
앙셀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이후의 심문은 일사천리였다.
쥐새끼들은 한참 전부터 음식 도둑질을 해온 것을 인정했고, 자비를 애걸했다.
“고작 배가 좀 고프다고 배에 탄 100명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고 선처를 해달라···. 그래, 뭐 선처하지.”
내가 선선히 선처한다고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화를 겨우 참는 듯한 선원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목숨은 살려줄게. 하지만 그냥은 어렵고, 너희 말고 식품 창고에 몰래 들어간 놈들을 남은 손가락 수 만큼씩만 대도록 해. 인원수가 모자라면 그만큼 손가락을 자르고 살려주지. 한 놈도 대지 못하면 배에서 내려줘야겠어.”
내 말이 끝나자 선원들 사이에서는 작은 함성이 일었고, 용병들 사이에서는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첫 번째 희생자가 당첨되었다.
“저희가 전부입니다! 또 누가 있다는 겁니까?!”
“던져.”
선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 남자를 들어 현측으로 다가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몇 마디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현측 난간에 위태롭게 걸쳐진 남자를 보았다.
“던집니까?”
에른스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직 입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하나쯤 뒤져야 입이 열리겠네요.”
내 대답을 들은 에른스트는 고갯짓으로 선원들에게 최종 명령을 내렸고, 아무도 안 믿을 거짓말로 위기를 빠져나가려던 남자는 결국 배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설마 진짜로 사람을 묶은 채로 바다에 빠뜨릴지 몰랐는지,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손님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나는 평온한 어조를 가장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식품 창고에 들어간 다른 사람을 전혀 몰라? 그렇다면 너희가 대충 5~6일 동안 밤에 먹은 게 500인분쯤 된다는 건데, 그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니까 대충 우리를 다 죽이려고 일부러 식료품을 버렸다는 말이군?”
말도 안 되는 양에 기가 질렸는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저만큼 먹은 것은 아닌데, 이놈들이 대충 처먹다 보니 파기해야 하는 양도 만만치 않아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식수는 오염이 심해서 여름이었다면 진심으로 다 말라죽을 뻔했다.
결국 한 놈의 손가락이 더 잘리고 나서야 이름이 줄줄 불리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불린 사람은 용병 전체였다.
호위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도 약간 의외였지만, 용병 중에 예외가 한 명도 없다는 것 역시 의외였다.
어떻게 한 놈도 빠짐없이 최소한 한 번 이상 식품 창고를 털었을 수가 있지?
그게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할 수 있는 놈이 한 명도 없었다고?
* * *
이게 어젯밤까지의 일이고, 지금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용병들은 최하층 갑판에 격리 수용, 그러니까 ‘감금’되었다.
당연히 날붙이는 물론 금속류까지 모조리 압수했는데, 선원들에 이어 같은 편이어야 할 호위대마저 한발 물러서서 중립을 지키자, 용병들은 별 반항 없이 조치를 받아들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 고기밥이 되도록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데 앙셀이 기를 쓰고 그것을 막았다.
앙셀 입장에서는 당장 배에서 내리면 용병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모조리 죽는 것을 방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놈들의 선처를 요구한 만큼 그도 양보를 해야만 했다.
먼저 앙셀과 호위대에 지급되는 식량과 식수 배급을 1/3로 줄였다.
저들은 딱히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며칠쯤 저렇게 굶어도 별 상관없을 거다.
그리고 앙셀은 손실에 대해 배에서 내리는 대로 10만 로스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으며, 나는 선원들에게 입항 시 각자 1,000로스 안팎의 보너스를 무기로 70%의 제한 배식을 관철시켰다.
이렇게 아끼면 식량과 식수 사정은 아슬아슬하게 남은 항해일수와 비슷한 7일분이 된다.
아 참, 그리고 죄수들에게는 그들이 지저분하게 먹어서 배식이 어려운 파기분과 가장 오염이 심한 식수를 딱 생명만 유지될 정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저대로 7일을 지내면 엄청난 근 손실이 발생(몸 쓰는 사람들은 몸이 재산이다)하는 것은 물론 온갖 질병과 결핍증에 시달리고,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자기들이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하라지.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지만, 내게는 도둑놈의 인권보다는 내 사람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 <120화> 쥐덫 작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