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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24화 (124/420)

< <124화> 오펜의 눈물 >

- 나포된 갤리선 하부 갑판 -

오펜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죽음이 냄새가 있다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코가 썩을 것 같은 악취와 삶의 의지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나마 정신이 온전하고 삶의 의지가 남은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구출되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사람들은··· 뭐랄까, 다 녹아버린 양초 같은 사람들이었다.

촛농만 남고 심지가 없어서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초의 잔해처럼, 독하게 말하자면 빈 껍데기 같은 사람들.

“으··· 으··· 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도 없다.

끽해봐야 지금처럼 신음성 같은 소리를 힘겹게 낼 뿐, 이제 그나마 그 소리도 못 내는 사람들만 남았지만···.

그때, 미약한 움직임이 있었다.

오펜의 옷깃을 잡으려는 듯했지만, 힘이 없어서 툭 치고 지나가는 듯한.

남은 사람들은 시체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뿐이라 의문이 든 오펜이 고개를 돌려보니, 산발을 한 남자가 탁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고 노력했다.

“으··· 페··· 에···.”

“음?”

처음 보는 남자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익숙함에, 오펜이 남자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악취가 더 진해졌다.

괴인의 몸에는 오물과 분변이 묻어 있었고, 신체 일부는 썩고 있었다.

그러나, 오펜의 눈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의지와 상관없이 오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어느새 괴인의 더러운 머리를 쓸었다.

“아, 아니지? 아닐 거야··· 그냥 닮은···.”

“···어··· 어··· 페··· 에···.”

“아니야···.”

“···어··· 오··· 페··· 엔···.”

갑자기 오펜의 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의 떨림이 점점 커지며 괴인의 얼굴을 더듬는 손길이 더 바빠졌고, 미칠듯한 적막이 주변을 감쌌다.

한쪽 눈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괴인의 이목구비가 완전히 드러나고, 괴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오, 오, 오페엔··· 왜··· 여어, 기이···.”

“으아아아! 형! 혀어어엉! 이, 워트 형! 이, 이게, 이게 뭐야! 왜··· 왜··· 혀어어어엉!”

비통한 오펜의 절규가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와의 재회가 오펜에게는 단 하나의 소원이었으며, 9년을 기다린 어린 오펜의 영웅, 유일한 가족, 바로 그 사람이 비참한 모습으로 오펜 앞에 있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섬에서 나오지 말아야 했던 것을.

선장의 호의 따위, 받지 말아야 했던 것을.

룸페르가 침몰했을 때, 그때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 이런 꼴로 만날 것이면 차라리··· 나를 만나기 전에··· 차라리, 차라리 죽었다면···.

* * *

오펜의 절규에 깜짝 놀라 하부 갑판으로 뛰어 들어가니, 한 괴인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오펜이 보였다.

영혼이 부서지는 외침, 상처 입은 동물의 울부짖음, 듣는 사람의 기분조차 비참하게 만드는 그 통곡에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대충 보아도 오펜이 안고 있는 괴인의 상태는 심각했다.

노를 저을 팔은 아직 멀쩡했지만, 한쪽 다리는 기괴하게 뒤틀렸고, 한쪽은 발목 밑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이미 썩어가는 듯 색이 심상치 않았다.

눈도 한쪽이 크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나마 멀쩡한 자들도 시력을 잃거나 매우 약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 지경이니 당연한 말이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저 둘은 도대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본 거지?

겨우 오펜을 진정시키고, 오펜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형이라는 남자를 최우선으로 갑판 위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빛 아래 드러난 남자의 몸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더니, 먼저 올라와 휴식을 취하던 포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보시오, 고맙긴 하지만 저 남자는 틀렸소. 이번 전투가 끝나면 어차피 폐기되었을 남자요. 아무리 잘 치료해도 하루도 못 버틸 거요. 차라리 다른··· 크흠, 아니요.”

주절주절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떠들던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오펜을 보더니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선장님, 제발! 제발 우리 형 좀 살려주세요! 평생! 평생 수습 선원을 하라면 할게요! 선장님을 대신해서 죽을게요! 제발, 제발 우리 형 좀··· 흐어어엉!”

내 바짓단을 붙잡고 울부짖던 오펜은 끝내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펜의 마음이야 이해는 하지만, 세상에는 안 되는 것도 있는 거다.

그리고 아마 오펜도 알고는 있을 거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오펜, 일단 좀 진정하고···.”

그때, 그 남자가 내 바지를 움켜쥐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남자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남자를 내려다보자, 한쪽만 남은 그의 탁한 눈에 강력한 염원이 느껴졌다.

“오펜, 잠시만··· 네 형이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거의 반실신 상태인 오펜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내가 쪼그려 앉자, 끊어질 듯한 그의 말이 들렸다.

“오펜··· 부, 불쌍한··· 부탁, 드, 드리··· 감사··· 함, 합니다···.”

“걱정 마시오. 오펜은 훌륭하게 자랄 테니.”

“오, 오펜을, 이리로···.”

나를 지켜보던 오펜이 바닥을 기어서 다가왔다.

오펜이 더러운 남자의 손을 쥐자, 전보다 더 뚜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펜, 야, 약속 못··· 지켜··· 미, 미안하다···. 잘 자, 자라주어 고맙다. 형이, 형이 너무 못나서··· 미안해. 그래도 가, 가기 전에··· 널 보아서··· 신께 감사···.”

끝내 남자의 목소리가 끊겼고, 살짝 들려있던 그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오펜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와중에 남자의 얼굴에는 한줄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오펜의 형, 워트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배 위에서는 시체를 방치할 수 없으니, 뱃사람들의 기본적인 장례는 무거운 추를 달아 바닷속에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오펜의 사정이야 딱하지만, 우리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장례를 마친 오펜은 선실에서 쉬도록 하고 우리는 나머지 작업을 서둘렀다.

그리고 작업이 재개되기 무섭게 불안한 표정의 앙셀이 내게 다가왔다.

“리안 선장님, 도대체 어쩌시려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요. 이 배를 끌고 갈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앙셀 씨,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다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갑판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구출된 포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앙셀은 입술을 깨물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저들이 불쌍하지만, 더 늦어지는 것은 안 됩니다. 차라리 일부 식량과 함께 이 배에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나가는 다른 배가 구출할 것 같은데.”

“지금 때에 여기까지 돌아다니는 녀석은 드뭅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다 죽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잠시만요, 앙셀 씨. 지금 우리는 어차피 역풍을 뚫고 가야 합니다. 이럴 때는 노를 저을 수 있는 갤리선이 더 나은 법이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우리가 예항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저 갤리선을 앞세워 노를 보조 동력처럼 사용하면 오히려 더 빨리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됩니다!”

“에헤이, 그러니까 그냥 시도나 해 봅시다. 솔직히 앙셀 씨도 저들을 버리고 가는 게 찝찝하지 않습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앙셀이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누가 노를 젓죠? 노를 젓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아닌 이상 절대로 안 한다고 하던데···.”

“몇 가지 생각해 둔 방안이 있습니다. 일단 해적 놈들. 어차피 잡히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항복할 정도로 생에 집착이 강한 놈들입니다. 죽을 거냐 노를 젓겠냐 한다면 노를 젓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구출된 자들 중 원하는 자는 노를 젓게 해주고, 항구에 도착하면 약간의 사례금을 주려고 합니다. 저들은 항구에 도착하더라도 당장 살아갈 일이 막막하니 응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앙셀이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원이 부족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계속 노를 젓지는 못할 테니 교대 인력도 필요할 거고···.”

“그래서 말입니다만, 선원 중에도 자원자를 뽑을 겁니다. 물론 약간의 돈이 들어가겠죠. 그리고 그 용병들 있지 않습니까?”

“네?!”

“용병들에게 사면과 정상적인 식사 제공을 걸고 노를 젓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하, 그래도 우리 상단에서 정기적으로 고용하는 자들이요, 자존심이 있는데 설마 노를 젓겠습니까?”

“벌써 사흘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자존심은 다 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죠. 손해 볼 것 없으니 제안이라도 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러시죠.”

그렇게 합의를 마친 우리는 노 젓는 인원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나포한 해적선이 앞에 서는 기묘한 형태로 결속된 리버티 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갤리선의 노를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 줄 뿐만 아니라 자재를 활용한 지지대까지 여러 개 연결된 웃기는 모양새였지만, 다행히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갤리선이 항로를 선도해야 하니 아인델프를 임시 선장으로 삼아 슬레어와 함께 갤리선으로 보냈다.

방향 전환 없이 직선으로 달릴 생각이라서 삼등항해사 슬레어도 충분히 한몫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갤리선에도 돛이 있기는 한데, 차라리 내리는 쪽이 더 나아서 내려버렸기 때문에 딱히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아, 물론 노 젓는 인원 빼고.

그나마 애들을 시켜서 청소라도 해 놓고 한 시간마다 교대를 원칙으로 해서 근무 조건(?)이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교대하고 나오는 인원은 양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올 정도로 고된 노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쉽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느려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원래 다른 선박을 예항할 때처럼 심각한 수준의 속도 저하는 나오지 않았기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내 목적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고 늦지 않게 가는 것이니까.

물론 앙셀 씨의 인상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쪽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전투 시 도움에 대한 대가로 원래 추가로 받기로 한 10만 로스를 안 받기로 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아, 물론 갤리선을 나포해서 그 정도 손해는 물론, 선원들과 용병, 포로들에게 약속한 추가 수당을 모두 갈음하고도 남는다.

* * *

모두가 잠든 시각, 갑판장에게 잠시 선교를 맡긴 나는 우르타와 함께 네이선의 방을 찾았다.

“좀 괜찮아?”

“아, 왔어? 한숨 자고 나니까 좋아졌어.”

“네이선, 그놈 어때?”

“어? 누구?”

“낮에 싸운 그 해적 놈.”

“아아, 갑판장님한테 들었는데, 외날의 라프나라고 제법 유명한 녀석이라더라?”

“그러게, 나도 술집에서 이야기만 들었는데 거의 괴물이더만.”

괴물이라는 말에 약간 어색하게 웃던 네이선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하, 보통 사람보다 세기는 한데, 제대로 배운 녀석은 아냐. 타고난 힘과 반사신경이랄까, 싸움에 대한 재능은 대단하긴 하더라.”

“허, 평가가 굉장히 박하다?”

“이길 수 있어. 내 몸이 정상이었다면···.”

“야, 그놈도 등짝에 도끼 맞았었어. 솔직히 갑판장님이 그 도끼질 안 한 상태였으면 네가 졌을 걸?”

“뭐라고?!”

네이선이 성을 냈지만, 나는 꿋꿋하게 내 의견을 번복하지 않았다.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막말로 네이선의 상처가 불편하기는 해도 실시간으로 피가 줄줄 흐르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극한의 통증이 느껴지는 그런 종류는 아니잖아.

조금 불편하고 통증은 있었겠지만, 일단 아물기 시작한 지 꽤 된 상처니까.

혼자서 성을 내던 네이선이 다시 침대에 누우며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그렇지. 둘 다 몸이 정상이라면 몰라도, 나만 아팠다면 승패를 알 수 없었겠지.”

곧 죽어도 진다는 말은 안 한다.

“그런데, 그, 그, 그놈! 라프타? 하프나? 그놈!”

“외날의 라프나.”

“그래, 그 아프나!”

“······그렇다고 하고, 뭐?

“왠지 또 볼 거···.”

“닥쳐엇!!”

나는 재빨리 우르타의 입을 막았다.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왜 이상한 예언을 하고 난리람?!

다음에 만난다면··· 글쎄, 최소한 선원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은 확실했다.

오늘 타고 왔던 해적선은 그놈이 원래 쓰는 해적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외날의 라프나.

이미 수년전부터 내해에서 악명을 떨치는 해적이다.

나도 만나는 것이 처음일 뿐, 술집에서 몇 번이나 이름을 들었을 정도니까.

도끼로 마스트를 쪼갠다느니, 사람을 반으로 갈랐다느니, 그런 소문들은 들었는데 그냥 다 뱃사람 특유의 과장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나?

그 정도 능력이 있다면 용병을 해도 귀족님들 눈에 띄어 출세할 수 있을 것이고, 전쟁이라도 나가면 바로 신분상승도 가능하다.

굳이 배를 탄다고 해도 해적 말고 용병함대에 들어가도 제법 대우를 받을 거다.

그런데 왜 목숨도 위험하고 딱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해적이 되겠냐고.

···아닌가? 그놈들은 그게 행복한가?

< <124화> 오펜의 눈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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