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30화 (130/420)

< <130화> 인어입니까? >

우리가 잠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기묘한 그것의 수는 급속도로 불어났다.

이쪽에서 보이는 것만 대충 봐도 100개가 넘는 것 같다.

“으으···. 리안, 진짜 이거 그냥 둬도 되는 거 맞아?”

“조용해, 지금 나도 혼란스럽거든?”

“지금이라도 선원들을 다 깨우면···.”

“이길 수 있겠냐! 숫자는 둘째 치고 저게 뭔지도 모르잖아!”

“그, 혹시··· 인어?”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본 인어가 갑자기 저렇게 수백 마리가 나타난다고?”

“그럼 뭐야···?”

“나도 몰라, 일단 너는 조용히 가서 우르타 내려오라고 하고 간부들 다 기상시켜. 소란 떨지 못하게 단속하고.”

“전부?”

“···회계사랑 조리장 빼고.”

잠시 후, 우르타가 조용히 내 옆에 서서 소곤거렸다.

“쟤들 다 뭐야? 인어? 나 인어 처음 봐!”

“나도 몰라···.”

“어, 혹시 막 인간을 잡아먹나? 우리 공격당해? 대포 준비할까?”

“나도 궁금하다, 제발 좀 조용해 줄래···?”

그리고 대포는 대인용이 아니라 대함용··· 이 문제가 아니라, 이 거리의 물속에 있는 걸 어떻게 대포로 맞추냐!

그냥 포탄을 들어서 던지는 게 맞추기 쉽겠다.

“그런데 되게 얌전하네? 안 움직이잖아?”

“그러게··· 가 아니고! 넌 안 무섭냐?!”

“뭐가?”“어? 진짜 안 무서워?”

“그러니까 뭐가?”

“······.”

이 녀석, 진짜 안 무서운 모양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뭐 그런 건가?

“착해 보이는데, 먹을 것을 주자!”

“무슨 소리야?!”

“아니, 그 표정이 좀, 식당 갔을 때 네이선이랑 비슷··· 음, 그럼 술을 줘야 하나?!”

“뭐?”

그때 뒤쪽이 약간 소란스러워지더니 다른 간부들과 네이선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갑판장이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판장님, 혹시 쟤네들 본 적 있어요?”

“이런 건 저도 처음···.”

갑판장님이 부정하자마자 나는 드웰과 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 처음입니다, 선장님.”

“나도···. 알다시피 나는 대부분 그, 섬에 있었잖나.”

그때 이미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린 갑판장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말했다.

“빨리 선원들을 깨우고 전투준비를 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깐만요! 무작정 싸울 일이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지나치게 흥분한 갑판장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저들이 우리 눈에 띈 지 벌써 30분이 넘었어요. 그런데 전혀 적대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요. 심지어 접근도 안 해요. 그런데 굳이 우리가 먼저 적대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어요?”

“하지만 만약에라도···!”

“갑판장님! 저들이랑 싸우면, 이길 수는 있어요?! 대충 봐도 300은 훌쩍 넘어 보이는데? 혹시라도 배 밑에서 공격을 하면 우린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 빠져 죽어요!”

“으으음! 하지만 대비는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안한 표정의 에른스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괜히 더 큰 소리가 나오면 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갑판장! 명령이다, 그만해. 지금부터 상황은 내가 직접 통제하겠어. 누구도 내 명령 없이 저들에게 자극이 되는 행동을 하면 즉결 처분하겠다!”

비록 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소리를 죽였지만, 그렇다고 내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을 리는 없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지만, 결국 갑판장은 칼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선장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모두의 눈을 확인한 나는 우르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까 하던 말 다시 해봐.”

“네?! 아, 아, 그러니까 사실 표정은 아니고 왠지 그냥 느낌인데··· 배가 고픈 네이선 같아.”

“갑자기 내가 왜?”

“으응? 네이선 막 술집 가면 그렇잖아, 가만히 못 있고 막, 막···.”

“내가 언제 그랬어!”

“···맨날?”

“그만! 시끄럽고, 그러니까 먹을 걸 주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때 가만히 있던 삼등항해사 슬레어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자기주장을 안 하던 삼등항해사였던지라 모두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도 말을 이었다.

“그, 그러니까 제가 아카데미에 있을 때 인문학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향료 제도의 원주민들은 원래 우리 대륙인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구요. 하지만 우리가 먼저 공격적으로 대해서 늘 전투가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아니지만, 저들도 이쪽에서 호의로 다가가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선장님 말씀대로 저들이 먼저 공격한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확실히 슬레어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만약 저들이 공격하려고 했다면 이미 뭔가 액션이 있어야 했다.

지금도 보면 숫자가 조금 더 늘기만 했을 뿐, 여전히 가만히 있지 않나?

그렇다면 평화적으로 다가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두고 태평하게 잠을 청하기에는 무리였으니까.

“삼등항해사, 그럼 지금 조리장 깨워서 음식 중에 괜찮은 것으로 좀 준비해봐. 혹시 모르니까 술도 조금, 아니다, 술은 내가 준비할 테니 어서 움직여!”

* * *

커다란 양동이에 파티에 쓰이고 남은 햄과 치즈, 빵(쉽비스킷은 아니고 적당히 딱딱한 수준의), 내가 아끼던 브랜디 한 병과 말린 과일, 견과류 약간이 담겼다.

성인 남자 대여섯 명이 먹을 분량으로, 수백의 인원이 먹는다면 맛도 못 볼 정도지만 더 많이 보내는 것도 왠지 위협으로 느낄 것 같았다.

줄에 연결해 천천히 내려진 양동이는 성공적으로 바다에 안착했고, 우리는 긴 장대를 이용해 그 양동이를 천천히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너무 빨리 보내면 또 위협적으로 느껴질까 봐 답답할 정도로 양동이는 천천히 움직였고, 우리는 손에 땀을 쥔 채 그 과정을 주시했다.

별다른 사고 없이 장대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위치까지 양동이를 보내고 천천히 장대를 회수한 뒤, 우리는 그들의 반응을 보았다.

나름 멀리 보내려고 했는데도 양동이는 아직 그들보다는 리버티 호에 더 가까웠다.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올 때쯤, 드디어 놈들에게 반응이 왔다.

‘퐁’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가까이에 있던 한 녀석이 물속으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양동이 앞에서 나타났다.

돌고래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아, 물론 사라진 놈과 나타난 놈이 같은 놈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는 머리를 들어 양동이 안을 한참 구경하더니 물속에서 손을, 어, 그러니까 진짜 손, 인간의 손과 거의 비슷한 손을 꺼내더니 바구니 안에 넣고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굴 앞으로 가지고 가더니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냄새를 맡는 거야.”

우르타가 조용하게 속삭였다.

한동안 그렇게 뭔가를 탐색하던 녀석은 곧 그것을 다시 양동이에 집어넣고, 양동이를 잡고 물 위로 머리만 내놓은 채로 미끄러지듯이 제 무리로 돌아갔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수영 실력이라니···.

물 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물속에서는 절대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저런 녀석들과 싸우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지경이다.

양동이를 가진 녀석이 무리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들이 양동이로 몰려들었다.

이후로는 경계심이 풀렸는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치는 녀석들도 보였고, 양동이 안의 음식들도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이 빠지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들은 ‘퐁퐁’하는 작은 물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긴장되면서도 신비한 이 광경을 리버티 호의 선원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어느새 경계심도 풀어버린 채 그들을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의 수는 태가 날 정도로 확 줄어있었다.

“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지?”

나와 비슷하게 정신을 차렸는지 드웰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렸고, 우르타의 몽롱한 대답이 바로 따라붙었다.

“물속에 들어갔겠죠. 아까부터 물속으로 들어가는 애들보다 나오는 애들이 적어요.”

“그, 그래?”

여러 명의 한숨이 동시에 들려왔다.

자칫 잘못했으면 리버티 호 실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운 좋게도 쉽게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도 없어서 약간 풀어진 마음으로 남은 녀석들을 주시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양동이를 끌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 설마 양동이는 돌려주는 거야? 굉장히 예의 바르잖아?”

네이선이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멀어서 잘 안 보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녀석들이 뭔가를 양동이에 넣는 것을 보았다.

나름대로의 보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원래 음식 그릇을 빈 그릇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는 하지.

배에서 거의 5미터 거리까지 녀석이 접근하자, 우리는 드디어 그들의 외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머리와 손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그들이 인간은 확실히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피부 대신 암청색의 비늘이 빼곡하게 덮여 있었고, 커다란 눈은 완전한 원형에 약간 좌우로 벌어져 있었다.

코는 거의 없는 듯했고, 입은 좌우로 크게 찢어지고 입술이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혐오감이 들 정도로 ‘괴물’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양동이를 놓고 잠시 우리를 관찰하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약간 큰 소리를 내며 바닷속으로 잠수해버렸다.

그리고 그 녀석이 허공에 U턴하듯 잠수하면서 보인 하체는, 완벽하게 물고기를 닮아 있었다.

“인어네.”

“에엑?!”

“저게 인어라고?!”

“설마 저 추악한 괴물이 인어라는 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인어라는 내 말에 일동은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구도 마찬가지지만 이곳도 인어의 전설에서 긴 머리로 아름다운 가슴을 가린, 어여쁜 아가씨를 인어로 묘사한다.

바다에 나가는 게 죄다 남자들이니까 뭔가 희망 사항을 담았다고 봐야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인어를 봤다는 녀석은 엄청 많은데 정확하게 근거를 제시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다.

그럼 둘 중의 하나인 거다.

인어가 없거나, 인어를 만난 사람은 다 죽었거나.

그런데 말이야, 인어가 별거야?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에 물속에 살면 인어(人魚)잖아?

애초에 제대로 본 녀석도 없는 게 인어라면, 저들이 인어가 아닐 것도 없다.

조건은 다 갖췄지 않은가?

“그럼 저게 인어가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는데? 설명 가능하신 분?”

“어··· 음···.”

“괴물?”

네이선의 한심한 대답에 내가 혀를 차고는 바로 대답했다.

“괴물은 인간에게 적대적이어야지. 저들 중 누가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냐?”

“그,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 페리아 족도 막 예쁘지는 않았잖아?”

“······.”

우르타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고, 드웰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았다.

잠시 후, 경악으로 물든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페리아 족이라니···.”

“설마 그 전설의 종족 말인가?”

“포술장 자네 혹시 진짜 페리아 족을 본건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페리아 족이건 인어건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일단 저 양동이부터 건져 봅시다.”“그래도 페리아 족이면···.”

조리장 비에론이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물었지만, 내 살기 어린 눈빛에 결국 호기심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새 인어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조류를 따라 배 근처까지 떠밀려온 양동이를 끌어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네이선이 줄에 매달려 조금만 내려가서 집어오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에이··· 이게 뭐야?”

밑에서 네이선의 실망스러운 혼잣말이 들려왔지만, 우리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다.

저들이 인어인지 아니면 다른 종족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인간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교류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인간과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들에게 나름 귀한 것을 주건, 음식에 맞는 가치의 뭔가를 주건,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가치로 다가오는 것을 줄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준다고 한들,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무거운 금속과 빛을 반사하는 돌일 뿐일지도 모르지 않나?

한 조각의 빵보다 가치가 없는 그런 것 말이다.

아, 설마 미역 조각이나 생선 뼈, 이런 것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 <130화> 인어입니까? > 끝

작가의말

인간 세상에서 귀하게 취급받는 돈, 귀금속, 보석 이런것들이 과연 인간 외의 존재에게는 어느정도 가치를 가질까요?

사회적 약속이 모두 무효화 된다면 우리 세상의 부자와 권력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ㅎㅎ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