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보물은 어디를 가도 보물
터엉!
양동이가 먼저 올라오자, 사람들은 뒤따라 올라오는 네이선을 잡아 줄 생각도 않고 양동이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수고했어.”
신체 능력이 워낙 좋은지라 별다른 힘을 들이지도 않고 뱃전으로 기어 올라오는 네이선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손을 잡아 끌어주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녀석의 얼굴이 새삼스럽다.
언제 이렇게 컸… 아, 나랑 동갑이지.
“차라리 물고기라도 주지, 해초는 뭐야….”
갑판 위에 올라온 네이선이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양동이 안을 살펴본 모양인데, 영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미 행복했다.
저들과 싸우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가?
식량 조금과 내 간식 몇 개로 이길 수 없는 적을 물리쳤다면 역사에 충분히 남을 만한 대승이다.
…….
그건 좀 심하려나?
내가 양동이에 다가가자 조금씩 모두 조금씩 위치를 벌려 서며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양동이의 맨 위를 덮은 해초를 집어 든 에른스트 갑판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발광초군요. 물에 닿으면 미약한 빛을 냅니다. 물론 죽고 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만….”
“먹을 수 있나요?”
내가 발광초라는 해초를 넘겨받으며 묻자, 에른스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독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굳이 이걸 왜 먹겠습니까?”
직접 만져보니 뻣뻣하고 표면이 거칠어서 딱히 식욕이 생길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물론 굶어 죽을 상황이 되면 뭔들 못 먹겠냐마는, 이번 항해는 딱히 식량이 부족할 상황은 아니다.
발광초를 옆으로 치운 나는 안에서 꽤 그럴싸한 녀석을 발견했다.
“이거 산호죠? 손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차마 손으로 잡지 못하고 양동이를 돌려가면서 확인하자, 함께 보고 있던 아인델프가 확답을 주었다.
“산호가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산호는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아하!”
나는 옆에 치워둔 발광초로 손을 꼼꼼하게 감싼 뒤 조심스럽게 산호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오래된 병(겉에 따개비 같은 것이 잔뜩 붙어있다)을 마저 꺼냈다.
묵직한 것을 보면 뭔가 들어있는 모양인데, 저 상태로는 깨지 않는 이상 뚜껑은 못 열겠다.
부피가 큰 것은 산호와 병뿐이었고, 양동이의 바닥에는 작은 돌과 조개껍데기 같은 것이 잔뜩 깔려있었다.
인어(?)들의 세상에서는 가치가 어떤지 몰라도, 인간 세상에서는 특별히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네요. 이만 해산하죠. 일단 이것들은 선장실에 보관하겠습니다. 회계사가 일어나면 함께 논의하도록 하죠.”
“그러시죠. 역시나 별거 없어 보입니다.”
“산호만 해도 어딥니까? 잘 관리해서 팔면 꽤 돈이 될 겁니다.”
“하긴, 우리가 준 것에 비하면 산호 하나만으로도 분에 넘치죠.”
가공이 안 된 산호라고 해도 가치는 상당하다.
산호 자체가 흔하지도 않고, 상품성이 있는 예쁜 산호는 희귀하고, 산호의 특성상 보관이나 운반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산호는 보석 뺨치게 비싼 사치품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꾸 산호에 주목하는데, 우리가 얻은 가장 큰 보상은 바로 평화다.
***
아인델프의 강권에 의해 선장실에 들어온 나는, 오늘의 일을 찬찬히 복기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인어들이 인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우리를 포위한 채 가만히 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적대적인 제스처를 이해하고 교환의 개념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비록 인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좋은 비즈니스 상대가 될지도 몰랐다.
우리가 이쪽 해역에 굳이 들어온 이유는 밤에 정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다른 배들은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전혀 못 올 곳도 아니다.
만약 인어들이 배에 관심을 보이는 존재들이었다면, 지금까지 지나가는 다른 배들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어들은 배나 인간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끌렸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리버티 호가 다른 배들과 달랐던 점은 딱 하나, 파티밖에 없다.
술, 노래, 음악, 음식…. 요소는 많다.
그래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파티로 인해 그들이 모여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 더, 지금 생각해 보면 인어들은 험악한 외모와 달리 굉장히 온순하고 평화로운 종족인 것 같다.
그들이 파티의 무언가 때문에 몰려들었다면, 호기심 해결을 위해서건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건, 배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가장 간편하고 좋다.
하지만 그들은 멀리서 그저 보기만 할 뿐, 공격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물론 배 바닥에서 이미 작업 중이었을지 모르지만….
왠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 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고, 리버티 호는 순항 중이었다.
선장실을 나와 갑판으로 나가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선원들이 제각각 인사를 해 왔다.
파티가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선원들의 표정이 꽤 밝았다.
인사를 대충 받아 준 나는 선교로 향했다.
선교를 지휘하던 이등항해사 발드가 상황을 보고했다.
“나오셨습니까, 선장님.”
“으응, 이등항해사가 당직이야?”
“네, 약 3시간 전 일출 시각을 기점으로 닻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특이사항 없습니다.”
“선원들 분위기는?”
“좋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물었다.
“그거 말고, 혹시 어젯밤 일이 소문으로 돌고 그러지는 않아?”
“아, 그거라면 본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선원 중에 본 사람이 있다면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저들을 좋게 이용해보려는 내 원대한 계획이 물거품처럼 엉망이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선원들이 어제 있었던 일을 정확히 알게 되고, 그게 항구에서 입소문을 탄다면, 조만간 인어들이 멸종된다는 것에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다.
갑판장님의 태도에서 본 것처럼, 인간은 굉장히 난폭하고, 위험한 종족이거든.
“그럼 수고하고, 아! 30분쯤 후에 회계사 좀 내 방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선장님.”
다시 선장실로 돌아온 나는 양동이를 천천히 살펴보려다가 양동이 옆에 굴러다니는 길쭉한 원통형 물건을 발견했다.
“뭐야? 이런 것도 있었나?”
검은색 광택이 예사롭지 않은, 성인 팔뚝의 절반 정도 두께의 원통형… 뭐야?
나는 급하게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그 물체를 집어 들었다.
완전히 라운드를 이루는 유려한 곡선, 미끄럼 방지를 위한 미세한 요철, 앞을 막고 있는 투명한 유리….
원통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의 몸체 대부분은 완전히 원통은 아니었는데, 한쪽 면에 평평한 기판이 박혀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험한 것도, 본 것도 아니지만, 기억 속에 익숙한 형태의 검은색 기판.
태양열 집열판이었다.
“어우, 이거 진짜… 진짜라고?”
나는 20cm 정도 길이의 태양열 충전 LED 랜턴을 들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유용하기로는 항생제가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대체 불가능한 항생제와 달리, 이 세상에도 랜턴을 대신할 정도의 도구는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랜턴의 가장 좋은 점은 놀라울 정도로 긴 기대 수명이다.
무려 태양열 충전방식이다.
배터리 수명의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충전방식만큼은 영구적 사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화재의 위험도 없고, 부피도 작으며, 반영구적으로 21세기 지구의 문명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둘러댈 변명이 조금 빈약하기는 한데,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대충 다음 항구에서 혼자 좀 돌아다닌 다음에 우연히 구한 마도구라고 하면 깊게 파고드는 녀석은 없을 거다.
일단은 랜턴을 책상 서랍 안쪽에 고이 모셔놓은 나는, 양동이 안의 조개껍데기와 예쁜 돌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산호도 가치가 상당하지만, 혹시 이런 작은 돌중에서 보석의 원석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내가 그런 기대를 할 정도로 밝은 곳에서 자태를 드러낸 돌들은 아름다웠다.
정말 가치가 없다고 하면 선장실에 장식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드물게 화폐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금화는 없고 은화 몇 개와 동화뿐이기는 했지만.
음, 화폐도 반짝반짝하니까, 인간 세상의 사회적 약속이라는 부분을 걷어내고 나면 반짝이는 돌과 다를 게 없기는 하다.
“어?”
나는 비대칭형의 형태를 가지는 돌들을 한 주먹씩 집어서 테이블에 올리다가 이질적인 감촉에 순간적으로 입을 열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급히 손바닥을 펴자, 그곳에 아주 익숙한 완벽한 구형의 물건이 놓여있었다.
“진주?!”
직경이 2c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진주였다.
양식진주가 없는 이 세상에서 진주는 정말 귀한 보석이었다.
자연 상태로 이미 완벽한 구 형태를 가지는 반짝이는 유백색의 결정체.
심지어 산호처럼 취급도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이 정도 크기의 보석이면 어우, 얼마나 받을 수 있으려나?
나는 내 손의 열기나 땀에 의해 진주가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히 테이블에 내려놓고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남자인 나도 빠져들 정도로 아름다운 색의 진주였다.
“여자들이 보석에 미치는 이유를 알 것 같군.”
내가 돌과 조개를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고, 따개비투성이의 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회계사 게론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선장실에 들어온 게론드는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보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선장님?”
그러더니 한쪽에 고이 모셔둔 진주를 발견하고는 눈이 두어 배쯤 커진다.
“이거, 이거 설마 진주입니까?”
“어, 진짜 진주야.”
“세상에, 이렇게 큰 녀석은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왜…?”
“어때? 교역소에서 팔 수 있을까?”
내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게론드가 고개를 저었다.
“교역소는 고가의 소량 물품은 취급하지 않으니까요. 차라리 도심의 귀금속 전문 상인에게 찾아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어젯밤에 양동이에서 주웠어.”
“네?”
“밤에 양동이가 하나 떠내려오더라고. 그 안에 있었어.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양동이라구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테이블을 살펴보던 게론드의 표정이 더욱 요상하게 변했다.
“이것들이 전부 다 양동이에 있었다는 겁니까?”
“응. 뭐 가치 있는 게 있나?”
그때, 내가 미처 치우지 못한 따개비 붙은 병을 발견한 게론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선장님, 그럼 그건 도대체 뭡니까?”
“이것도 양동이에….”
“선장님. 저도 선장님이나 다른 오래된 간부들이 제게 몇 가지 정보를 숨기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정보까지 숨기시면 솔직히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하긴, 게론드가 성격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똑똑하기로는 리버티 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그런 그를 이런 단순한 정보의 누락으로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니, 내가 너무 안일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