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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35화 (135/420)

135화. 선택에 대한 책임

결국 냄새나는 육포와 쉰내 나는 맥주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네이선이 혼자서 복귀했다.

“야! 선주님은 어디가고 너 혼자 와?”

“아아, 선주님은 너무 취하셔서 그냥 여관에 두고 왔습니다. 그, 뭐… 친구라는 분도 함께였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친구?”

“네, 선주님이 사시던 마을에 갔었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일을 시켰으면 보고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아, 그게….”

네이선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선을 피했다.

“거기 맥주가 너무 맛있더라고….”

“뭐야?!”

내가 어이가 없어서 반문하자 네이선이 황급히 변명하듯이 빠르게 주워섬겼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덕분에 선주님 사정을 다 듣고 왔어! 진짜라니까?!”

“후우… 따라와.”

내가 네이선을 끌고 선장실로 향하자, 서성거리던 갑판장님이 은근슬쩍 따라붙었다.

“거, 나도 들어도 상관없나 선장?”

“그, 그러세요.”

그리고 두 걸음도 걷기 전에 어디에선가 나타난 우르타가 네이선의 등짝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도! 나도 듣고 싶어!”

“내려와. 진짜 때린다!”

“시른뎅, 시른뎅?”

“너 이 자식!”

나는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고, 갑판장님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진짜 선장 말대로 아직도 애새끼들이군.”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결국 갑판장님에게 한 대씩 쥐어터지고 나서야 겨우 소란을 수습한 우리는 선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네이선이 풀어놓는 드웰 씨 가족의 사연은 꽤나 기구했다.

드웰이 노던테라 탐사선에 몸을 싣던 8년 전,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족 중 그 어떤 사람도 드웰이 배를 타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드웰에게 순종하고 살아 온 아내조차 자신을 죽이고 가라며 칼을 들고 덤볐다고 하니, 얼마나 반대가 심했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이미 한탕의 꿈에 빠진 드웰에게 그 처절함이 보일 리가 없었고, 그렇게 그는 가족과 8년이나 되는 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첫 몇 달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한다.

드웰은 능력 있는 조선공이었고, 큰 재산은 없었을지 몰라도 고작 몇 달 만에 집안이 파탄 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르자 탐사대가 전멸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동네의 질 나쁜 자들이 드웰의 아내와 두 딸에게 슬금슬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포호크 같은 드웰의 옛 친구들이 도와주었지만, 그들이 하루 종일 드웰의 가족들을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삶이 있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그렇게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자 드웰의 아내는 허드렛일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입으로는 네 식구가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결국, 큰딸이 선술집에서 서빙을 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든든한 아버지 밑에서 곱게 커서 결혼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아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아들인 멘디는 이미 드웰이 일하던 조선소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으니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것이었고….

예정된 사고였다.

새벽녘에 돌아오던 큰딸이 납치되었고, 이틀의 수색 끝에 비참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범인으로 추정되는 동네 양아치 두 사람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사건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나 드웰의 아들 멘디는 큰 누나의 원수를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완전히 넋이 나가서 앓아누웠고, 막냇동생 비올라는 그저 집에서 울기만 할 뿐이니 복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작 16세에 불과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뒷골목이었고, 그곳은 순진한 소년을 등쳐먹기 위해 준비된 괴물들이 즐비했다.

몇 가지 더러운 일에 손을 대던 멘디는 결국 거짓된 정보에 속아 엉뚱한 사람들이 원수인 줄 알고 짧은 단도를 들고 덤볐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든든하던 가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힘든 일을 하면서 억지로 가정을 유지하던 언니는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남편을 원망하다가 아이들만 보던 어머니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방 한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남자인 오빠는 범죄자라는 굴레를 쓴 채 목숨을 잃었다.

어린 비올라는 그렇게, 자신을 지켜주던 모든 울타리를 잃어버렸다.

집안에 남은 집기를 팔아치우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어떻게 한 해를 넘긴 비올라는, 이미 산송장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보며 절망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도 슬슬 그녀들을 돕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누가 더 낫다고 할 것 없이 퍽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아무리 십시일반이라고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호의를 계속 베푸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뱀처럼 접근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빚 문서를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잃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조차 떠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그래서 그 더러운 손이 온몸을 훑을 때도 반항하지 않았고, 자신과 비슷한 비참한 모습의 여자들이 타고 있는 수레에 타는 것도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드웰의 가족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런데 사채업자 밑에 있던 그 뤼샨이라는 친구가 비올라를 좋아했던 모양이야.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고, 그냥 2년 전에 뤼샨이라는 친구가 비올라를 데리고 다시 마을에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비극적이네.”

내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살펴보니 갑판장님은 분노와 안쓰러움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우르타는 신나게 울어 제끼는 중이었다.

“흐어어엉, 너무 슬퍼, 허어엉…. 그래도 비올라가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건 모르겠다. 선주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반응을 보면…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래도, 흐어어어엉….”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친 네이선이 우르타를 쥐어박았다.

“그만 울어! 선주님도 안 우셨는데 왜 네가 그렇게 울고 난리야?!”

“왜 때려! 흐어어엉… 너무 슬프잖아… 어어어엉….”

나는 다시 우르타를 향해 손을 뻗는 네이선을 제지하고 말했다.

“그만, 그만해. 이건 선주님의 개인적인 문제니까 다들 입 다물어. 갑판장님도 소문 안 나게 애들 관리 좀 해 주세요. 원래 오래 머물 생각도 아니었지만, 최대한 빨리 뜨는 게 좋겠네요.”

“알았다. 쓸데없는 소문이 돌지 않게 단속하마. 이놈들아! 리안 그만 괴롭히고 어서 방으로 가! 다 큰 녀석들이 질질 짜고 난리야?”

이상한 갑판장님의 말에 네이선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놈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하여간 진짜 애새끼들이라니까.

그런데 눈에 뭐가 들어갔나, 왜 이렇게 눈이 간지럽지?

***

다음 날 정오쯤 되었을 때 나는 네이선을 앞세워 드웰 씨가 있다는 여관을 찾았다.

그리고 한 쪽 구석에서 술을 홀짝이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선주님, 좀 괜찮으십니까?”

“…어? 리안 선장인가. 나는 괜찮네…. 바쁠텐데 여기까지는 웬일인가?”

“네이선에게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 어휴.”

힘없이 고개를 드는 드웰 씨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산발한 머리는 푸석푸석해서 잡으면 바스러질 것 같았고, 주름살이 더욱 굵어져서 얼핏 보면 갑판장님과 같은 연배로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광대까지 내려온 눈그늘과 빛을 잃은 탁한 눈동자까지 더해지니, 이건 마치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이걸 받게.”

떨리는 손으로 드웰 씨가 품 안에 있던 종이를 꺼냈다.

여기저기 우그러들고 구겨진 것이 보관상태가 영 엉망이었다.

“이게 뭡니까?”

“…양도 계약서. 이제 리버티 호는 리안 선장, 자네 것일세.”

순간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이미 담보 대출 계약이라는 것을 체결한 우리다.

그런데도 굳이 내게 리버티 호를 양도한다는 것은, 그가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는 말과 같았다.

아마 리버티 호가 떠나면, 아니, 어쩌면 그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이 아닐까?

드웰의 고향 행은 누구도 즐거운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고, 나도 어느 정도는 그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가장 확률이 높은 결과는 가족들의 전원 사망, 조금 좋은 결과라고 해봐야 몇 명이 마을을 떠나 연락이 끊겼다는 것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직 딸이 살아있지 않은가?

비록 그 딸의 원망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삶을 살아야겠지만, 그것이 바로 가정을 버린 아버지가 해야 할 도리다.

원망을 해야 할 아버지마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비올라라는 그 딸은 얼마나 더 비참해질지 생각하지 않는 걸까?

“선주님, 비록 제가 선주님에 비해 짧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니, 뭐라고 생각하건 그냥 나를 내버려 두면 안 되겠나? 도저히 누구와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군.”

“선주님!”

그때 내 뒤에서 기척이 들리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구시오?”

“아, 포호크 씨.”

네이선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는 척을 했고, 포호크라는 남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포호크 씨. 여기 네이선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리 선주님을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뭐, 드웰은 내 친구니까. 그보다 누구시오?”

“소개가 늦었군요, 드웰 씨의 리버티 호를 맡고 있는 선장, 리안입니다.”

“허…!”

“거봐요, 진짜 선주님 맞다고 했잖습니까?”

드웰이 선주라는 말을 끝까지 믿지 않았는지, 깔끔한 선장 복장의 나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살펴보는 포호크였다.

“거참, 진짜 드웰이 선주라고?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 부분은… 선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쩝, 그건 그렇다고 하고, 왜 온 거요? 어차피 선주라면 배에 탈 필요도 없고, 여기 네이선이라는 친구에게 드웰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을 텐데?”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굉장히 궁색한데….

드웰이 배에서 내리겠다고 의견을 낸 이상, 나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드웰은 선원이 아니라 선주였고, 고용인인 내가 고용주의 거취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래도, 드웰 씨와 나는… 뭐랄까, 그 동료라던가 그런 것 아니겠나?

동료의 아픔과 고난을 못 본 척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법이다.

“선주는 무슨. 리버티 호는 이제 자네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제 그만 나를 놔두게.”

“리안 선장이라고 하셨던가? 드웰을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만 가보시구려. 이 친구는 내가 챙길 테니.”

포호크가 재빨리 나와 드웰 사이에 끼어들며 내게 떠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 기분으로는 그냥 떠날 수 없다.

지나간 비극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펼쳐질 비극이 뻔히 보이는데 그냥 무시하기에는 내 멘탈이 너무 약해.

“선주님. 선주님이 선택한 일이고, 선주님의 실수입니다. 따님이 원망한다고요? 당연히 그렇겠죠. 멀쩡한 가정을 박살 낸 아비가 밉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하지만 다 선주님 잘못 아닙니까?!”

“리안, 왜 그래?!”

“리안 선장, 말이 심하시군? 그만 나가보시오!”

“…….”

나는 나를 잡고 끌어내는 네이선과 죽일 듯이 노려보는 포호크를 무시하고 계속 소리쳤다.

“가서 원망을 받으세요! 그녀가 평생을 원망한다면, 그 원망을 평생 받으세요. 매일 가서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그래도 매일, 매시간, 매 순간 그녀에게 사죄하세요. 다 선주님이 망가트린 것이 맞습니다. 그 대가도 선주님이 치르셔야죠. 딸의 인생을 망쳐놓고 그 아이의 사랑과 용서까지 바라십니까? 비겁하게 죽음으로 도피하지 마세요. 당신이 죽으면 원망할 곳도 없어진 당신의 딸은 얼마나 더 비참하겠습니까?!”

순간적으로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위로 같은 것은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말뿐인 위로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질책이었다.

바보 같은 선택에 대한 통렬한 비판, 비참하고 힘들더라도 비겁하지 않은 삶에 대한 의지.

나는 그편이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보다는 낫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녀의 원망이 끝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끝나는 것보다는, 최소한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이라도 표출하고 희석시켜 가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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