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인어의 눈물 (1)
항구 경비대도 아니고 해군 육전대가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어느새 그걸 발견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온 갑판장님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원들 무장 시킬까요?”
대충 봐도 보트와의 거리는 100미터 미만이다.
비록 투묘까지 한 상태는 아니지만, 돛을 다 접어서 속도가 0에 가까운 만큼, 가속을 제대로 받기까지 저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방향도 반대로 돌려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항구 앞바다에서 정규 해군과 싸운다? 그냥 자살하겠다는 소리다.
해군 육전대 30명도 이기기 힘든 전력이지만, 네이선을 활용해서 운 좋게 저들을 전멸시키거나 격퇴한다고 해도, 이후에는 수 척의 군함과 맞서야 할 거다.
대형 교역항에는 최소한의 경비를 위해 해군 전함이 단 몇 척이라도 정박하고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리고 아마 그러기 전에 해안포부터 쏴 재끼지 않을까?
“무장하면 뭐 합니까? 저놈들 안마당에서 싸워봐야…. 어휴, 백기 올리죠.”
“…알겠습니다.”
갑판장님도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메인마스트로 가서 백기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벨로키나 국적의 상선이 벨로키나 왕국 해군을 상대로 백기를 올리는 것도 우습지만, 싸우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메인마스트에 백기가 올라가자, 조금 서두르는 것 같던 보트들이 조금 느려지며 여유롭게 리버티 호의 좌우현에 접현했다.
우리가 내려준 줄사다리를 통해 배 위에 올라온 육전대는 좌우현을 점거하고 개중 대위 계급장을 단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벨로키나 왕립해군의 트럼본 대위입니다.”
“리버티 호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트럼본 대위님. 선장인 리안입니다.”
다행히 지휘자인 트럼본의 태도는 고압적이거나 적대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뭘 잘못한 것도 없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경찰과 군인은 무섭다.
“아! 선장님이셨군요. 실례지만 리버티 호가 최근에 로제 항구에 기항했다는 신고를 듣고 왔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희는 전염병과 무관합니다.”
“물론 그러니까 순순히 저희에게 협조해 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병자를 숨기고 항구에 들어오려다가 적발된 선박이 있어서 말입니다. 안전한 항구를 만들기 위한 조치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리버티 호의 모든 승조원들은 해군의 요청에 응할 것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먼저 모든 승조원을 중앙 갑판에 모아주시고, 인명대장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육전대의 수색에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분명히 멜라나인 항구에서도 비슷한 꼴을 당한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 절차를 밟아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로제 항구를 가서는….
“물론입니다. 몇몇 구역에 대해서는 우리 쪽 인원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색은 멜라나인 항구에서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소수의 경비대와 달리 해군 육전대의 수색은 더 꼼꼼했고, 인간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죄다 훑어보았다는 것 정도겠다.
아, 전염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의사까지 초빙해 온 것도 조금 달랐다.
물론 그 의사의 진단 방법이나 수준은 정말 허접해서 일반인이 해도 똑같았을 것 같지만 말이지.
“전폭적인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선장님.”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래도 덕분에 저희도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처리한다는 놈이 무려 두 시간이 넘도록 수색을 했냐?
식사 시간이 지나서 배에서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여기, 입항 허가서와 교역 허가서, 수색 확인서입니다.”
내게 입항에 필요한 서류를 넘겨준 트럼본 대위는 미련 없이 리버티 호에서 하선하여 돌아갔다.
그들이 탄 배가 적당히 멀어진 후에 나는 온갖 욕을 섞어가며 육전대를 욕하고 있는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자, 다들 주목! 망할 해군 놈들 때문에 밥도 못 먹어서 짜증 나는 것은 알겠는데, 이왕이면 밥은 밖에서 먹는 게 좋겠지?! 돛 올리고 빨리빨리 들어가자! 혹시라도 나가기 귀찮은 놈들은 조리장에게 푸짐하게 차리라고 할 테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너희가 좋아하는 쉽비스킷을 두 배로 주지!”
“우우우우!”
“쉽비스킷이라니! 듣기만 해도 토할 것 같수다!”
“항구까지 와서 그딴 걸 먹느니 굶고 말지!”
“거, 너무한 거 아니오, 선장?!”
잠시 선원들이 장난으로 던지는 비난을 듣고 있던 나는, 짐짓 화난 척을 하며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제기랄! 준다고 해도 지랄하는 네놈들에게는 벌이 필요하겠군. 당직 아닌 놈들은 오늘 벌주로 맥주 다섯 잔씩 마셔라!”
“우와아아아!”
“역시 선장님!”
“믿고 있었습니다!”
“당직자들은!”
“옳소! 당직자들은!”
나는 씨익 웃으며 얼굴이 시뻘게진 채 항의 하는 몇몇 선원(당직자들이겠지)에게 소리쳤다.
“오늘 당직하는 놈들은 당직 수당 두 배다!”
“우와아아아!”
“내가 당직 서준다! 나랑 바꿀 사람?!”
“미친놈아, 너라면 바꾸겠냐?!”
몇 명 되지도 않는 당직자들의 수당 두 배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맥주가 어차피 많이 남아서 다 버려야 할 판(출항 전 오래된 물과 맥주는 보통 버리거나 처분하고 새로 사 넣는다)이니, 이왕이면 선원들의 뱃속에 버리는 게 낫잖아?
***
론 항구에 입항 후 재빨리 배에서 내려 교역소를 다녀온 게론드와 함께 도심을 향했다.
물론 내 껌딱지인 네이선과 우르타도 함께였다.
원래는 호위로 네이선만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우르타가 하도 달라붙어서 말이지.
“그래, 아까 대충 보기는 했는데 교역 결과는 어때? 시세는 괜찮았나?”
“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종이의 질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습니다만, 딱히 비에 맞거나 악천후를 겪은 것도 아니고 종이 시세가 나쁘지 않아 괜찮았습니다. 정확한 것은 계산을 해봐야 알겠지만, 인건비와 운용비를 빼고도 5만 로스 이상은 남을 것 같습니다.”
“뭐, 나쁘지는 않네.”
그래, 그냥 나쁘지 않은 정도다.
나는 다른 선장들과 달리 정해진 급여가 없다.
드웰의 입장은 수익금에서 알아서 떼가라, 뭐 이런 느낌인데 이게 또 굉장히 애매한 거 알지?
말 그대로 내 급여를 내가 결정하는 거다.
그래서 내심 ‘순수익의 30%가 내 돈이다’라고 정해놨는데, 그러면 내 몫은 15,000 로스 정도다.
항해 일수가 4일이니까 꽤 큰돈 같지만, 멜라나인에서는 한 푼도 못 챙겼으니 결론적으로 우르타 보다도 적게 받을 것 같다.
그냥 한 50% 정도로 올려버릴까?
번화가의 제일 큰 보석상을 찾아간 우리는 조심스럽게 산호와 진주를 올려놓았다.
산호를 볼 때는 심드렁하던 주인이 진주를 보더니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집게로 진주를 집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오, 오래간만에 보는 ‘인어의 눈물’이군요.”
“어? 진주 아닙니까?”
생소한 말에 네이선이 약간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자, 주인은 껄껄 웃더니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 업계에서 이렇게 굵고 흠 없는 진주를 부르는 용어입니다. 이렇게 큰 진주를 품은 진주조개들은 보통 깊은 곳에 사는 데다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보아하니 항해자들 같은데, 어디서 진짜 인어라도 만나신 겁니까?”
“…….”
와, 순간적으로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뻔했다.
자신의 농담이 통하지 않자 약간 무안해진 주인이 헛기침을 몇 번 해서 주위를 돌렸다.
“보시다시피 론 항구에서 가장 잘나가는 보석류 취급점이 바로 저희 가게입니다. 잘 찾아오셨네요. 인어의 눈물은 80만 로스, 여기 산호는 3만 로스에 매입하죠. 합쳐서 83만, 아니, 90만 로스. 어떻습니까?
“얼마요?”
“아이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더 해드리기는 곤란… 에?”
우리의 반응을 보기도 전에 손을 내저으며 너스레를 떨던 주인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우르타와 네이선은 입을 떡 벌리고 벙쪄 있었고, 나와 게론드는 쉴 새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진주가 워낙 커서 비쌀 것 같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더 비싸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는 팔기 글렀다.
더 올려달라고 하기도 민망하잖아.
나는 재빨리 진주를 챙기며 게론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감사합니다만 저희도 의뢰를 받은 것이라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이쪽으로 팔러 오겠습니다.”
누가 봐도 비겁한 변명이지만 어쩌겠어?
물건을 파는 것은 파는 사람 마음이지.
진주와 산호를 챙겨 허겁지겁 상점 밖으로 나온 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우와, 얼마? 얼마라고?! 세상에…!”
“나 그런 것이 들었던 양동이를 덜렁덜렁 들고 온 건가? 으으으….”
“음, 보기 드문 크기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비싸군요.”
나는 세 사람을 하나씩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놈들이니 보석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리가 있나?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런 초고가의 보석까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보석을 팔러 다니기에는 많이 부족한 조합이기는 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우리는 어떤 보석상을 찾아갈지 토론했다.
이미 가장 큰 보석상에서 감정을 받은 이상,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일 터였다.
소문이 퍼지면 보석상들이 담합해서 가격을 후려칠지도 모르니 최대한 빨리 처분해야 했다.
만약 판매에 실패하면 다음 항구에서 팔아야 하는데, 괜히 보관을 잘못해서 가치가 떨어질까 봐 겁이 난다.
우리가 중구난방으로 한참 떠들고 있는데, 우르타가 손뼉을 탁 치더니 기발한 말을 했다.
“진주를 숨기자!”
“어?
“뭘? 왜? 숨기긴 어디에 숨겨?”
“진주는 작으니까 품에 숨기는 거야!”
“그러니까 왜?”
“산호 값을 잘 주는 가게가 진주 값도 잘 쳐주지 않을까?”
이 자식, 저번에도 그렇고, 사실은 정체를 숨긴 천재였나?!
생각의 물꼬가 터지자 우르타의 생각을 더 다듬을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고급 의류점에 들어간 우리는 우르타를 치장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고급스러운, 원래 더 고급 옷을 입어야 하지만 일부러 싸구려(?) 옷을 입은 느낌으로 약간 어설프게… 좋아.
그리고 네이선은 근육이 얼핏얼핏 드러나는 개인 호위 느낌으로 변장을 했고, 변장을 위해 제법 그럴듯한 아밍 소드도 한 자루 구입했다.
나는 하인, 게론드는 집사 역할이다.
나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서 각자의 역할에 맞는 옷과 소품을 사주고 역할을 몇 번이나 설명해 주었다.
우르타가 도련님이 된 이유는 일단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서 어설픈 연기가 들통날 위험이 적다는 것이었다.
…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 그냥 이 자식은 귀공자처럼 생겼다.
하지만 내가 하인 역할을 맡은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인 역할이 매우 힘들고 복잡하며, 상당한 연기력과 거짓말 실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다.
“빨리빨리! 서둘러! 소문 퍼지면 이런 연극 따위 다 나가리라고! 그런 귀한 진주가 동시에 두 개나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선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래, 이건 너무 불편해….”
게론드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고, 우르타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 고급 옷이 불편하다며 찡찡거렸다.
아니, 그런데 고급 옷이면 착용감이 더 편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더 불편한데?!
고작 옷 따위가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서 내 안구에 습기가 차게 한 녀석이, 실용성도 없다!
그나저나 이번 연기 소품을 사는데 들어간 돈이 7만 로스가 넘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돈은 우르타를 꾸미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진주를 제값을 받기만 해도 7만 로스쯤이야!
그리고 연기 끝나면 죄다 반품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