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인어의 눈물 (2)
준비를 마친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의 커다란 보석 상점에 우르타를 모시고(?) 들어갔다.
나름대로 화려한 우리 일행이 들어서자, 점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와 두 명의 종업원이 동시에 깜짝 놀라며 급히 다가왔다.
“귀하신 분께서 여기까지 어떻게….”
“흠, 우리 도련님께서 이 산호를 감정하고 싶어 하시는데….”
점장의 얼굴이 대번에 의혹에 물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괜찮은 귀족 가문이라면 산호 정도는 감정할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사람을 불러서 감정하지, 직접 들고 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저희를 부르셨어도 될….”
“어허! 지금 그럴 사정이 아니니까 직접 오신 것 아닌가? 도련님께서는 지금 본가에 돌아가시는 중인데, 그전에 선물 받은 이 산호로 부인께 드릴 선물을 만들고자 하시네. 그런데 재료인 이 산호가 싸구려라면 그게 무슨 망신인가? 이걸 바친 녀석이 워낙 변변치 않은 녀석이라….”
내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자 우르타가 말을 잘랐다.
“리안! 그만둬. 내가 그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도련님.”
“쯧! 이봐, 거기 너.”
우르타가 제법 거만하게 턱짓으로 주인을 불렀다.
저런 것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네, 네, 도련님.”
“빨리 감정해봐. 이 산호가 귀한 산호인가?”
우르타가 독촉하자 점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산호가 보석으로 제법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보관 방법이 조금 까다로울 뿐, 다른 광물형 보석에 비하면 가치가 좀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체 높은 귀부인이 사용할 만한 보석은 아니었다.
“도련님, 죄송하지만 산호는 귀부인들이 그리 선호하는 보석이 아니….”
“그만! 네놈이 왜 내게 귀부인의 취향에 대해 가르치려고 드는 거야?!”
“그게 아니옵고….”
우르타가 살짝 짜증을 내자 점장이 살짝 당황하면서도 슬슬 의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정신차리지 못하게 빠른 진행이 필요할 것 같다.
“닥치고 네놈은 그냥 감정이나 해라, 어서!”
귀족의 품위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저렴한 단어가 나왔지만, 젊은 귀족들에게는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런 가공 전의 산호라면 보관상태와 색상에 따라 다릅니다만, 이런 녀석은 대략 4만 로스 정도에….”
“뭐!? 고작 4만이라고?!”
가격을 들은 우르타가 무턱대고 화를 내었다.
그러자 게론드가 살짝 우르타를 말리면서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도련님. 어차피 이 산호는 상징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비싸고 좋은 주재료를 하나 구하고 이 산호로 주변을 장식하는 것은 어떨까요?”
씩씩거리다가 겨우 진정한 우르타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비싸고 좋은 거? 그게 뭐지?”
그리고는 누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바로 점장에게 고압적으로 말했다.
“아니, 이봐 거기 너! 이 가게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지고 와봐라.”
점장이 울상을 지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내가 나서서 말했다.
“도련님, 이런 작은 곳에 도련님이 원하는 고급 보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번화가로 가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싫어! 가서 그놈과 마주치면 어떡해?”
우르타는 인상을 팍 쓰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놈을 팔아서 단번에 거절했지만, 슬쩍 점장의 눈치를 보니 역시나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렇다면 도련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았어. 다리 아파. 의자 가져와!”
점원 한 명이 쭈뼛거리며 의자를 들고 왔지만, 네이선에게 바로 제지당했다.
“물러서시오. 의자는 내가 갖다 드리지.”
네이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점원을 쏘아보자, 들고 있던 의자를 거의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점원이 재빨리 물러섰다.
그사이에 나는 점장을 이끌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물었다.
“혹시 이곳에 괜찮은 녀석이 있나? 그 ‘인어의 눈물’ 정도 되는 보석이면 좋겠는데.”
내가 콕 집어 ‘인어의 눈물’이라고 하자 자신만만하게 내 말을 듣던 점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 저희 가게에서 소장 중인 최고급 루비 ‘루트빈의 석양’은 어떠십니까? 마침 산호도 밝은 붉은색이니 아주 잘 어울릴 것입니다. 진주는 보관도 까다롭고….”
“쯧쯧…. 보석상이라는 자가 이렇게 감각이 부족해서야. 산호로 장식을 하려면 당연히 중심에는 바다에서 나오는 진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인의 품격을 생각하면 최소한 ‘인어의 눈물’ 정도는 되어야 맞지.”
“하지만 ‘인어의 눈물’은 워낙 구하기도 어렵고 저희가 취급하는 상품도 아닙니다….”
나는 일부러 한심하다는 눈으로 점장을 바라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저 골칫덩어리를 모시고 돌아다니는 짓거리가 지겨워 죽겠네. 어디서 구할 방법이 없나? 가격은 네가 조금 붙여도 상관없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젠장, 무능하기 짝이 없군.”
나는 인상을 쓰며 돌아서서 일행을 데리고 바로 보석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 뒤로는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덕분에 네 번째 보석상을 나올 때는 소문이 퍼져 더 이상 이 사기극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섯 번째 보석상 점장이 우리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물었다.
***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내가 인상을 쓰며 돌아서자, 점장이 다급하게 내 소매를 잡았다.
“저기, 혹시 시간을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한 번에 걸려주시다니, 오늘 운이 꽤 좋다.
“많이는 줄 수 없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아, 혹시 현금이 부족한가?”
“그것은 아닙니다만….”
“그래, ‘인어의 눈물’이라면 가격이 제법 되겠지. 보통 얼마에 거래되는가?”
“네?”
“얼마에 거래되는지 알아야 너에게 값을 제시할 게 아닌가?”
약간 얼떨떨한 표정의 점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만, ‘인어의 눈물’로 불릴 정도의 진주라면 적어도 200만 로스는 줘야 할 겁니다.”
“3일을 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어의 눈물’을 구해오게. 무조건 300만 로스, 아니 그보다 비싸게 사 온다면 거기에 100만 로스를 더 붙여주겠어.”
“배, 백만 로스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면 당신이 죽어라고 뛰어다닐 이유가 되겠지?”
***
우리는 사전 작업을 마치고 미리 점찍어 놓은 한 보석상을 찾아갔다.
물론 우르타의 귀족복장은 물론, 우리의 복장도 모조리 갈아입어서 적당히 잘 사는 상인인 나와 그 부하들 정도로 다시 위장한 상태였다.
당당하게 점장 앞으로 다가 간 나는 품에서 진주가 담긴 상자를 꺼냈다.
“이것을 매각하고 싶소만.”
“네? 엇?! 이것은….”
깜짝 놀라는 점장이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재빨리 말을 낚아챘다.
“한눈에 알아보았겠지만 ‘인어의 눈물’이오. 보기 드문 최상급이지. 매입할 수 있겠소?”
“으음, 잠시 살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우리의 복장을 빠르게 훑어본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나는 냉소를 지으며 칼같이 대답했다.
“쓸데없이 가격을 깎으려고 수작 부리지 마시오. 이미 여러 곳에서 인증받은 물건이고 장물도 아니니까. 막말로 이런 녀석이 도난당했다면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지 않소?”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흠.”
잠시 진주를 들여다보는 척하며 고민하던 남자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이것을 매각하시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장사치가 큰돈이 왜 필요한지를 묻는 거요? 꽤 무례한 질문 같은데.”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얼마나….”
나는 그의 손에서 상자를 빼앗아 소리 나게 닫으며 말했다.
“이것 참, 나름 큰 점포를 가지고 있어서 상인으로서의 기본은 된 줄 알았건만, 잘못 봤군.”
내가 미련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말을 하자,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물었다, 흐흐흐.
“아이고, 아이고! 제가 너무 좋은 물건을 봐서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 물건을 매입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못이기는 척 돌아서며 물었다.
“그래, 얼마나 줄 거요?”
“그러니까, 에, 백, 백만을 드리….”
그는 그 잠깐 사이에도 내 눈치를 보더니, 눈을 감고는 소리쳤다.
“150만을 드리겠습니다!”
“200만.”
“…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다는 듯이 반문하자,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보시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장사꾼의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이 ‘인어의 눈물’을 얼마를 주고 샀다고 생각하시오? 솔직히 말씀드리지. 이 녀석을 고향에서 제대로 된 장신구로 만들어 더 비싸게 팔 생각이었는데, 자금이 급해서 파는 것이란 말이오.”
“하지만 200만이면….”
“이런 큰 도시라면 이 정도 상등품의 ‘인어의 눈물’을 원하는 자도 충분히 많을 터, 바로 되팔아도 당신에게는 엄청난 수익 아니오?”
“그래도….”
끝까지 갈등하는 점장을 위해 내가 쐐기를 박아 주었다.
“200만 로스를 못 받는다면 난 이걸 팔아봐야 소용이 없소. 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여기 이 산호도 드리지.”
“산호라고 해봐야….”
“난 시간이 없소. 빨리 결정하시오!”
***
아무리 금화를 동원해도 200만 로스쯤 되면 주머니의 무게와 부피가 어마어마해진다.
게다가 애초에 그 보석 상점에는 그 정도 현금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은행으로 가서 그가 돈을 찾고, 그 돈을 내가 그대로 입금하는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200만 로스라니, 번쩍이는 금화와 은화 무더기로 그 실체를 보니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정도 돈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이클로나 호의 회계사 시절에 보았던 돈 무더기와는 전혀 감상이 달랐다.
이클로나 호의 공금은 내 돈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하여간 그 비현실적인 돈의 실체를 확인한 이후 그동안 사용된 소품들을 빠르게 처분하면서도 우리는 다들 얼떨떨한 상태였다.
리버티 호의 간부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9명.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기야 하겠지만, 한 사람당 적어도 10만 로스는 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내 앞으로 떨어지는 금액은 거의 절반쯤에 달할 것이고 말이다.
계획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몇만 로스 정도로 추정되는 산호를 공짜로 넘겨주는 것에 대해 우르타와 네이선은 불만을 표시했었지만, 200만 로스를 실제로 본 뒤로는 그 말이 쏙 들어갔다.
그 정도로 200만 로스는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약간 멍한 상태로 리버티 호로 돌아가고 있는데, 네이선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처음에 시세를 알기 위해 연기한 귀족 말이야.”
“어? 어.”
“그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렸다가 팔았으면 돈을 더 받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러자 우르타가 얼굴에 의문부호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한 거야? 네이선 말대로 했으면 돈을 엄청 더 받았을 것 같은데.”
“위험하잖아.”
“응?”
“뭐가?”
나는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한번 보고 게론드를 보았다.
게론드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지 나를 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생각해봐라, 그 소문이 퍼졌어. 그런데 형편 좋게 딱 알맞은 ‘인어의 눈물’을 파는 이상한 상인이 나타났단 말이야? 그런데 그 많은 상인 중에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안 생길까? 의심이 되면 조사를 할 거고, 그러면 우리의 행적은 정말 금방 들통날 걸?”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시세를 알았으니까 별 상관없는 거 아냐?”
“한심하기는. 일단 우리의 정체가 들킨 순간부터 굳이 소문이 퍼질 때까지 기다린 의미는 없어져. 구매자가 허상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상황이면 저들이 담합으로 맞서거나 다른 상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우리의 교역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알아?”
“오오….”
“그렇구나?!”
나는 놀라워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가 제법 크기는 했다만, 아직도 날 따라오려면 멀었다, 짜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