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42화 (142/420)

142화. 과유불급과 다다익선

무사히 뒤처리까지 마치고 리버티 호로 돌아왔지만, 마지막 골칫거리가 남아 있었다.

바로 분배.

이 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총 9명, 리버티 호의 간부 전원이었다.

특별히 범죄에 연루되거나 더러운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떳떳하게 외부에 발표할만한 돈도 아니다 보니, 이익 공유를 통한 연대감 조성과 비밀 유지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아, 떳떳하지 않은 이유는 비록 인어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라고 해도 선원들을 속이거나 따돌린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금액이라도 작았으면 나중에 알려져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음식 좀 건네준 것 치고는 너무 과한 보수가 넘어왔다.

200만 로스라니! 내 전 재산보다 많고, 심지어 리버티 호의 운용자금보다 많다.

이 정도 돈을 나와 간부들만 몰래 나누어 먹었다고 하면 앞뒤 재지 않고 눈 돌아갈 선원이 꽤 되지 않을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도대체 이 돈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사실 수입의 구분부터가 애매하지 않나.

확실히 정규 거래 수입이나 의뢰 수입은 아니고, 전투가 없었으니 전리품 수익도 아니다.

굳이 하자면 밀거래 수입이라고 해야 하는데, 또 그렇게 정의하자니 내 기여도부터 해서 너무 큰 수익금까지 애매한 것투성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게론드의 말이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무슨 일이지?”

“차후 일정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조금 남은 김에 교역소에 한번 다녀올 생각입니다만.”

“일정 말인가? 그래, 일정이라….”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조심스러운 게론드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선장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최대한 빨리 이 항구를 떠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음? 항해 기간이 짧아서 선원들이 딱히 피로가 쌓이지는 않았겠지만, 오랜만에 대도시에 기항한 셈이라 선원들이 놀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시다시피 오늘의 일이 발각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어? 아!”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게론드가 말하는 의미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보석상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인어의 눈물’이라고 불릴 정도의 진주는 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다섯 살 먹은 애도 알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우리가 ‘인어의 눈물’을 판매한 사실도, 구매하겠다는 연기를 한 사실도 조만간 소문이 퍼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두 소문을 접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매우 수상하게 보이는 우연의 일치를 발견하겠지.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냐 싶겠지만, 당장 실질적인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정보를 취급하는 녀석들.

귀족으로 위장한 것은 바로 들통 날 것이고(스스로 귀족이라고 자칭한 것은 아니라서 ‘귀족사칭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고가품은 그 가게, 혹은 비슷한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에 되팔았기 때문에 우리의 행적이 들통날 확률은 꽤 높았다.

물론 우리 상식으로는 ‘선원으로 보이는 네 명의 남자’ 이상으로 용의자를 좁히지 못할 것 같지만. 그쪽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

어쩌면 우리의 외적인 특징이나 움직인 방향 등을 토대로 우리의 완전한 정체까지 밝혀질 수도 있다고 보는 게 안전했다.

“으으음, 밝혀지면 꽤 귀찮아지겠지?”

“네, 돈이야 어차피 은행에 들어갔다는 것이 함께 알려질 테니 돈을 노리지는 않겠지만, 진주를 얻은 위치나 경위를 알고 싶은 사람은 많을 테니까요.”

“하아, 그런데 이걸 선원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납득할 이유도 없이 그냥 급하게 출항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텐데.”

오늘 당장이라도 출항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선원들의 불만이나 피로도나 사기, 복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선장이나 선주들도 흔하거든.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선원은 그냥 소모품에 불과하기 마련이다.

적당한 사람을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쓰다가 적당히 내버리는 것이 그들의 용인술(?)이었다.

이런 선장들은 불만을 가지고 내린다는 선원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특히나 여기 론처럼 큰 항구에는 오늘 당장이라도 배에 타겠다는 선원들이 즐비했으니, 그냥 빠진 인원만큼 새로 고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난 입장이 좀 다르잖아.

최소한 지금 태우고 있는 50명이 조금 못 되는 선원 중 적어도 20명은 진심으로 나를 따르는 선원들이다.

물론 인간 집단이 예외 없이 한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날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다른 30명가량의 인원도 대부분 나를 좋아하는 정도는 될 거다.

그동안 보여준 지휘력과 위기 대처 능력을 확인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신뢰를 쌓은 셈이다.

솔직하게 나나 간부진의 외형이 딱히 막 신뢰가 샘솟는 외형은 아니다.

당장 선장 이하 대부분의 간부라는 작자들이 20대 애송이들 아닌가.

아직도 갑판장님이 새 선원을 모집하면 1/3 정도는 나를 보고 도망가기 일쑤다.

그러니 나는 기존 선원들을 더 아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제공한 편의와 훈련 덕에 새로 고용한 선원들보다 충성심도 높고 훈련도도 높은 것은 덤이다.

포술은 몰라도 돌격대장이자 비공식으로 검술교관인 네이선이 선원들을 쥐 잡듯이 잡은 덕분에, 동수의 해적들 정도는 백병전이 벌어지면 단번에 밀어낼 수준은 되리라고 자신한다.

거기에 이제 뭐 전략 병기 수준으로 발전한 네이선까지 잘 활용한다면, 이대로 해적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전직해도 될 판이다.

물론 진짜로 해적 쫓는 토벌대나 현상금 사냥꾼이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일단 생각을 조금 해보자고. 일단 출항해서 바흐카덴에서 보급한 후 바로 켄자스로 달릴 생각이거든. 그런데 보급을 위해 기항한 바흐카덴 항구에서 오래 머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게론드가 평소와 다른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이 난다고 해도, 저희가 장난을 조금 치기는 했어도 누구에게 사기를 친 것은 아니니 뭐 얼마나 큰일이 있겠습니까만….”

“그, 사기를 치기는 했지. 우리가 진주를 사줄 줄 알고 엄청 급하게 찾고 있는 그 사람 말이야. 만약 그 사람이 우리가 판매한 진주를 엄청 비싸게 산다면….”

나와 게론드의 얼굴에 동시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부정을 털어내듯 게론드가 빠르게 말을 받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진주를 굳이 바가지를 써 가며 비싸게 사겠습니까? 끽해봐야 정가에 약간 웃돈을 주는 정도로 사겠지요.”

“그렇지? 그리고 그 ‘인어의 눈물’이 워낙 귀하니까 가공만 잘하면 아무리 웃돈을 줬어도 손해는 안 볼 거야. 그렇지 않나?”

“물론이죠! 그자도 노련한 상인인데 당연히 손해는 안 볼 겁니다!”

“그리고 만약 손해를 조금 봐도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급하게 산 본인 잘못이고, 가격을 올려 받은 상대의 잘못이지.”

“그, 그렇죠!”

하지만 말이지,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만만한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말이다.

***

결국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고, 나는 간부들을 소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제 그, 인어? 에게 받은 진주와 산호를 처분했어. 진주 쪽이 생각보다 큰 금액이 나와서 조금 놀랐지만 말이야.”

“음, 저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진주는 그 크기에 따라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고. 대충 봤지만, 그 진주가 제법 크기는 했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판장님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다 알고 그러시는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말하는 데 힘이 실렸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진짜 그렇게 비쌀 줄 몰랐어.”

“아니, 얼마나 비싸길래….”

“어제 약간의 꼼수를 쓰기는 했지만, 200만 로스에 팔았어.”

내 말이 끝나자 테이블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너무 비현실적인 가격에 놀라움도 표시하지도 못한 것이다.

반응은 조리장 비에론이 가장 먼저 보여주었다.

“이, 이, 이백만? 이백만이라고 하셨습니까?!”

“이십만 아닌가요? 이십만도 충분히 비싼 것 같은데.”

“으하하하, 농담도 참! 깜짝 놀랐잖습니까!”

“무슨 그 조막만한 진주가….”

그 뒤를 이어 아인델프가 현실을 부정하는 반응을 보여주었고, 발드가 어색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재밌는 농담이라며 웃었다.

“진짜야.”

“…….”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개중에는 탐욕과 후회, 갈등이 보이기도 했다.

“후우, 일단 거래 자리에 있었던 회계사, 포술장, 돌격대장에게 실제 여부를 물어보면 간단하게 확인될 일이고, 중요한 것은 이걸 어떻게 나누냐는 것이겠지?”

몇몇 사람들이 부지런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갑판장님과 회계사 게론드, 일등항해사 아인델프 정도?

“원래 몇 푼 안 되면 대충 추가 수당 정도로 티 안 나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 정도로 될 금액이 아니잖아? 그래서 대충 나눠봤어.”

나는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제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 만들어낸 분배안이다.

발견자 : 네이선, 우르타

일반 참여 : 아인델프, 발드, 슬레어, 에른스트, 비에론

특수 참여 : 우르타(거래제안), 네이선(양동이), 게론드(감정, 매각)

네이선 30만

우르타 30만

게론드 20만

일반 참여자 10만

총액 : 130만

나는 쪽지를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준 다음 말문을 열었다.

내 몫으로 무려 70만이나 떨어지게 돼서 약간 민망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거래를 결정한 것도, 매각을 주도한 것도 나니까 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선장이잖아!

“혹시라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야기 해줬으면 하는데.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 불편하다면 따로 와서 말해도 돼.”

“허허허, 이렇게 안 주셔도 됩니다, 선장님. 실제로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부터 선장님이 주도하신 것 아닙니까? 전 그냥 고급 위스키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네, 갑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뭘 했다고 10만 로스나 받는지 잘 모르겠군요. 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던 게 전부입니다만….”

내 말에 힘을 실어주려고 일부러 그러시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갑판장님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며 과하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질세라 일등항해사 아인델프가 그 말에 동의했다.

사실상 직급과 실권으로 최상위에 해당하는 두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참여자에 이름을 올린 그들이 이렇게 동의해 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

막말로 이등항해사 발드, 삼등항해사 슬레어는 아인델프에 비해 더 한 것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조리장 비에론은 음식 준비를 위해 불려 나오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손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세 사람이 불만을 가졌을지 몰라 주의 깊게 살피던 나는 종이를 거둬들이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럼 이대로 지급하는 것으로 하지. 따로 지급하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다음 항구에 기항할 때 항해 수당과 함께 지급할게. 혹시 돈이 급한 사람 있나?”

네이선이 손을 들려고 움찔하다가 눈치를 보더니 다시 내렸다.

저 녀석이 돈이 필요할 일이 있던가?

“그럼 해산하지. 회계사, 돌격대장, 포술장은 잠깐 나 좀 보자구.”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나는 세 사람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혹시 모르니까 우리는 웬만하면 배에서 나가지 말자. 만약에 우리의 정체가 밝혀졌다면 진짜 골치가 아프거든?”

“어? 우리가 안 나간다고 정체가 안 밝혀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네이선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놈 분명히 술을 못 마셔서 저러는 걸 거다.

“혹시라도 우리의 체형, 나이 같은 외형으로 우리를 추적하고 있을지도 몰라서 그래. 설마 그놈들이 각 배를 돌면서까지 사람을 찾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가급적이면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자고.”

“너무 답답한데… 아앗, 혼잣말입니다. 선장님!”

내가 우르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자, 딴청을 부리던 우르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견시대도 올라가지 말까요? 언제까지요?”

“응. 금지야. 웬만하면 방 안에 있어! 출항할 때까지.”

“아니, 그렇게까지…! 우리가 뭐 큰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까지 정체를 밝히려고 하겠어요?”

“말했잖아, ‘혹시’라고. 우리 문제가 아니고 리버티 호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며칠만 참아. 알았지?”

“네, 선장님.”

“알겠습니다. 선장님.”

확실히 철이 조금 들었는지 군소리 없이 대답하는 녀석들이었다.

흠, 어쩌면 갑판장님한테 정신교육을 따로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아, 그러면 돌격대장이랑 포술장은 이만 나가봐. 갑판장님은 나가셔도 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갑판장님께 부탁하면 되잖아.”

내가 갑판장님을 언급하자 네이선은 얼굴이 조금 펴졌고, 우르타는 죽상이 되었다.

우르타는 아직도 갑판장님이 무서운 모양이다.

두 사람이 나간 뒤, 나는 게론드에게 조용히 물었다.

“회계사, 저 망할 와인에 대해서는 함구했지?”

“물론입니다, 선장님.”

“어휴, 진주 한 알에 이 난리가 났는데… 회계사가 솔직하게 말해봐. 저게 더 비쌀까?”

내 질문에 게론드가 피식 웃었다.

“저게 더 비싸냐구요? 진주가 제법 비싸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봐야 고작 귀부인들의 허영을 채워주는 보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권력자의 희귀품 수집에 대한 욕망을 채워줄 저 녀석을 고작 진주와 비교하십니까?”

어휴, 무슨 음식 판매 대금이 뱃값보다 비싸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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