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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45화 (145/420)

145화. 악천후와 불청객 (3)

인간은 원래 물속에서 살 수 있게 되어있지 않고,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이상 쉴 새 없이 팔다리를 움직여야만 물 위에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불빛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당황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잠입했다면 몰라도, 물속에 있는 것이 발견된 습격자들이 배 위에서 자세를 잡고 있는 선원들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진짜로 물속으로 올 줄은 몰랐다.

차라리 작은 보트를 이용했다면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겨울이라는 계절이 막 수영하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잖나?

나는 옆에 서 있던 우르타에게 말했다.

“맞추지는 말고, 위협 사격 몇 발만 쏴버려.”

“네? 맞추지 말고요?”

“맞추면 괜히 피곤해져. 짜증 나지만 귀찮은 일은 피해보자고.”

“네, 선장님.”

결국 세 방향으로 접근하던 습격자들은 랜턴 공격(?)과 볼트 세례를 받고는 기겁하며 배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물속이 모두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뻑뻑해진 눈두덩을 문지르며 말했다.

“다들 피곤하겠지만 오늘 하루만 긴장하자. 더 이상 습격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갑판장이 선원들 체력 고려해서 경계 근무 세우도록. 다른 사람들은 자리 옮겨서 이야기 좀 하지.”

“걱정 마십시오, 선장님.”

거의 이심전심으로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갑판장님은 현장 지휘를 위해 남았고, 나머지 간부들은 나와 함께 선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후우, 다들 피곤하겠지만 날이 밝으면 바로 출항할 수 있도록 준비 좀 해야겠어. 일등항해사가 출항 관련 서류는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하지만 교역품을 다 싣기 전에는 서류가 안 나올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최대한 빨리 처리되도록 일등항해사가 신경 써 줘.”

“네, 선장님.”

“그리고 거기 세 사람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각자 선실로 들어가서 항구를 벗어날 때까지 나오지 마. 지금은 밤이라서 제대로 안 보였겠지만, 날이 밝으면 온갖 잡놈들이 뭔가를 잡아내려고 득실거릴 거야.”

그때 게론드가 약간 난감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선장님, 죄송하지만 교역소 측에 잔금 지불이라던가, 상품 확인 같은 것은 제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그건 오펜에게 맡기도록 하지. 상품에 장난이라도 쳤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오펜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으음, 그 아이라면 뭐,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충분히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저 게론드에게 ‘충분히’ 가르침을 받을 오펜이 조금 안쓰러워졌지만, 어쩔 수 없다.

리바체 자작이 단순하게 ‘인어의 눈물’이라는 진주를 얻은 방법이 궁금해서 이 난리를 치는 멍청이인지, 진짜 ‘인어’와 ‘인어의 눈물’ 간의 상관관계를 알고 이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 항구에 더 붙어있을수록 저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게 되고, 더 위험해 지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특히 포술장. 포술장은 진짜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잘 숨어.”

“네? 왜 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포술장의 외모는 확실히 눈에 띈단 말이야.”

“아, 너무 잘생겨서?”

“…….”

몇몇 사람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구기는 것이 차마 회의 중이라 욕을 못 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것 같았지만, 우르타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돌격대장도 가능하면 숨어있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선장님.”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아까부터 생각하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일단 무거운 목소리로 발드 항해사를 불렀다.

“이등항해사.”

“네, 선장님.”

“출항할 때까지 선장 대역을 맡아줄 수 있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알다시피 나도 웬만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아. 하지만 출항하는데 선장이 없을 수는 없잖아. 이 중에는 선장 대역을 할 만한 사람이 이등항해사밖에 없어. 선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공식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고, 내 대신 선교에 서 있으면 돼.”

“하지만 선장님, 여기 일등항해사가 있는데 제가 선교에 서서 지휘를 하게 되면 아무리 태연하게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선원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아인델프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등항해사가 좀 아파야겠어.”

“네?”

“솔직히 일등항해사 얼굴이 팔리지만 않았으면 일등항해사에게 선장 대행을 맡기고 싶기는 한데, 그럴 상황은 아니잖아, 그렇지?”

“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럼 원래 일등항해사가 하기로 한 일은 슬레어 항해사가 하기로 하지.”

“네?!”

갑자기 지목을 당한 슬레어가 당황을 숨기지 않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견습생 취급받는 삼등항해사라고 해도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가?

단순한 출입항 서류 처리조차 못 한다면 일찌감치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은 거다.

“어차피 단순하게 출항 서류만 챙기는 일이야. 어려울 것 없어. 일등항해사 따라가서 자주 봤잖아?”

“네, 네,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봐, 삼등항해사. 자네라고 언제까지 삼등항해사로 있을 수는 없잖아. 이렇게 기회가 될 때 실무를 하나씩 경험해 봐야지. 잘해줄 것이라고 믿어.”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까지 필요 없어. 그냥 무난하게 처리만 하면 돼. 괜히 어깨에 힘주지 말고. 알았지?”

“네, 선장님!”

비장감까지 흐르는 슬레어의 얼굴을 보니 왠지 과하게 기합이 들어간 것 같아서 한숨이 나왔지만 참기로 했다.

“그런 고로, 일등항해사는 지금 당장 아프도록 하고, 삼등항해사에게 내일 해야 할 일을 알려주도록 해.”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응, 지금이 좋아.”

“그, 지금 나가라는 말씀이신지…?”

“아니, 삼등항해사가 업어. 그렇게 해야 내일 모습을 안 보여도 설득력이 있지.”

한바탕 소란 끝에 아인델프가 슬레어의 등에 업혀 자기 방으로 실려 가고, 다른 간부들도 해산하여 자기 선실로 흩어졌다.

일단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한 것 같다.

그나마 이 세상의 서류나 이런 것들이 지구에 비하면 어설프기 그지없고, 사진이나 신분 증명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에 사진이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선장 대행을 시킨다거나, 신분을 속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

선장이 된 이후로 가장 답답한 출항이었다.

동이 트기 직전에 비는 완전히 그쳤지만, 덕분에 아침 일찍 출항하고자 하는 배가 수도 없이 많아져서 론 항구는 전에 없이 복작거렸다.

교역소는 몇 번이나 재촉을 받은 뒤에야 인부가 부족하다고 털어놓았고, 오펜은 기지를 발휘해 선원들을 데리고 가서 물건을 직접 받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출항 서류를 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초심자의 행운인지 그동안 배운 가락이 있어서인지 슬레어 역시 출항 준비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가 다 되었음에도 리버티 호가 항구를 떠날 수 있었던 시각은 정오가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들어오는 배는 거의 비슷한 수였지만 나가는 배가 하도 많다 보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안전을 위해 서로 20m 이상 거리를 두었을 배들이 10m 이내까지 가까워지기도 했고, 심지어는 사방에서 충돌도 발생한 모양이었다.

속도가 워낙 느린 만큼 대형 사고는 아니었겠지만, 선주나 선장 입장에서는 뒷목 잡을 일이고 쌍방에서 육두문자가 날아갈 만한 일이긴 했다.

리버티 호도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해서 둔탁한 충격이 두어 번 가해지기는 했다.

그리고 충격이 있은 다음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갑판장님의 걸쭉한 욕설이 울려 퍼졌다.

선실 안에 있는 내가 또박또박 다 들릴 정도로 소리치셨으니,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신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느껴지는 배의 움직임과 소리, 가끔 있는 오펜의 보고를 통해 답답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소음이 잦아들더니 노크와 함께 슬레어가 들어왔다.

“선장님, 방금 전에 론 항구를 빠져나왔습니다. 충돌이 두 번 있었습니다만, 피해는 경미합니다. 침로를 어떻게 잡을까요?”

“슬레어 항해사, 아직 주변에 배가 많지?”

“네, 아무래도 방금 항구에서 나왔고, 지금 항구는 나오려는 배들로 북새통이니까요.”

“그럼 일단 북동쪽으로 움직이지.”

“네? 북동쪽입니까? 그쪽은 아무것도….”

“그래 북동쪽 맞아. 060도 잡도록 하고, 반개해서 천천히 움직이라고 해. 그리고 갑판장과 발드 항해사에게 전해. 혹시라도 추격하는 배가 있는지 주의해서 살피고, 추격자로 의심되는 배가 있다면 반드시 보고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선장님.”

론 항구의 북쪽에는 일레드 왕국령인 시논 섬과 케르빈 섬이 있지만, 일레드 왕국이 두 섬을 군사 기지로 선포한 이후 이 섬들로 가는 항로를 타는 배는 거의 없었다.

허가받지 않은 선박은 근처만 가도 나포당하거나 격침당할 텐데 어떤 미친 상선이 그쪽을 향하겠는가?

북동쪽을 향해도 별거 없기는 하지만 어거지로 끼워 맞춘다면 동쪽의 일레드 왕국 본토로 향하는 항로가 하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워낙 장거리 항로라서 굳이 타는 배가 없을 뿐이지.

그러니까 만약 우리 뒤를 쫓아오는 배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우리를 추격하는 배라고 봐야 하는 거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오펜의 정중한 말이 문 밖에서 들렸다.

“선장님, 나오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 육안으로 식별되는 선박은 없습니다.”

왠지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문을 열어젖힌 나는 문 앞에서 깜짝 놀라고 있는 오펜의 등을 두드려준 후 빠르게 지시를 선달하고 선교로 향했다.

“일등항해사, 포술장, 돌격대장도 임무 복귀하라고 해. 다들 고생했어.”

***

선교에 도착하자 지휘를 맡고 있던 발드 이등항해사가 고개를 숙이며 내게 자리를 양보했다.

“선장님, 현재 065도 잡고 있습니다. 주변에 특이사항 없습니다.”

“수고했어, 이등항해사. 들어가서 쉬도록 해.”

발드가 정중히 인사하고 선교에서 내려가자, 나는 조타수에게 명령했다.

“조타수, 변침한다. 좌현 전타, 210도 잡아.”

약간 늘어져 있던 갑판 위쪽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와 갑판장의 지시에 따라 조범수가 조금씩 돛의 방향을 조절했고, 갑작스러운 변침에 굴러다니는 집기들을 잡으려고 선원이 함께 뛰었으며, 해먹에서 떨어졌는지 씩씩거리며 선창 쪽 해치에서 머리를 끄집어내었던 선원 몇 명이 선교에 선 나를 확인하고 슬그머니 도로 내려갔다.

“선장님.”

어느새 올라온 갑판장님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네, 갑판장님. 무슨 일인가요?”

“아닙니다, 갑자기 급속 변침을 하시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올라와 봤습니다.”

“그냥 뭐, 다들 좀 늘어진 것 같기도 하고 해서요. 어차피 우리 바흐카덴으로 가기로 했잖아요.”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선원들은 제가 다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어요. 그보다 진짜 별일 없을까요?”

“흐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더 남기는 했습니다.”

“두 가지나요?”

“하나는 저희가 가는 길에 미리 가서 매복을 하는 경우입니다. 출항이 꽤 늦어졌으니 힘을 써서 미리 나왔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다른 하나는요?”

“바흐카덴에서 일을 벌이는 거죠.”

“에이, 그건 너무 가셨는데요? 아시다시피 바흐카덴은 쿠샤 왕국의 항구예요. 벨로키나에서 알아주는 귀족이라고 해도 바흐카덴에서는 힘을 못 쓸 텐데 고작 이름도 못 들어본 자작 따위가….”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자, 갑판장님이 민망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긁으며 말했다.

“네, 어디까지나 그냥 가정입니다. 저도 그게 확률이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럼 뭐, 일단 매복만 조심하면 되겠군요?”

“네, 당분간은 관측거리 안에 들어온 모든 선박을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섬도 마찬가지구요.”

“혹시 모르니까 화물들 바로 투하 가능하도록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혹시라도 공격을 당하면 전투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화물을 버리는 쪽이 나을 테니까요.”

“준비하겠습니다.”

갑판장님이 떠나고 잠시 후, 조타수의 보고가 내 귀에 울렸다.

“변침 완료했습니다, 선장님. 현재 210도 잡고 있습니다.”

“좋아, 조범수! 돛 풀어! 풀 세일이다!”

바람을 한껏 안은 리버티 호가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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