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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50화 (150/420)

150화. 풀리지 않는 의문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미르바프의 말을 곱씹으며 리버티 호로 돌아가는 중인데, 저 앞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앞에 뭐가 있어?”

“글쎄요? 취객들이 난동을 부릴 시간대이기는 합니다만.”

“괜히 휩쓸리면 귀찮을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굳이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뱃사람의 자존심 때문에, 고작 소란이 무서워서 길을 돌아간다는 것은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술 취한 남자들의 흔한 객기였다.

역시나 골목길 한쪽에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남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한 쪽 편이 좀 낯이 익은데?

“어? 갑판장님?”

내가 어둠 속에서 보이는 흰머리를 보고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엇! 선장님! 무사하셨군요!”

“에? 무사하다니요? 제가 어디 싸우러 간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세요?”

“그게, 선장님이 가신 술집의 위치를 몰라서 물어봤는데, 이놈들이 글쎄.”

평소에 안 그러시던 분이 왜 갑자기 동문서답이람…?

갑판장님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우리 쪽과 대치하던 남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번개같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으앗?! 이놈들! 어딜 도망가느냐!”

“쫓을까요?”

네이선이 허리춤에 있는 칼에 손을 대며 서늘하게 물었지만, 내가 단박에 말로 제압했다.

“뭣 하러 쫓아? 돈을 뺏겼거나 우리 애들 상한 게 아니면 그냥 둬.”

“아, 네.”

분위기를 잡던 네이선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갑판장님이 나와 일행들을 살펴보며 물었다.

“별일 없으십니까?”

“네, 당연하죠. 무슨 일이예요, 갑판장님?”

우리가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갑판장님이 네이선을 째려보며 말했다.

“별일 없다니 다행입니다만, 이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통에….”

그러고 보니 갑판장님과 네이선은 물론이고 함께 온 선원 일곱 명도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면면을 살펴보면, 특별히 네이선이 훈련(?)에 공을 들였던 나름대로 우리 배의 최정예가 아닌가?

“도대체 무슨 말을 들으셨길래….”

내가 어이가 없어 네이선에게 시선을 옮기는데, 발드 항해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선장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일단 배로 돌아가시죠. 우리를 주시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응? 그러고 보니 낮부터 분위기가 좀 요상했더랬지.

나는 술기운이 확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평온을 가장해서 말했다.

“여튼 일단 배로 돌아가시죠. 애들을 무장까지 시켜서… 어휴, 괜히 경비대에 걸리면 귀찮아집니다.”

“네, 돌아가시죠.”

갑판장님도 눈치를 챘는지 군말 없이 앞장섰다.

그 와중에 네이선은 내 옆으로, 선원들은 좌우로 나누어 서는 꼴이, 누가 봐도 호위 대형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나는 골목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눈길이 조금씩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길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어둠 속이라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

다행히 무사히 리버티 호로 복귀한 나는 선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려고 했지만, 갑판장님이 만류했다.

“이 녀석들은 그냥 당직에 추가하시죠.”

“네?”

내 반문과 동시에 ‘이 녀석들’에 해당하는 녀석들의 항의가 튀어나왔다.

“갑판장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당직이라니! 전 내일인데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끌려왔는데!”

“시키는 대로 잘했는데 왜 그러는데요!”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일별한 갑판장님이 목소리를 낮췄다.

“어차피 피로가 쌓인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돈으로 구슬리면 넘어올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항구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 것 같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당직자는 몇 명인데요?”

“평소보다 넉넉하게 16명을 편성했습니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겁니다.”

“알겠어요. 갑판장님 뜻대로 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러선 갑판장님은 아직도 구시렁거리는 녀석들에게 약간의 폭력과 협박이 드레싱 된 포상을 약속하고는 선실로 내려 보냈다.

평소라면 회수했을 무장까지 그대로 들려 보냈으니, 아마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즉시 투입이 가능할 것이다.

선원들을 내려 보내고 선장실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약간 경직된 분위기에서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밖으로 나간 삼등항해사 슬레어와 조리장 비에론은 호출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간부를 호출한다면 혹시 있을지 모를 적에게 경각심을 심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 일단 나와 일등, 이등항해사들이 느꼈던 것도 그렇고, 갑판장과 돌격대장이 느낀 것도 그렇고, 우리가 지금 감시당하는 것 맞지?”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갑판장님이 확신을 담아 대답하자, 우르타가 그 말을 받았다.

“네이선… 돌격대장과 항구를 돌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복귀한 이후로 까마귀 둥지에서 몰래 살폈는데, 우리 배를 주시하며 쓸데없이 배회하는 놈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녀석만 다섯이 넘어요.”

“그래? 특이사항은?”

“으음…. 솔직하게 말해서, 미리 알고 주시하지 않았으면 전혀 알아챌 수 없었을 정도랄까? 변장인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선원 행색이건 짐꾼 행색이건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하,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우리를 적대할 만한 이유가 있나?”

내 혼잣말에 다들 각자 생각에 잠겼다.

잠시 시간을 끌던 나는 어차피 답도 안 나오는 문제는 미뤄두고 궁금한 것부터 질문했다.

“그보다 갑판장님, 아까 전에는 무슨 상황입니까? 거의 일촉즉발이던데?”

“선실에서 쉬고 있는데, 저기 저 돌격대장이 갑자기 찾아와서 다짜고짜 선장님을 호위하러 가야 한다지 뭡니까?”

“맥락도 없이 갑자기요?”

“저도 너무 이상해서 자세하게 설명 좀 하라고 했더니, 온 도시가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무슨 대해적도 아니고 도시가 적대적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확인 차 나갔는데….”

“뭐가 좀 이상하더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분위기가… 뭐랄까, 확실히 호의적이지는 않더군요.”

나는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켰다.

“좋아요, 그래서 선원들 소집하고 저희를 데리러 오신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놈들과 그러고 계셨어요?”

“사실 길을 잘 몰라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다짜고짜 돈을 요구하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선장님을 자기들이 보호하고 있다느니, 벨로키나 왕국 놈들이 여기는 왜 왔냐느니,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시비를 걸던 참이었습니다.”

“저를 보호하고 있다구요? 그게 무슨?”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납치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해군이랑 만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어이가 없기도 했구요.”

당연한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제시간에 선술집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해군에서 리버티 호로 연락을 취했을 것이고, 갑판장님이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전체적으로 좀 이상하네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대비를 해 놨으니 조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그보다 해군 쪽에서는 별말이 없었습니까?”

“아, 네….”

왠지 조작된 사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뒤통수가 간질간질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심증만 가지고 함부로 떠들 일도 아닌지라 일단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갑판장님에게 당부했다.

“그보다 그쪽에서 이번 구조 사건이 널리 퍼지기를 원한답니다. 우리에게 딱히 손해날 것은 없으니 선원들에게 한 마디 전달해 주세요.”

“요구사항이 그거랍니까?”

“으음, 아무래도 벨로키나 왕국과 쿠샤 왕국 간의 정치적인 문제가 얽힌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더라구요.”

“…정치적, 말입니까?”

순간적으로 갑판장님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 전에 빨리 분위기를 바꾸기로 했다.

“돌격대장.”

“네, 선장님.”

“오늘 선내에 머물면서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선실에 대기 중인 선원들과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든든하게 대답하는 네이선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 우르타에게 시선을 옮겼다.

“포술장.”

“네, 선장님.”

“피곤하겠지만 오늘 경계 좀 부탁하지. 무기고에서 쇠뇌 하나 들고 올라가고, 사태가 발생해도 절대 내려오지 말고 주변을 살펴 줘. 혹시라도 후방에서 지휘하는 놈이라도 발견하면, 알지? 생포가 최고인데 힘들 것 같으면 죽여.”

“어? 아니, 네? 밤에는 맞추기 힘든데요.”

“최대한 노력해봐. 알았지?”

“네, 선장님.”

마지막으로 일등항해사에게 시선을 옮긴 나는 당부의 말을 하고 회의를 마쳤다.

“일등항해사는 유사시에 내 명령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선조치 후보고하도록 해.”

“네, 선장님.”

***

회의를 마치고 답답한 상황에 대한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과거의 기억을 다 뒤져보았지만, 딱히 뭔가 걸리는 것이 없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론 항구의 리바체 자작 정도지만, 고작 그 정도 귀족이 타국의 도시에서 이렇게 힘을 발휘할 리는 없었다.

심지어 바흐카덴은 쿠샤 왕국에서도 수도를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다.

타국의 귀족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답 없는 고민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깜빡 잠이 든 것 치고는 침대에 너무 편안하게 누워있었기는 했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이다.

노크 소리에 몸을 반쯤 일으키며 대답했더니, 조용한 오펜의 말이 들려왔다.

“선장님, 선교로 잠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펜? 너도 있었어?”

“네, 그, 익숙하지 않아서요.”

오펜은 이제 일반 선원이라 제대로 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나가서 돈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약간 거부감이 남은 모양이다.

그래봐야 얼마나 가겠느냐마는.

우르타와 네이선도 처음 일반 선원이 되었을 때는 저랬었다.

아니, 네이선만 그랬던가?

어쨌든, 날 기다려준 오펜을 앞세우고 선교로 올라가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인델프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를 맞이했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선장님.”

“아냐, 무슨 일이야?”

“경계 중이던 포술장이 근처를 배회하는 자들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지금 돌격대장과 대기 중인 선원들을 호출했습니다.”

“잘했네. 하지만 괜히 먼저 소란 피우지 마. 알다시피 론 항구의 그 멍청한 자작 놈처럼 항구에서 장난질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이쪽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을 알면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거야.”

“알겠습니다. 일단 갑판에 대기시키겠습니다.”

“지금 현문 당직은 몇 명이야?”

“네 명이었는데 지금 두 명을 추가 배치했습니다.”

“좋아, 대기 중이던 선원들 올라오면 갑판 위에 멀뚱멀뚱 서 있게 하지 말고 돌격대장을 시켜서 상갑판 전체 순찰을 하라고 해. 놈들도 바보가 아니면 우리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보면 알아서 피하겠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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