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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51화 (151/420)

151화. 권력이 매혹적인 이유

- 바흐카덴 치안관 사택 입구 -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각, 발걸음 소리조차 숨기지 않으며 접근하는 한 남자 때문에 반쯤 졸고 있던 경비병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당한 발걸음이 그의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를 증명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안심해도 될 정도로 치안관의 경비병이 널널한 자리는 아니었다.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려면 필연적으로 부정, 부패, 폭력, 범죄와 관련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게 적대 관계건, 야합하는 관계건 말이다.

그러니 암살과 습격에서 자유롭기는 영 쉽지 않았다.

“정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배에 힘을 주고 호기롭게 검을 뽑아 든 보람이 없게,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왕국 제1함대 소속 미르바프 중령이다. 치안관님과 급하게 논의할 일이 있으니 당장 가서 알리도록.”

“네? 이 시간에 무슨…? 치안관님께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으셨습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오시죠, 중령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남자는 흠 잡을 곳 없는 해군 정복을 입고 있었고, 경비병들 입장에서는 감히 그를 의심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왕국의 최정예 함대인 1함대의 중령이라면 자신들이 함부로 엉겨 붙은 상대가 아니었다.

원론적인 경비병의 대답을 들은 미르바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 지금 당장 항구의 치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네놈들이 책임질 수 있나? 헛소리 말고 치안관님께 알리게.”

“하지만….”

스르릉.

서늘한 칼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소란을 일으키기를 바라는가? 나는 몰라도 네놈들은 확실히 문제가 될 텐데?”

“그, 그, 그렇지만!”

“지금! 지금 당장 알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장 움직여라, 기다리다 지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경비대 중 한 사람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중령이란 작자의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칼을 뽑았다고는 해도 설마 경비대인 자신들을 죽일 수야 없겠지만, 팔다리에 구멍 정도는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불구가 되거나 직업을 잃더라도 중령은 적당한 질책정도나 당하겠지.

하지만 공격당한 자신은?

어차피 맞서 싸운다고 한들, 이길 자신도 없는 상대에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과의 트러블 때문에 그가 전하려는 소식이라는 것이 제시간에 전달되지 못하기라도 하면 괜히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위험도 있었다.

그에 반해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지금 치안관을 깨운다고 해도 욕이나 좀 먹으면 될 일이지 않은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문을 열고 사택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분주히 아침 준비를 하는 하인과 하녀들을 밀치며 치안관의 침실에 도착했다.

침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갑자기 들어온 동료에게 의문의 시선을 던졌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치안관님! 치안관님!”

갑자기 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치안관을 깨우는 동료의 행동에 기겁한 경비병들이 동료를 제지했다.

“으헉! 무슨 짓이야?!”

“야! 너 미쳤어?!”

“당장 떨어져!”

방음이 잘 되는 두꺼운 문과 벽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소란까지 안에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려던 치안관은 분노로 인해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어떤 놈이! 내 이놈을 당장!”

치안관이 벌떡 일어서자 이불이 들춰지며 옆에서 자고 있던 정부의 적나라한 나신이 드러났다.

침실의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다음이야 정석적인 여자의 반응이었다.

“꺄아악!”

짜악!

그녀의 비명은 찰진 마찰음과 함께 뚝 끊겼다.

“미친년이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옷이나 입어!”

그는 여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남자는 아니었고, 그것은 상대가 아무리 아끼는 정부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옷을 입으라고 말은 했지만, 그는 그녀가 옷을 입건 말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가운만 대충 걸친 채 쿵쿵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잠금장치를 풀어내고는 분노를 가득 담아 문을 열어젖혔다.

“무슨 소란이야?!”

“힉! 치안관님.”

“죄, 죄송합니다!”

“치안관님! 해군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이 자식이 진짜!!”

서로 엉켜있는 세 명의 경비병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치안관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가장 가까운 엉덩이를 힘껏 차버렸다.

“떨어져, 이 덜떨어진 것들아!”

“으엌….”

겨우 상황이 수습되자 엉망이 된 옷차림을 한 채 송구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비병들을 한차례 노려본 치안관이 정문 경비를 맡은 자에게 물었다.

“해군이라니 무슨 말이냐?”

“1함대 소속 중령이라는 자가 칼까지 뽑아 들고 입구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곧 쳐들어올 기세입니다!”

뭐, 그 정도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치안관은 확인하지도 않을 텐데.

자신이 욕을 덜 먹으려면 상황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더 좋았다.

“뭐?! 1함대 놈이? 무슨 일이지?”

불같이 화를 내던 치안관이 1함대라는 말에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바흐카덴의 치안관이라면 권세가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쿠샤 왕국군의 실세인 1함대의 장교와 맞설 정도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뭐, 뭐라더라, 치안에 문제가 되는 놈들이, 아니, 논리? 그런 게 있다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아, 관두고, 그놈 데리고 들어와. 접견실에서 기다리라고 해.”

치안관은 그 해군 중령이라는 자를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무례를 범한 것은 그쪽이니 그냥 내친다고 하더라도 딱히 흠을 잡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당장 현관문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옷을 갖춰 입기 위해 돌아서는 치안관의 귀에 거칠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하인과 하녀들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

- 치안관 사택 현관문 근처 -

들어간 경비병을 잠시 기다리던 미르바프는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 소식이 없자, 남은 경비병을 칼로 위협하여 물러서게 만든 뒤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례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법이다.

바흐카덴의 치안관? 그래봐야 그저 바흐카덴의 시장이 임명한 평민에 불과했다.

비루한 평민은 아니고 이 도시에서 돈 좀 굴리는 집안이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진정한 권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놈이었다.

하여튼 미르바프가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이 구르듯이 달려와 안내를 자처했다.

복장이 엉망인 것으로 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 신경 쓸 미르바프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웅성거리는 사용인들을 지나쳐 그를 따라가니 꽤나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접견실이 나왔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면 치안관님께서 나오실 겁니다.”

“5분.”

“네?”

“가서 전해라. 5분 이내에 안 나오면 난 이 방을 나갈 거고, 뒷일은 알아서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저, 중령님. 아무리 중령님이라고 하셔도 그건 너무 무리….”

“똑바로 들어. 나는 12전대 기함, 셀레스타의 부함장 미르바프 중령이다. 가서 전해.”

“네, 넷!”

잘해봐야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벌써 중령이라는 것도 대단했지만, 전대 기함의 부함장이라면 얽혀있는 권력이 얼마나 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비하면 치안관의 쥐꼬리만 한 권력은 권력도 아니었다.

경비병의 생각이 맞았다.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던 치안관은 셀레스타의 부함장이라는 말을 전하기 무섭게 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신병 못지않은 속도로 옷을 갖춰 입었고, 그가 본 최고의 속도로 접견실로 달려갔다.

느긋하게 준비된 차를 마시던 미르바프는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치안관을 보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 맛에 권력을 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달콤한가?

선원은 물론 웬만한 상선의 선장들도 눈 아래로 보는 경비병, 그 경비병들을 발끝으로 부리는 치안관, 그 치안관이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달려 나와서 맞이해야 하는 사람.

심지어 그 사람은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에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들어온 불청객이 아닌가.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항구의 치안관을 맡고 있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치안관님. 아침부터 죄송합니다만 사안이 너무 심각해서 말이죠. 일단 좀 앉으시죠.”

“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최근 들어 바흐카덴에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치안관의 얼굴에 가득한 땀이 과연 이 자리까지 뛰어온 여파인지, 질문의 여파인지는 본인만 알고 있겠지.

“어젯밤, 아니, 오늘이죠? 제 부하들이 술에 좀 취해서 부두 쪽으로 갔던 모양인데, 수상한 자들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 중령님. 야간에 통행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딱히 금지는 아니죠. 게다가 병사들 아닙니까? 국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치안유지를 위해 조금 노력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저희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왕국의 최대 항구인 바흐카덴에서 이런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치안관의 반응을 보던 미르바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

- 6시간 전, 선술집 -

물주는 떠났지만, 파티는 계속되고 있었다.

제이멀 함장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는 취기를 느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에게 손을 들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멀끔한 외모와 칼 같은 예절, 능력도 발군이었지만 상관의 기분을 맞추는 것에도 능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자신과 같은 파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소식이 왔나?”

“네, 함장님. 예상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 선장이 위험하지 않겠어?”

“안 그래도 뭘 느끼기는 한 모양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그 정도도 못 느낀다면 문제가 있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자라면 괜찮을 겁니다. 제법 상황 파악도 빠르고 머리도 굴릴 줄 아는 자입니다.”

“그래? 그런데 꽤 자세하게 알고 있구만?”

제이멀 함장이 권하는 진을 한 번에 털어 넣은 미르바프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마다카트 섬의 반란을 진압할 때 조금 도움을 받았습니다.”

“호오?”

제이멀 선장은 정식 보고서에 왜 그런 내용이 누락되었는지 물어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라도 부하도 아닌 타국 민간인의 도움 따위, 당연히 정식 보고서에서는 제외했을 테니까.

“저도 여기서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몰랐습니다만… 최근에 전멸한 제국 1함대와 함께 물귀신이 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제국인인가?”

“그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제국의 위장 상선을 타고 있었습니다.”

“뭐,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일만 똑바로 해주면 되니까 말이야.”

제이멀 함장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미르바프는 심복으로 부리는 선원을 손짓으로 부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안전망을 하나 치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소란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말입니다.”

“흐흐, 역시!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내가 장담하건대 자네는 수년 내에 나보다 높이 올라갈 걸세. 그때도 날 기억해 주게나.”

“하하, 저는 의리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함장님의 능력만큼은 믿습니다. 함장님과 척을 질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감과 허세의 중간 어디쯤, 상대의 칭찬에 응하면서도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는 절묘함, 단순한 아부가 아닌 인간의 자존감을 살살 어루만지는 화법.

그의 능력 중에 가장 뛰어나지는 않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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