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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56화 (156/420)

156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망원경으로 우리 쪽으로 변침하는 상선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는 아인델프를 불렀다.

“일등항해사, 저쪽 좀 봐.”

“네.”

600톤쯤 되는 것으로 보이는 플로디엄급 상선, 예전 이클로나와 비슷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확실히 모양 자체는 상선이었다.

흘수선이 좀 얕기는 한데, 가볍고 부피가 큰 화물을 실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양현에 각 8개씩 뚫려있는 포구였다.

이클로나가 서해항로를 타기 전까지 고작 10문의 포를 운용했던 것을 감안하면, 16문의 포는 상선치고는 상당히 과한 무장이었다.

물론 포구만 있고 포는 다 없을 수도 있지만(실제로 이렇게 용병함으로 위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언제나 가정은 최악으로 하는 편이 좋다.

“만약 저놈들이 해적이랑 한패라면?”

“그래도 일단 저희가 유리할 겁니다. 그래봐야 3:3 아닙니까? 솔직히 해군이 개입하면 전투 없이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저 쫓기는 놈도 해적이면?”

“네? 그건 좀…….”

아인델프가 당황하며 내 예상을 부정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 쫓던 놈들, 다가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 그놈들은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쯤은 걸릴 겁니다. 전투가 끝나고 남을 시간이죠.”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그러면 일단 저쪽의 농간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니까.

만약 저쪽의 장난질이었다면 우리 뒤를 쫓던 놈들도 진즉 우리 근처까지 따라붙었어야 하잖아.

“견시! 해적선 상태 보고!”

“여전히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조금 불안하다.

아무리 해적선이 두 척이라도 해적은 해군이랑 상대하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일단 제압하는데 감수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고, 제압한다고 해도 얻을 게 별로 없으며(끽해봐야 무기와 대포, 군자금 약간 정도인데, 대포는 무겁고 처분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제압에 성공해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후폭풍의 경우, 자기들의 전함이 해적에게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존심 덩어리인 해군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갑판장님이 이전에 몸담았다던 그 옛날 유명했다는 해적단, 붉은모래 해적단도 일레드 왕국 해군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박살 난 케이스 아닌가.

“일등항해사, 헤이디를 제외한 모두가 적이라고 가정하고 움직여. 거리 주지 말고, 포격각 내주지 마.”

“하지만, 선장님. 그렇게는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아인델프는 내가 묵묵히 다른 배들을 노려보자 알아서 수긍했다.

“휴, 알겠습니다.”

***

내 불안감과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자 결국 전투가 시작되었다.

해적들은 졸리로저를 휘날리며 기세 좋게 해군 전함 헤이디를 향해 달려들었고, 쫓기던 상선 이스트렐리아 역시 우리를 지나쳐 선회하더니 전투에 가세했다.

“교전이 있기는 했나 봅니다.”

망원경으로 이스트렐리아를 살펴보던 아인델프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스트렐리아에는 뚜렷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좌현의 선수와 중앙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있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안에서 선원들이 임시 수리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선미에도 한 대 얻어맞았는지 적지 않게 망가져 있었는데, 위치를 보아하니 조금만 더 아래로 맞았다면 키가 망가져서 제대로 된 항해가 불가능했을 뻔했다.

“그러게, 진짜 운이 좋았네. 다행히 포격 당한 위치가 좋아서 항해성능에는 별 지장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모양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 선장님, 곧 포격 유효범위입니다.”

아인델프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둔중한 폭음과 함께 우리 쪽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포탄이 만들어 낸 물기둥을 지켜보던 아인델프가 감탄사를 토했다.

“포술장은 포술을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참 대단합니다. 웬만한 포병대 장교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네요.”

“그런가?”

나는 물기둥을 보며 감흥 없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포술에 대해서 교육을 받거나 포격전을 자주 겪은 편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우르타가 포를 쏠 줄 안다고 하길래 그냥 포술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맡겼을 뿐이고, 리버티 호에서 포격은 뭐랄까, 그냥 생색내기 같은 거라서….

우리가 첫 포격을 날린 이후 선회를 마친 이스트렐리아 호가 리버티 호의 우현을 추월하여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스트렐리아 호가 우리의 선미 쪽을 지날 때는 상당히 긴장했지만, 의도한 것인지 이스트렐리아 호의 포구는 단단하게 막힌 상태로 열리지 않았었다.

두 배의 거리가 고작 300미터 정도에 불과했으니 만약 이스트렐리아가 마음먹고 뒤통수를 때렸다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들이 포구를 열자마자 선회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헤이디를 포위하려고 양옆으로 진입하던 해적선들은 우리가 포격을 가하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헤이디의 우현 쪽에 위치한 해적선은 그대로 진행하면 오히려 헤이디와 리버티, 이스트렐리아, 세 척에게 좌우와 후방을 잡힐 판이었다.

아마 상선들은 적당히 근처를 맴돌기만 하고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헤이디는 전투함의 위용을 보여주겠다는 듯 포탄을 무더기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현에서 포연이 솟아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좌현에서도 포연이 솟구쳤다.

“와우, 양 현에서 포격을 가하는군. 쉽지 않을 텐데.”

“군함이니까요. 일반 상선들은 어림도 없죠.”

비록 표적을 맞춘 포탄은 없었지만, 한번 쏘아질 때마다 15개의 포탄이 수면에 착탄하며 피우는 물기둥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

해적선도 용감하게 대응했지만, 날아오는 포탄은 한 척당 고작 8~10발, 심지어 착탄점도 엉망진창이었다.

쿠구구궁!

다시 한번 리버티 호가 크게 흔들리며 포탄을 쏟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으헛?! 명중, 명중입니다!”

유려하게 날아간 포탄 중 한 발이 해적선의 선수 부분에 명중했다.

멀리서도 생생하게 들릴 정도의 파열음이 울렸고, 해적선이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는 것이 보였다.

“으아아아! 역시 우르타! 행운의 사나이!”

“포술장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설마 고작 두 번째 포격으로 유효타를 낼 줄이야.”

“일등항해사! 해적선과 거리 50미터 더 붙여!”

“선장님, 그것은 약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생색만 내신다고….”

이봐, 아인델프. 매일 밥 먹고 훈련만 하는 데다가 한꺼번에 15발이나 쏘아대는 헤이디가 아니라 고작 3발씩 쏘는 우리가 첫 번째로 명중시켰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열정이 불타오르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지!

게다가 내게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핑계도 있다.

“어차피 저놈들은 일단 헤이디를 제압해야 우리에게 눈을 돌릴 수 있어. 걱정 마!”

“네, 변침합니다. 조타수, 좌로 60도!”

리버티 호가 좌현으로 급격히 선회하며 해적선과 거리를 줄이는 사이, 해적선의 후미까지 이동한 이스트렐리아에서 포성과 함께 포연이 솟았다.

하지만 헤이디에 비하면 포연의 양부터 다른 게, 누가 봐도 그냥 상선이라는 것이 티가 확 났다.

“하나, 둘… 셋?”

나와 같은 방향을 보던 아인델프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착탄 위치도 뭐, 눈감고 쏜 모양입니다.”

아인델프의 말대로 이스트렐리아에서 쏜 포탄은 해적선에게 전혀 위협이 안 되는 위치에 착탄했다.

해적선과 거의 100미터는 떨어진 곳에 떨어진 것은 물론, 포탄들의 위치도 엄청나게 차이 났다.

“그, 원래 상선이 쏘는 포탄이라면 저게 정상이긴 하지.”

그 사이에 헤이디는 다시 한번 시간차를 두고 양현에서 포격을 쏟아냈고, 해적선의 지근거리에 물의 장벽을 만들어내며 해적선을 위협했다.

이후 우리에게 포위(?)당한 해적선은 불안해졌는지 돛을 최대로 펼치더니 그대로 선수를 틀어 헤이디와 리버티 호 사이를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때, 견시수의 보고가 이어졌다.

“헤이디 좌현, 상선 식별되었습니다! 쿠샤 왕국 상선, 리든세이입니다! 리든세이 참전합니다!”

견시수의 보고대로 저 멀리 우리의 뒤를 이어 전투기를 올리고 참전 의사를 표명했던 상선이 포격을 쏟아내는 것이 보였다.

“망할! 여덟 발. 진짜 16문을 운용한다고?”

끽해봐야 600톤급에 불과한 중형 선박이었다.

10문만 운용을 해도 상선치고는 과무장이라고 할 정도인데, 16문이면 그냥 무장상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솔직히 무장상선 중의 대부분은 해적이거나 해적질을 부업으로 하는 놈들이다.

“일등항해사, 저 리든세이라는 상선, 계속 관찰해. 지금부터 내가 조함한다.”

“알겠습니다!”

나는 눈을 돌려 우리 뒤로 빠져나가는 해적선을 힐끗 보고는 추격을 단념했다.

일단 헤이디는 다른 해적선 때문에 추격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리버티 호와 쓸모없는 이스트렐리아만으로 추격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리고 괜히 녀석을 추격한다고 선회하다가는 헤이디와 동선이 꼬일 우려가 있었다.

“조타수, 우로 30도, 이대로 진행해서 헤이디와 교전 중인 해적선의 후미를 잡는다.”

우리가 추격을 단념하는 행동을 하자, 추격하려고 변침하던 이스트렐리아 역시 부랴부랴 다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혼자서 해적선을 상대할 배짱은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남은 해적선이 급기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미 헤이디에게 유효타를 얻어맞은 데다가 동료는 전투에서 이탈했고, 자신은 좌우가 포위되었으며, 전투력은 별 볼 일 없지만 두 척이나 되는 배가 자신의 후미를 차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쫄리지 않을 리가 있나?

전투에서 이탈하려는 해적선을 헤이디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해적은 해적이었다.

사실 해적 놈들은 전투보다 도망에 더 능하거든.

결국 남은 해적선도 겨우겨우 전역을 이탈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리든세이가 군함이었거나 전투 경험이 조금 많았다면 퇴로를 차단하면서 해적선을 침몰시키거나 나포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든세이는 일단 상선이었고, 해적선의 기동에 후미를 잡히지 않으려고 변침하다가 결국 퇴로를 내어주고 말았다.

뭐, 동료 혹은 동종업계 종사자라서 일부러 퇴로를 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

전투의 지속시간은 고작 20여 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쪽은 피해가 거의 없는, 깔끔한 승리였다.

물론 해적 쪽도 피해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꽤 괜찮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우리 쫓아오던 놈들은?”

“이탈한 모양입니다. 더 이상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고 견시수가 보고해 왔습니다.”

“후후, 쿠샤 해군이랑 같이 전투를 하는 모습까지 봤으니 더 이상 찔러볼 구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군.”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쪽 피해는 없지?”

“네, 급기동으로 키와 타에 과한 피로가 발생했을 수는 있습니다만, 갑판장이 점검한 바로는 아직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배들은?”

함미 부분에 포탄이 스친 헤이디는 긴급 수리를 마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그 뒤를 쫓았고, 구함을 받은 이스트렐리아 역시 긴급 수리로 구멍만 대충 메운 상태로 헤이디를 따르기 시작했다.

당장 항해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배에 구멍이 몇 개나 났는데 그대로 계속 항해를 하는 것도 웃기니까 가까운 항구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 가까운 항구는 우리의 목적지인 켄자스 항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켄자스 항구랑 쿠샤 왕국 남부의 모지 항구랑 거리가 비슷하기는 한데, 자기들 상태가 별로 안 좋으니 우리와 함께 움직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그냥 모지 항구로 가는 게 좋을텐데 말이야.

“그 뭐더라? 리든세이? 그 놈들은? 별 말 없이 그냥 갔어?”

내가 리든세이를 얼마나 의심했는지 잘 알고 있는 아인델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스트렐리아의 고맙다는 신호를 수신한 이후 바로 침로를 틀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아마 비요렐이나 모지 항구가 목적지인 것 같습니다.

“아, 모지 항구로 갈 거면 저 애물단지 좀 달고 갈 것이지….”

내가 괜히 툴툴거리자 아인델프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자기들 행선지를 함부로 밝히고 싶지는 않은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바보 같잖아….”

“하하, 우리는 뭐 힐로템으로 갈 생각이 아니라면 갈 수 있는 곳이 켄자스 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일이면 다 예상이 가능할 텐데 굳이 숨길 것도 없지요.”

“하여간에 이번에 켄자스에 무사히 도착하면 좀 쉬자고, 나도 이거 꽤 피곤하네.”

“네, 그럼 좀 쉬십시오. 이제 큰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인델프를 내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나는 문득 찝찝한 기분이 들어 그를 불러세웠다.

“일등항해사, 그 이스트렐리아랑 우리랑 거리가 얼마나 돼?”

“네? 방금 전까지 저희를 기준으로 110도 방향으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너무 가까이 붙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괜히 충돌 사고라도 나면 안 되잖아.”

“하하, 걱정이 과하시네요. 어차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서로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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