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61화 (161/420)

161화. 줄 때 받을 걸 그랬어

피도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자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겨우 일어나 앉으니, 핏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침구류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겉옷 정도는 벗고 자서 엄청 많이 묻은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색이 색이니만큼 영 께름칙해 보인다.

그래도, 살아서 침구가 더러워졌다는 한가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만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죽거나 다친 사람이 절반인데 말이야.

“…이 기회에 침구 바꾸지 뭐.”

괜히 쓸데없는 혼잣말을 하며 분위기를 바꿔본다.

실제로 리버티 호의 오버홀이 끝났을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덕분에 침구류도 선장치고는 급이 좀 떨어지는 싸구려 직물로 지은 침구였다.

하지만 이제 고작 몇천 로스에 부들부들하는 가난뱅이 선장은 아니잖아?

그렇게 침구라는 사소한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약간 기분이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옷장에서 그나마 상태가 좋은 옷을 입으며 창밖을 보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뜬 것은 아니고 어렴풋이 밝아오는 새벽녘이었다.

약간 이른 감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솔선수범을 해야 하는 법이지.

나는 피에 절은 외투를 다시 걸친 채 선교로 향했다.

“이등항해사?”

“선장님, 나오셨습니까?”

“지금까지 안 잔 거야?”

“아닙니다. 정리 끝나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방금 나왔습니다.”

눈을 붙이기는 무슨, 딱 봐도 그냥 꼴딱 날을 샌 모습이다.

하지만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서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런데 분명히 삼등항해사한테 이등항해사를 보조하라고 시킨 것 같은데?

“삼등항해사는?”

“뒤통수에 혹이 너무 크게 나서 좀 쉬라고 들여보냈습니다.”

아, 그 녀석 넘어져서 기절했다고 했지.

순간적이라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세게 머리를 부딪혔다면 당연히 혹이 꽤 크게 났을 것이다.

지구였다면 내출혈 같은 보이지 않는 외상을 의심해야 할 정도였겠지만, 여기서 내출혈이면 알건 모르건 그냥 죽는 거다.

그것도 머리 쪽이면 말 다 했지 뭐.

나는 발드에게 망원경을 건네받아 어젯밤 우리와 박빙의 승부를 벌인 해적선, 이스트렐리아 호를 확인했다.

다행히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닻도 그대로 잘 내려가 있는 것 같고, 리버티 호와의 거리도 내가 처음 요구한 50미터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좋아, 밤에 별일 없었나?”

발드가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새벽에 해적선에 숨어있던 해적 잔당이 단정을 내려 탈출한 모양입니다. 우리와 반대 방향이라 확인도 어렵고, 저희도 투묘한 상태라 추적은 하지 못했습니다.”

“잘했군, 해적 몇 놈이 탈출했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혹시 이쪽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지?

“물론입니다. 딴에는 최대한 조용히 탈출하려고 하는 바람에 인원수라던가 하는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아깝다는 표정을 짓자, 발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내 마음을 콕 찝어서 말했다.

“혹시 해적들이 귀중품을 챙겼을까 봐 그러십니까?”

“생각해보니 선장실도, 금고도 제대로 확인을 못 했네.”

“아마 몸에 간단하게 지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그냥 두고 내렸을 겁니다. 육지까지 범선으로 고작 하루거리라고 해도, 단정으로 간다면 며칠을 가야 할지 모르니까요. 귀중품보다는 차라리 음식과 식수를 챙기지 않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그렇기는 하지.”

해적도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안다.

그리고 바다 위에 고립된다는 것의 의미와 바다 위에서 식량과 식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들이니, 제정신이 박힌 해적들이라면 다른 것보다 식량과 식수를 챙겼을 거다.

그리고 선장실과 금고도 일단 수색차 한 번씩은 가보기는 했다.

선장실에서 항해일지도 챙겼고.

금고에는 딱히 중요한 것이 있지는 않았다.

은화와 동전이 들어있는 상자가 있었는데, 도주하는 상황에서 그런 무게에 비해 가치는 별 볼 일 없는 것을 챙겨가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 거다.

***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선원들을 깨우고, 리버티 호를 움직여 이스트렐리아의 근처에 배를 댔다.

일단 배 안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전리품을 확인하고 예항 준비를 해야 했다.

깨울 때만 해도 구시렁구시렁 말이 많던 선원들도 어느새 거대한 전리품에 홀랑 빠졌는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몸이 시원치 않은 갑판장님을 대신해 네이선이 선원 일부를 데리고 선내 수색을 맡았다.

그리고 나는 아인델프와 함께 선장실로 향했다.

“잠시, 내가 먼저 들어갈게.”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아인델프가 안색을 굳히며 나를 말렸지만, 나도 나름 확신이 있었다.

“위험은 무슨, 해적들이 무슨 의리의 사나이들도 아니고, 고작 복수 좀 하겠다고 선장실에 숨어있겠어? 한두 명 죽인다고 한들 자기도 죽은 목숨인데? 거동 가능한 놈들은 아마 그 단정 타고 탈출할 때 다 도망갔을 거야.”

나는 말을 하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향해 번개처럼 칼이 내려꽃혔… 을 리가 있겠어?

선장실은 누군가가 뒤진 흔적이 가득한 상태였고, 당연히 안에 사람은 없었다.

“엉망이군요, 이미 누가 선수를 친 모양입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아인델프가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방안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딱 내가 어지른 그대로인 것 같다.

“아냐, 내가 항해일지 찾는다고 좀 뒤졌어, 밤에.”

“아, 네.”

아인델프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나처럼 선장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서 뒤지는 거야. 뭐, 잘해봐야 금화 주머니 정도가 나오지 않겠어?”

예전에 털었던 해적선의 비밀공간에서 진주와 암호가 나온 것은 진짜 보기 드문 경우다.

해적들이 그 정도로 보안에 신경 써야 할 만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않나?

보통 그런 가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대부분 팔아 치우고 졸부로 살지 않겠어?

아무래도 선장실이라는 공간이 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귀중품은 역시 내가 발견하게 되었다.

“오, 여기에 이런 걸?”

“뭡니까?”

나는 묵직한 주머니를 아인델프에게 넘겨주었다.

“원석인 것 같은데?”

“흐음, 그렇군요. 1차 가공된 원석인 모양인데, 가치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가공을 완전히 마친 녀석들보다 가격도 싸고 무겁지만, 환금성은 확실히 좋지.”

“그렇습니까?”

이건 뒷골목에서 거래를 조금 하다 보면 알게 된다.

보석류라는 것이 원래라면 전문 취급점이 아니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마련이지만, 이 반가공(?) 원석들은 조금 달랐다.

교역소나 세공소, 보석상 등 원석을 취급하는 곳에서 받는 돈이나 비슷한 가치로 뒷골목에서 냄새나는 거래를 할 때도 고액 화폐로 자주 쓰이는 편이다.

물론 고액 화폐로 쓰라고 금화라는 멋지고 신용도 높은 화폐가 만들어져 있다.

가치 측정도 어렵고(무게나 투명도, 등급 등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는 너무 많다) 측정된 가치도 일정하지 않은 반가공 원석보다 그냥 금화를 쓰는 쪽이 편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라면 금화의 움직임은 국가 단위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실제로 금화를 가지고 양지와 음지가 서로 거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응, 막말로 굳이 교역소에 가지 않고 뒷골목만 가도 그 자리에서 은화로 환전 가능할걸? 수수료 같은 거, 거의 안 떼고 말이야.”

“아, 네, 뒷골목….”

아인델프가 대충 대답하며 괜히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이 녀석은 아직도 내가 뒷골목과 긴밀한(?) 관계라는 것이 껄끄러운 모양이다.

필요성이라던가 내 과거의 피치 못할 사정은 이해하는데, 아직도 군인일 때의 그런 거부감이 남았다고 해야 할까?

최근에 뒷골목에서 워낙 사고가 많았던 것도 지금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기도 하다.

***

선장실에서는 더 이상의 소득이 없었다.

금고에서도 어제 확인했던 은화와 동전이 들어있는 상자 두 개를 제외한 특별한 물건은 찾지 못했기에, 우리는 뒷정리를 네이선에게 부탁하고 리버티 호로 건너왔다.

헤어지기 직전, 아인델프가 물었다.

“선장님, 어제 항해일지를 가져가셨다고 했는데, 뭐 좀 건지셨습니까?”

“아, 이제 가서 살펴보려고. 그런데 해적 놈들은 대부분 항해일지를 대충 쓰는 편이라 별로 기대는 안 해.”

해적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고, 법으로 금지된 일이다.

심지어 인간의 보편타당한 양심이나 도덕에 비추어 봐도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그러니 그런 일들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겠는가?

물론 해적질 자체를 즐기는 놈들 중에 오늘은 누구를 습격해서 몇 명을 죽였네, 뭘 약탈했네, 미주알고주알 써놓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의 미친놈이 차분하게 항해일지를 쓰는 것도 좀 웃기잖아.

그리고 해적 선장 중에 일지를 쓸 정도로 문자를 잘 알고 있는 녀석이 드물기도 하다.

해적들이 산적이나 도적, 강도, 도둑들보다 욕을 좀 더 먹는 경향이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해적은 잡히면 가차 없이 사형이라는 제도를 들 수 있겠다.

일전에 말한 대로 대륙의 모든 국가에서 해적질은 걸리면 사형이다.

하지만 산적이나 도적, 강도, 도둑질은 사형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재물만 강탈하고 사람은 살려두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해적은 그런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금 유명한 산적들의 경우는 진짜 통행세만 걷는 경우도 있고, 사람은 한 번도 못 죽여 본 도둑도 많다.

하지만 해적에게 걸린 상선의 선원들은?

다 죽는 거다.

해적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 네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다.

전투 중에 죽는다.

전투 후에 죽는다.

노잡이 노예로 죽는다.

해적이 되어 죽는다.

내가 알기로 신사적으로 ‘우리에게 합리적으로 통행세 1만 로스를 바치면 살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해적은 없다.

내 생각에 이런 차이는 아무래도 지리적 문제에서 기원하는 듯하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거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점’이 있다 보니 공권력의 투입이 어렵지가 않다.

닥치는 대로 다 죽여서 어그로를 끌어대면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해적은 조금 입장이 다르다.

물론 해적도 ‘거점’이 있다.

하지만 행동반경은 육지에 기반하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넓다.

그러니 행동반경으로 거점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특정한다고 해도 웬만한 군사력으로는 토벌하기도 쉽지 않다.

상식적으로 땅으로 연결된 곳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이 쉽겠는가, 어디 외딴 섬에 처박힌 해적 소굴에 병력을 상륙시키는 것이 쉽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배라는 고립된 공간에 있기 때문에 살인멸구에 의한 증거인멸조차 쉽다.

그리고 그 증거인멸은 해적들의 ‘거점’을 발견하기 위한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린다.

이렇게 따져도 저렇게 따져도 해적은 목격자를 다 죽이는 쪽이 유리한 것이다.

눈치 안 보고 마구잡이로 손님(?)을 죄다 죽였다가는 공권력에게 찍힘과 동시에 바로 토벌당하는 육지 쪽과 차이가 있다는 거지.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해적 선장의 항해일지는 꽤나 훌륭했다.

아주 날림으로 배운 것은 아닌지 문장도 제법 격식을 갖추었고, 무엇보다 행적이 꽤나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감탄사와 함께 해적 선장의 항해일지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결국 단전에서 올라오는 한 마디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아주 개새끼구나?”

일단 이 녀석들이 취하는 방법은 꽤나 치밀했다.

먼저 해적선 두 척과 적당히 공격당한 모습의 이스트렐리아 호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함께 다니며 먹잇감을 물색한다.

물론 해적선 두 척도 이때는 졸리로저를 달고 있는 것이 아니고 상선으로 위장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해적선에 쫓기는 상선 한 척이 저 멀리서 등장한다.

만약 찍어놓은 먹잇감이 겁을 먹고 그대로 도망가면 망하는 거다.

하지만 먹잇감이 돕겠다고 나서면 이스트렐리아 호가 먹잇감의 뒤로 돌아서 같이 싸우는 척, 은근하게 진로를 막아 해적선 역할의 동료들과의 백병전을 유도한다.

백병전이 시작되면 마치 먹잇감을 도우려는 것처럼 이스트렐리아 호가 반대쪽에 접현한다.

그러면 양쪽에서 공격을 받은, 심지어 한 쪽은 아군이라고 생각해서 방심까지 하고 있던 먹잇감은 단번에 제압당하는 거다.

만약 먹잇감이 두 척(이런 경우가 가장 많았다)이라도 이미 해적선 역할이 두 척이니, 하나씩 붙들고 있는 사이에 이스트렐리아가 하나를 정리하면 나머지 하나도 정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먹잇감의 조함술이 좋아서, 혹은 바람이 영 안 도와줘서, 혹은 아군이 손발이 맞지 않아서 먹잇감들이 탈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때는 우리 배에 쓴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만만하고 가성비가 좋을 것 같은 배에 감사하다며 다음 항구까지만 동행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상대가 안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밤중에 기습을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도 미리 준비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다 죽었을 것이다.

이중 함정이라니, 해적 주제에 제법이다.

심지어 ‘돌격대’라는 40명에 육박하는 전투 요원들을 따로 창고에서 넣어놓고 선원 수가 적어 보이게 만들어 상대방을 안심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멋지게 놈들의 함정에 역함정을 판 우리도 이렇게 힘들게 싸웠을 정도니, 이전에 희생된 배들은 엄청 쉽게 배를 빼앗기지 않았을까 싶다.

***

해적 선장의 항해일지를 다 읽고 약간 분노한 상태로 선교에 오르자, 예항 준비를 다 마쳤는지 이쪽으로 건너오는 네이선과 선원들이 보였다.

이스트렐리아 호에 비하면 리버티 호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아마 못 끌고 갈 정도는 아닐 거다.

물론 속도야 조금 느려지기는 하겠지만, 저 정도의 배라면 급하게 매각해도 가격을 상당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목적지인 켄자스 항구는 목재 수급이 어려워 배 값도 제법 높게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기회에 배를 두 척으로 늘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일단 전투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선원 중 절반 이상이 탈락했다.

선원은 어차피 새로 모집하면 되지 않겠냐 싶지만, 우리는 심지어 믿을 만한 간부도 부족했다.

최소한 선장, 항해사, 갑판장 정도는 맞춰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둘로 쪼개기에 우리 간부들의 경력이나 숫자가 답이 안 나온다.

게다가 일단 배는 전리품이니 이걸 내가 꿀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선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현금은 없다.

차선책으로 리버티 호를 팔고 이스트렐리아 호를 끄는 쪽도 나쁘지는 않다.

450톤급인 리버티 호에 비해 이스트렐리아 호는 650톤급이니까, 개장만 잘하면 확실히 리버티 호보다 더 효율이 좋을 거다.

하지만 리버티 호의 선주가 아직 드웰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 것도 아닌 배를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드웰이 양도한다고 했을 때 그냥 덥석 받을 걸 그랬다.

내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에 선교를 지휘하던 아인델프가 내게 목례를 하며 물었다.

“선장님, 출항 준비 끝났습니다. 돛 올릴까요?”

“어? 그래, 출항하자. 좀 쉬고 싶어….”

“정말 최근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지요.”

“얼마나 걸릴까?”

“으음, 바람도 그렇고 뒤에 저렇게 큰 놈을 매달고 있으니, 이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일 점심쯤에나 켄자스 항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출항하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