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62화 (162/420)

162화. 켄자스 항구의 항구관리관

입항하기 전부터 난리가 났다.

생각해보면 조금 애매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이스트렐리아 호는 임시 수리를 했어도 배를 좀 타본 사람은 누구나 알 법한 포탄에 의한 피격 흔적이 적나라했다.

그에 반해 그걸 끌고 있는 리버티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상태이다 보니, ‘해적이 상선을 나포해서 끌고 가는’ 모양새처럼 보인 것이다.

해적이 미치지 않고서야 ‘나 해적입니다’라고 광고하면서 일반 항구로 갈 일이 없다는 것을 감안해도, 상선(리버티 호)이 상선(이스트렐리아 호)을 습격해서 나포한 꼴이다.

이미 연안 경비대에게 한차례 검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항구에 다가가자 항구에서 검문용의 소형 갤리선이 다섯 척이나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두 척은 우리 주변에서 대기하고 무려 30명에 이르는 대인원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리버티 호에 올라왔다.

연안 경비대를 한 번 겪은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은 상태로 항구관리관을 맞이했다.

세상에, 엉덩이 무거우신 진짜 항구관리관께서 직접 납신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항구관리관님. 리버티 호의 선장 리안입니다.”

“반갑소, 리안 선장. 연안 경비대로부터 전달은 받았소만, 영 믿기가 힘들어서… 선장의 양해를 부탁하오.”

말로는 부탁이라고 하지만 통보에 가까운 말을 내뱉으며 항구관리관은 눈으로 부지런히 갑판 위를 훑었다.

하루 동안 치운다고 치우기는 했어도 갑판은 누가 봐도 한바탕 난전을 치른 꼴을 하고 있었다.

칼자국과 조금씩 부서진 부분은 물론이고, 핏물로 얼룩진 갑판은 어떻게 숨기거나 지울 방법도 없었다.

“흐음, 확실히 난전이 벌어진 것 같은데. 혹시 선내 수색과 나포한 선박에 대한 조사를 해도 되겠소?”

“그, 이미 연안 경비대에서 꼼꼼히 조사를 했습니다만….”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겪으려니 짜증이 좀 나서 소심하게 반항해 보았다.

하지만 항구관리관은 대번에 정색하며 되물었다.

“항구를 관리하는 것은 연안 경비대가 아니고 바로 본관이오. 그리고 본관은 항구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을 배제할 권한과 책임이 있소.”

“물론 그러시겠지요, 저는 어디까지나….”

“시끄럽소. 난 내가 직접 조사하기를 원하고, 내 제안을 받을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항구 밖으로 나가시오. 어떻게 하시겠소?”

“당연히 저희는 관리관님의 조사를 성실하게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원들이 좀 많이 상했는데, 의사라도 섭외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흠, 알아보도록 하겠소. 다만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오.”

부상자를 돌보고 있어서 집계에서 누락되었던 회계사 게론드가 보고하기를, 오늘까지 사망자(시체를 찾지 못해도 사망으로 처리한다)는 24명, 배에서 내려야 할 정도의 중상을 입은 자는 3명이었다.

물론 중상자 외에도 항생제를 먹고도 아직 미열이 남아서 아직 자리보전 중인 갑판장님을 비롯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열 명이 넘는다.

내가 봐도 우리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검문과 검색이 과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당장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계속 배 위에 붙잡아 놓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냐?

분명히 이 항구관리관 놈도 말로만 대충 때울 뿐 진짜 의사를 불러오지는 않을 거다.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경비대를 지휘해 여기저기를 수색시키는 항구관리관을 보며, 나는 함께 있던 아인델프에게 말했다.

“일등항해사는 항구관리관이 수색… 하는 것에 최대한 협조해. 무조건 빨리 끝낼 수 있도록, 알지?”

“네, 선장님.”

“그리고 돌격대장.”

“네, 선장님.”

나는 다부진 표정의 네이선을 한번 보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돌격대장은 부상자들 모아놓은 곳에 가서 경비병들이 쓸데없는 짓 못 하게 막아. 우리 애들이 우선이야, 알지?”

“혹시 시비가 붙으면….”

“네가 그놈들 붙잡아 놓고 사람 보내서 나 불러.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는 것은 피하되 정 안 되겠으면 기절시켜.”

“그, 그래도 될까? ...요?”

“저놈들도 바보가 아니면 부상자들에게 그렇게 심한 짓은 안 하겠지. 그리고 내가 일단 항구관리관에게 잘 말해 놓을게.”

“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

한 시간이 넘게 걸린 수색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점심쯤에 입항하리라고 믿었던 나는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어버린 상황에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입항허가증을 건네주는 항구관리관의 표정에 아직도 찝찝함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켄자스 항구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리안 선장. 부디 아무런 사. 고. 없. 이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소.”

마치 사고 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로 들리는 말이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항구관리관님.”

창고에서 끌어낸 해적 두목을 보트에 옮긴 경비대가 신호를 보냈고, 항구관리관은 고개를 까딱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말이오. 리안 선장. 혹시 저 해적선에서 항해일지는 찾지 못하셨소?”

“항해일지 말입니까?”

“해적 놈들도 항해일지는 쓸 것 아니오?”

순간적으로 온갖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실 항구관리관에게 항해일지를 넘기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어이없게도 이놈의 이스트렐리아 호는 켄자스 항구에 몇 번이나 입항한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당당하게 상선으로 말이지.

물론 그때 매각한 물건은 대부분 약탈품이나 다른 해적선에게 싸게 구매한 상품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문서 위조가 쉬운 세상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내가 갈등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이 해적 놈들이 정상적인 상선으로 위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공권력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 마수가 어디로, 어디까지 뻗쳐있냐는 거다.

애석하게도 그런 내밀한 것까지는 항해일지에 적어놓지 않았기에, 딱히 추측할 만한 단서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저 반 시체가 해적 선장임을 증명한다고 항해일지를 내밀었는데, 그 상대가 이놈들 뒤를 봐주는 놈이라면?

옴짝달싹 못하고 죽는 거지, 뭐.

지금 당장 저 항구관리관만 해도, 저렇게 내려가서 사실은 우리가 해적이고 약탈품을 팔려고 일반 상선을 위장하고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그냥 다 잡혀 죽는 거다.

아니, 아예 해안포대에게 공격받아서 바닷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조금 더 욕심이 많은 놈이라면 우리가 입항하고 안심하고 있을 때 사람만 체포하거나 죽여 버리고 배와 화물 등등을 가로채겠지.

“…….”

내가 생각을 하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하자 항구관리관이 천천히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당황해서 실수한 부분인데, 이 정도 되면 그냥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거랑 비슷하다.

“…휴, 이쪽으로 오시지요. 선장실에 두었습니다.”

진짜 심각한 범죄 혐의가 아니라면 수색을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선장실은 문만 열어보고 안에서 직접 뒤지는 행위는 피하는 것이 관례다.

굳이 들어가야 한다면 선장과 함께 들어가서 선장에게 보고 싶은 부분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이번 수색에서 선장실은 그저 문만 열고 훑어보는 정도였겠지.

내가 열쇠를 주었다고 해도 아인델프는 선장실에 들어갈 권한이 없으니 말이다.

선장실로 가는 길에 항구관리관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왜 숨기셨소?”

“…..”

가볍게 물었지만 듣기에 따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다 보니 일단 말을 아끼고 있으니, 항구관리관은 여전히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아, 혹시 본관을 의심한 것이오?”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걱정 마시오, 처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상당히 믿고 있으니. 진짜 본관을 의심한 모양이군.”

“그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도 워낙 경황이 없다 보니…. 면목 없습니다.”

내가 황급히 변명을 들이대자, 항구관리관은 잠시 멈추어 나를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미 읽어보셨다면 혹시 피해 선박의 선명도 확인하셨소?”

“아닙니다, 대충 훑어보았지만 표시된 선명은 없었고 대신 약탈품 같은 것은 꽤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가….”

선장실에서 내가 건네주는 항해일지를 짧게 훑어본 항구관리관은 눈을 빛내더니 내게 물었다.

“이 항해일지를 특별히 돌려받아야 할 이유가 있소?”

이유야 어찌 되었건 항해일지는 전리품이었고, 항구관리관에게는 정당한 전리품을 빼앗을 권한이 없었다.

실제로 빼앗을 수 있냐 없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무슨 보물 지도나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항구관리관이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넘길 녀석이었다.

오히려 저렇게 물어보는 것이 신기한 거다.

하여간 참 예측하기 어려운 부류의 인간이었다.

“아닙니다, 필요하시다면 굳이 돌려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좋군, 그럼 이걸로 대신합시다.”

그는 빙긋 웃으며 내가 뭔가를 던졌다.

엉겁결에 받고 보니 아까 내가 주었던 뇌물 주머니였다.

“이걸 왜…?”

“내게는 돈 몇 푼보다 이 항해일지가 더 소중하니 말이오. 그만 가봅시다. 아 참, 요청한 의사는 항구에 이미 대기 중일 게요.”

“의사 말입니까?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내가 알고 있기로 이 항구에서 제일 실력 있는 의사를 불렀소. 선장은 꽤 운이 좋군.”

***

항구관리관과 경비병들이 떠나고 다른 배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 부두에 계류를 마치자, 부두 한쪽에 모여 있던 일단의 무리가 리버티 호의 현문을 향해 다가왔다.

“음? 뭘까요?”

“의사인 모양이야, 삼등항해사는 진료 필요한 사람들 준비시키고, 일등항해사가 가서 모셔오도록 하지.”

“의사 말입니까? 항구관리관이 진짜 준비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그렇게 친절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지.”

하지만 아인델프에게 시킨 일은 별로 쓸모없는 일이었다.

의사로 추정되는 일행이 현문 근처에 접근하는 순간, 내가 직접 선교를 내려와 현문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네이선과 우르타가 현문에서 의사를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헐, 진짜 닥터 롱베르?”

“음? 누가 내 이름을… 헛!”

수염이 좀 더부룩해지고 많이 야위기는 했지만, 분명히 닥터 롱베르였다.

제국 대학에 있어야 할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접니다, 리안이요! 못 알아보시겠어요?”

“이럴 수가, 진짜 리안 군인가? 믿을 수 없군! 분명히 지금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나와 인사를 나눈 롱베르 씨는 뒤이어 네이선과 우르타와도 반가운 해후를 가졌다.

“반갑기는 하네만 환자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환자부터 보고 우리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도록 하지.”

“아, 그렇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허겁지겁 부상자들이 모여있는 선실로 안내하자, 롱베르 씨는 능숙하게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21세기 지구의 간단한 의료지식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찢어지고 부러진 상처를 아물게 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응급처치(?)를 해 본 적이 있다는 선원들에게 맡겨 놓기는 했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정말 엉망진창인 치료였다.

그나마 부러진 곳에는 부목을 대고, 벌어진 상처는 대충 꿰매거나 묶어서 출혈은 막았기에 그냥 두고 봤을 뿐이다.

당장 출혈 과다로 죽을 위험은 넘겼으니까.

상세가 중한 환자부터 살피던 롱베르 씨는 응급처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내저으며 빠르게 다시 치료했다.

그리고 갑판장님의 상처를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정말 조금만 더 깊었으면 바로 죽을 뻔했군. 운이 좋았어, 나이가 있어서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혹시 이 사람, 자네의 그 약을 먹었나?”

“네, 열이 조금 심하게 나셔서 말이죠.”

“자네의 그 약이 참 신통하기는 했었지. 내가 그때 이클로나 호를 그렇게 내리고 나서 가장 크게 후회된 일이 뭔 줄 아나? 바로 자네의 그 약을 더 연구하지 못한 것일세. 혹시 오늘 치료비로 그 약을 받을 수 있을까?”

“아, 그, 일단 치료부터 마치시고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움직이기는 해도 멀쩡하지 않은 녀석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나는 약간 난감한 기분이 되어 말을 돌렸다.

이제 함부로 쓰기 무서울 정도로 양이 줄어들어 버린 항생제였다.

아직 2/3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고작 치료비로 남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군, 그럼 다른 환자들을 먼저 보도록 하지.”

“제가 지금 좀 바빠서 말이죠, 일을 다 보시면 제 방에서 따로 이야기하시죠. 오펜, 네가 닥터를 잘 모시고 있다가 치료가 끝나면 선장실로 모시고 오거라.”

“네, 선장님.”

“뭐? 선장? 세상에! 꽤 높은 직위일 줄은 알았지만 선장이라니…. 자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하하하, 이따가 제 방에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

입항과 관련된 일을 다 처리하고, 네이선에게는 갑판장 대행을 시킨 뒤 선장실에서 우르타와 잠시 쉬고 있으니 노크 소리와 함께 정중한 오펜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의사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내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우르타가 재빠르게 뛰쳐나가 문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우르타가 문을 열자 당황한 오펜의 음성이 들려왔다.

“앗, 포술장님?”

“응! 오펜 수고했어!”

“허허허, 우르타였지? 자네도 여전하구만.”

나는 촐랑거리는 우르타를 살짝 밀치고 롱베르 씨를 안으로 안내했다.

“오펜, 수고했다. 오늘 당직 아니면 외출해도 좋아.”

“네, 선장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오펜이 떠나고, 우리 셋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 당시 이클로나를 타던 사람 중에는 살아있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그나마 나와 악연으로 엮이지 않은 괜찮은 인연 중 한 명이 바로 닥터 롱베르였다.

“세상에, 자네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지금도 영 믿어지지 않는군. 나도 소식은 들었네. 제국 1함대 말이야.”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공식적으로는 태풍으로 인해 연락이 끊겼다고 하지만, 웬만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충 알고 있네. 일레드 왕국 해군과 충돌이 있었다지? 나는 그래서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일레드 측에서 일부러 정보를 흘리지 않은 이상에야 이렇게까지 자세한 내막이 알려질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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