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65화 (165/420)

165화. 어부지리 - 어부에게는 설계가 필요해

“허억, 허억, 리, 리안 선장님, 헉헉, 여기 계셨군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도록 달려온 콜레모스는 내 앞에 도착해서 겨우 인사만 하고는 무릎을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 참, 점잖지 못하게, 쳇.”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멕레인의 못마땅한 음성이 들려왔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콜레모스의 인상이 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전혀 못 들은 척 여상스럽게 콜레모스를 맞이했다.

“아, 어제 그분이시군요? 콜레모스 님? 맞죠?”

“헥헥,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선장님.”

“그걸로 무슨 영광까지…. 그런데 무슨 일로 이리 급하게 오셨습니까? 혹시 어제 말한 거래 때문이라면….”

“아이고, 아닙니다! 그저 저는.”

내가 콜레모스를 아는 척할 때부터 심상치 않던 멕레인이 결국 화를 터뜨렸다.

“어제라고?! 정말 상도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 그 시간에 뭘 어쩔 셈이었지?! 선장님, 이런 악덕 상단과는 연을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애초에 밤에 접근하다니, 근본이 틀려먹은 것 아닙니까?!”

이 사람 꽤 다혈질이네?

일단 콜레모스가 약간 밀리는 상황이니 이쪽 편을 조금 들어 줄 필요가 있겠다.

“멕레인 씨라고 하셨나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조금 불편하군요. 마치 저와 여기 콜레모스 씨가 뭔가 불법적인 거래를 한 것 같지 않습니까? 콜레모스 씨는 그저 좋은 제안이 있다고만 하셨고 우리는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색을 하고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말을 하자 맥레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

지금처럼 을(?)의 입장에서 거래를 하려면 갑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내 기분이 상한 것 같으니 식겁한 것이다.

“아닙니다! 선장님 제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제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아, 아, 그만하시죠. 멕레인 씨.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스트렐리아 호를 매각할 의사가 없습니다. 조선소에 온 것도 수리를 위해서 온 것이구요. 매각할 생각이라면 굳이 제가 왜 조선소까지 배를 몰고 왔겠습니까?”

“아니, 그건….”

“그럼 전 이만 콜레모스 씨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지금은 낮이니 거래 이야기를 하기에 참 좋은 시간 같은데요?”

내가 그의 말꼬리를 잡아 빈정거리듯이 말하자 멕레인은 거의 사색이 되었다.

지금 그에게는 내 말이 ‘너희 상단과는 거래 안 할 테니 이만 꺼져라.’ 정도로 들리겠지.

그리고 나와 멕레인의 대화를 듣던 콜레모스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배를 사겠다고 죽어라고 달려왔는데, 제안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배를 안 판다고 선언해 버렸으니 뭐, 당황할 만도 하다.

의도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부산스러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나는 콜레모스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크흠, 좋습니다. 그럼 대충 서로의 입장이 정리된 것 같으니 콜레모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어제도 그렇고, 이렇게 급하게 오신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제안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네, 선장님,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달려온 이유는, 그게 그러니까….”

상인답지 못하게 더듬거리는 말투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빛까지, 보는 내가 더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콜레모스를 보면서 몰래 안절부절못하는 맥레인의 동향을 살피던 나는 이상한 부분을 찾아냈다.

대략 40대 중반, 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콜레모스는 입고 있는 복장이나 하는 품으로 볼 때 상단의 중견 간부 정도로 보였다.

이번 사안이 현장에서 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데리고 다니는 호위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니 어쩌면 상단주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저렇게 쩔쩔맬 정도로 베나드 상단은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를 상대하는 일리오나 상단의 대표인 맥레인은 뭐랄까, 급이 좀 떨어져 보인다.

일단 맥레인은 아무리 높게 봐줘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어려서부터 한 가지 일을 팠다면 제법 인정을 받기 시작할 나이이기는 하다.

그런데 중요한 사안에서 대표로 나설 정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좀 애매한 나이이기도 했다.

물론 세상에는 천재라는 부류들이 있고, 나이와 능력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

쉬운 예로 우리 배에도 제법 있지 않나?

네이선이나 게론드 같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맥레인은 방금 전에 욱하는 성질머리를 볼 때, 그런 천재 부류는 아니다.

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맥레인을 조금 더 살펴보려는데, 겨우 생각이 정리된 듯 콜레모스가 내게 어색하게 웃으며 제안을 건넸다.

“중요한 대화를 나누기에 이곳은 조금 그렇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좋은 곳을 모시겠습니다.”

좋은 곳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굳게 마음을 다잡고 대답했다.

이대로 끌려가면 맥레인은 나가리가 되는 거고,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콜레모스 씨,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조선소에 용무가 있어서 온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 위치를 알려주시면 제가 일을 마치는 대로 그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정중하게, 하지만 그럴 듯하게 완곡한 거절 혹은 타협 의사를 밝히자, 콜레모스보다 맥레인 쪽에서 반응이 먼저 나왔다.

“하, 가실 필요 없습니다, 리안 선장님. 어차피 저 자도 배를 사겠다고 달려온 것일 테니까요.”

우리의 말에 끼어들어 이죽거리는 맥레인은 모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쏠리게 하는 것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진짜 뭐지? 상단주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아?

상단주의 아들이라면 확실히 개연성이 있다.

후계자 자리를 굳히려는 녀석인지,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망에 가득 찬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내가 그걸 알 필요도, 고려할 필요도 없겠지.

“맥레인 씨? 지금 상당한 무례를 저지르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을 확실하게 어필했지만, 맥레인은 그런 내게 오히려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서며 떠들기 시작했다.

“리안 선장님, 제가 무례를 저지른 부분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방금 제가 드린 말씀에는 조금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한번 저 자에게 확인해 보시지요, 그의 제안 역시 이 배를 구매하고 싶다는 것일 겁니다.”

호오, 못 이길 것 같으니 아예 판을 엎으시겠다?

성격이 좀 다혈질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아주 무능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싸움이라는 것은 혼자 그만두고 싶다고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닌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콜레모스가 작지만 단호하게 맥레인을 공격했다.

“쯧, 아직도 사람을 대하는 기본조차 갖추지 못해서야 원, 일리오나 상단이 최근 들어 주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요. 선장님, 저런 무례한 자의 말은 더 이상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멀리 가시기 어렵다면 저쪽, 조금만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서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콜레모스의 말을 저지했다.

콜레모스는 어떻게든 나와 1:1 상황을 만들어내고 싶은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쪽이 아니다.

“콜레모스 씨, 죄송합니다만 지금 상황이, 흠….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지금 두 상단에서 여기 이 이스트렐리아 호를 서로 구매하고 싶은 것 같은데요.”

“그게….”

더 이상 모르는 척하기가 어렵다.

이 정도로 상황이 진행되었는데 ‘두 사람이 왜 이러는지 나는 몰라요’라고 주장해봐야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경각심을 심어줄 뿐이다.

아직까지 나는 배를 팔고 싶지 않은 선장이어야 했다.

내 말이 끝나고 당황한 콜레모스가 할 말을 찾는 사이에 맥레인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확실히 무능한 녀석은 아니다, 이 녀석.

“역시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선장님. 선장님이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저희 일리오나 상단이 최근에 교역선 한 척을 추가 구매하기로 결정했는데, 저 자의 베나드 상단이 저희에게 밀리지 않겠다고 저렇게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열변을 토하던 맥레인은 은근한 목소리로 톤을 바꾸더니 말을 이었다.

“한밤중에 몰래 선장님께 접근하다니, 얼마나 음험한 녀석들입니까? 선장님, 제 첫인상이 별로 안 좋으셨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비열한 수법 때문에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런 것이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런 비열하고 치졸한 자들보다는 저희 상단과 좋은 관계를 쌓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의 사이는 꽤나 가까웠기 때문에 은근하게 말했다고 해도 맥레인의 말이 콜레모스에게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일부러 들으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꽤나 열이 받은 듯 얼굴이 약간 달아오른 콜레르모가 맥레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격을 시작했다.

“음험? 비열? 이봐, 멕레인. 자네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애초에 우리 아이들에게 엉뚱한 정보를 흘려서 나를 헛걸음 시킨 게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우리 상단이 앞서 나갈 것 같으니까 정보 조작까지 해가며 이번 거래에서 우리를 배제시키려고 한 것 아닌가?!”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지만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감정이 심하게 상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고.

일단 둘 중 한 상단에게 배를 팔기는 해야 하는데, 두 상단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구매하지 못한 상단이 우리를 원망할 확률도 올라가니 말이다.

“자, 자, 두 분 다 일단 조금 진정하시지요. 가운데 끼인 제가 조금 민망하군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조선소에서 태연하게 수리를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고… 안 그래도 자재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보고도 들었고 말이죠. 일단 자리를 조금 옮기시죠. 차분하게 이 상황을 풀어봅시다.”

내 말에 두 사람은 모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내 말에 어깃장을 놓았다가는 바로 입찰 경쟁에서 패하는 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이선은 날 따라오고 우르타는 일등항해사나 이등항해사에게 이스트렐리아 호를 다시 가지고 가라고 전해 줘. 오늘은 수리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아, 조선소 측에도 잘 이야기 하고.”

“네, 선장님.”

***

떨떠름하던 표정을 겨우 수습한 콜레모스의 안내를 따라 제법 고급진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 세 사람은 어색하게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네이선도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격식에 어긋나는지라 호위들과 함께 근처의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간에 제법 거리가 있지만, 이쪽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을 보니 저 녀석도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우르타도 심부름 가면서 입을 삐죽거리긴 했더랬지.

아무래도 일이 끝나면 이번 일을 설명하는데 한나절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으흠, 여기까지 자리하셨다는 것은 선박의 매각 의사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까요, 선장님?”

걸어오는 사이에 어지러운 마음을 다 수습한 모양인지, 원래 자주 이용하던 곳에 와서인지 평온한 표정의 콜레모스가 자리가 정리되자마자 묵직한 돌직구를 던졌다.

하긴,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내가 배를 팔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황 파악이 느렸다면, 피 튀는 경쟁사회에서 저 정도 자리까지 못 올라갔을 것이다.

그 옆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맥레인과 달리 콜레모스는 딱히 귀금속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니 말이다.

그러자 도대체 뭘 근거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인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맥레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거참, 그런 걸 또 왜 민망하게 묻고 그러십니까? 선장님께서 제 부탁에 못 이겨 이렇게 큰 결심을 해주신 것 아닙니까? 선장님, 저희 일리오나 상단은 선장님의 조건을 최대한 맞춰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저쪽의 제안과는 전혀 별개로 말이죠.”

상인이라 그런지 금수저 치고는 아부 실력이 제법이다.

하지만 이미 본래 컨디션을 회복한 콜레모스는 느긋하게 먼저 나온 음료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자네는 여전히 그렇게 일을 설렁설렁하려고 하는군. 원래 상인이란 계약에 있어서는 최대한 정확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 법이야. 괜히 상대방을 넘겨짚고 예단하는 것은 상대방의 반감만 불러올 뿐이지. 그나저나 일리오나 상단은 이번 일의 성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 자네가 대표로 나온 것을 보면 말이지.”

꽤나 날카로운 반격이었지만 여전히 자신만만한 맥레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받아쳤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나온 것입니다. 어차피 조건은 선장님께 맞춰드릴 테니 치열하게 교섭할 필요도 없고, 저 정도 되는 사람이 와야 그 자리에서 확답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베나드 상단은 이번 일이 꽤 치열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상단의 최고 교섭가가 직접 나서신 것을 보니 말입니다.”

두 사람의 날 선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적당한 수준에서 개입했다.

이미 말했지만 두 상단의 감정이 너무 과열되는 것은 좋지 않다.

“두 분 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네, 말씀하신 대로 저야 가격이 괜찮다면 배를 매각할 의사가 있습니다. 배를 구하는 것이 급한 것도 아니고, 다른 항구에서 더 좋은 매물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두 분이 감정적으로 부딪히시면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실례했습니다, 선장님.”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선장님.”

두 사람이 얼른 내게 사과하는 틈을 타서 나는 말을 이었다.

“배를 원하는 것은 두 분이고, 제게는 배가 한 척밖에 없습니다. 아니, 물론 두 척이기는 합니다만 두 척을 다 팔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두 분이 싸우시면 나중에 제가 배를 팔 때 마음이 안 좋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내가 한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한 것이겠지.

그리고 어쩌면 조금씩 나를 의심하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의심해봐야 어쩌겠어? 이미 쌀은 익어 밥이 되어버렸는걸.

“그러니 이제 영양가 없는 신경전은 그만두시고, 서로 조건을 내걸고 조율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의도치 않게 제가… 어이쿠, 음식이 나오는군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사실 제가 좀 배가 고팠습니다.”

***

오래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은 꽤나 맛있었다.

선장이 된 이후로 선원들이 가는 싸구려 식당이나 선술집은 자주 가지 않았고, 배에서 나오는 식사도 선원보다 훨씬 질이 좋았지만, 그래도 고급 식당의 음식은 자주 먹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함께 식사하는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 분명히 소화가 안 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거야 그들의 사정이다.

그럭저럭 식사가 마무리되자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약간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천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나는 두 상단의 정확한 상황이나 관계까지는 모른다.

고드실카 호를 탈 때까지만 해도 켄자스 항구까지 오는 일은 드물었고, 두 상단이 대륙 전체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거대 상단도 아닌 데다가 자세한 정보를 모을 시간도 부족했으니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두 상단에게 이번 일이 사활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800만.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 정도 금액이면 어떻겠습니까, 선장님?”

맥레인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콜레모스가 이를 받았다.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820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치킨게임이 된다.

나야 나쁠 것 없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규모는 어떨지 몰라도 콜레모스의 베나드 상단 쪽이 당장의 현금 동원 능력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종이처럼 구겨지는 맥레인의 표정이 이를 방증하고 있었다.

사실 현금 동원 능력이 더 좋고, 그것을 상대도 알고 있다면 콜레모스의 전략은 완벽했다.

경쟁적으로 아무리 금액을 올려봐야 결국 나만 좋은 일이고 승패는 정해져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한동안 콜레모스를 노려보던 맥레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렇군요. 상황의 특수성을 베나드 상단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도 이번만큼은 양보해드리기 어렵겠군요. 저희는 830만을 내겠습니다.”

콜레모스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승패가 뻔한 상황에서 맥레인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되기는 하는데… 이렇게 입찰 경쟁이 붙어주면 나야 고맙지.

원래 평범하게 조선소에 매각할 경우 수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정가는 600~700만, 이미 첫 제시 금액부터 엄청나게 부풀린 금액이었다.

이제 슬슬 경매사가 붙을 타이밍인가?

“충분히 매각을 고려할만한 금액이군요, 맥레인 씨. 혹시 지금 계약을 진행할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구두로 하는 약속은….”

“잠깐! 선장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저쪽이 저렇게 나온다면 저희도 금액을 재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850만으로 하겠습니다.”

오, 정신이 혼미해진다.

지금까지 고작 몇만 로스에 벌벌 떨던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야.

앉아서 잠시 기다리다가 한마디 하는 사이에 50만 로스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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