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승리를 위한 희생
떠보는 나의 말에 신이 나서 품속에 손을 넣었던 맥레인은 콜레모스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랬으면 딱히 반전이 없었겠지만, 맥레인은 잠시 멈칫했을 뿐, 굳은 표정으로 품에서 곱게 말려있는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고 약간 메마른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렇게 하시죠. 저희도 850만… 아니, 860만으로 하겠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콜레모스가 인상을 쓰며 한층 낮은 목소리로 멕레인에게 물었다.
“이봐, 멕레인.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어차피 이렇게 해봐야 결국은….”
콜레모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내 눈치를 봤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은 대충, 결국 자기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지.
굳이 내 눈치를 본 이유는 이 치킨 게임이 계속될수록 나만 이득을 보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겠고.
하지만 맥레인은 씁쓸하면서 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하…. 그래 뭐, 어차피 이렇게 될 때부터 정해진 일이지…. 이봐요, 콜레모스 씨.”
“뭔가?”
“그만하고 포기하세요.”
“거참,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의 최후통첩을 날리는 분위기로 콜레모스에게 포기를 권하던 맥레인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선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렇게 개인 간에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세금과 행정 처리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세금과 행정 처리, 저희가 다 맡겠습니다.”
“네?”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조선소에 선박을 매각할 경우, 거래 금액에서 10% 정도는 수수료로 떼는 것이 관례다.
그리고 그 10%에는 항구에 내야 하는 거래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걸 타지인(조선소 쪽은 항구 토박이가 대부분이므로)이 처리하려고 하면 세금 덤터기를 쓰는 것은 물론 행정 처리에도 문제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뇌물을 쓰다 보면 거래 금액의 20% 정도가 날아가는 것은 우습다.
하지만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이런 부분을 해결해 줄 조선소가 없으니 거래 당사자 둘 중 한쪽이 해결해야 하는데, 보통 상대방 측에 비용의 절반을 부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절반이라고 말하고 2/3를 부담시켜도 외지인이 알 방법은 별로 없긴 하지만, 일단 명목상은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사실 최소한 전체 거래 금액의 10%, 상대방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을 감안하면 15% 정도는 날아갈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약간 대놓고 눈탱이 맞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세금이나 행정 처리를 내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그걸 무료로 그냥 다 덮어쓰겠다고 말한 거다.
그 말은 실제 지급 금액보다 거의 10~20%를 더 지불하겠다는 말이랑 비슷하다.
아니, 진짜 자기가 다 뒤집어쓰겠다고 말한 게 맞나?
“맥레인 씨, 그 말씀은 지금 제시하신 860만 로스를 온전히 제게 지불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미친놈인가?
만약 진짜로 860만 로스를 내가 온전히 가진다고 하면 실제로는 1,000만 로스를 넘게 받고 배를 팔아 치우는 꼴이다.
1,000만, 그 정도 돈이면 귀족의 저택 정도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돈이 온전히 내 돈은 아니지만, 선원들에게 매각 금액을 굳이 정확하게 밝힐 필요는 없으니 내 몫은 엄청난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다.
아마 선원들은 매각 후 실제로 우리 앞으로 떨어지는 금액을 500만 로스 전후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뭔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서류를 내게 넘겨주는 맥레인과는 대조적으로 콜레모스는 눈을 부릅뜨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번 입찰에서 패배를 인정하며 짓는 표정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콜레모스는 더듬거리는 말이 흘러나왔다.
“자, 자네 지금, 지금, 무슨 말을…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지만 맥레인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게 서류를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황급히 내 앞에 놓인 서류를 확인해보니 기본적인 형태의 거래 계약서였는데, 언제 써넣었는지 860만 로스라는 거래 금액과 지금 이야기한 세금 문제까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이번 계획을 세우면서 몇십만 정도만 더 받아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단위가 바뀌는 수준이다.
“미쳤군!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차라리, 어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가 받은 서류를 살펴보던 콜레모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정도면 나도 궁금해진다.
분명히 이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큰 것을 포기한 모양인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잖아.
“자네 지금, 고작 이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상단의 미래를 팔아넘기겠다는 건가?!”
“그게 무슨 상관이오?”
“뭐…?”
“어차피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10년 내에 베나드 상단이 일리오나 상단을 인수할 것 같은데. 내게는 어느 쪽이건 아버님 사후에 내가 물려받을 상단이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당신네 상단에 흡수당하느니 내가 직접 망가뜨리고 말 거요.”
“하! 좋아. 마음대로 하게!”
맥레인을 잠시 노려보던 콜레모스는 내게 살짝 목례하며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했다.
“리안 선장님, 아무래도 거래는 저쪽과 하셔야 할 것 같군요. 저희는 저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전 일이 좀 많이 밀려있어서 이만.”
자기 할 말만 한 콜레모스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자리에서 벗어났고, 콜레모스의 일행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나와 맥레인은 침묵을 지켰다.
내가 원한 것은 초과 달성한 것 같은데, 웃으면서 계약 성사를 축하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
맥레인은 이제 거의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비록 정의의 화신이라거나 항상 옳은 길만 걸어온 양심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신난다고 계약서에 서명할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다.
“맥레인 씨. 제가 상황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아, 선장님. 아닙니다. 그냥 거기에 서명만 하시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로 은행으로 가서 대금을 전액 지불해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과정이 찝찝해서야….”
내가 한 번 더 찔러 보았지만, 맥레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선장님, 선장님은 충분한 이득을 얻으셨습니다. 이다음의 뒷일은 저희 상단의 일이고 제 개인적인 문제이니, 더 이상 아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아, 네….”
***
선원들에게 나누어 줄 금화 주머니를 한 손에 든 네이선이 티 나지 않게 주변을 경계하며 내게 은근슬쩍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응? 아….”
내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을 얼버무리자, 네이선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면서 재차 물었다.
“뭐야,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그냥. 방금 네가 물어본 부분.”
“리안도 전혀 몰라?”
“으음…. 전혀 모른다기보다는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거지, 가진 정보가 워낙 부족해서 말이야.”
“그래? 그나저나 이번에 엄청 이득인 거지?”
“그렇지, 최소한 200만 로스는 더 벌었다고 봐야지.”
그러자 네이선이 은근하게 물었다.
“전부 다 선원들과 나눌 거야?”
“그게 맞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원래 가격보다 올려 받은 건 온전히 너 혼자 이룬 거나 마찬가진데, 왜 그 부분까지 선원들과 나눠 가져? 원래 선장들이 알게 모르게 약탈물의 거의 절반쯤 챙기는 거라며.”
“절반은 진짜 양아치들이고, 보통은 1/3 정도라니까….”
그나저나 네이선 이놈이 꽤 기특한 말을 하는구나.
그리고 사실 네이선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다.
“그래, 네 말대로다. 이렇게 다 퍼주다가 나중에 안 준다고 욕을 먹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적당히 주는 게 좋겠지. 선원들이 혹시라도 얼마에 팔렸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대충 700만 정도 같다고 말해.”
“응? 원래 그 가격도 못 받지 않아?”
“아침부터 그 난리를 쳤는데 원래 받을 가격만 받았다면 그것대로 내가 너무 무능한 거잖아. 적당히 올려 받았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어.”
“그런가?”
“어, 그러니까 확답은 하지 말고 700만쯤 되는 거 같다고 말해. 그래야 사람들이 정확한 금액을 추측 못 하지.”
저렇게 숫자만 말하면 다른 수수료나 세금 등등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서 예상 범위가 엄청 넓어진다.
물론 선원들이 총금액과 나눠 받은 금액을 정확하게 계산해 보지는 않겠지만, 뭐든지 적당히 구색을 갖춰두는 것이 좋다.
“알겠어. 그럼 리안이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어떻게 된 거 같은데? 대충은 안다며?”
나는 네이선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야, 내가 언제 대충 안다고 했어?”
“아까 전에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며?”
“어, 그랬지.”
“그게 대충은 안다는 말 아냐?”
“…….”
저 멍청이가 하는 말은 무시하더라도 내가 추측하기에는 이렇다.
먼저 내 예상대로 맥레인의 일리오나 상단이 콜레모스의 베나드 상단에 비해 현금 동원 능력이 부족하고, 이 사실을 양쪽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일리오나 상단의 동원 가능한 최대 금액이 한 850만쯤 되지 않았을까?
굳이 상단의 대표로 맥레인이 온 것도 내 추측대로면 적당히 이해가 된다.
일리오나 상단 측에서는 이번 이스트렐리아 호 인수 작전이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한 것 같다.
그렇잖아, 당장 두 상단에서 배를 원하는 것은 뻔히 알고 있는데 이쪽의 현금 동원력이 떨어지니까.
그런데 멕레인이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고 우겨서 이번 일을 맡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멕레인이 바보도 아니고, 이대로 가면 처참한 패배만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 전에 모종의 최후 수단을 준비한 것이다.
아마 그 수단은 일리오나 상단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거나, 맥레인 개인에게 상당한 손해가 되는 일이겠지.
그리고 아마 그 대가로 세금을 처리할 정도의 자금,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제공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그 수단을 쓰는 것을 주저한 것이다.
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걸 진짜로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 거래는 끝났다.
나는 대금 전액을 인수했고, 계약서는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돌아가는 즉시 이스트렐리아 호를 비워야 하고, 내일 아침이면 일리오나 상단에서 사람이 와서 이스트렐리아 호를 가지고 가겠지.
“아 참!”
“깜짝이야!”
네이선이 몸을 움찔 떨며 나를 구박했다.
상황이 너무 정신없이 흘러가다 보니 중요한 약속을 깜빡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항구관리관이 오라고 했는데.”
“어?! 맞아! 지금 시간이….”
얼른 하늘을 보니 해는 이제 중천에서 조금 넘어가는 중이었다.
“조금 늦은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언제 간다고는 안 했으니까 괜찮겠지?”
“으응, 그럴 것 같아. 점심쯤 방문한다고 했지?”
“그래도 더 늦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너는 이대로 돈 들고 배로 돌아가. 나는 항구관리소로 가볼게.”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려던 네이선이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 음, 그런데 혼자서 괜찮아? 내가 가서 다른 사람들이라도 보내줄까?”
“아냐, 어차피 네가 갔다가 사람 보낼 때쯤이면 항구관리소에 도착하고 한참 지난 후일 텐데 뭐. 딱히 위험한 상황인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돈은 회계사한테 전달해서 금고에 보관하고, 금고나 잘 지켜. 그거 털리면 끝장인 거 알지?”
“으응, 알았어. 조심해!”
***
항구관리소에서 직원에게 내 신분을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2층의 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정중하게 노크를 했다.
“관리관님, 리안 선장님이 오셨습니다.”
잠시 후, 문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모시게.”
“네, 들어가시지요, 리안 선장님.”
“아, 네. 감사합니다.”
직원은 문을 열고 내게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나는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쓰기에는 약간 넓은 느낌의 집무실에서 나를 맞이한 항구관리관은 자리에서 일어서 몇 걸음 마중 나왔다.
“어서 오시오, 리안 선장.”
“안녕하셨습니까, 항구관리관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늦으신 것은 아니지. 이쪽으로 편하게 앉으시오.”
서로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하고 차를 한 잔씩 마실 때쯤, 드디어 항구관리관이 본론을 꺼냈다.
“리안 선장, 혹시 본국의 스코타 후작 각하를 아시오?”
“네, 물론입니다.”
우리 상업 허가를 내주신 분이기도 하고, 왕녀님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분인데 모를 리가 있나?
물론 그분은 나를 모를 확률이 높지만 말이야.
그게 아니더라도 스코타 후작가가 벨로키나 왕국에서 최고 실세 가문 중 하나인 만큼, 벨로키나 왕국의 국적기를 달고 다니는 배의 선장이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 단순히 아는가 모르는가가 아니고, 후작 각하와 모종의 관계가 있냐고 물어보는 거요.”
이 아저씨는 또 왜 이래?
뭘 알고 하는 말인가?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자가 어떻게 후작 각하를 알겠습니까? 그저….”
“후작가에서 그대를 호출했소.”
실제로 ‘후작’과는 안면이 없기도 하고 괜히 복잡한 일에 얽히는 것이 싫어서 일단 부정하려는 내게 항구관리관이 한 템포 빠르게 폭탄을 던졌다.
내가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에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살펴보던 항구관리관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휴, 표정을 보아하니 잘못된 정보는 아닌 것 같군.”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정말 후작 각하를 멀리서도 뵌 적이 없습니다.”
“나는 후작 각하의 호출이라고 하지 않았소. ‘후작가의 호출’이라고 했지.”
내 착각을 정정해 주던 항구관리관은 잠시 기다리다가 스스로 자기 말을 부정했다.
“하긴, 어차피 그 말이 그 말이기는 하지.”
“그, 항구관리관님.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당황한 내 눈을 무감정한 표정으로 응시하던 항구관리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도 더 설명할 내용이 없소. 어제 은행을 통해 들어온 소식이오. 스코타 후작가에서 리버티 호의 선장 리안을 호출했다고 하더군.”
“네? 제가 방금 전에 은행을 갔다 왔는데도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만.”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나한테 온 소식인데 당사자가 왔음에도 일언반구도 없다는 게 말이 돼?
하지만 항구관리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보시오, 리안 선장. 은행을 뭘로 보는 거요? 웬만한 귀족들도 눈 아래로 보는 것들이 바로 은행 놈들이오. 고작 일개 상선의 선장에게 자기들의 통신망을 이용하게 해줄 것 같소?”
아, 하긴 그 은행의 마법 통신망(?)은 이 세계에서 오버테크놀로지급 기술이기는 하지.
“그래서 의문이 드는군. 스코타 후작 가문이라고 해도 은행에 사적인 전갈을 전해달라는 것은 쉽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렇게 물어보셔도….”
내가 여기에서 ‘후작가에 숨어계시는 왕녀님과 긴밀한(?) 관계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사실 그 후작 가문의 영애로 보이는 분께서 작은 의뢰를 맡겨서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저 영애라는 분의 명을 받은 기사를 통했을 뿐입니다. 후작 각하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요.”
“흐음….”
내가 적당히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그럴듯하게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항구관리관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후작가와 엮인 일이라면 그대도 말하기 어려울 테고 나도 굳이 알고 싶지 않소. 일단 내가 전해야 할 말은 다 전달했으니 이만 돌아가도 좋소.”
“네, 감사합니다, 항구관리관님.”
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무심한 듯한 항구관리관의 한 마디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 일리오나 상단에 선박을 매각하셨더군.”
“…네.”
허어, 이왕이면 소식이 항구관리관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그와의 만남을 끝내려고 했는데 언제 거기까지 알아냈담?
나한테 미행이라도 붙인 것 아냐?
내가 문을 붙잡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항구관리관이 평온한 어조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맥레인에게 다 들었겠지만, 선장은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럼 조심히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