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70화 (170/420)

170화. 리버티 은행

배에 돌아와서 배에 남은 인원을 모두 불러 모은 나는 롱베르 씨와 데보라 양을 소개했다.

모든 인원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소개해 놓으면 대충 서로 정보를 공유할 거다.

그리고 상당수의 선원을 새로 모집해야 하니, 어차피 출항한 이후에 한 번 더 간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다.

“자, 주목!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닥터 롱베르 씨가 앞으로 우리 리버티 호의 선의를 맡아주실 거다. 너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익숙한 돌팔이가 아니고 진짜 뛰어난 의사시니까, 아파서 죽기 싫은 놈들은 알아서 잘 모시도록 해.”

선의라는 말에 몇 명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롱베르 씨의 실력을 본 선원들과 몇 마디를 나누는 것 같더니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닥터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롱베르 씨 같은 진짜 제대로 된 ‘의사’가 드문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음…. 데보라 양이다. 밝히기는 어렵지만, 모종의 이유로 당분간 우리 배의 귀빈실에 머무실 거다. 무식하고 천한 우리와 다른 분이니 괜히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도록 해. 그런 이유로 당분간 귀빈실 근방은 특별한 사유 없이 접근할 경우 채찍형에 처하도록 하겠다.”

“우~~.”

“우우우!”

“돌아다닌다고 채찍형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채찍형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그럼 너는 데보라 양에게 어떻게든 무례를 범해보겠다는 건가? 만약 무례를 범하면 네놈 혼자가 아니라 배를 탄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러니 그따위 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내려.”

“아, 아닙니다. 선장님.”

분위기를 타서 장난삼아 한마디를 꺼낸 녀석이 내 냉정한 말에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분위기를 다잡은 나는 한껏 엄포를 놓았다.

“다시 말하지만, 데보라 양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놈뿐만 아니라 우리 배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이번에 새 동료들이 합류하면 갑판장도 부상 중이겠다 분위기가 약간 들뜰 것 같은데, 신입들 교육도 똑바로 시키라고. 다들 알았지?”

“알겠습니다, 선장님.”

비록 대놓고 데보라 양이 귀족이라고 말은 안 했지만, 이 정도로 이야기하면 대충 귀족 정도로 알아서 착각할 거다.

설마 데보라 양에게 ‘귀족이세요?’라고 물어보는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내가 그냥 ‘귀족이시다!’라고 말하면 편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만일의 경우에 ‘귀족 사칭죄’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때 선원들 중 나이가 꽤 있는 낯익은 선원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선장님, 갑판장은 어떻게 됩니까? 아무래도 많이 아픈 것 같던데.”

“이전처럼 갑판장이 회복될 때까지 돌격대장이 업무를 대행할 거야. 그렇게 알아둬.”

내 대답에 선원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큰 불만은 없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물론 갑판장님이 은퇴하더라도 차기 갑판장은 네이선에게 줄 생각이지만, 다른 선원들 중에 아주 조금은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두 사람을 간부들이 서는 위치로 내려보낸 나는 선원들에게 당근을 던졌다.

채찍만 때리고 당근을 안 주면 충성도가 떨어지는 법이잖아?

“그리고 이번에 나포한 이스트렐리아 호가 매각된 것은 다들 알고 있겠지?”

“오오!”

“우와아!”

“드디어!”

“모두 조용, 조용!”

방금 전까지 어색했던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며 환호하는 선원들을 웃으며 제지한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다들 나에 대해서 대충은 알겠지만, 나는 돈 가지고 장난질 치는 다른 양아치 선장들과 달라. 이번에 너희들에게 돌아갈 금액은 일 인당 대충 15만 로스 근처쯤 될 거다.”

“우와아아!”

“15만이라고?!”

“선장, 진짭니까?!”

“거, 언제 주시는 거요?!”

“씨발! 이럴 때면 나도 해적 놈들이 이해가 된다니까!”

“자자, 다들 조용하고! 해산하는 대로 한 놈씩 금고로 가서 회계사에게 분배금 수령하도록 해. 전투 기여도와 경력에 따라 금액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까 금액 다르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알겠나?”

***

선원들을 해산시킨 후 금고에서 게론드와 장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데, 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리며 우르타가 뛰어 들어왔다.

“포술장 우르타! 분배금 수령하러 왔습니다!”

“뭐야? 오늘은 왜 이렇게 급하게 왔어?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네!”

“뭔데?”

“고양이 집이요!”

“야, 그 고양이…!”

“아직 안 정해졌잖아… 요….”

내보낼 것이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금방 시무룩해지는 우르타를 보니 순간적으로 짠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양이 세 마리는 내보내지 못할 것 같다.

세 마리면 조금 많기는 하지만… 배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가 드문 것도 아니고, 확실히 쥐는 꽤나 골칫거리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들이 쥐를 잡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키워야 할까?

그 전에, 어미에게 사냥을 배우지도 못하는데 제대로 잡을 수나 있으려나?

“…나도 모르겠다. 회계사, 포술장 받을 돈이 얼마지?”

“음, 여기 있군요. 246,400 로스입니다. 와우, 정말 엄청나네요.”

나와 함께 다니면서 꽤나 큰 금액을 몇 번 벌어 본 우르타조차도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얼마요? 엄청 많은데? 은행에 가야 하나…?”

아, 그러고 보니 이놈이랑 네이선도 은행 계좌가 있었지.

하지만 내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는 그나마 나를 믿고 있는 녀석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은행에 넣었다 빼기 귀찮지?”

“어? 으응, 좀 귀찮기는 하지만, 당장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럼 그냥 배에 맡겨뒀다가 다음에 찾는 건 어때?”

“에? 하지만 너무 큰돈은 방에 두기에 좀 그런데….”

“네 방 말고, 여기 금고에 그냥 두면 되잖아.”

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의문부호를 떠올리는 우르타에게 최대한 자세히 내가 구상한 ‘리버티 은행’의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네가 받을 돈이 246,400 로스야. 그 돈은 확실히 네 돈이지만 지금 이 금고에 그대로 들어있지. 그런데 지금 당장 그 돈이 다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네가 필요한 만큼, 대충 1만 로스라고 하자. 그 1만 로스만 지금 받고 나머지 236,400로스는 다음에 필요할 때까지 금고에 그대로 두는 거야. 이 배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금고잖아?”

“어? 으음, 나는 리안, 아니, 선장님을 믿기는 하지만….”

내용은 이해한 모양인데, 그래도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그나마 은행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우르타조차 이 모양이니, 정말 갈 길이 멀다.

“여기 보면 장부가 세 개가 있어. 회계사가 관리하는 것 하나, 내가 관리하는 것 하나, 그리고 네가 가지고 갈 것 하나. 그리고 잔액이 바뀔 때마다 서로의 장부에 서명을 해서 관리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은행에 다니는 것보다 편하잖아? 그렇지?”

“으음….”

한참을 설명한 끝에 우르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5,000로스만을 들고 금고를 나갔다.

그리고 그사이에 기다리는 사람이 꽤 늘었는지, 입구에서 기다리던 선원 중 한 명이 냉큼 안으로 들어왔다.

“어? 선장님도 계셨습니까?”

“왓킨이었지?”

“네, 저… 분배금을 받으러 왔습니다만….”

회계사인 게론드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왓킨이 목적을 밝혔다.

“이번에 고생 많았어, 왓킨. 회계사, 얼마지?”

“찾았습니다. 왓킨, 항해 수당까지 총 163,000로스군요.”

“네? 들은 것보다 조금 많은데요?”

“아냐, 왓킨도 이번에 고생 많이 했잖아. 고생한 사람들은 조금씩 더 넣었어.”

“감사합니다, 선장님!”

미리 이야기한 대로 게론드가 상자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수북하게 쌓이는 은화들 사이로 번쩍거리는 금화 9개가 시선을 잡아끈다.

“이건, 진짜 많군요. 게다가 금화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왓킨, 혹시 은행을 이용하나?”

그 이후로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게론드가 설명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최초인 만큼 선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끝까지 내가 자리해야만 했다.

총 12명의 선원이 분배금을 수령했고, 그중 5명이 일부 금액을 나중에 가져가는 것에 동의했다.

큰돈을 가진 놈이 한 놈이건 열 놈이건 절도사건의 위험성은 거의 비슷해서 웬만하면 모두가 ‘리버티 은행’에 돈을 맡겨두면 좋겠지만, 괜히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게 뻔했다.

***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갑판장님이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닥터, 어때요?”

“음, 이제 상처는 대충 아물었네. 물론 안쪽까지 완전히 아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할 거야. 당연히 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이지.”

“거, 선의 양반 걱정이 과하시군. 이 정도면 젊은 놈 서너 명쯤은 가뿐하겠구만. 선장이 그렇게 칭찬하더니 확실히 실력이 좋으시오.”

“갑판장님, 아직 전투는 안 됩니다. 물론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과격한 움직임도 안 돼요. 그냥 천천히 걸어 다니는 정도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롱베르 씨가 살며시 웃음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움직임에 제한을 걸자, 에른스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으이그, 늙은이가 고집하고는.

“갑판장님,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마시고 닥터 말 들으세요. 자꾸 닥터 말을 안 들으니까 치료가 길어진 거잖아요! 약도 좀 잘 챙겨 드시고!”

“아이고, 알았습니다. 이제 이 환자는 좀 쉴 테니 나가주십시오. 잔소리만 늘어서는, 에잉!”

롱베르 씨와 갑판장실에서 나와 갑판을 걸어가는데, 네이선이 일단의 낯선 남자들과 함께 현문을 통과하는 것이 보였다.

“엥?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막대한 돈을 받은 선원들이 신이 나서 항구로 나가 돈을 펑펑 쓰기 시작하자, 외출 중이던 녀석들까지 다 뛰어와서 돈을 수령했다.

총 21명 중에 고작 8명만이 ‘리버티 은행’을 이용하게 되었지만, 뭐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며칠 동안 리버티 호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외부인이 노골적으로 배를 관찰하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일단 금고의 경비를 강화하는 정도의 조치만 취했다.

분배가 끝난 후에 남은 금액 중 다수는 다시 은행에 보관했지만, 아직 금고에는 상당량의 금화와 은화가 남아있었기에, 허술하게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어찌 되었건 ‘은행’인데, 당장 출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수 있도록 준비금을 놔둬야 하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갑판 위까지 외부인이 저렇게 들어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상선이 낮에는 딱히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제지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용건도 없이 아무나 마구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는 아니거든.

육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 현문은 늘 당직을 서는 선원들이 지키고 있었고, 현문에서 정확한 용건을 이야기해야만 통과가 가능하니까.

특히나 요즘은 금고와 선실에 넘쳐나는(?) 돈 때문에 한참 민감한 시기이기도 했고.

“돌격대장, 무슨 일이야?”

“아! 선장님!”

나를 보고 반색한 네이선이 평소와 다르게 살짝 목례를 하며 자신의 뒤에 선 일곱 명의 젊은 남자들을 소개했다.

“리버티 호가 궁금하다고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잠시 배를 안내해도 괜찮을까요?”

“어? 어, 어, 그, 그래. 괜히 소란스럽지 않게 조심하고.”

“감사합니다! 다들 인사하라고, 내가 말했지?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한 이 배의 선장님이시다!”

젊다고는 해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형님(?)들이 나를 보고 일제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놀라움, 불신, 감탄 같은 것들이 뒤섞여있었다.

도대체 뭐야?

“돌격대장, 잠깐 이쪽으로.”

“네, 선장님.”

일행들과 살짝 거리를 벌린 내가 조용히 물었다.

“뭐야? 누구야? 왜 데리고 왔어?”

“우리 선원 모집해야 하잖아. 그래서 어제 괜찮아 보이는 녀석들에게 우리 배를 직접 보고 결정하라고 했지.”

“그래? 흠, 좋아. 대신 지금 내가 절도에 얼마나 예민한지 알지? 조심해.”

“걱정 마, 갑판만 대충 둘러보고 내보낼 거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다 봤거든!”

“…?”

네이선이 그렇게 입사지원자(?)들과 함께 떠나고, 내 방으로 이동하면서 롱베르 씨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천방지축이었는데, 저 친구도 정말 많이 성장했군.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역시 젊은이들이군.”

“아직도 애예요. 그보다 데보라 양은 요즘 어때요? 별일 없죠?”

“물론이네. 선원들이 꽤 어려워해서 오히려 치료를 돕는 일에 조금 문제가 있지만, 괜찮네. 그보다 자네 요즘 재밌는 일을 하고 있더군?”

“네?”

“선원들을 대상으로 ‘은행’을 하고 있다지?”

“아, 그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죠.”

내 방에 들어와 마주 앉은 롱베르 씨는 ‘리버티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은행을 이용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냥 절도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생각한 거죠. 그보다 닥터는 괜찮아요? 사기당해서 돈이 없다면서요?”

“다행히 항구관리관이 그동안 자기 자식들을 돌봐줘서 고맙다며 돈을 조금 주어서 괜찮네. 의무실에 필요한 것은 어차피 자네가 다 사줬으니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라? 아들이 다친 것 아니었나?

혹시 ‘아들들’이 다친 건가?

“자식들이라구요? 한 명이 다친 게 아니었어요?”

“아, 다친 건 아들 하나일세. 하지만 그 딸이 좀, 아프거든.”

“그렇군요. 병인가요?”

“그런 셈이지.”

아무리 롱베르 씨라고 해도 장기 쪽의 손상이나 질병에 대해서는 대응이 힘들었다.

몇 가지 잘 알려진 질병과 치료법에 대한 것이야 알고 있겠지만, 아직 이유도, 치료법도 모르는 질병이 더 많은 세상이니 말이다.

“그래도 닥터가 치료했으면 많이 호전되었겠군요.”

“흐음, 호전이라…. 그랬으면 좋으련만.”

제기랄, 괜한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닥터가 치료를 해서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항구관리관이 곱게 보내 줄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면 굳이 돈을 쥐여줄 만큼 고마워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내가 보기에 그렇게 착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거든.

“그런데 항구관리관이 닥터를 곱게 보내 줬어요?”

“어차피 내가 붙어 있어 봐야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그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니, 뭐 무슨 병이길래….”

내가 순수한 호기심에 질문하자 롱베르 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자네라도 환자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이해해주게. 아 참, 그러고 보니 항구관리관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군.”

“뭔데요?”

“자네가 나포한 그 배 말일세, 이스트렐리아 호? 맞지?”

“네. 맞아요.”

“아무래도 그 배인 것 같다더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내가 되묻자, 롱베르 씨는 재밌다는 듯이 크게 한번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선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거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않나?”

“어, 음, 그렇죠?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요.”

“자네에게 그 배의 항해일지를 얻어서 확인해 봤는데, 내게 사기를 친 배가 바로 그 배일지도 모르겠다더군. 혹시 그 배에 덩치가 엄청난 갑판장이 있었나? 난 그 사람이 기억에 남는군. 엄청나게 컸어.”

“맞아요, 있었어요!”

“허허허, 이런 우연이 있나. 그래서 항구관리관이 그런 말을 했구만. 보상금은 자네에게 받으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냥 사기만 당하신 게 오히려 다행이기는 한데, 진짜 보상금 드려야 하나?

물론 롱베르 씨의 돈이 내 수중에 들어왔을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사기를 내가 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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