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오트라스 호
일반적으로 싼 게 비지떡이고, 내게 너무 유리한 거래는 대부분 사기인 법이다.
드웰을 믿기는 하지만 상황이 너무 수상한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선주님,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사기 아니죠?”
“사기를 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닐세. 내가 꼼꼼하게 알아봤는데 뭐가 그리 걱정인가?”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대충 봐도 배수량이 700톤은 확실히 넘어 보이고, 진수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런 배가 고작 400만? 900만까지는 아니어도 700만은 확실히 넘을 것 같은데요?”
“아하? 하긴, 자네도 이런 타입은 처음 보겠군. 흔치 않은 타입이라서.”
음,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기는 하다.
내가 전 세계에서 건조되는 모든 선박을 다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형태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긴 형태는 처음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떨떠름하게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렇긴 한데요. 대충 누벤테급의 파생형 같은데, 용골이랑 늑골이 아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흐흐, 틀렸네. 저 녀석은 엄밀히 말하면 슬루티의 파생형이네, 커티스급이라고 하지. 보게, 마스트가 세 개 아닌가?”
“아, 네. 애매하긴 한데 세 개는 맞네요.”
확실히 마스트가 세 개기는 한데, 후미의 미즌 마스트가 너무 작다.
누벤테급보다 전체적인 형태가 길쭉한 것이 슬루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원래 슬루티는 고속 기동형 선박이라 저렇게 크게 안 만드는데?
“어차피 배를 돌아보려면 한참 걸릴 테니 설명을 좀 해주지.”
조선소 주인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거래를 하자고 했지만, 물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가격도 너무 싸고 판매자가 안달복달을 하니 더 의심이 가잖아?
그래서 배를 살펴보겠다고 돌아다니는 중이다.
판매자께서는 내 말에 별말을 못 하고 급하게 어디 좀 다녀온다며 자리를 뜬 상태고 말이지.
“슬루티급은 기동성 면에서는 따라올 배가 별로 없는 좋은 선박이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 구조 때문에 내구력도 좀 약한 편이고 운송 가능한 화물량은 처참한 수준이네.”
“알죠. 그래서 고속 연락선 용도로만 쓰이잖아요. 운용비용이 너무 비싸서 효율은 별로라던데.”
“그렇지! 그래서 누군가가 생각한 거야. ‘여기에서 운송 용량을 조금 올리고, 내구력을 조금만 강화하면 어떨까?’라고 말이야. 무려 고속무장상선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고속무장상선이라니, 이게 무슨 끔찍한 혼종이람?
그런 배는 이름과 달리 ‘빠르고 자체 방어력을 갖춘 상선’이 아니라 ‘빠르지도 않고, 무장은 부실하고, 운송량은 별 볼 일 없는 어정쩡한 배’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세상 멍청한 생각이군요.”
“크크큭, 맞아, 멍청한 생각이었지.”
속도도 빠르고, 창고도 크고, 안정성도 높고, 내구력도 높은 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 그런 배는 없다.
속도를 올리려면 창고를 줄이고, 안정성도 낮추고, 내구력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안정성이나 내구력을 올리려면 창고를 줄이고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물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좋은 선박이 나올 수는 있지만, 같은 시대에 모든 면에서 뛰어난 완벽한 배 따위는 나올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속도만 중시한 타입의 배에 이것저것 추가하면 뭐가 되겠어?
심지어 슬루티급 선박은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크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잠깐만, 이 아저씨가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해?
불길한 예감에 내가 인상을 팍 쓰며 뾰족하게 물었다.
“어? 이런 씨…. 설마 이게 그 선박이라구요?”
“맞아. 아마 가장 최근에 진수된 커티스급 선박일걸세.”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어.
목선은 철선에 비하면 개장, 개조가 쉬운 편이다.
그렇지만 이전에 타던 이클로나 호의 경우처럼, 애초에 상선으로 건조된 선박을 군용으로 개조하거나 군용 선박을 운송용으로 개조하면 효율이 매우 나빠진다.
그런데 애초에 처음부터 이도 저도 아닌 형태로 건조를 했다면….
“아, 진짜! 진작 말을 해줘야죠! 당장 내려요. 이딴 배를 왜 사요?”
700만이라고 말은 했지만 크기와 노후도만 봤을 때 800만은 충분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상황이 달라진다.
크고, 새 거면 뭐 하겠어?
사려는 사람이 없는데.
어쩐지, 교역항도 아닌 곳에 이런 괜찮은 중고선이 있는 것부터 이상하더라니.
내가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내릴 듯이 몸을 돌리자, 드웰이 내 팔을 붙잡으며 급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보게.”
“놓으세요, 제가 무슨 멍청이도 아니고 이런 애매한 배를 왜 돈 내고 사요? 그 400만을 모으려고 제가 몇 번이나 목숨 건 도박을 했는지 아세요?”
진짜 실망스럽고 진한 배신감이 느껴진다.
드웰 씨가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잘 생각해보게. 배가 단 한 척이라면 애매한 것이 맞네. 실제로 이 배의 전 주인도 그래서 망한 거니까.”
“그걸 아시는 분이!”
“어허! 말을 끝까지 들어보라니까? 이 배를 산다고 해서 자네가 이 배만 끌고 다닐 것은 아니지 않나? 리버티 호는? 자네가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맡기겠어?”
“…….”
나는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드웰이 계속 말을 하도록 두었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내부가 엉망이네.
아무리 용도가 애매하더라도 400만이라는 싼(?)값에 팔기로 한 이유가 사방에 널려있었다.
배의 내부에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돛과 로프는 물론 닻도 없었다.
당연히 사람이 들고 갈 수 있을 만한 항해와 보수 등에 필요한 장비들도 단 하나도 없었다.
선장실과 귀빈실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집기까지 다 사라져서 이게 선창인지, 고급 선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심지어 무슨 짓을 했는지 내부도 여기저기 망가져 있어서 대대적인 개보수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 떠나서 제대로 항해할 준비를 갖추려면 최소한 30만 로스는 깨지게 생겼다.
“우와, 배를 이렇게까지 알뜰하게 털 수도 있구나…!”
“해적 놈들보다 더 악랄하게 털었구만.”
우르타가 감탄을 토하고, 갑판장님이 고개를 내젓고, 네이선은 기가 막히는지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웰은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했다.
“리버티 호를 완전히 수송선으로 개장하는 걸세. 몇 개 되지도 않는 대포 따위 다 떼어버리고, 무장을 이쪽으로 몰아버리는 거지. 그리고 이 녀석의 장갑판을 더 강화하고 돛을 조금 더 작은놈으로 바꿔서 안정성을 강화하면 괜찮은 무장상선이 되지 않겠나?”
말로는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 대대적인 개장을 거치면 애초에 처음 용도인 속도를 엄청나게 희생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면 잘해봐야 리버티 호랑 속도가 비슷하게 나오겠네요. 화물도 비슷한 수준이겠고. 아니지, 운용 인원은 이쪽이 더 많이 필요하니까, 오히려 더 적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마 화물량은 리버티 호와 비슷하게 될 걸세. 만약 이 배 하나만 운용한다면 차라리 리버티 호를 운용하는 쪽이 효율이 더 좋기는 하지. 하지만 두 척을 모두 운용하면 전투력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는 것 아닌가? 잔챙이 해적들은 덤빌 엄두도 못 낼걸? 그리고 속도? 어차피 함께 다니려면 리버티 호 속도에 맞춰야 하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기는 한데, 그걸 누가 몰라서 안 합니까?
무장상선이라는 녀석이 워낙 운용 효율이 안 좋으니까 다들 알면서도 안 쓰는 거잖아요.
“무장상선은 무슨. 차라리 저만한 크기의 상선을 하나 더 사서 쓰고 말죠.”
“고작 400만으로?”
……어?
그렇지, 고작 400만으로는 배수량 700톤이 넘어가는 중대형 상선을 살 수가 없구나?
“이봐, 리안. 400만으로 새 배를 건조한다고 하면 잘해봐야 300톤 정도의 켈리언급 상선이나 살 수 있을 걸세. 그게 지금보다 나을 게 뭔가? 이 배를 쓰는 것보다 화물량은 적을 것이고, 무장? 고작 대포 서너 문 단 배가 있다고 나아질 게 있을까?”
아니야! 난 팔랑귀가 아니란 말이다!
“…왜 두 척을 운용해요? 그리고 새 배는 무슨, 중고선도 쓸만한 게 얼마나 많은데요. 리버티 호를 적당히 타다가 더 큰 놈으로 바꾸면 되죠.”
“허허, 리버티 호 하나로 버는 돈과, 아무리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두 척으로 버는 돈이 얼마나 차이 날지는 자네도 알 텐데?”
“…….”
아, 이렇게 말려들면 안 되는데….
“오, 난 찬성이야!
“선주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 한 척으로 5년 걸리면 두 척이면 2년 반이 걸리고, 그렇게 세 척이 되면 1년이 걸리고, 네 척이면 반년 후에 다섯 척! 우와!”
우르타 이놈은 글을 다 가르쳐 놨더니 이제 산수를 못 하는구나.
그게 무슨 기적의 계산법이야?
…그런데 이건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양 현에 10문씩, 대포 20문을 놓으면 예전 이클로나 정도의 화력은 나올 거다.
운용 인원은 대충 80~90명 정도로 잡고, 리버티 호는 인원을 좀 줄여서 30명 정도로 하면….
운용비용은 3배 정도, 수익률은 지금보다 떨어지겠지만 한 번에 운송 가능한 양이 두 배가 되면 나쁘지 않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암산을 하면서 깨닫고 말았다.
유혹에 지고 말았다는 것을.
***
거의 약에 취한 기분으로 계약을 마치고 뤼샨의 저녁 식사 초대에 따라온 나는 정신없이 축하 인사를 받는 중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계약서에 서명을 해버렸지 뭐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개장을 잘해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보자.
그런데 항해사랑 선원 배치가 문제네.
나는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우르타를 보면서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은 그냥 내가 데리고 있어야겠다.
혼자 두기 불안하기도 하고, 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녀석은 저 녀석뿐이니까.
그나마 네이선은 최근에 갑판장 대행을 하면서 제법 관록이 붙어서 갑판장을 시켜도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새 배로 옮겨야겠지.
그렇다면 리버티 호의 선장을 누구를 시켜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후보는 세 사람이다.
일등항해사 아인델프, 갑판장 에른스트, 그리고 이등항해사 발드.
어차피 선도함은 새 배가 맡게 되겠지만, 그래도 항해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니 삼등항해사 슬레어도 리버티 호에 남기고.
어느새 새 배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우르타가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러니까 배 이름은 푸른번개천하무적바다의제왕 호는 어때?”
…미친놈인가?
“아, 무슨 미친 소리야?”
잘한다, 네이선! 그래도 너는 정상이구나.
“차라리 세이렌의노래 호로 하자.”
…취소다.
“쯧, 배 이름으로 장난하는 거 아니네. 내 생각에는 화이트펄이나 고잉ㅁ….”
“그만! 선주님, 거기까지만!”
내가 기겁해서 드웰의 말을 끊자, 미간에 내천(川)자를 만들며 고민하던 갑판장님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벤젼스(복수) 호는 어떠냐?”
후우, 무슨 배 이름을 그렇게 무섭게 지어요?
아예 붉은모래(에른스트가 활동하던 해적단) 호라고 하지 그러세요.
“다들 조용히 해요! 배 이름은….”
“그래, 첫 배니 배 이름도 선주가 짓는 것이 맞지.”
“그래서 배 이름은?”
“오트라스, 오트라스로 할 거예요.”
“칫, 재미없어.”
“괜찮군, 도약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네.”
그렇게 선명이 확정되고 우리는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워낙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지라 할 이야기는 많고도 많았다.
물론 민감한 ‘인어’ 같은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준 상태라 별문제는 없었다.
“선주님, 보기 좋네요.”
“어? 그, 그런가? 다 자네 덕분이네. 정말 고마워.”
“말로만 때우려고 하지 마시고, 오트라스 호랑 리버티 호 개장 좀 제대로 해주세요. 선주님 실력은 믿으니까.”
“허허, 걱정 말게.”
드웰의 딸인 비올라는 여전히 드웰을 대하는 모습이 냉랭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정도는 아니었고, 드웰의 손자와 손녀들은 할아버지가 좋은지 연신 장난을 쳤다.
여자아이는 왠지 우르타 옆에서 계속 얼쩡거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리고 남자아이는 음, 네이선을 무서워한다.
도대체 저놈은 전에 왔을 때 애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 참, 두 배의 개장은 판매자의 조선소에서 개장을 책임져 주기로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두 배 합쳐서 30만 로스를 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드웰이 선임 조선공으로 일하는 곳이니 믿을 수는 있었다.
뭐, 조선소 주인장도 드웰이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라고 하고.
“그런데 오트라스 호의 전 주인은 어떻게 된 거죠?”
“아, 그 친구? 불쌍한 친구지.”
이어지는 드웰의 말에 의하면, 약 한 달쯤 전에 오트라스 호가 입항을 했다고 한다.
그때도 항구에 교역선이 올 타이밍이 아니라 다들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근해를 지나다가 선상 반란이 일어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겨우 반란을 진압은 했는데, 그 와중에 선주는 부상을 입고, 선원도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친 상태라 재정비를 위해 가까운 멜라나인 항구에 입항한 것이다.
일단 선박의 선택부터 이상한 것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선주는 항해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남자였고, 불행하게도 그 남자는 사람 보는 눈도 부족했다.
며칠 머무는 사이에 선장이 도박장에서 큰돈을 잃었고, 그것을 채우려고 공금에 손을 대다가 선주에게 걸려 버렸다.
그저 걸리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선장은 횡령 사실을 알고 추궁하는 선주를 그 자리에서 살해하고 도주해 버린다.
선주는 죽고, 선장은 튀었고, 설상가상으로 채무 대상을 놓친 도박장의 사채업자들이 혼란에 빠진 배로 몰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한 선원들.
충성심이라고는 토끼 뿔만큼도 없는 선원들은 이 기회를 틈타 배 안의 돈이 되는 물건들을 죄다 훔쳐서 달아났다.
이제 남은 것은 빈 배뿐인데, 손해가 막심한(?) 사채업자들이 이걸 그냥 둘 리가 있나?
내부에서 돈이 되는 것은 다 뜯어서 팔고, 그것도 모자라서 배를 해체해서 목재로 팔아치우려는 것을 조선소 주인이 급히 나서서 매입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평생 어선과 소형 화물선만 만들었던 조선소 주인은 이 배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어휴, 내가 그때 그렇게 말렸는데 말을 전혀 듣지 않더군.”
“원래 사람은 욕심에 눈이 멀면 아무 말도 안 들리는 법이죠.”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자네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줘서 목숨은 건졌어.”
“원래 얼마에 샀는데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충 자네에게 받은 금액과 비슷할 걸세. 그런데 그 돈을 빌린 놈들이 누구겠나?”
“에엑, 설마 그 도박장 사채업자들?”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드웰을 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
뤼샨과 비올라의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배의 개장이 끝날 때까지 묵기로 한 항구의 여관에 돌아오자, 갑판장님이 조용히 한잔하자며 불렀다.
잡담을 하며 술잔이 몇 번 오간 뒤, 갑판장님이 용건을 꺼냈다.
“선장은 어떻게 할 셈이냐?”
“네?”
“리버티 호의 선장 말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나는 생각 없다. 자신도 없고.”
“저도 고민 중이에요. 객관적으로 능력만 보면 발드 항해사를 선장을 시켜야 하는데….”
“일등항해사가 걸리는 거지?”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까지 일을 못 했던 것도 아니고, 원래대로라면 일등항해사가 진급하는 것이 맞잖아요.”
“그래, 일등항해사가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선장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 나이도 어리고.”
어리다고 해도 저보다는 많은데요?
아인델프의 나이가 아마 스물여덟인가 그럴 거다.
얼굴만 보면 30대라고 해도 믿겠던데, 노안은 대부분의 뱃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뭐, 그거야 알아서 잘 고민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고 갑판장 말이다.”
“네.”
“네이선에게 시킬 생각이지?”
“그래야죠? 네이선도 어리기는 마찬가지지만 일단 강력한 무력이 있으니까요. 선원들이 아주 설설 기던데요?”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거다. 그러니 네이선에게 갑판장을 시키려면 리버티 호의 갑판장을 주도록 해라.”
“어? 그러면 안 되는데?”
누가 뭐래도 네이선은 백병전에서 내가 가진 최강의 패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면 보조 역할만 하게 될 리버티 호에 네이선을 태우게 되면 완벽한 전력 낭비가 된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늙은 내가 리버티 호에서 애들 뒤치다꺼리를 해야겠냐?”
“에잇, 그럼 그냥 은퇴에서 여기서 드웰 씨랑 노시던가요.”
“이놈이?!”
“아, 몰라 몰라! 술이나 마셔요.”
하긴, 노인네가 몸도 성치 않은데 닥터도 없을 리버티 호에 태우는 것도 걱정이 된다.
그래도 갑판장님이 가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베스트이긴 한데….
아무래도 아직 발드를 완전히 믿기는 어려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