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86화 (186/420)

186화. 거짓말쟁이는 누구?

“어…. 둘이 아는 사이?”

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말을 꺼내려는데 새로 등장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잘 만났다, 네 이놈! 거기 가만히 있어라!”

“어? 일등항해사님? 아, 아니, 왜 이러십니까?!”

말뿐만이 아니라 진짜로 남자는 바우어에게 급하게 달려들었고, 아인델프가 한 발짝 늦게 반응하는 사이에 그는 벌써 바우어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나라고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옆에서 싸움이 날 상황이다 보니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허, 거 누구신지 몰라도 이거 놓고 말씀하시죠!”

내가 힘을 줘서 그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남자도 영 샌님은 아닌지 손쉽게 떼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우르타와 아인델프까지 난장판에 참전하고 나서야 겨우 수습에 성공했고, 아직도 씩씩거리는 남자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선장님. 오트라스 호가 베니에르 호일 때 일등항해사를 맡았던 위버라고 합니다.”

“위버 항해사, 만나서 반갑습니다. 상황이 이래서 초면이지만 자초지종을 좀 듣고 싶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내 말이 끝나자 이를 갈며 바우어를 한번 노려본 위버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우, 그러니까 선장이 선주님을 살해하고 도주한 뒤, 갑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원들을 선동해서 오트라스 호를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직을 끝내고 선실에서 쉬고 있어서 상황을 너무 늦게 눈치챘지요. 제가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선주님이 살해당한 것을 모르던 제가 수습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이미 금고를 털어버린 갑판장은 제게 동참할 것을 권유하더군요. 이미 늦었다면서 말이지요.”

또 말이 달라지는군.

그런데 이쪽도 신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이, 이쪽도 상황을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본인이 봤다는 부분도 사실 교차 검증이 불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여기 바우어 항해사에게는 왜 그러신 겁니까? 지금까지 이야기로 볼 때 바우어 항해사가 딱히 잘못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자 위버는 다시 바우어를 향해 삿대질을 하더니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저놈, 저놈도 한 패입니다! 갑판장이 말하기를, 선교에 있던 저놈이 제일 먼저 선장실과 귀빈실을 털고 튀었다고 했습니다! 동참을 거절한 제가 겨우 목숨만 부지해서 도망친 후 어떻게든 선장 놈과 저놈을 찾으려고 했습니다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지요.”

“아, 아닙니다! 전 억울해요! 진짜 전….”

“이미 갑판장이 다 이야기했어!”

“아, 두 분 다 조용, 조용히 하세요. 일단 바우어 씨의 이야기는 잠시 후에 듣도록 하죠. 그러니까 위버 씨 말씀은, 바우어 씨가 그 난장판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잠시 고민하던 위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시작은 선장 그놈이 맞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까지 걷잡을 수 없이 만든 것은 저놈이죠. 갑판장도 나쁜 놈이지만, 애초에 저놈이 먼저 물건을 훔쳐서 도망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바우어에게 질문을 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위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바우어는 절대 고용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항해사와 갑판장은 실질적으로 선장을 도와 배를 운용하는 중요한 간부들이다.

그런데 혼란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라는 뜻은, 항해 중 발생하는 여러 가지 재해 상황에서 배의 안위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선박의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거나 승조원들의 안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자기가 먼저 배에서 탈출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바우어를 잠시 살펴보았다.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당황했으면서도 내가 묻지를 않으니 입도 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임기응변을 발휘해 저런 모습을 연출하는 중이라면 안 좋은 쪽으로 대단한 사람이기는 한데, 과연 저런 소심한 사람이 그 상황에서 재빨리 선장실과 귀빈실을 털었을까?

“선장님, 제가 쓸데없는 짓으로 물의를 일으킨 모양입니다. 그냥 둘 다 내치는 것이….”

아인델프가 민망한 표정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아인델프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괜히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느니 그냥 몸이 좀 고되더라도 델라 항구로 가서 항해사를 고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아냐, 그래도 일단 사실관계는 파악해 보자고. 델라 항구라고 더 좋은 항해사가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알아봐야지.”

“네….”

나는 아인델프와의 밀담을 마치고 우르타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우르타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위버가 말을 할 때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긴, 워낙 화를 내면서 말해서 특이점을 찾기가 애매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바우어 씨, 제가 바우어 씨에게 대충 들었던 말이랑 위버 씨가 한 말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선장님! 전 그러니까, 그게….”

“당황하지 마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시간은 충분하니 말이죠.”

“가, 감사합니다, 선장님.”

바우어가 잠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계속 바우어를 노려보던 위버가 툴툴거렸다.

“제가 왜 저놈과 이렇게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선장님, 저놈을 고용하시겠다면 전 선장님 배에 타지 않겠습니다. 한 번 배신한 놈을 어떻게 믿습니까? 자는 사이에 칼침이나 안 놓으면 다행이죠.”

“크흠, 위버 씨. 그래도 바우어 씨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선상 반란 때도 눈치나 보며 우물쭈물하던 녀석입니다. 그때 선주님께 한 소리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참, 까면 깔수록 재밌어지는군.

“아, 선상 반란이 있었다고 하셨죠? 그때 그럼 위버 씨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당연히 저는 갑판장과 함께 선원들을 규합해서 반란을 일으킨 놈들을 때려잡았죠. 덕분에 여기 상처도… 이것 때문에 이번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있죠.”

위버는 옷을 걷어 올려 왼쪽 팔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의 팔에는 확실히 한 달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이는 긴 자상이 있었다.

“바우어 씨, 위버 씨의 말이 사실입니까?”

“네?! 아, 그, 그게 그러니까…. 네, 사실 싸움에는 제가 자신이 없기도 하고,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어쨌든 선상 반란이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안 한 건 사실이라는 말이군요.”

“…네, 하지만 그 때는!”

“그렇다면 선주에게 쓴소리를 들은 것은요?”

“그게… 그것도 사실입니다.”

몇 번 변명을 하려던 바우어는 이어지는 내 질문에 결국 고개를 숙이며 수긍했다.

“그것 보십시오, 저놈은 원래 그런 놈입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저런 놈을 채용하실 뻔했으니 선장님께도 잘된 일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위버는 동의를 구하듯 아인델프와 우르타를 둘러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쯧, 차라리 내가 말을 그만하라고 했을 때 그만했으면 좋았을 것을.

“바우어 씨, 선주가 살해당했을 때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습니까? 선교에 있었다는 거짓말은 하지 마십시오.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게, 저, 사실은 항구에 있었습니다….”

“항구에 말입니까? 왜죠?”

“그게 그러니까….”

어디에 있었는지 말만 하면 되는데 바우어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답을 못 할 경우라면 뻔하지 뭐.

“술? 여자? 도박? 어느 쪽입니까?”

“그… 여자….”

“그러니까 근무를 서야 할 시간에 사창가에 가 있었다, 이 말이죠?”

“아닙니다! 그게, 제 근무 시간이 아니라 일등항해사….”

그때 인상을 쓰며 바우어의 말을 듣고 있던 위버가 바우어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닥쳐! 당직 순서를 정하는 건 내 소관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니, 분명히 하루씩 돌아가는 것이었잖습니까, 전날 일등항해사님이 나가라고…!”

“선장님, 믿지 마십시오! 궁지에 몰리니까 저놈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아무렴 제 당직이었다면 제가 방에서 자고 있었겠습니까? 선상 반란으로 선장님과 선주님의 심기도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나는 손을 들어 장황하게 이어지는 위버의 말을 막았다.

“그만하시죠, 들을 말은 다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두 분 다 제 배에 타고 싶은 거죠?”

“그렇습니다, 물론 저놈과 함께 탈 생각은 없습니다만.”

“네… 저도….”

나는 두 사람을 한 번씩 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 시간도 다 된 것 같은데 일등항해사가 두 분 모시고 식사라도 하지. 두 분도 서로 너무 날 세우지 마시고 식사하며 좀 쉬시지요. 어차피 바다 위에서 함께 사는 인생인데, 서로 그렇게까지 날 세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알겠습니다, 선장님.”

내 의도를 눈치챈 것인지 아인델프가 먼저 일어서며 깔끔하게 대답했고, 두 사람은 어버버하면서도 내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나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급히 따라 나온 우르타가 쫄랑쫄랑 따라붙으며 물었다.

“뭐야, 뭐야? 알아낸 게 있어? 딱히 거짓말하는지 모르겠던데?”

“심증은 거의 확실한데, 증거를 좀 찾아보려고.”

“어? 어떻게 알았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우르타의 머리를 한번 흐트러뜨린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거짓말에 능숙한 놈이야. 거짓말을 할 때 처음부터 다 지어내면 힘들어.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없지. 하지만 수많은 진실 안에 단 하나의 거짓만 섞으면 정말 알아차리기 힘든 거짓말이 돼. 흥분해서 뒷말을 안 했다면 나도 속아 넘어갔을걸?”

“에엥?”

“일단 선원들 많이 가는 술집으로 가보자. 선원들이 다 튀었다고? 그럴 리가 있나?”

배를 약탈한 선원들 중에 몇 놈이나 도망을 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선원은 결국 다시 배를 타러 온다는 것이다.

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뱃일밖에 없는데, 내륙으로 도망가서 뭘 해 먹겠나?

여행이 목숨을 건 모험인 세상, 직종변경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다.

도망쳤다는 선원들도 끽해봐야 근처 마을에서 훔친 물건과 돈으로 흥청망청 놀다가 하나씩 다시 항구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그중의 한 명 정도는 아마 이 항구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

나나 우르타나 얼마 전까지 선원이었으니 선원들이 많이 모일 법한 술집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술집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대낮부터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리버티 호의 선원들과 술을 물처럼 마시고 있는 리버티 호 선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 선장님?”

“뭔 선장, 선장이 여기서 왜 나와?”

“아니, 선장님이 오셨는데?”

“엥? 선장은 무슨, 헛! 서, 선장님?!”

아직 완전히 정신이 나가지 않아서 나를 알아보는 몇몇 선원들에게 손짓으로 신경 쓰지 말라고 신호를 한 뒤, 주인에게 다가갔다.

“선장? 저 치들 선장이면 지금 한참 수리 중인 큰 배의 선장이신 것 같은데 여기는 웬일이슈?”

나는 은화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물었다.

“여기 맥주가 은화 값을 할지 모르겠군.”

난데없이 올라온 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맥주 두 잔을 들고 와서는 나와 우르타 앞에 놓더니 은화를 집어 갔다.

“맥주야 다 거기서 거기지. 하지만 곁들일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은화도 아깝지 않은 법 아니겠소?”

“별거 아니고, 그 전에 난리가 났다는 그 배 있잖소, 그 배의 선원들을 찾고 있는데 말이야.”

“그 배라면 그쪽이 인수했다던? 흠, 그 배의 선원들은 죄다 도망갔소. 이미 소문이 파다할 텐데?”

“그 이야기를 해주고 은화를 가져가면 안 되지.”

내가 그를 힐난하듯이 노려보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주인은 내가 조금 다가와서 지독한 입 냄새를 풍기며 은근하게 물었다.

“크흠, 왜 그러시오? 미리 말하자면 사람을 찾아도 어차피 물건은 못 찾을 거요. 이미 새 주인을 찾았을 테니.”

“그냥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야기에 따라 그 친구에게도 적당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고.”

“정말이오? 괜히 말이 바뀌면 피곤해지는데.”

시궁창 냄새보다 더 심한 그의 입 냄새를 참기 힘들어 몸을 뒤로 살짝 빼며 대답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누구요?”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한동안 응시하던 그는 맥주 한 잔을 더 가지고 와서 내려놓더니 한쪽 구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가보슈. 술을 엔간히 좋아하는 작자니 이걸 들고 가면 말 정도는 섞어줄 거요.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모르겠소만.”

“고맙소, 주인장.”

나와 우르타가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남자 앞에 서자, 아주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지 그 남자가 고개를 반쯤 들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물었다.

“뭐야? 내가 술을 시켰던가?”

“아니, 이건 선물.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뭐? 난 남자 놈이랑은 말 안 해. 그 옆에 있는 예쁜 아가씨라면 몰라도.”

확실히 취하기는 취했군.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떠는 우르타를 다독인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베니에르 호에는 언제 탔나?”

“…!”

우당탕탕!

원래는 벌떡 일어서서 경계 태세를 취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알코올에 절여진 그의 뇌는 그의 사지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고, 볼썽사납게 바닥에 엎어지는 코미디만 연출했을 뿐이다.

“뭐, 뭐야! 나는 그런 거 몰라!”

방금 전에 온몸으로 맞다고 대답을 해놓고 왜 엉뚱한 말을 하는 거야?

한숨을 내쉰 나는 아직 내 손 위에 있는 그에게 줄 맥주를 다시 건네며 평온하게 대답했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 그럼 이건 사과의 선물로 하지. 자네에게 딱히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 우르타, 의자 좀 제대로 세워봐.”

주변을 돌아보니 정신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배 선원 몇 명은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녀석도 있었다.

“괜찮아, 다들 마저 놀아. 여기 이 친구가 좀 많이 취했네.”

내가 태연하게 우리 선원들에게 말하자, 그제서야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먹힌 것은 우리 선원들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싸움이 난 것도 아니고 상대나 우리나 조용하니 흥미가 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에 우르타가 정리한 의자에 앉아서 술 취한 남자를 보고 있으니, 그는 여전히 새빨갛게 충혈된 눈에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뭐, 정확한 사실관계를 물으려는 것도 아니니까 저 정도로 취한 게 딱 좋다.

“불편해 보이는데 좀 앉지?”

“뭐, 뭐야? 당신은 뭔데….”

“그래, 뭐,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이인데 통성명은 무슨. 내 말에 대답만 해주면 이건 당신 거.”

내가 주머니에서 은화 세 개를 꺼내서 내밀자 그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이, 일단 들어나 보, 보지, 뭐, 뭔데?”

“베니에르 호에 일등항해사와 이등항해사가 있었지. 일등항해사는 어떤 사람이었나?”

“일등항해사? 좀 권위적이지만 괜찮은 남자였지, 호탕하기도 하고, 술도 잘 마시고.”

“그럼 이등항해사는?”

“이등항해사? 아, 그 샌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배는 잘 모는 것 같은데 영 친해지기 어려워서. 그런데 그건 왜 물으쇼?”

“좋아, 완벽해. 여기, 약속한 대로 이건 이제 당신 거요.”

술 취한 남자는 내가 약속대로 은화 세 개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자 얼굴에 의문부호를 잔뜩 피운 상태로 은화를 집어 들었다.

“가자, 우르타.”

“응? 이게 끝? 고작? 이거 물어보려고 은화를 몇 개나 쓴 거야?!”

술집에 나와서도 우르타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겨우 그게 물어보는데 왜 은화를 세 개나 준 거야?! 한 개만 줘도 백 번은 대답했겠다!”

“주정뱅이가 앞뒤 재지 않고 입을 열게 하려면 눈에 욕심이 씌이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게 해서 물어본 게 고작 그거라고?!”

“그럼 뭘 물어봐?”

내 반문에 골똘히 생각하던 우르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그날 당직이 누구였는지? 아니면 선동한 사람이 누구인지?”

“좋네.”

“뭐가 좋아? 아니, 그런 건 왜 안 물어 본 건데?!”

“물어보면, 대답하겠냐?”

“응?”

“저놈, 다른 배도 아니고 자기 배를 약탈한 놈이야. 분위기에 휩쓸렸건 주도적으로 했건 뱃사람으로서는 거의 실격이지. 그런데 그런 치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그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겠냐고?”

“그, 그런가?”

술은 경계심을 많이 누그러뜨리고 입을 가볍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자백제는 아니다.

아무리 만취인 상태라도 자기 안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만큼은 거짓으로 말하거나 언급을 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심지어 그 남자, 바닥을 구르며 어느 정도 술기운이 가시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 대답이면 충분했다.

내가 그에게 원한 것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지, 사건의 전말이 아니니까.

“가자, 거짓말쟁이 잡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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