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승진 대상자
“아 진짜, 말 안 해줄거야?”
“뭘?”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알잖아, 그 놈이지 뭐. 말 많이 한 놈.”
“위버? 나도 의심은 했지만… 어디가 문제였던 거지?”
나는 한숨을 내 쉬고 우르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자식 이대로 두면 돌아가는 길 내내 쫑알거릴 기세다.
“양쪽의 말이 일치하는 것은 당직인 항해사가 있었다는 것과 갑판장이 약탈을 주도했다는 것이지. 그럼 갑판장이 약탈을 주도할 때 누가 있었을까? 바우어? 너도 알다시피 선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현문을 통과하는 것은 힘들어. 그런데 당직자인 바우어가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갈 수 있었을까? 차라리 위버라면 말이 되지, 선원들과 친하고 직책도 일등항해사니까. 원래 권위적이었던 사람이니 적당히 위세로 찍어 눌러서 나갈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등항해사인 바우어는 불가능해. 선원들과 친하지도 않고, 상급자인 일등항해사가 배 안에 있으니까. 위버가 말했잖아, 자기는 난리가 났을 때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다고.”
“아하?”
“확실한 것은 갑판장이 선원들을 선동할 때 둘 중의 한 명은 배 안에 있었다는 거지. 우리가 바우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선장과 갑판장이 선주를 살해했다고 말했어. 위버는 선장이 선주를 살해하고 갑판장이 선원을 선동했다고 말했고. 위버는 배 위에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아는 것이고 바우어는 지금까지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오오! 역시 리안은 대단해!”
이정도야 뭐, 대부분 확률이 높은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정도면 위버를 고용하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다.
의문이 다 풀렸는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우르타를 끌고 여관에 거의 도착할 때쯤, 우르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에엥? 그런데 위버는 왜 거짓말을 했지? 바우어는 어차피 배 안에 없었으니 굳이 거짓말까지 해서 공격할 필요는 없었잖아?”
“제 발 저린 거지. 아마 위버라는 사람, 사실은 약탈을 주도했거나 동조했을걸? 그러니까 괜히 빌미를 만들기 싫어서 바우어를 쳐내려고 한 거야. 바우어와 함께 있으면 약탈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배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그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계속 이슈가 될 테니까.”
“나쁜 놈이네!”
“아마도 나쁜 놈이겠지, 거짓말도 해봐야 느는 법인데, 분명히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거짓말을 아주 기똥차게 했잖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이야. 분명히 경험이 많다는 뜻이야.”
“어… 음… 그, 그렇지….”
갑자기 나를 보는 우르타의 눈빛이 굉장히 불순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
***
우리가 여관으로 돌아가자 세 사람은 이제 막 식사를 마치는 중이었다.
바우어 씨와 위버 두 사람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인델프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일어서더니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선장님.”
“어, 식사들은 입에 맞으셨습니까?”
의례적인 말을 하며 우리가 자리에 앉자, 배부른 고양이 같은 표정의 위버가 편안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디를 다녀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식사는 잘 먹었습니다. 이왕이면 저 친구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는 바우어 씨.
앞에 남아있는 접시를 보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다.
차림새만 보면 열흘쯤 굶은 것 같은데 말이다.
“일단 두 분 중에서 한 분은 고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일에 얽히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배 두 척을 끌고 가기에는 우리 쪽 항해사가 너무 부족해서 말이지요.”
“흠, 흠.”
아인델프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은 여전히 반대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저어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항해사 세 명으로 배 두 척을 움직이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
혹시라도 항해사의 과로로 인한 주의력 부족으로 다른 선박과 충돌 사고를 일으키거나 암초에 충돌하면 차라리 배를 안 사느니만 못한 꼴이 되니 말이다.
빌미도 적당하니, 일단 고용한 후에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항구에서 해고해도 괜찮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인턴 항해사라고나 할까?
“바우어 씨, 혹시 짐이 있습니까?”
“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말씀드린 대로 그때 배 안에 없어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잠깐, 선장님, 그런 것을 왜 묻는 겁니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위버가 당황하며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았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왜겠습니까? 바우어 씨를 고용해야 하니까 묻는 거죠.”
“아니! 그럼 저는요?! 제가 분명히 저놈이랑은 같이 배를 안 탄다고…!”
“네, 저는 거짓말쟁이를 배에 태울 정도로 관대하지 못해서요. 그러니까 식사 다 하셨으면 일어나시죠.”
“그게 무슨…!”
“무슨 말이긴,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랑은 같이 있기 싫다는 거지. 알면서 왜 물어봐?”
우르타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자기도 방금 전에 설명을 들었으면서 하는 행동을 보면 명탐정이시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지라 나는 피식 웃으며 동의해 주었다.
“제법 거짓말에 능숙하시더군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딱 하나,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그때 분명히 한몫을 챙겼을 텐데 왜 그 꼴을 하고 있는 거죠? 그건 좀 궁금하네.”
그랬다.
내가 끝까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위버의 차림새였다.
물론 바우어 씨보다는 낫지만 절대로 얼마 전에 한몫 단단히 챙긴 사람의 차림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위버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요?”
“그렇잖아, 선장실과 귀빈실을 턴 사람은 당신이지?”
“…그게 무슨?!”
하지만 내 눈에 보였다.
분명히 선장실과 귀빈실을 말할 때 그의 눈이 움찔하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바우어와 만나는 경우는 위버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위버와 바우어가 만나는 순간에 위버가 바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 아니고, 처음에 보인 감정은 분명히 놀람과 당황이었으니 말이다.
그 순간이 너무 짧기는 했지만 의심하고 보니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찰나에 가까운 그 짧은 시간에 바우어를 악역으로 몰아서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거짓말을 만들어 낸 임기응변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만든 거짓말에 거짓을 얼마나 섞을 수 있었을까?
거짓말이라는 것이 그럴듯하게 들리려면 치밀한 구성이 필요한 법이다.
급조한 거짓말이 거의 대부분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그가 한 말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바우어가 했다는 짓들, 아마 그가 한 짓이 아니었을까?
“무슨 개소리를! 이거야 원, 어린놈들이 말… 헉!”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어느새 말없이 단도를 뽑아 든 아인델프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안 들던 참입니다. 그런데 선장님, 그런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와우, 일등항해사 많이 쌓였나 봐?”
내 말에 여전히 위버를 노려보던 아인델프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바우어 씨가 없었다면 그저 좀 말 많은 아저씨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우어 씨를 대하는 게 뭐랄까, 일부러 제게 그 잘못을 부각시키려는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배신감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순간 과한 게 아닌가 싶더니 점점 부담스러워지더군요.”
“자네 반응이 미적지근하니까 몸이 달았던 거지.”
태연하게 우리가 말을 주고받자 위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 알겠소, 그냥 갈 테니 이 칼이나 좀….”
“어떻게 할까요, 선장님.”
나는 물끄러미 위버를 바라보다가 손을 내저었다.
“비열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사람이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처벌할 권리는 없잖아. 죽일 수는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치안관이나 항구관리관에게 넘길 수도 없잖아?”
“휴우, 알겠습니다.”
공권력에게 그를 양도할 수 없는 이유는 딱 하나다.
괜히 엮이면 귀찮아지니까.
우리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괜히 귀찮은 일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치안관이건 항구관리관이건 이미 끝난 사건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엮이면 돈 뜯어낼 사람이 생겼다고 신나서 뇌물 챙길 궁리만 할 게 뻔하다.
“꺼져. 다시는 이 근처에 얼쩡거리지 말도록.”
아인델프는 칼을 치우며 냉막하게 말했고, 위버는 칼이 치워지자 발끈하려다가 곧 우리를 둘러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흥, 네놈들, 상상에 불과한 것 가지고 나를 내치고 저 범죄자를 선택하다니, 후회하게 될 거다!”
황급히 사라진 위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인델프가 찝찝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출항 가능한 날짜까지 아직 사흘은 더 남았습니다만.”
“쓰읍, 나도 영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어쩌겠어? 불안하다고 죽여버릴 수도 없고.”
“단 며칠이라도 거동을 못 할 정도만….”
“에이, 일등항해사 그러지 말자. 아무리 그래도 우리 마음 편하자고 괜한 사람을 쥐어 팰 수는 없잖아.”
“솔직히 괜한 사람은 아니지.”
“야!”
“아니, 그렇잖아! 반응 보니까 진짜 리안 말대로 선장실이랑 귀빈실 턴 사람이 저놈 같던데.”
나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우르타의 볼을 꾹꾹 누르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잖아. 괜히 두들겼다가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만나면 어쩌려고? 정말 죽여 버리지 않을 거라면 괜히 원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어.”
“이미 원한 관계 같은데?”
“아직 원한까지는 아니지.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잖아.”
우르타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리는 그런데, 그 사람도 그럴까?”
에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
비가 살짝 내린 후의 아침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꽤 많이 풀려서 그리 춥지는 않았다.
오트라스의 선장실은 리버티 호보다 더 넓었고, 이미 내 물건을 다 옮겨왔음에도 제법 휑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10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차 있어도 예전처럼 갑갑한 기분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갑판장님이 문을 열고 세 사람과 함께 들어와서 내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점검은 끝났고, 말씀하신 세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배는 어때요?”
“두 척 다 괜찮아 보입니다. 선원들도 얼추 거의 다 모였구요.”
나는 영문을 모르고 불려와서 딱딱하게 굳어있는 세 사람을 보았다.
왓킨, 행크, 오펜.
왓킨은 40대의 고참 선원으로 델라 항구에서 개장을 끝낸 리버티 호를 처음부터 탔던 선원 중의 한 명이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선장을 보고 도망가고 남은 선원들은 대부분 20~30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내 밑에서는 가장 인정받는 고참 선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30대 중반의 행크 역시 델라 항구에서 모집된 선원인데, 네이선에게 덤볐다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고 네이선의 추종자가 된 사람이다.
칼질에 꽤 재능이 있어서 네이선이 임의로 구성한 돌격대의 2인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오펜이야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우리 배의 최연소 선원이고, 수습 선원 출신 3인방(오펜, 카드먼, 슈렌)중의 한 명이며, 이제 최연소 항해사가 될 녀석이다.
“긴장 풀어, 세 사람 모두 뭘 잘못해서 온 것은 아니니까.”
“네, 그럼 왜….”
“일단 거기 의자 마련해 뒀으니까 앉지?”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나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알다시피 오늘은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의 항해 테스트를 진행할 거야. 당연히 그 전에 간부들의 직책을 조정해야겠지? 일단 선원 분배는 갑판장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선원들에게 간부 인사이동 발표가 끝나면 리버티 호에 배속된 사람들이 알아서 선원들 잘 데리고 가라고. 먼저 리버티 호 선장은….”
원래 가장 긴장되어야 할 순간인데, 당사자를 제외한 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는 데다가 당사자는 기대가 거의 없어서인지 말하기 전부터 맥이 빠졌다.
“발드 항해사, 축하해. 앞으로 리버티 호 선장이야.”
“네? 저, 저 말씀이십니까? 그게 무슨…!”
진짜 당황했는지 발드 항해사, 아니, 발드 선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버벅거렸다.
“이미 심사숙고한 결정이야. 그냥 편안하게 즐기도록 해요, 발드 선장.”
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데다가 한 배의 선장까지 된 사람에게 계속 반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은근슬쩍 말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발드는 그것을 인지할 정신도 없는 모양이다.
“축하하네, 발드 선장.”
“축하드립니다. 발드 선장님.”
갑판장님이 허허 웃으며 따뜻하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고, 방금 전까지 상급자였던 아인델프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도 앞에서 축하 인사를 건네자, 곧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발드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선장님. 아니, 제독님.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리버티 호는 저도 꽤 정이 들었다는 것 잘 알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발드 선장.”
“걱정마십시오! 리버티 호를 제 몸처럼 아끼겠습니다!”
한바탕 발드의 충성맹세가 끝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사이동을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리버티 호의 갑판장은 왓킨이야. 왓킨, 신입들도 많고 인원도 많이 배정은 못 하겠지만 잘해주리라고 믿어.”
“감사합니다, 선장님!”
이미 예상을 했는지 왓킨은 놀라기보다는 크게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다른 배를 탔다면 앞으로 5년은 더 지나야 갑판장을 노려볼만한 했으니, 기쁘기도 할 것이다.
“리버티 호의 일등항해사는 추후에 임명하도록 하고, 슬레어 항해사?”
“네, 선장님.”
“슬레어 항해사가 리버티 호의 이등항해사를 맡도록 해. 당분간 발드 선장과 둘이서 항해를 맡아야 할 테니 발드 선장을 잘 보좌하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선장님!”
“다음으로 오트라스 호에서 일등항해사는 아인델프, 갑판장은 네이선이 맡도록 해.”
내 말이 끝나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들 갑판장님이 오트라스 호의 갑판장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에른스트 갑판장은 오늘부터 오트라스 호의 부선장을 맡게 될 거야.”
“아아!”
“그럼 그렇지!”
“축하드립니다, 부선장님.”
“아, 이제 잔소리 안 듣는 줄 알았… 악!”
모두가 축하하는 와중에 쓸데없는 소리를 하던 우르타가 기어코 한 대를 맞고 나서야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갑판장님, 아니, 부선장님의 얼굴을 보니 이미 예상했던 모양이다, 재미없기는.
“이등항해사에는 여기 바우어 항해사를 임명하려고 해.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부터 우리 식구니까 잘 좀 챙겨주라고.”
정 마음에 안 들면 다음 기항지인 델라 항구에서 내쳐야겠지만, 그 말을 미리 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오펜.”
“네, 선장님!”
“오늘부터 삼등항해사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제, 제가요?!”
“항해사를 안 시킬 거면 항해술을 왜 가르쳤겠어? 이제 적당히 배웠으니 써먹어야지. 알았지?”
“감사합니다!”
“포술장과 회계사는 우르타와 게론드가 그대로 맡도록 하고, 조리사도 비에론이 계속 수고해줘. 그리고 공석이 된 돌격대장은 행크, 자네가 맡아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돌격대장은 이름만 대장이지, 지휘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전투 지휘는 어디까지나 선장과 갑판장의 몫이고, 돌격대장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무력을 발휘할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하니 말이다.
직책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선장, 갑판장, 돌격대장의 명령계통은 똑같으니 전투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폭풍 같은 인사이동이 끝나고 이 내용은 오트라스의 갑판에 모여있던 선원들에게도 발표되었다.
일반 선원 중에 왓킨, 오펜, 행크가 간부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선원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비록 이번에 새로 모집된 선원들은 군중심리에 휩쓸린 느낌이기는 하지만, 가능성이라는 것은 늘 의욕을 고취시키는 법이다.
지금은 자신이 아니지만, 이미 동료 중에 누군가가 간부가 되는 것을 봤으니 다들 마음 한구석에 언젠가는 자신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품지 않겠어?
지금 저기에 선망의 눈빛으로 오펜을 바라보는 새로 들어온 수습 선원들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저 꿈 많은 소년들에게 오펜은 거의 아이돌 수준이겠군.
자신들과 똑같은 수습 선원에서 항해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인물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