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92화 (192/420)

192화. 옛 인연

나는 인내심이 꽤 강한 편이다.

필요하다면 표정관리도 잘 하고, 속 마음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지금 뭐라고 씨부리셨, 아니, 누구시라고요?”

“조나단입니다, 선장님.”

태연한 그의 대답에 더욱 화가 났지만, 나는 겨우 감정을 수습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요, 조나단 씨.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후작 각하의 뜻이라면 각하께서 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어디까지나 각하께서는 제게 경험을 쌓게 해주시려는 겁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선장님의 임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 일에 관여할 권한도, 생각도 없습니다.”

참견은 안 하겠지, 나를 관찰하기도 바쁜 사람이 그런 데까지 신경 쓰겠어?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너 지금 날 염탐하러 온 거지?’라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어차피 그렇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인데 굳이 확인해서 뭐 하겠어?

게다가 그걸 확인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고, 애초에 확인을 시켜줄 것 같지도 않다.

“귀빈실을 내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무슨 귀빈실까지요. 저야 뭐 아무 데서나 자도 상관없습니다만, 선장님께서 꼭 배려를 해주고 싶으시다면 개인실 하나만 주셨으면 합니다. 특혜를 받는 것에 거부감은 전혀 없거든요.”

선창에 처박아버리고 싶다.

아니, 그냥 마스트에 묶어놓고 싶어.

나는 눈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애써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날 봐서 그냥 바다에 빠뜨려 버릴까?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개인실 하나를 비워두도록 하죠. 사흘 후에 출항할 테니 그때까지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배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좀 돌아다녀도 되겠습니까?”

“…승조원들의 사적인 구역은 안 됩니다.”

“물론이죠, 그럼 이만. 참, 안내할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실이 준비되면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선장님께 계속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가볍게 묵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조나단에게 나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제안했다.

“배는 나중에라도 보실 수 있으니 출항까지는 항구에서 지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배에서 지내는 것은 매우 불편합니다. 저도 그렇고 배의 승조원들도 항구에 정박하면 대부분 뭍에서 지냅니다.”

“하하하, 매일 배를 타는 분들이야 그렇겠지만 저는 아니지 않습니까? 배에 있어야 출항 준비과정도 보고 선장님이 회의하시는 것도 보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조나단이 몇 걸음 걷다가 뒤로 돌아서서 뒷걸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대답했다.

나는 새파랗게 젊은(대충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놈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살인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저놈 지금 은근슬쩍 간부 회의에까지 끼겠다고 말하는 거다.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회의도 밖에서 해야 할 판이다.

아, 괜히 간부들이 다 자리를 비웠다가는 선장실이나 해도실이 털릴 수도 있겠군.

지금 네이선이 선원을 추가 모집 중인데, 이러면 후작의 끄나풀이 끼어들 확률이 더 높아졌다.

아예 대놓고 감시원을 파견했는데 비밀리에 끄나풀은 안 집어넣겠어?

백작의 끄나풀이 나갔는지도 확신이 안 서는 판에 아주 갈수록 콩가루가 되어가는구나.

***

조나단은 아주 물 만난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저지하기는커녕 내게 하소연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선택했다.

선장이라는 절대 권력에 익숙한 선원들에게 그 선장조차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대는 생소하긴 하겠지.

실제로 선장이 배에서 존대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선주나 귀빈실에 묵는 손님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선주건 손님이건 귀빈실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선원들과는 얽힐 일도 없다.

“으…. 이런 걸 ‘가시밭길’이라고 하는 건가?!”

“‘가시밭길’이 아니라 ‘가시방석’이겠지, 멍청아.”

“쳇,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둘 다 정신 사나우니까 나가.”

나는 괜히 내 방에 쳐들어와서 복장을 긁어대는 네이선과 우르타 두 사람에게 이를 갈며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누가 떠들었냐는 듯이 입을 다물고는 밍기적거리기 시작했다.

이해는 된다.

얼마나 답답하면 여기까지 와서 저러겠어?

아마 두 사람이 나와 특별한 친분 관계가 있는 것을 알고 선원들이나 간부들이 약간 등을 떠민 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두 사람을 조용히 다독였다.

“지금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냐? 그렇다고 저 사람을 내칠 수도 없잖아. 참고 있어 봐, 이번 일만 끝나면 알아서 내리지 않겠냐?”

내 말에 우르타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 만약에 계속 탄다고 하면….”

에이씨, 재수 없는 말을….

“걱정 마, 이번 일 끝나면 무조건 내리게 만들 거니까.”

“그래, 뭐 리안이 그렇다면….”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가빈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응? 잠깐만. 네이선, 문 좀 열어 줘.”

문과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일어선 네이선은 살짝 투덜거리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온 가빈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선장님, 현문에 선장님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이 씨발, 또야?”

“네?”

하필이면 조나단의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라 나도 모르게 뾰족한 대답이 날아갔다.

어리둥절한 가빈의 표정을 보며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가빈에게 물었다.

“자네에게 한 말 아냐, 그런데 손님? 누군데?”

내 물음에 가빈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본인 말로는 함께 배를 탔던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행색이 좀….”

“행색이야 뭐 그렇다 치고. 이름이 뭐래?”

뱃사람의 행색이 거지 뺨치게 생긴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실직(?) 상태에서 돈이 떨어져 병으로 죽거나, 굶어 죽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죽는 전직 뱃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

태어나서 어떻게 돈을 모으고 써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고, 일 자체가 열 명이 나가서 아홉 명이 돌아오는 일을 하다 보니 주머니에 돈이 남아있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리버티 은행, 이제 오트라스 은행인가? 하여간 배에 돈을 맡긴 선원들은 나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자기들의 돈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름이 그러니까, 모, 모르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모르아…? 익숙한데, 누구더라?”

그러자 네이선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 사람이잖아, 우리가 섬, 음… 전에 선상 반란 때 우리 편 든 사람.”

말을 하던 네이선이 가빈의 눈치를 보며 멈칫하는 순간, 이미 나도 기억이 났다.

모르아 갑판장.

내가 이클로나의 부함장 직을 맡았을 때 갑판장이었던 사람이고, 리버티 호를 타고 섬을 탈출할 때 내 편을 들어주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자는 제안에도 결국 다시 제국 해군으로 복귀한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시점에서 왜?

“가지. 가빈, 앞장서.”

“네, 선장님.”

***

현문에 도착하자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저 아저씨는 그사이에 왜 이렇게 늙었어?

누가 보면 부선장님이랑 동년배인 줄 알겠네.

“모르아 갑판장님!”

“아, 리안 선장. 오랜만이오.”

“몰골이 왜 이래요? 이거야 원, 누가 보면 뒷골목에서 주워온 걸뱅이인 줄 알겠네.”

“흐흣, 그러는 리안 선장은 아주 좋아 보이는군. 이제 제법 선장 태도 나는 것도 같고.”

분명히 나와 헤어질 때 가지고 간 돈이 적지 않았을 텐데?

물론 ‘나는 오늘만 산다!’라면서 펑펑 써재끼면 얼마나 많은 돈이건 남아날 리가 없지만,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살 사람으로는 안 보였었다.

그리고 분명히 헤어질 때 ‘해군에 복귀한다’라고 하지 않았었나?

“일단 들어갑시다, 뭐라도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우르타, 너는 조리실 가서 먹을 것 좀 챙겨 와.”

나는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속으로 바짝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우르타를 떼어놓고 네이선과 함께 움직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모르아 씨는 분명히 나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야 했을 사람이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면, 좋은 일일 확률보다는 나쁜 일일 확률이 높지.

그리고 후작 저택을 떠나기 직전, 내게 돈주머니와 후작의 가문기가 담긴 상자를 건네주던 집사가 했던 말이 있었다.

“바로 출항하지 마시고 한 사흘 정도 쉬었다가 가시지요. 반가운 사람이 찾아갈 것입니다. 후작 각하께서 시간이 없어 미처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며, 그 대신 드리는 선물이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 ‘반가운 사람’이 조나단인 줄 알았다.

그래서 ‘감시자를 반가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질 나쁜 농담인가, 귀족들이 쓰는 은유적, 혹은 반어적 표현인가’를 놓고 한참 고민했었거든.

그런데 아마 그 ‘반가운 사람’은 조나단이 아니라 모르아 씨를 말하는 것 같다.

***

모르아가 크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네이선의 허벅지를 툭툭 때렸다.

“으하하하, 그래서 네가 갑판장이라고? 선원들이 네 말을 듣기는 하고?”

“에이, 거참! 말 섭섭하게 하시네. 말 안 들으면 몇 대 쥐어 패면 되요, 히히힛.”

“에라이! 잘하는 짓이다!”

“그런데 모르아 갑판장님, 돈 다 털렸어요? 왜 거지꼴이에요?”

“뭐? 야 이놈아, 너는 말을 할 때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는 거냐?”

“응? 뭐가요?”

“어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래도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세 사람이 농담을 하며 하하 호호 웃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아 씨, 설마 우리와 농담이나 하려고 오신 것은 아니겠죠?”

“으음….”

의도한 것이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가 하는 말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인연이었다고 하지만,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어려울지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왜 오신 것이고, 무엇을 원하시는 것인지.”

냉정한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모르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네들과 헤어지고, 나는 아심, 몬데스 두 녀석과 군영에 복귀하려고 했네. 하지만 프롬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심 녀석이 대부분의 돈을 들고 도망갔어.”

우리 셋은 동시에 한숨을 내 쉬었다.

애초에 아심과 몬데스라는, 모르아가 데리고 다니던 심복이라는 녀석들은 그리 믿을만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선상 반란에도 처음에는 동참했던 놈들이 아닌가.

우리의 한숨에 멋쩍은 표정으로 전보다 훨씬 휑해진 정수리를 긁던 모르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몬데스 녀석과 복귀를 했는데….”

잠시 시간을 끌던 모르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해군은 더 이상 우리를 필요치 않아 하더군. 처음에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객사에 처박아놓더니 어느 순간 밥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어. 두어 달쯤 지났나? 몬데스가 사라졌네.”

“그럼 갑판장님은요?”

네이선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저은 모르아가 대답했다.

“갑판장은 무슨, 이제 그냥 뱃놈이지. 모르아라고 부르게, 네이선 갑판장. 몬데스가 사라지고 나니 문득 회의감이 치밀더군. 내가 무슨 빌어먹을 충성심이 있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싶은 거야. 그래서 나도 나왔네. 하, 내가 나가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군. 아마 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경청하던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르아가 변명을 제대로 했고, 그게 제국에 잘 먹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모르아가 이렇게 멀쩡하게 밖을 활보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지금 타국에까지 와 있는 것도 모자라 후작의 손길이 닿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일단 제국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된다는 뜻이다.

후작이 전하려던 ‘좋은 소식’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거지꼴로…?”

“우르타, 말 좀 조심해. 죄송해요, 모르아 씨.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신 거죠?”

“괜찮네, 사실은 얼마 전에 몬데스가 나를 찾아왔네.”

“!”

“!!”

“그놈, 참 뻔뻔하네요.”

“몬데스 녀석을 너무 뭐라고 하지 말게. 그의 입장도 이해는 되네, 젊은 녀석이 투명 인간 취급받으며 사는 생활이 좋았을 리가 없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가 와서 불쑥 내게 말하더군. 자네를 기억하냐고.”

나는 급히 모르아의 말을 끊고 물었다.

“잠깐만요, 몬데스라고 하셨죠? 그 사람 복장은 어땠어요? 무슨 일 하는 것 같았는데요?”

“스코타 후작의 밑에서 일한다더군. 자네가 알고 싶은 것은 아마 이것이겠지?”

“역시….”

나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모르아가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 녀석이 귀족의 밑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솔깃하더군. 자네가 꽤 큰 배를 끌고 있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내가 찾아가면, 크흠, 그래도 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네.”

“잘 오셨어요, 일단 방 하나 내드릴 테니 좀 쉬시죠. 어차피 내일까지는 출항하지 않으니까 체력 좀 회복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일단 배에 타고 싶으신 거죠?”

내 말에 모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안 선장님.”

“아, 그런데 지금 갑판장 자리가 없는데….”

“그냥 선원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무슨 염치로 갑판장을 달라고 하겠습니까?”

경력이나 실력으로 본다면 당연히 네이선보다는 모르아가 갑판장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임명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네이선에게 갑판장을 시켜놓고 그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게다가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고 말이야.

물론 모르아의 말대로라면 직접적으로 후작의 입김이 닿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내게 주는 선물 겸, 후작 자신이 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파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몬데스라는 녀석이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확실히 섬의 위치가 울부짖는 바다의 안쪽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거다.

한마디로 내가 케르빈 섬의 근처네 어쩌고 한 것은 죄다 뻘짓이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후작 이 사람은 그런 걸 다 알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고?

이 정도면 진짜 버거운 상대 아니야?

***

그날 저녁, 오랜만에 선장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조나단 이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한쪽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분명히 방금 전에 네이선이 반쯤 시비조로 왜 여기 있냐고 물었는데, 천연덕스럽게 ‘궁금해서요’라고 대답하더라.

비록 오늘 회의 내용이 딱히 숨길 내용도 아니고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두고 보는 것도 있지만, 정말 나와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철면피다.

“다들 모였지? 그럼 짧게 끝내자고.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예전에 나와 함께하던 숙련 선원을 한 명 영입했어. 딱 이 오트라스 호와 비슷한 크기의 군함에서 갑판장을 맡았던 사람이야.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선단에 적당한 자리가 없잖아? 그래서 의견이나 한번 들어 보려고 불렀어.”

내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갑판장이었던 사람이 갑판장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갑판장을 하다가 다시 일반 선원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오트라스 호도 리버티 호도 이미 갑판장이 있었고, 나는 ‘적당한 자리가 없다’라는 말로 두 갑판장을 해임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슬레어가 손을 들며 의견을 말했다.

슬레어가 제일 먼저 의견을 말하다니 놀랄 일이군.

“그렇다면 리버티 호의 부선장은 어떨까요? 에른스트 부선장님도 갑판장 출신이고, 경험이 많다면 부선장 자리도 충분히….”

“저는 반대입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용기를 낸 슬레어가 민망하게도 상관인 발드 선장이 바로 반대를 외쳤다.

“발드 선장님, 왜요?”

“여기 왓킨 갑판장은 이번에 처음 갑판장을 맡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부선장으로 같은 갑판장 출신의 새로 영입한 사람이 올라서면, 갑판장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슬레어가 말을 꺼낼 때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던 왓킨의 표정이 대번에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발드의 의견과 같았다.

모르아가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왓킨을 대놓고 밟을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발드 선장은 혹시라도 자신이 제어하기 힘든 인사가 부선장으로 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할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그냥 선원을 시키기에는 좀….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내가 꽤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말이지.”

그때 네이선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그럼 리버티 호의 돌격대장을 시키시죠!”

“어?”

“아하!”

“오, 그런 방법이!”

다들 감탄하는 표정을 짓자 대번에 우쭐대는 표정으로 바뀐 네이선이 당당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돌격대장은 갑판장을 보조하는 자리입니다. 명확하게 갑판장의 아랫사람이죠. 그리고 리버티 호에는 돌격대를 따로 운용하지도 않을 테니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면서 안전한 자리로는 돌격대장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흠, 그렇지, 아무래도 갑판장을 돕는 위치이니 왓킨 갑판장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 말이야.”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제독, 그렇게 하시죠.”

물론 돌격대장도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왓킨이 어설프게 행동하면 왓킨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모르아가 실질적인 갑판장 노릇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정도 위험성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왓킨은 그냥 갑판장의 자질이 없는 거다.

지금도 표정에서부터 약간의 안도와 함께 전의를 불태우고 있잖아.

알아서 잘하겠지 뭐.

그나저나 지금은 갑판장이 아니라 항해사가 필요한데…. 햇병아리 말고 리버티 호의 일등항해사를 맡을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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