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우르타의 비극
생각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르아는 돌격대장이라는 처음 듣는 직책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본인이 항해사로서의 능력이 없으니 그냥 선원 자리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닥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우리 배여야만 했을까?
물론 갑판장이라는 자리가 쉽게 나오는 자리는 아니다.
그리고 자리가 난다고 해도 오랜 시간 함께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승진 임명하지, 외부인을 받아 덜컥 갑판장 자리에 앉히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물’뿐이고 아예 없지는 않은 만큼, 그가 원한다면 충분히 다른 자리를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내가 알기로 모르아 씨는 처음부터 해군이었던 것이 아니고 상선을 타다가 해군에 투신했다 하니, 경험 면에서 문제가 될 일도 없었을 텐데.
다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걸 직접 물어보기에는 좀 그렇다.
방금 입사한 사람에게 ‘입사를 환영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회사에 안 가셨어요?’라고 물어보는 꼴이잖아.
***
뭔가 굉장히 정신없고 바빴지만 결국 출항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고,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게론드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선장님, 죄송합니다만 이번에는 지시를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뭐를?”
“적재할 교역품 말입니다, 가는 곳이 교역항이 아니다 보니….”
“아….”
사실 언제부터인가 교역에 관한 부분은 거의 게론드에게 일임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물품을 구매하기 전에 내게 사전 승인을 받고, 매각 후에도 명세서와 영수증을 가지고 와서 확인을 받기는 하지만 거의 요식행위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게론드가 물건을 보는 눈도 좋고, 거래 능력도 좋은데다가 각 항구의 시세 예측이나 상황 파악도 상당한 편이라 굳이 그의 제안에 토를 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묘하게도 게론드는 상행위 자체에는 관심이 많은데 돈에는 별 미련이 없었다.
떡을 주무르면 손에 고물이 묻게 마련이라고, 회계 쪽 일을 전담하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도 회계사 정도 되는 사람이 적당히 자기 잇속을 챙긴다고 책망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몇 번이나 기습적으로 회계 장부와 남은 자금을 체크해 보았는데, 단 1로스의 오차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항해 중에 파손되거나 변질된 것으로 표기된 것들 중에 게론드가 챙긴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실제로 창고 관리를 해 본 만큼, 그 양이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면 모를 수가 없는데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게론드는 자기 잇속을 챙기더라도 매우 양심적인 수준으로 챙기고 있거나, 나 같은 비전문가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도록 장부를 조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된 거지, 뭐.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고, 현재까지의 교역 수익률은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다.
내가 기대한 만큼 벌지 못하고 있다면 증거가 없어도 의심을 하겠지만, 당장 내가 생각한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수익률이 나오는데 의심을 할 수가 없잖아.
각설하고, 그동안 내게 보고만 하던 게론드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알만했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교역항이 아니었으니까 일반적인 교역품을 적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역항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일반 상선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군사 지역, 출입 금지 지역이다.
당연히 어떤 상인이라도 그곳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알 리가 없다.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자면, 그곳에서 과연 상행위를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는 뜻이다.
“으음, 그러네. 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당황을 감추며 어색한 질문으로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적당히 식수와 식량만 챙겨서 가는 것이 무난할 것 같은데, 우리는 상인이고, 선창이 비어있는 비효율적인 항해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렇게 한참 머리를 짜내서,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게론드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섬이니까 그, 생필품 위주로 챙겨볼까?”
내 제안에 게론드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좀…. 선장님, 시논 섬은 현재까지 밝혀진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입니다. 섬 안에 산맥이 있을 정도란 말입니다. 그 안에서 웬만한 생필품은 자체 생산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군사 지역이라고 해도 그 커다란 섬을 전부 군영으로 채우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게다가 군사 지역인 만큼 일레드 왕국의 본토에서도 분명히 정기적으로 보급품을 보낼 테고 말이죠.”
“그렇지, 회계사 말이 맞네. 그런데 어차피 보급선이 보급품을 실어 나른다면 정말 손댈 게 없는데….”
내 말에 게론드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동의했다.
“알려진 정보조차 거의 없어서… 그렇다고 명색이 상선인데 빈 배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건 절대 안 되지.”
“어휴, 일레드 왕국은 도대체 왜 그 커다란 섬을 죄다 군사 지역으로 선포한 것일까요? 국가적으로 봐도 엄청난 손실일 텐데요. 시논 섬뿐만 아니라 인접한 케르빈 섬까지 말이죠.”
“정치적인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그나저나 도대체 뭘 싣고 간담?”
이런 문제는 따로 누구랑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나 상행위에 대한 지식이 나와 게론드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져서 조언을 받을 가치조차 없단 말이다.
“선장님, 안에 계십니까아?”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하지만 진절머리 나는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무심결에 작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고 말았다.
“엑? 선장님 왜 갑자기…?”
“아냐, 문 뒤에 있는 면상을 생각하니 절로 욕이 나오네. 휴우… 회계사, 가서 문 좀 열어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던 게론드가 애매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나단이 싱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장님. 드디어 내일 출항이군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하하하!”
“바다는 위험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죠. 뭍에서와 다르게 잠깐의 방심으로 목숨이 날아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조나단 씨도 가능하면 안전한 선실 안에만 계시기 바랍니다.”
나는 최대한 돌려서 ‘수틀리면 널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라고 말을 했지만, 놈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태연하게 받아쳤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겁쟁이처럼 선실 안에 처박혀 있겠습니까? 후작 각하께서 그렇게 칭찬하신 선장님이 지휘하는 배이니 제가 안전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 자체가 선장님께 상당한 무례 아니겠습니까?”
“아니, 제 말은….”
“제가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그만큼 이 오트라스 호가 위험한 순간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 상황이라면 재수 없게 제가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어도 절대 선장님을 원망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애초에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하핫!”
망할 여우같은 놈, 혼자는 못 죽겠다는 말이지?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싸움, 나는 괜히 심력을 낭비하기 싫어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좋은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일이 출항인데 선창이 텅텅 비어있어서 말입니다. 선적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교역품이나 뭐 그런 것들은 언제 들어오는 겁니까?”
이 새끼, 내 방에 도청기라도 달아 놓은 건가?
이 세상의 과학과 기술이라는 분야가 그 정도 기술력은 가진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마법이라는 녀석이 있다 보니 별 의심이 다 든다.
…휴우, 이 녀석은 정말 나랑 상극인가? 상대를 하고 있으면 뭔가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는 것 같다.
“그 부분은 지금 이야기 중입니다. 그러니 이만….”
“오! 그렇다면 주제넘지만 제가 한번.”
내 말을 끊고 제멋대로 떠드는 놈의 헛소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나 역시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주제넘은 일은 하시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알면서 하는 이유가 뭐죠?”
“으하하, 선장님도 참, 저는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말씀드리는 거죠! 그래도 한동안 한배를 타야 하는데 그렇게 냉정하게 말씀하시다니 너무하시네요.”
“조나단 씨, 분명히 이번 일에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강요가 아닌 조언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조언을 받아들이건 귓등으로 흘리건 선장님의 선택이니까 제가 참견한 것은 아니죠.”
혹시 이거 ‘차도살인’을 노린 후작의 회심의 한 수가 아닐까?
후작도 이놈을 상대하는 게 버거운데 부하를 이유도 없이 직접 죽일 수는 없으니 내가 살해하게 만들려고?
“어찌 되었건 우리가 가는 곳은 군부대 아니겠습니까? 군인들은 언제나 술과 여자에 열광하는 법이죠. 군 보급품에는 술이 포함되지 않고, 시논 섬은 과일이나 곡물을 재배하기에 토질이 별로 안 좋다고 알고 있거든요. 여자를 사 가실 것이 아니라면 술이 좋을 겁니다.”
그렇게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흘러나오는 조나단의 말에 나와 게론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말 기분은 나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조나단은 시논 섬의 토질까지 자연스럽게 언급했다.
시논 섬에 대한 지식을 우리보다는 확실히 많이 갖추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 남자, 진짜 우리 배에 타려는 이유가 뭘까?
***
오랜만에 게론드와 함께 교역소를 방문해서 계약을 체결했다.
후작에게 받아 낸 면세권의 위력을 직접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결과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우리가 고풍스럽게 장식된 면세 권리증을 꺼내자 점원이 살짝 놀라며 조금 더 정중해지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최소한 교역소 최고 책임자가 버선발로 뛰어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극적이지는 않군요. 뭐, 각하의 직속 상선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면세권을 받은 상선이 꽤 되는 편이니까요.”
여기까지 따라온 조나단이 내 표정을 보다가 실실 웃으며 중얼거렸다.
별것도 아닌데 정말 얄미워 죽겠다.
저렇게 밉상으로 말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
“크흠, 굳이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처음이니 한 번 정도는 계약 과정도 보고 싶었습니다. 딱 제가 상상한 정도라서 재미는 없지만 말이죠.”
그때 계약을 마친 게론드가 돌아와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조나단을 한 번 흘겨본 뒤,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선장님, 말씀하신 대로 맥주와 와인, 위스키를 처음 이야기한 비율로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무두질 된 가죽도 가격이 괜찮아서 적당히 구매했습니다. 모두 내구성이 괜찮은 녀석들이니 꼭 시논 섬에서 매각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항구에서 매각할 수 있을겁니다.”
“가죽 포장은? 잘 해달라고 전달했지?”
“물론입니다. 습기을 막는 것은 물론 냄새가 새지 않도록 최대한 밀봉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들도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니까 잘해줄 겁니다. 그래도 제가 내일 아침에 물건이 들어오면 직접 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살짝 걱정되기는 하는군요. 술 하면 선원들도 만만치 않게 좋아하는데, 사고 없이 갈 수 있을까요? 특히나 새로 들어온 선원도 많은 상황 아닙니까? 아무리 경계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경계를 서는 녀석들을 당장 신용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게다가 워낙 양이 많으니 자기가 조금 빼서 마신다고 해도 모를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녀석이 한두 놈이….”
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에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는 게론드의 이 장황설이 듣기 싫어서 교역에 대한 부분을 일임한 것이었다.
정말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
우리 배에 탄 후로 처음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조나단을 보며 왠지 모르게 약간 변태 같은 쾌감을 느끼다가 나는 급하게 손을 들어 게론드를 제지했다.
쾌감이고 뭐고, 더 듣다가는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그만! 회계사, 제발… 계약 끝났으면 돌아가자고. 배송은 내일 아침이라고 했지? 검수 끝나면 보고서만 올려줘.”
“…네, 선장님.”
신나게 떠들다가 급히 시무룩해진 게론드였지만, 정말 눈곱만큼도 미안하거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
“갑판장들이 선원들에게 제대로 주지시키도록 해. 술은 평소보다 더 충분하게 보급해 줄 테니 절대로 선창에 손대지 말라고. 손대는 놈들은 무조건 채찍 50대에 이번 항해 수당 몰수, 그리고 항구 복귀 후 퇴출이야. 둘 다 선창 관리에 최대한 신경 쓰도록 하고. 특히 리버티 호는 요즘 쥐가 많이 보인다고?”
“네, 선장님. 정박 중이라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도 쥐의 출몰 횟수가 늘었습니다.”
“거기 지금 조리장이 누구… 아, 조리장이 없구나.”
“네, 지금은 임시로 카드먼이 조리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만.”
나는 갑판장들과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돌려 발드 선장을 보았다.
“발드 선장님, 갑판장과 항해사 외에는 직접 인사 명령 내리시고 제게 사후 보고 하셔도 됩니다. 아무리 인원이 줄었어도 조리장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제독. 카드먼이 조리 실력이나 계산 실력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직 경력이 좀 애매해서…. 선원 중에 믿을만한 녀석으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새 조리장에게 조리실과 식료품 보관소 정리 좀 시켜야겠네요. 쥐 몇 마리 때문에 굶어 죽지야 않겠지만, 계속 번식하도록 놔두면 나중에 피곤하니까요.”
“유념하겠습니다.”
쥐는 식량을 먹거나 오염시키고 선원들에게 질병을 퍼뜨리는 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이 망할 것들이 자꾸 배를 갉아서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쥐구멍이나 쥐가 쏠아 놓은 곳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아서 나중에 침수가 발생하거나 충격에 의해 파손이 되고 나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고양이를… 어라, 그러고 보니?
“포술장?”
“네? 넷! 선장님!”
“그 고양이 세 마리는 아직도 데리고 있지?”
“네, 그건 왜…?”
왜냐고 물으면서도 내 대답을 예상했는지 불안해하는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언제까지 그 고양이들 끼고 살 셈이야? 이제 밥벌이는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한 마리는 리버티 호로 보내는 게 어때?”
“으아앗! 안 됩니다! 아직 새끼들인데요?!”
“요즘은 육포를 씹어 먹는다며?”
얼마 전에 네이선이 와서 자랑하듯이 말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네이선의 이름을 따 ‘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새끼 고양이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고 용감한지, 육포를 얼마나 전투적으로 뜯어먹는지 말이다.
아, 생각하니까 조금 화가 나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왜 육포를 뜯어 먹고 있는 거야?
“아니, 그래도 아직 덩치도 작고…. 하여튼 안 됩니다!”
“그 고양이들, 네 방 밖으로 나온 적은 있어?”
“물론이죠! 요즘은 갑판에서도 잘 돌아다니… 헙!”
“다 컸네. 한 마리는 리버티 호로 보내.”
“안 되는데….”
“명령이라고 해야 해?”
내가 칭얼거리는 우르타에게 단호한 눈빛으로 묻자, 우르타는 풀죽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선장님….”
“왓킨 갑판장이 복귀하기 전에 포술장에게 고양이 한 마리 받아 가. 당장은 몰라도 좀 크면 도움이 될거야. 아 참, 관리할 녀석 한 명 정해 주고. 고양이 좋아하는 녀석으로.”
“네, 네? 굳이 관리할 담당자까지 필요하겠습니까? 적당히 선원들이 공동 관리를 하면….”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의 왓킨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과 똑같아.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배를 위해 태웠다면 동료라고 할 수 있는데 방치하면 되겠어? 만약 고양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갑판장이 해명해야 할 거야, 명심해.”
“아, 알겠습니다, 제독!”
책임을 묻겠다는 말에 바짝 긴장한 왓킨이 허리를 곧게 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고작 다른 배에 보내는 걸로도 지금 당장 울게 생겼는데, 거기서 죽거나 다치기라도 해봐라, 우르타 녀석 아주 난리가 날 거다.
나는 긴장한 왓킨에게 손짓으로 긴장을 풀라고 전달한 뒤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포술장이 말한 것처럼 아직 새끼잖아. 어려서 어미와 생이별한 것도 불쌍한데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다치기까지 해야겠어? 분명히 선원 중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을 테니 찾아서 맡기면 될 거야.”
“크흠, 선장, 아니, 제독님?”
내가 말을 마무리하기 무섭게 한쪽에서 조용히 회의를 경청하던 모르아 돌격대장이 살짝 손을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아 돌격대장? 무슨 할 말이라도?”
“그, 일반 선원보다는 제가 관리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간부가 직접 관리해야 선원들도 괜히 짓궂은 장난도 하지 않을 거고 사고도 줄어들 테니까요.”
“혹시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러고 보니 이클로나 호에도 노란색과 흰색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돌아다녔었지.
워낙 숨어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관심도 없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 녀석, 모르아가 키우던 녀석이었나?
“네, 경험도 있으니 잘 할 수 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럼 굳이 갑판장이 받아 갈 필요 없이 모르아 돌격대장이 고양이 받아 가면 되겠네.”
“안 돼…. 내 귀염둥이들을 못생긴 대머리 아저씨에게 보낼 수 없어….”
뭔가 귀에 거슬리는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싹 무시하고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만 해산하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항할 거야. 오트라스가 선행하고 리버티는 50m 정도 뒤에서 따르도록. 발드 선장님은 출항 준비 완료되면 바로 계류색 걷으세요.”
“알겠습니다, 제독님.”
***
회의가 끝나고 현문에서 우르타가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징징거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출항 준비는 무사히 끝났다.
이번 항해는 아무래도 처음 가보는 항로인 만큼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했다.
평소보다 자재는 물론 포탄과 화약도 많이 적재했고, 식수와 식량도 상당히 여유롭게 챙겼다.
덕분에 선적할 수 있는 교역품의 양이 꽤 줄었지만, 안전제일 아니겠어?
생소한 항로이기는 해도 지리적으로는 내해에 포함되는 곳이니 큰 위험이 있겠나 싶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