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유령선
어둠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아마도 인간이 받아들이는 외부 신호의 대부분을 시각에 의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갑판장에게 끌려 나와 괴선박을 발견한 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던 선원들도 횃불 몇 개를 켜자 그럭저럭 대화가 통할 정도로 혼란이 수습되었다.
물론 강력한 방향성을 가진 광원인 랜턴 때문에 괴선박 전체를 대략적으로라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문과 전설을 다 걷어내면, 괴선박은 그저 오래된 난파선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막상 그렇게 혼란이 수습되고 나니 괜히 선원들을 무장시켰나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무생물에 불과한 난파선 때문에 수십 명의 인간이 한밤중에 일어나 칼과 쇠뇌를 들고 설치는 꼴이라니.
“선내 총원 무장 완료했습니다, 선장님.”
“어, 갑판장. 수고했어.”
선교에 복작복작 모여 있는 간부들을 쭉 둘러본 나는 아무래도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회계사와 조리장을 깨울 필요는 없었을 텐데.
“다들 보는 것처럼 난파선이 발견되어서 안쪽을 좀 확인했으면 하는데,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
“그, 그냥 가면 안 되겠습니까…?”
바우어 항해사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거참, 항해술은 좋은데 겁이 저렇게 많은 항해사라니.
“바우어 항해사, 나는 자네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기를 원하지는 않아. 그러니 괜히 눈치가 보여서 못 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어. 하지만 본인이 싫다고 그걸 의견으로 개진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죄송합니다, 선장님.”
바로 침울해지는 바우어를 보며 조금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인간은 재능을 타고난다.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 태어난 것처럼, 어떤 사람은 겁이 많게 태어난다.
인간이 가지는 이런 수많은 능력 중에는 노력으로 향상시키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그 ‘노력할 수 있는 의지’조차도 재능 중의 하나지.
그러니까 겁이 많은 바우어를 딱히 비난할 수는 없지만, 오트라스의 승조원 77명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매사에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의견만 제시할 것이 뻔한 그에게 주의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견은 아무래도 듣는 사람들의 의지와 전체적인 사기를 깎아 먹게 마련이니 말이다.
“반대하는 사람은 바우어 항해사 하나뿐?”
“그렇다면 제가 선원들을 추려서 다녀오겠습니다.”
네이선이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나는 사람들을 지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갑판장과 돌격대장, 포술장이 선원 열 명쯤 뽑아서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부선장과 일등항해사는 내가 없는 동안 외부 상황 관찰하고 선원들 관리하도록 해. 특히 선체가 너무 부식되어서 꽤 약해 보이니까 파도나 충돌로 문제가 생기면… 음? 파도가 꽤 잦아든 것 같은데?”
내 말에 부선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나를 말리고 나섰다.
“네, 방금 전부터 파도가 빠르게 잦아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마 1m 정도일 것 같은데요. 그런데 선장님, 꼭 직접 가셔야겠습니까?”
“부선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난파선 탐색에 굳이 위험하게 선장님이 직접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인델프를 필두로 다른 간부들 역시 한목소리로 내가 직접 가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관찰력 좋은 우르타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탐색 목표 자체가 특정되지 않은 만큼 명령권을 가진 내가 직접 가는 쪽이 나을 수밖에 없다.
“갑판장과 돌격대장을 데리고 가는데 빈 난파선에 얼마나 큰 위험이 있겠어? 잘해봐야 튀어나온 못이나 약해진 나무판자가 부러져서 긁히는 정도겠지. 닥터, 혹시 모르니까 치료 준비 좀 부탁드려요.”
“흐음, 선장님, 그런 작은 상처도 오염이 되면 큰 부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조심하십시오.”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롱베르 씨가 내게 격식을 갖추어 조언했다.
파상풍이나 패혈증의 위험 정도는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 아직 항생제가 남아있으니 혹시 상처를 입더라도 아마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다.
닥터도 그걸 믿고 있는 것이겠지.
“휴우, 전 여전히 직접 가시는 것은 반대입니다만….”
부선장님이 찝찝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나를 말렸지만, 지금 결정을 번복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러니 선원들 좀 잘 챙겨주세요. 해무도 대충 걷히는 것 같은데 리버티 호도 찾아주시구요. 여기, 제 망원경 쓰세요.”
“이건 일등항해사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늙은 제 눈보다는 일등항해사가 낫겠지요. 우리 갑판에 횃불을 잔뜩 켜 놨으니 리버티 호 쪽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좋죠. 혹시 다가오면 너무 가까이 오지 말게 하시구요.”
“알겠습니다.”
***
간부들을 주렁주렁 달고 선수 갑판으로 나가자 갑판장 네이선과 돌격대장 행크가 다부진 체격의 선원들을 한쪽에 모아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네이선 대표로 한 발 나서며 보고했다.
“가장 실력 좋고 용감한 녀석들로 추렸습니다. 돌격대장까지 포함해서 총 열 명입니다.”
“좋아. 다들 발밑 조심하고, 빠르게 탐색만 하고 나오자고. 별거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보내기에는 좀 그렇잖아?”
나는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하고 선원들이 설치한 널빤지를 밟고 난파선으로 건너갔다.
파도가 많이 가라앉아서 딱히 위험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두 선박 간의 거리가 워낙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일행이 모두 건너오자 걱정스럽게 반대편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부선장님과 다른 간부들에게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 준 나는 바로 몸을 돌려 개인실과 선장실이 있음직한 선미 쪽으로 향했다.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바닥의 상태였는데, 이렇게 망가진 와중에도 갑판을 구성하는 나무판자는 아직 괜찮은 듯했다.
삐걱삐걱 소리는 났지만, 딱히 부서지거나 내려앉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완전히 박살이 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조심스럽게 선미의 선실 쪽에 진입했다.
“흑! 저기…!”
선실 통로에 들어서기 무섭게 우르타가 숨을 들이켜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쪽으로 랜턴을 돌리자, 하얗게 변한 뼈 몇 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뼈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인간의 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두개골이 있었으니 말이다.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해칠 수 없는 법이다.
굳이 만져볼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 관찰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몇 발자국 다가서서 뼈의 상태를 살펴보던 나는 이 배가 난파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절대로 사람이 살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랜턴 빛에 의해 하얗게 빛나는 뼈의 상태가 너무 깔끔했던 것이다.
뼈가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까?
“계속 움직이자. 괜히 쓸데없는 거 건드리지 말고.”
내가 관찰을 끝내고 턱짓을 하자, 네이선과 우르타가 선두로 나섰다.
네이선은 약간 긴장이 풀린 듯했고, 우르타는 약간 더 긴장한 것 같아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휘유, 엉망이군.”
“여기는 확실히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맨 앞에 있던 네이선과 우르타가 중얼거렸다.
통로에서 몇 개의 뼈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몇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뼈를 일일이 맞춰볼 수도 없는 일이고, 워낙 여기저기에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 아마도 개인실이 있었을 법한 곳은 아주 난장판이었다.
워낙 많이 부서져서 방의 형체도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었고, 바닥조차 새까만 구멍이 드문드문 보였다.
“쯧,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할까? 이대로 선장실까지 가기는 좀 어렵겠는데.”
찾아보면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있겠지만, 언제 어디가 부서질지 모르는 바닥을 열 명이 넘는 장정이 밟고 지나가기에는 위험도가 너무 높았다.
“흠, 선장님, 차라리 우현 쪽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바닥이 꽤 위험해 보입니다.”
대열의 후미를 맡고 있다가 앞으로 나와서 상황을 확인한 돌격대장 행크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리고 구석구석을 살피던 네이선과 우르타도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럼 맨 뒷사람부터 조심히 빠져나가자. 중앙갑판 쪽에서 우현으로 돌면 될 것 같아.”
내 말에 선원들이 천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
“…열! 인원 이상 없습니다.”
전원이 통로를 빠져나왔음을 확인한 행크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 뒤 나는 네이선과 함께 선두로 나섰다.
“갑판장, 가지.”
“네.”
부러진 메인마스트를 지나 우현 쪽에서 선실로 진입하려던 나는 문득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갑자기 멈춰 서자 덩달아 멈춘 네이선이 조용히 물었다.
“…으음, 아니야.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뭐지?”
“그, 글쎄요?”
“쯧, 가자. 발밑 조심하고.”
우현 통로에 진입한 우리는 이미 갔었던 좌현 쪽과 비슷한 광경을 보았다.
통로는 부서진 곳이 꽤 있었고, 사람의 뼈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네이선은 선두에서 걷다가 바닥이 부서져서 자칫하면 발이 빠질 뻔하기도 했다.
빠드득!
“으힉!”
물론 네이선은 인간을 초월한 반사 신경으로 구멍에 빠지는 대참사는 면했지만, 깜짝 놀랐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조심해, 괜히 발 잘못 디디거나 흔들리면….”
몇 발자국을 걷던 나는 순간적으로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 멈춰 섰다.
“선장님?”
“…야, 네이선. 뒤로.”
“네?”
“뒤로! 빠져나가자.”
“갑자기 왜…?”
“어서!”
당황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네이선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행크, 행크! 거기 있어?!”
“네, 선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복귀한다! 돌격대장이 선두 맡아! 모두 오트라스 호로 복귀해!”
갑작스러운 내 명령에 선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괴현상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상식을 벗어난 현상을 내가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어?
다행히 행크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내 명령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뒤로 돌아! 복귀한다!”
내가 워낙 신경질적으로 반응해서인지 네이선과 우르타는 이후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묵묵히 괴선박에서 빠져나가는 데 최선을 다했다.
랜턴은 내가 들고 있었기에 두 사람에게 후미를 맡기고 선원들을 추월하며 숫자를 세어 보았다.
열 명.
다행히 인원수는 맞는 것 같다.
***
우리가 빈손으로 황급히 되돌아오자, 기다리던 간부들을 대표해서 부선장님이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오셨… 응?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표정이 왜?”
“부선장님! 당장 저 유령선, 아니, 괴선박, 뭐가 되었건! 저거 당장 밀어버리고 이탈합시다. 어서요!”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거! 저 낡아빠진 배가! 흔들리지 않아요! 바다가 아니라 땅 위에 있는 것 같다구요!”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복귀한 선원들은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전원 복귀했지? 번호!”
내가 복귀한 선원들을 보고 인원을 확인하라고 하자 선원들이 반사적으로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
.
“아홉!”
“……?”
선원을 확인하던 나와 행크가 동시에 손을 들어 선원들을 직접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던 네이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선장님, 인원 맞습니다만?”
“무슨 소리야! 열 명이어야 하잖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돌격대장까지 총 열 명이니까 선원은 아홉 명이죠.”
나는 행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행크 역시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서, 선장님. 분명히….”
“내가 셀 때도 분명히….”
사정없이 흔들리는 행크의 눈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가슴 속에서 치미는 공포를 꾹꾹 눌러 담고 네이선에게 다시 확인했다.
“네이선, 아니, 갑판장. 정말 우리 인원이 이게 맞아? 너랑 우르타, 나까지 총 13명이냐고?”
반복되는 내 질문에 살짝 당황한 네이선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다시 숫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선원 아홉에 선장님과 저, 돌격대장과 포술장까지 총 13명이네요.”
이 꼴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인델프가 앞으로 나서며 내게 물었다.
“선장님, 침착하십시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판장의 말대로 들어간 인원인 13명이 맞습니다. 저쪽으로 넘어가실 때 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제기랄.
그럼 그때 있던 한 명은 누군데?
내가 셀 때는 분명히 선원이 열 명이었다고!
심지어 행크도 열 명인 줄 알고 있었잖아!
소름이 돋다 못해 손발이 굳어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유령선이라니, 뭐 이런 거지같은…. 흐으, 다시 생각해보니 마법도 있고, 신이 실재하며, 인외의 지성을 갖춘 존재가 있는 세상에 유령 하나쯤 더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때 유령선을 노려보던 부선장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선장님 말씀 못 들었어?! 당장 저 흉물 밀어내고 이탈한다! 빨리 움직여! 일등항해사, 조함 부탁하네.”
“아, 알겠습니다, 부선장님.”
“갑판장은 선원들 통제하고, 선장님은 저와 함께 가시죠.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해무는 거의 걷힌 상태였고, 파도도 잠잠해져서 야간이기는 해도 항해하기에는 그리 무리는 아닌 상황이었다.
나는 부선장님에게 거의 끌리다시피 선장실로 돌아와서 그가 따라준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야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졌다.
“흐으, 도대체 뭐였을까요? 분명히 열 명이었는데….”
“유령인지 뭔지 몰라도 별일 없을 겁니다. 일단 이쪽으로 따라온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부선장님 말대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선장님의 표정이 여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부선장님은 표정이 왜 그래요?”
에른스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나를 똑바로 보고 물었다.
“선장님, 그 배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셨죠?”
“네. 전혀요.”
아무리 파도가 잔잔하더라도 물 위에 떠 있는 배가 흔들림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게다가 그 당시에 파도가 완전히 없는 상태도 아니었으니 내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림이 적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후우….”
내 말을 듣고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던 부선장님이 씹어뱉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 배, 네 말대로 흔들리지 않았는지, 흔들렸는데 네가 못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똑바로 서 있더구나. 내가 그걸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네?”
“그렇게 낡고 망가진 배가 정확하게 수평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배에서 바라볼 때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말이지.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그랬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도구 없이 편안하게 난파선의 갑판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만 망가져도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버리는 것이 배인데, 그렇게 망가진 배가 똑바로 서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니.
내가 할 말을 잃고 팔에 돋은 닭살을 문지르고 있는데 미처 잠그지 못한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며 네이선이 뛰어 들어왔다.
“서, 선장님!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으힉! 뭐, 뭐야! 또 뭐가 있어?!”
어우, 진심으로 심장이 1초 정도 멎은 기분이었다.
심장에 무리가 가거나 말거나 일단 배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나였기에, 나와 부선장님은 급하게 네이선을 따라 갑판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공포에 질린 선원들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얼핏 보기에 딱히 이상한 것은 없는데.
“모두 정신 차려! 무슨 일이야?!”
내 일갈에 선원 몇 명이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거나 스스로 뺨을 두들겼다.
그리고 네이선이 더듬거리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 없어졌습니다…. 분명히 조금 밀어내고 돛을 올리고 있는데, 그게, 그냥 없어졌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오트라스 호의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무는 물론 구름도 대부분 걷혀서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나와 부선장님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데, 메인마스트에서 내려온 우르타가 질린 표정으로 보고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210도 방향에 선박으로 추정되는 광원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마 리버티 호인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접근 중입니다.”
“후우…. 선원들이나 수습합니다. 그냥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는 쪽이 정신 건강에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