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98화 (199/420)

198화. 시논 총독 마일러 에이디엘 중장

총독관저는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멀면 먼 거고 가까우면 가까운 거지, 왜 ‘멀지 않은 것 같은’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냐 하면….

…내가 탄 마차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범죄자 호소용 마차도 아니고, 왜 창문이 없어?!

그나마 안에 태운 사람이 폐소공포증에 걸리거나 질식으로 죽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굵은 바늘구멍 같은 것이 꽤 뚫려있었고, 그나마 천장은 반쯤 열 수 있어서(그래봐야 하늘도 제대로 안 보인다.) 징벌방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는 게 작은 위안이랄까.

그런 불편하기 그지없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조나단이라는 희대의 트러블메이커와 함께 있으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조나단에게 말을 걸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봐요, 조나단 씨. 도대체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번 일은 후작 각하께서 맡긴 일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조나단 씨!”

내 말에 콧방귀를 뀌며 노려보기면 하던 조나단은 내가 거듭 재촉하자 마지못해 대답했다.

“처음부터 선장이 내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이러는 것 아닙니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나는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능하면 표면적으로라도 감정의 골을 메워서 총독을 만나고 싶었는데, 상대는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첫 대화가 이랬으니 그다음부터 대화가 있을 리가 있나?

설마 총독 앞에서 어깃장을 놓으려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

마차 밖 풍경은 전혀 보지 못한 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진 총독관저의 뜰이었고, 이어서 잠깐의 대기 시간도 없이 총독을 만날 수 있었다.

군인들이라서 그런지 일 처리 속도가 아주 전광석화가 따로 없다.

총독관저 내부도 일반 하인이나 하녀 차림의 사람보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건 숫제 총독관저가 아니라 사령부 수준이다.

우리가 병사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에 들어서자, 화려한 군복 차림의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반갑군. 내가 시논의 총독인 에이디엘 자작, 마일러 중장이네. 스코타 후작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고?”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흠, 일단 서신을 보도록 하지.”

그는 옷차림만큼이나 화려한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단도직입적으로 우리의 용건을 물었다.

서신이라는 말에 약간의 의문이 섞이기는 했지만, 그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일단 서신을 요구했다.

마음 같아서야 시간을 끌면서 상대를 좀 떠보고 싶었지만, 딱히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그러니 하릴없이 품에 안고 온 후작의 서신을 곱게 넘기는 수밖에.

내게서 넘겨받은 서신을 꼼꼼하게 확인한 그는 서신을 개봉하려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후작께서 따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가?”

“아닙니다.”

“그럼 자네는 이 서신의 내용을 알고 있나?”

“저는 서신을 전하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그래? 이상하군. 그런데 그 옆에 친구는 뭐지?”

“그게….”

조나단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내가 제지할 새도 없이 조나단이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일러 총독 각하. 스코타 후작 각하께서 훗날의 긴밀한 협의를 위해서 총독 각하께 먼저 인사를 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밌군. 본국과 벨로키나 왕국이 협력관계이기는 하지만, 내가 굳이 후작과 긴밀한 협의를 할 일이 있나?”

“아마 서신에 궁금해하시는 내용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총독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가볍게 물었다.

“좋아. 그러면 선장은 이 서신을 전하라는 명만 받았는가?”

“…그게, 답장을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잔머리 굴리는 것을 포기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씁쓸했지만 이번에는 나의 완패였다.

상대가 쥔 패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레이스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조나단은 단순한 내 감시역이 아니고 조금 더 중요한 인물인 모양이다.

“답장이라,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군. 방을 내줄 테니 잠시 쉬고 있게. 답장이 준비되면 부르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총독 각하.”

총독이 테이블의 벨을 살짝 울리자, 문이 열리며 병사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와서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선장에게 객실을 하나 내주게.”

“옛, 각하!”

뭐야? 왜 나만?

내가 약간의 당황과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조나단을 슬쩍 보았는데, 그 잠깐 사이에 내 시선을 눈치 챈 총독이 말했다.

“아, 여기 이 친구랑은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선장은 먼저 가서 쉬도록 하지.”

왠지 모르게 자존심도 상하고 호기심도 일었지만, 총독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병사는 더 이상 말을 걸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이 딱딱하고 강압적인 태도로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가시지요, 선장님. 문은 이쪽입니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고작 30초 전에 들어온 문의 위치 정도는 기억하거든?

나는 내 뒤통수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병사를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

백작이나 후작의 객실에 비해 수수한 편인 총독관저의 객실에서 찬찬히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저지당했고, 방 안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보니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먼저 조나단의 정체.

확실히 나를 감시하기 위해서 파견한 평범한 감시역은 아니다.

물론 그런 역할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지금 총독과 독대를 하기 위해 그가 했던 말, 그리고 그 말투와 복장.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조나단의 복장은 나름대로 가장 비싼 옷을 입은 나보다 더 고급스럽고 귀족적(?)이었다.

애초에 배에 타기 전부터 총독과의 독대, 적어도 총독을 만나는 것까지 예상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들끓는 분노와 짜증에 가려져서 안 보였던 부분이 보였다.

분명히 처음에 그는 가볍고 넉살 좋은, 하지만 계산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하지만 중간부터 건방지고 제멋대로인 캐릭터로 바뀌었지.

거기에 총독을 만난 후에 보여준 당당하고 귀족적인 캐릭터까지.

이 정도면 연기자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다.

도대체 조나단이라는 남자, 원래 성격이 어떤 것일까?

두 번째는 총독이다.

총독은 잠깐 본 것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평생을 군에서 보낸 군인이었다.

그리고 사십대에 벌써 중장이라니, 귀족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파격적인 계급이었다.

게다가 총독이라니….

총독이라는 자리는 한 지역의 사회, 경제, 군사를 모두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보통 정계에서 경험이 많은 자를 임명하게 마련이었다.

물론 군사령관이 총독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새로운 점령지에서 군정을 실행할 때나 사령관이 총독으로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시논 섬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점령이 완료된 곳이 아니던가?

심지어 최대 적국인 몰로스 제국과의 접경지대는커녕 해군력이 거의 없는 제국의 위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시논 섬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논 섬.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군사지역으로 선포한 곳이니 군인이 많고 군 시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정도는 굳이 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예상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볼 수도 없게 숨긴다고?

군의 규모를 숨기기 위해서일까?

그런데 이곳에 대규모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위치라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제국을 위협할 수 없는 위치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몰로스 제국과 일레드 왕국의 접경지대에서는 소규모 군사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외딴 섬에 대군을 주둔시킨다니, 이게 무슨 비효율적인 군사 배치라는 말인가?

“리안 선장님, 총독 각하께서 부르십니다.”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병사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대충 한 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시계가 없으니 정확한 시간의 흐름을 알기가 어렵다.

***

“자, 여기 내 서신이네.”

“조심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먼 길을 왔으니 충분히 쉬다가 가라고 권하고 싶지만, 이곳의 특성상 외부인이 오래 있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군. 대신 보급은 충분히 해주라고 할 테니 배로 돌아가서 필요한 물건은 보급관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게.”

나는 자신의 할 말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총독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총독 각하, 저는 상인이고 상선을 끌고 왔습니다. 병사들이건 섬의 주민들이건 부족한 물건이 없지 않을 텐데요, 혹시 교역을 허가해 주실 수 없습니까?”

내 말을 들은 총독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흠, 말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리석은 자 같지는 않은데, 내 말이 어려웠나?”

“그것이 아니라….”

“그만하지. 팔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보급관에게 이야기해보도록.”

“…감사합니다.”

나는 더 이상 우기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다.

이 정도 양보를 받아낸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그럼 훗날 다시 뵙겠습니다, 총독 각하.”

“그래, 후작께 안부 전해주게.”

대화가 끝나자 내 옆에 서 있던 조나단이 우아하게 총독에게 예를 올렸고, 총독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뭐지, 이 온도 차이는?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간 것인지 궁금했지만, 나와 조나단은 총독의 축객령에 집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과정은 올 때와 정반대의 순서였다.

총독관저의 뜰에는 이미 우리가 올 때 타고 왔던 마차가 대기 중이었고, 우리를 안내하는 병사는 빨리 마차에 타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다시 조나단과 죄수처럼 마차에 갇힌 나는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보니 슬슬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조나단 씨, 총독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겁니까? 후작 각하께서는 당신에게 무슨 일을 시키신 거죠?”

내 말에 조나단은 감정 없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와, 소름 돋네.

원래 여기로 오는 마차를 탔을 때의 캐릭터라면 가소롭다는 표정이나 무시하는 표정으로 ‘네가 알아서 뭐 하게?’라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할 때쯤, 그의 입이 열렸다.

“리안 선장님, 선장님은 선장님의 할 일이 있고, 저는 제 할 일이 있는 겁니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계실 텐데요?”

“하지만 내가 받은 명령은 그저 서신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상황 정도는 공유를 해주셔야….”

내 진지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은 고개를 저었다.

“선장님의 할 일과 제 일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조나단 씨도 제 일에 몇 번이나 끼어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심지어 저놈 말을 듣고 사 온 술은 팔지 못할지도 모르는 판이다.

“그것도 일단 제 일이라고 해 두죠.”

“…그게 무슨!”

말을 마친 조나단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눈을 감았다.

제기랄, 이렇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잠이라도 자겠다는 거야, 뭐야?

***

정확하게 오트라스 호의 현문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준 마차에서 내리자,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와 조나단을 한 번씩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누가 리안 선장님이십니까?”

“접니다만.”

내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못 알아 봬서 죄송합니다, 총독 각하께서 필요한 보급품을 제공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내역을 정리해 두셨습니까?”

“그건 우리 회계사가 이미 파악해 뒀을 겁니다. 그보다, 총독 각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다른 말씀이요? 아, 혹시 판매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십니까?”

“술과 가죽을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만….”

술이라는 말에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술은 음… 필요하기는 하지만….”

“총독 각하께서 이미 허락한 일이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군에서 술은 사실 필수품이라고 보기 힘들어서 말이죠.”

“이 큰 섬에 군인만 있는 것은 아닐 것 아닙니까? 군에서야 필요치 않더라도 섬의 주민들은 필요로 하지 않을까요?”

은근슬쩍 섬의 상황을 떠보는 말에 남자는 살짝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물건을 조금 볼 수 있겠습니까?”

“따라오시죠. 아, 조나단 씨는 선실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도 구경하도록 하죠. 혹시 제가 보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무슨 밀수품 거래도 아니고 ‘보면 안 되냐’라고 물으면 딱히 거절할 말이 없잖아.

별수 없이 조나단을 꼬리에 달고 나와 게론드, 보급관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선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건을 확인한 남자는 꽤 후한 값을 제시했다.

“보급선으로 들어오는 주류와 종류가 달라서 가격을 조금 더 쳐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섬에서 주류는 구하기 힘들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보다 보시는 것처럼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표시된 물량은 오트라스가 아니라 함께 입항한 리버티 호에 실려 있는데, 제가 함께 가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그럼 지금 말씀하신 물량에 대한 대금은 그쪽에 직접 지불하겠습니다. 선장님께서 거래 확인서만 써주시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아, 쉽게 안 넘어가네?

리버티 호 쪽으로 움직이면서 항구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눈치챈 모양이다.

흐음, 아무래도 돌아가는 루트를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

선창에 있던 물건을 대부분 넘기고 보급품을 적당히 받은 우리는 출항을 준비했다.

이미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서 몇 시간 후면 해가 떨어질 때였지만, 우리가 하루 더 기항하는 것은 절대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속없는 선원들은 상품으로 가져온 술 일부를 우리가 마시기로 결정한 것 때문에 희희낙락하고 있었지만,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솔직히 지금 내리는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 확신이 안 선다.

“선장님, 말씀하신 대로 보급품을 실었습니다만, 인원수에 비해 식료품과 식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여기에서 델라 항구까지면 열흘 정도면 충분히 갈 텐데요.”

“아니, 저희가 델라 항구에 간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네? 스코타 후작가의 영지로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델라 항구로 향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보급관이라는 남자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돌아가면 후작에게 할 말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확인한 것이라고는 뭔가를 꽁꽁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인데, 설마 후작이 그것도 모르겠어?

후작은 나에게 시논 섬에서 뭘 숨기고 있는지 알아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후작의 장단에 놀아주고 싶지는 않지만, ‘무능한 놈’으로 판명이 되는 것은 조금 그렇다.

자존심뿐만 아니라 어쩌면 내 목숨과도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으니까.

“저희 다음 기항지는 일레드 왕국의 에쉬노르 항구입니다. 그쪽 모피가 끝내주거든요.”

“여기에서 에쉬노르라면… 항로가 꽤 위험합니다만?”

“응?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히 여기에 오기 전에 들은 말로는 ‘상선 두 척’이 여유롭게 갈 정도로 안전하다고 들었는데요?”

“누가 그런… 흡, 알겠습니다. 일단 이 사실은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위를 맡은 함정들은 선장님이 당연히 델라 항구로 돌아가실 줄 알고 있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보급관은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어서 허둥지둥 배를 떠났다.

그래, 이래야 사람다운 거지.

내가 그동안 너무 괴물 같은 인간들만 상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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