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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99화 (200/420)

199화. 상식과 진실의 차이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보급관은 한 시간이 넘게 흐르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사이에 해가 꽤나 기울어진 것이 보인다.

“선장님, 조금 있으면 일몰입니다만, 계속 이대로 대기해야 할지….”

“집주인이 방 빼라면 빼야지. 별 수 있나? 그런데 엄청 늦는군.”

“저… 그런데 왜 갑자기 다음 기항지를 바꾸신 겁니까? 바로 델라 항구로 가지 않을 수는 있다고 하셨지만, 다음 목적지가 일레드 왕국이라니요? 그것도 하필이면 북단의 에쉬노르 항구라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지금은 말해 주기가 좀 애매하니까 나중에 알려줄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케르빈 군도를 남쪽으로 우회하려면 효율은 그렇다고 하고, 풍향도 안 좋아서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겁니다. 적어도 20일은 각오해야 할 텐데요.”

“우회하지 않으려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직선으로 갈 거야. 그럼 대충 10~12일이면 가지 않을까?”

내 대답에 아인델프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선장님! 그렇게 움직이면 케르빈 군도를 바로 코앞에서 지나게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왜? 해적 때문에?”

“케르빈 군도가 해적들의 소굴이라는 것은 상식 아닙니까?!”

“맞아, 상식이지.”

“그런데 왜…. 설마 오트라스의 화력을 믿으시는 겁니까? 물론 오트라스 호가 상선치고는 화력이 좋은 편이고 포술장의 실력도 믿지만, 잔챙이 해적들에게나 통하는 말입니다! 진짜 대형 상선들을 습격하는 녀석들에게 걸렸다가는….”

기겁하며 나를 말리려는 아인델프의 입을 막은 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지. 일단 자네도 그쪽으로 가는 게 원래 정해졌던 것처럼 행동해.”

“으음, 알겠습니다.”

아인델프를 설득하고 10여 분이 지난 후에 보급관이 급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늦으셨네요, 보급관님. 오늘은 아무래도 출항하기에는 조금 늦은 듯한데….”

“죄송하지만 제가 받은 명령은 오늘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를 출항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에는 변동이 없어서 출항을 늦춰드릴 수는 없겠네요.”

혹시나 해서 찔러봤지만 예상한 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아직 해가 진 것은 아니고 출항이 입항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니 그럭저럭 강행할 만했다.

내가 계속하라는 의도로 고개를 끄덕이자 보급관이 말을 이었다.

“저희의 경계 구역까지는 초계함 두 척이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를 호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경계 구역을 벗어나신 후 다시 진입을 시도할 경우 경고 없이 공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굳이 돌아올 생각은 없지만 그런 말은 기분이 안 좋군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만, 군사 지역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내 반응에 보급관은 살짝 미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딱 그 정도뿐이었다.

받은 명령에 대해서는 조금의 예외도 두지 않는 것이, 과연 군인은 군인이랄까?

“보급관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죠. 그럼 항로는 저희 마음대로 잡아도 상관없는 거죠?”

“네? 항로요? 네, 뭐…. 호위 함정들은 어디까지나 저희 경계 구역 내에서의 호위를 위한 것이니까요.”

호위는 무슨, 감시겠지.

보급관이 떠난 후, 우리는 바로 현문을 철거하고 출항 절차에 들어갔다.

리버티 호에 연락하는 것은 보급관이 알아서 해준다고 했으니 그냥 출항하면 되겠지.

그나저나 우르타 녀석이 내가 시킨 일은 잘 했으려나 모르겠네?

호위 함정만 떨쳐내고 나면 바로 불러서 물어봐야겠다.

***

출항 절차가 마무리되자 선교 지휘를 오펜에게 맡긴 뒤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음, 갑작스러운 목적지 변경에 다들 당황했을 것 같은데….”

나는 말을 흐리며 테이블 한쪽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밉상스럽고 이제 약간 섬뜩하기까지 한 조나단이 태연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노려보면서 말을 끊자, 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린 조나단이 입을 열었다.

“선장님이 저를 싫어하시는 것은 압니다만, 저도 왜 갑자기 다음 목적지가 바뀐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장님이 허락하시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을 테니 그냥 진행하시지요.”

난 지금도 너에게 입을 열라고 허락한 적이 없거든?

하지만 그의 말이 아주 헛소리는 아닌지라 나는 별수 없이 회의를 속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놈의 섬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겠지? 그리고 이것과 상관없이 내가 예전에 부선장님이랑 말을 했던 것이 있는데 말이야.”

“으음, 혹시 그때 기억나냐고 하셨던 말씀이?”

“네, 이제 기억나신 모양이네요. 저 케르빈 군도, 일레드 왕국에게 복속된 것이 아니냐고 하셨잖아요.”

“설마 그 터무니없는 추측이….”

“네, 사실일 확률이 높은 것 같네요.”

게론드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설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해에서 해적에게 습격당하는 일레드 상선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내해 물류의 절반가량을 일레드 국적의 상선이 담당하는 만큼, 해적에게 습격당하는 상선의 수도 엄청나다는 말입니다. 만약 선장님 말씀대로 케르빈 군도가 일레드 왕국에게 복속 당했다면 해적들이 그렇게 일레드 왕국 상선을 공격할 리 없지 않습니까?”

“회계사의 말이 맞습니다. 모든 해적의 근거지가 케르빈 군도는 아니겠지만, 지리적으로 케르빈 군도 외에는 해적들의 근거지가 될 만한 곳이 거의 없으니까요.”

아인델프도 게론드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두 사람의 말이 맞다.

그리고 대부분의 뱃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거대한 맹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케르빈 군도를 확인해 본 사람?”

“네? 농담이시죠?”

“아니, 진짜 진지하게 묻는 거야. 케르빈 군도가 해적들의 본거지라고, 누가 확인했지?”

“그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케르빈 군도가 진짜 해적이 득실거리는 해적들의 본거지라면, 거기를 갔다 왔다는 뜻은 해적이라는 뜻과 같으니까.

물론 에른스트 부선장이야 젊은 시절 직종 변경을 하기 전에는 밥 먹듯이 갔다 왔겠지만, 여기에서 밝힐만한 내용은 아니다.

“아, 물론 케르빈 섬에 해적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정말, 대부분의 해적이 케르빈 군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을까?”

“그 외에는 해적들이 근거지로 삼을만한 곳이 없지 않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규모와 지리적 이점을 생각하면….”

“결국 다들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확인을 한 것은 아니고.”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바우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무, 물론 선장님의 말씀이 맞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옛날 내해를 휘젓던 ‘붉은모래 해적단’의 근거지 역시 케르빈 군도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한 근거 아닐까요?”

“오! 좋은 말을 해주었어, 이등항해사. 방금 이등항해사가 말한 것처럼 이미 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붉은모래 해적단’의 명성은 엄청나지. 그리고 그 해적단의 근거지가 케르빈 군도였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야. 다들 그런 유명한 해적단도 케르빈 섬에 근거지를 두었으니, 대부분의 해적의 근거지가 케르빈 섬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거지.”

몇 사람은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몇 사람은 심각하게 내가 한 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행크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하지만 선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적들의 대부분은 주요 항로에서 북쪽, 케르빈 제도 방향으로 도주하거나 철수합니다. 실제로 저도 그런 해적들을 몇 번 보았구요. 아시다시피 북쪽으로 가면 갈 수 있는 곳이 뻔하지 않습니까?”

“맞아. 돌격대장의 말대로 내해의 주요 항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정박할만한 육지가 시논 섬과 케르빈 섬, 그리고 그에 딸린 군도들 뿐이지.”

“엑? 그걸 아시면서…?”

“그런데 그 해적들, 계속 북쪽으로 갔을까? 정말 케르빈 군도로 들어간 거 맞아?”

“그것은….”

일반적으로 해적선은 먹잇감인 상선은 물론, 천적인 해군의 군함보다 빠르다.

그래서 해적선이 마음먹고 도주를 선택하면 이를 쫓아가서 잡을 확률은 굉장히 낮다.

그러니 해적선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상선은 쫓아갈 이유가 없고, 해군은 못 쫓아가거나 나포, 혹은 침몰시켜버릴 테니까.

“그렇다면 선장님 말씀은, 대부분의 해적들이 다른 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시다시피 내해는 이미 1,000년 이상 인간의 손으로 지도가 그려….”

“그만! 잘 생각해봐, 해적에게 왜 근거지가 있어야 해?”

나는 슬슬 장광설의 시동을 거는 게론드를 빠르게 진압하고 질문을 던졌다.

“네?”

“당연히….”

“왜 당연한 거야?”

“그거야, 그래야 약탈품도 숨기고, 자기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모자란 인원도 보충하고….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왜 그걸 근거지에서 해야 해?”

사람들이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자꾸 당연한 이야기를 묻느냐는 표정이다.

“해적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국적기를 가지고 있어. 그렇지?”

“네….”

“그래야 위장을 하니까요.”

“졸리로저를 하루 종일 매달고 있는 미친 해적은 없죠.”

“뭐, 대충 위장 신분, 혹은 진짜 신분도 있을 거야, 일반 항구에 입항하려면. 그렇지 않아?”

“그렇겠지요?”

“그럼 근거지가 왜 필요해? 그냥 아무 항구나 가면 되지. 항구에서 물건 팔고, 선원을 모으고, 정보도 모으고, 물건을 숨기는 건 좀 어렵겠네. 그런데 뭘 또 숨기기까지 하겠어?”

‘해적이 숨긴 보물’이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 말인가?

주머니에 돈이 남아나는 꼴을 못 보는 것이 선원들이다.

그리고 그런 선원들보다 더 극단적인 한탕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해적 놈들이다.

그런데 그놈들이 무슨 보물을 숨겨가면서 ‘저축’을 한다니,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소리를….

“어? 으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하지만 붉은모래 해적단은!”

“내가 듣기로 붉은모래 해적단은 규모가 엄청났다고 해. 지금 내해에서 활동하는 한두 척, 끽해봐야 서너 척으로 구성된 해적단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지? 그 정도라면 근거지가 필요하겠지. 같이 모여서 일정도 조율하고, 편하게 정보도 교환하고 할 장소 말이야.”

“그렇다면….”

“군도에 포함된 섬에 근거지를 마련한 해적이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실제로 내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해적들은 그냥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일레드 왕국이 이 군도를 제압한 후에도 일레드 상선이 습격당하는 비율이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거야.”

잠시 후, 게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추론이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수긍하는 한 사람이 나오자, 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깨닫고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어제 본 해적선들 말이야, 분명히 일레드 해군의 시야에 보였을 텐데도 잘 빠져나갔단 말이지? 해군과 뭔가 접점이 있는 게 아니라면 해군의 반응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

“그… 해적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해적선이 아니면 걱정할 필요 없지. 상선 두 척이 유유히 지나가도 될 정도로 그쪽은 안전하다는 말이니까.”

그때 부선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선장님,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일레드 왕국이 군도를 제압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레드 왕국의 상선이 아닌 우리는 공격당할 위험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굳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무릅쓸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죠, 부선장님. 만약 예상대로 일레드 왕국이 군도를 제압하고 군도의 해적들을 통제하고 있다면, 우리는 절대 공격당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확신하는 이유를 짐작조차 못 하는 것 같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내 대답을 가로챘다.

“그렇죠, 만약 군도의 해적들이 일레드 왕국, 특히 시논 섬의 통제를 받고 있다면 감히 시논 총독의 서신을 가지고 가는 우리를 공격할 수는 없겠죠.”

조나단이었다.

이 새끼, 분명히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말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

“크흠, 저 말이 맞습니까, 선장님?”

“으음. 조나단 씨. 분명히 회의에는 참여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그만 말로 튀어나왔군요. 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시죠.”

너는 마음속으로 생각할 때 문장구조 다 갖춰서 존댓말로 생각하냐?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사과한 일을 붙잡고 늘어질 수도 없어서 곧 시선을 돌렸다.

“물론 위험성은 있어.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 지금 선창이 비어 있잖아? 평범한 해적들 정도라면 이기지는 못해도 도주는 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일단 내 의견을 따라줬으면 해.”

“하긴, 지금 선창이 비었으니 상대를 미리 발견만 한다면 딱히 위험할 일은 없겠군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선장님이 명령을 내리시면 따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리버티 호에는 어떻게 전달할까요?”

“아, 리버티 호에는 일단 우리 신호를 예의 주시하라고 해. 아무래도 해적이건 뭐건 그쪽보다는 이쪽에서 먼저 발견할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포술장?”

“물론입니다, 선장님! 믿어주세요!”

견시대 위에 올라간 우르타에게 내 망원경까지 쥐여주면, 거의 치트키 수준이기는 하다.

나는 혹시 더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훑어보고는 개운하게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럼 해산하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아인델프가 내 옆을 스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밤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가는 사람들을 배웅했다.

아인델프가 굳이 나를 따로 찾아오겠다는 것은 조나단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

“선장님, 아인델프입니다.”

“어, 일등항해사. 어서 들어와.”

내가 문을 열어주자 아인델프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내 방에 들어와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이번 후작의 의뢰 말입니다….”

아인델프는 말을 하면서 입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뭔데 이렇게까지 경계를 하는 거야?

“뭐? 걸리는 점이라도 있어?”

“조금 상식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요. 고작 서신 하나 전달하자고 굳이 선장님을 호출한다는 것이….”

거기까지 말한 아인델프는 조용히 문가로 이동해서 빠르게 문을 열어젖혔다.

“…….”

“뭐야? 누가 있어?”

말없이 문밖을 살피던 아인델프는 다시 문을 잠그고 자리로 돌아와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습니다. 영 불편하군요.”

“누굴 그렇게 경계하는 거야? 조나단?”

“그 사람도 그렇고, 선원 중에도 첩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원들은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지. 나에게 볼일이 없으면 여기까지 들어올 일이 없으니 말이야.”

“그래도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방금 전에 한 말은 이미 끝난 이야기고.”

내가 따라준 술잔으로 살짝 입술을 적신 아인델프가 말했다.

“정말 에쉬노르 항구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선장님, 에쉬노르 항구는 일레드 왕국 2함대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일레드 왕국 2함대? 아! 그 제국 1함대 시절에 부딪힌 것 때문에?”

“아무래도 그때 직접적으로 부딪혔던 녀석들이니 혹시라도 우리를 알아보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는 몰라도 선장님은 그때 부함장이셨으니 주요 인물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겠습니까?”

아인델프의 말을 들으니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다.

모르아가 아직도 잘 살아있는 것을 보면 일레드 왕국 쪽도 그쪽 일은 다 잊은 듯한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또 모르는 일이니까.

“뭐, 듣고 보니까 나도 조금 걱정이 되는데, 그렇다고 벌써부터 쫄아서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잖아. 일단 이대로 진행하고, 혹시라도 위험할지 모르니까 나는 항구에서 배를 떠나지 않는 방향으로 하지. 행정적인 부분은 부선장님이 나서서 하셔도 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으음,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조나단 말입니다.”

“어, 왜?”

“…제거할까요?”

“…….”

나는 잠시 말을 아끼고 복잡한 눈으로 아인델프를 보았다.

나도 그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고 싶기도 하고, 배에서 사람 하나 없애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죽이려고 하면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후작의 입장에서, 항해 중에 하필이면 손님으로 탑승한 조나단 혼자만 죽었다고 하면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후작과 나의 관계는 굳이 증거를 따질 필요 없이 후작의 의심만 가지고 나를 끝장낼 수 있는 관계다.

게다가 말이 좋아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지, 배를 타고 있는 선원들 모두에게까지 비밀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새로 모집한 선원 중에 후작의 첩자가 숨어들었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니, 어떤 식으로 처리하건 발각될 확률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막말로 그 첩자가 굳이 사건 현장을 목격하지 못하더라도, 후작에게 나와 조나단 사이에 트러블이 있는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조나단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하면 후작의 마음속 조나단 살해범은 나로 결정되는 거다.

“후우, 일등항해사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살려두자. 죽이기에는 우리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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