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전쟁의 전조
- 오트라스 호 선장실 -
나는 한 쌍의 무전기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 들어 두 척의 배를 이끌면서 통신장비의 부재가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깨닫고 있던 나는 이 무전기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들 알다시피 무전기는 전기를 사용하는 장비라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충전’이라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물론 이전에 받은 랜턴의 경우 태양열 충전이 가능해서 밤마다 수시로 사용하는 중이다.
그래서 당연히 충전 가능한 뭔가를 제공했겠지 싶어서 선장실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나온 것이라고는 이 한 쌍의 무전기뿐이었다.
이 정도 되면 테스트를 위해 켜기조차 겁이 난다.
괜히 지금 막 쓰다가 배터리 다 떨어지면 어떡해?
이 세상의 과학기술로 이 녀석에 알맞은 충전기를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니, 말 그대로 사용 시간이 정해진 시한부 무전기인 셈이다.
내가 죽기 전에 ‘충전’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생기려나?
당연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기는 하다.
어쩌면 언젠가 내 목숨을 구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녀석이기는 하지.
그런데 왠지 엄청 큰 선물 박스를 뜯었는데 손바닥만 한 선물이 나온 기분이다.
똑똑.
이 녀석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괜히 아끼다 똥 된다는 말처럼 아끼다가 방전되어 못쓰게 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와중에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포술장입니다.”
우르타 녀석이군.
호기심 덩어리인 우르타의 눈에 띄었다가는 굉장히 피곤해질 것 같아서 얼른 무전기를 숨겼다.
언젠가 사용법을 알려주기는 해야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내가 문을 열어주며 약간 귀찮다는 듯이 묻자, 우르타가 새초롬하게 째려보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나한테 물어볼 거 있지 않아?”
“응? …아앗! 너무 정신없어서 깜빡하고 있었어! 미안, 미안! 거기 앉아. 술 줄까?”
“아니! 내가 무슨 네이선인 줄 알아?”
으음, 그래 아침부터 술을 찾는 게 정상은 아니지, 이 배에 비정상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일 뿐.
살짝 삐진 우르타를 살살 달래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내가 확인해 달라고 한 건 잘 확인했어?”
“일단 확실한 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곳에는 군함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 들락날락 한 녀석까지 합쳐도 열 척 정도? 대부분 초계함 수준의 소형 전투함이었고.”
“흐음, 일단 군항이 하나는 아니라는 뜻이군.”
“그리고 남쪽 원거리에서 포착된 선박 중에 우리가 있던 항구로 오지 않은 선박 수는 총 여섯 척이야.”
“종류는? 어떤 녀석들인데?”
내 말에 우르타는 급히 내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군함은 잘 몰라…. 그리고 너무 멀리 있었는걸?”
그의 말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하긴 해군에서 웬만큼 굴러먹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배의 형태를 보고 종류까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자주 봤던 일레드 왕국 초계함처럼 보이지는 않았지?”
“응! 그건 확실히 달랐지.”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정보였다.
시논 섬에서는 타국, 심지어 동맹국이라고 할 수 있는 벨로키나 왕국에게도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는 강력한 해군 전력이 주둔 중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하루 동안 출입항 하는 배가 무려 여섯 척이라면, 최소한 그 두 배 정도의 배는 우리가 보지 못했다는 가정이 가능하니 말이다.
석연치 않은 군사 구역 선포, 숨겨진 강력한 군사력,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전쟁.
일레드 왕국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레드의 목표가 어디냐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마다카트 섬이다.
일레드 왕국은 시논-케르빈 섬을 장악함으로써 일레드 북부부터 두 섬까지, 북쪽으로 향하는 항로를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물론 노던테라라는 곳이 아직도 전설 정도로 치부되는 만큼 그쪽을 지나는 항로는 아직 없지만, 탐사 가능성조차 막아버렸다는 것에 의의가 있겠지.
지금의 상황에서 일레드 왕국이 마다카트 섬까지 장악할 수 있다면 사실상 대륙을 품에 안아버리는 거대한 해상 포위망이 완성되는 꼴이다.
게다가 향료제도에 끼치는 벨로키나 왕국과 쿠샤 왕국의 영향력도 상당히 거세할 수 있겠지.
노던테라를 향하는 북해 항로의 독점에 이어 서해 항로까지 최고의 영향력을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상태로 한 20~30년만 지나면 일레드 왕국은 몰로스 제국을 제치고 대륙 최강의 국가로 오롯이 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가정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바로 벨로키나 왕국이 오직 일레드 왕국만을 위한 이 계획에 협력하겠냐는 것이다.
마다카트 섬은 쿠샤 왕국이 지배하고 있으며, 지금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이다.
일레드 왕국에서 아무리 강력한 전력을 동원해도 점령이 쉽지 않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본토가 가까운 벨로키나 왕국의 도움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벨로키나 왕국의 입장에서 일레드 왕국이 마다카트 섬을 점령하는 상황이 퍽 달가울 리가 없었다.
위에서 말한 상황이 되어버리면 일레드 왕국의 팽창을 견제할 방법이 없어지니 말이다.
그리고 아직 기밀이라서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는 벨로키나 왕국과 쿠샤 왕국 사이에 흐르는 화해 분위기를 알고 있는 외부인 중 한 명이다.
이것을 이번에 알게 된 일과 묶어서 생각해 보면, 벨로키나 측도 시논 섬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나 싶다.
그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 쿠샤 왕국과 화해 무드를 만드는 중이겠지.
그렇다면 벨로키나 왕국의 실세인 스코타 후작이 시논 총독에게 보내는 서신의 내용은 뭘까?
….
알게 되면 왠지 암살자가 찾아올 것 같다….
나는 끝도 없이 진행되는 상상을 그만두고 서랍에서 은화를 하나 꺼냈다.
“고생 많았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맨날 은화네….”
“그럼 금화를 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냐, 아냐, 이히힛, 이걸로 뭐 사 먹지? 리안, 에쉬노르 항구에는 뭐가 맛있어?”
나는 50만 로스를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작 700로스짜리 은화를 들고 희희낙락하는 우르타를 약간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자연스럽게 그의 말에 따라 에쉬노르 항구의 식당을 뒤지고 있었다.
“……오, 생각났다!”
“응?”
“12번 항구에서 북동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있는 2층짜리 식당이 있는데, 거기 대구 요리가 끝내주지. 달콤하면서 짭짤한 특제 소스를 넣고 불 맛을 입혀서 졸인 것 같던데, 입에서 아주 살살 녹아. 크으, 고드실카 호를 탈 때는 너무 비싸서 딱 한 번밖에 못 먹었는데 말이야. 지금이라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야.”
“우와아…. 리안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맛있는 곳인가 봐?”
“당연하지.”
지구에서 전생을 살았다고 믿었던 나는 예전부터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내 입에서 ‘맛있다’라는 평가를 받은 음식이 워낙 드물다 보니 우르타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아, 생각하니까 입에 침이 고이네.
***
점심을 먹고 깜빡 졸던 나는, 심상치 않은 배의 흔들림에 잠에서 깨었다.
피칭(piching, 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정도)이야 그렇다 치고, 롤링(rolling,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정도)이 상당했다.
선박의 복원력은 피칭에 강하고 롤링에 약한 편이라, 보통 파도가 거세지면 당직 항해사가 재량껏 배의 방향을 돌려서 선수 방향으로 파도를 맞이한다.
하지만 방향을 마구잡이로 돌리다 보면 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최대한 항로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적당히 침로를 바꾸는 것이 항해사의 능력이었다.
“에이, 점심때부터 꾸물꾸물하더라니. 이쪽이 원래 바다가 좀 거친 편인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옷을 입고 막 나가려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선장님, 일등항해사가 보내서 왔습니다.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대답 없이 문을 열었다.
이미 익숙한 목소리라 딱히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엇, 일어나 계셨습니까?”
“선장이 배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못 느껴서야 밥 벌어먹겠어? 가지.”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인 트레비스가 앞장서며 중얼거렸다.
“반대로 겨우 이 정도에 잠에서 깨면 선원 짓은 못 해 먹지요, 흐흐.”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살짝 붙잡기는 했지만 그래도 금방 내릴 줄 알았는데 꽤 잘 버티네?
트레비스는 옛날 핀의 도난사건 때 범인인 딜런에게 선동당해서 가빈을 범인으로 몰던 녀석이다.
그냥 사람이 좀 단순할 뿐이지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라서 특별히 징계를 하지는 않았었지만, 그... 단체생활의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은가?
다들 가빈에 대한 미안함을 누군가의 탓으로 몰아야 마음이 편할 텐데, 범인인 딜런이 없으니 트레비스가 다음 타겟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공식적인 ‘왕따’가 되는 것이지.
이렇게 말하니까 별거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상생활에서 선원들에게 ‘왕따’를 당한다는 말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배에서 내리려던 트레비스를 내가 붙잡아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한 부분도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어때, 트레비스? 일은 할 만해?”
“물론입니다!”
어라? 반응이 예상외인데? 너무 밝잖아?
“진짜야? 나는 그때 일로 동료들에게 욕 좀 먹었을 줄 알았는데?”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한 열흘 정도는 절 붙잡아주신 선장님을 원망했을 정도였습죠.”
“열흘? 그 이후로는?”
“네이선 돌격…. 갑판장이 저를 때리던 녀석들을 다 곤죽을 만들어버리셨거든요. 흐흐흐.”
“에엑? 그런다고 그게 해결이 돼?”
내가 어이가 없어서 되묻자, 트레비스가 침을 튀기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갑판장이 무력도 무력이지만 진짜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그놈들을 죄다 두들겨 패서 바닥에 기어 다니게 만들어 놓고 딱 이러는 겁니다. 어차피 다 같이 똥 묻은 개새끼들인데 왜 똥 많이 묻은 개새끼만 욕하냐구요. 그 말을 듣는데 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무식해서 그 도둑놈에게 놀아난 것은 맞지만, 어차피 절 때리던 놈들도 다 내심 제게 동의하던 놈들이었거든요. 그날 이후로는 제게 괜한 시비를 거는 놈들은 갑판장의 명언을 인용하며 두들겨 패버렸습니다.”
“이봐, 트레비스. 너 지금 선장 앞에서 선원들과 싸웠다고 고백하는 거야?”
“어? 아앗! 아, 아닙니다! 그냥 장난스럽게 투닥투닥, 뭐 그런 겁니다. 그, 그렇지! 원래 우리가 좀 말에 허풍을 섞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나는 눈에 띄게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는 트레비스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피식 웃었다.
“어이구, 됐네, 그걸로 처벌할 생각은 없으니까 변명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만. 앞으로는 혹시라도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갑판장이나 부선장님, 안 되면 나에게라도 먼저 물어보라고. 괜히 혼자서 설레발치지 말고.”
“알겠습니다! 선장님!”
흐음, 요 녀석도 잘 이용하면 꽤나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
선교로 올라온 나는 일단 침로를 바꿨다.
“조타수, 우로 15도! 흐음, 어디 보자….”
일단 키부터 돌리라고 한 나는 망원경으로 파도의 방향을 가늠해보고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대로 해서 045도 잡자.”
“알겠습니다, 선장님.”
내 지시가 끝나자 뒤에서 대기한 아인델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가면 군도와 너무 가까워집니다만….”
“그렇기는 한데, 지금 하늘 보니까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황천 대비는 했어?”
“부선장님이 미리 경고하셔서 갑판장에게 제가 지시했습니다. 지금 하부갑판 쪽 정리 중일 겁니다.”
“잘했네, 리버티 호에는 신호 보냈고?”
“물론입니다.”
“해도실로 가지.”
나는 아인델프와 함께 해도실로 들어와 우리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에른스트와 함께 따로 표시해 둔 종이를 꺼내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선장님? 그건 뭡니까?”
“아, 케르빈 군도 근처 위험 구역. 어렵게 알아 왔어.”
“네? 그런 것을 또 언제… 역시 대단하십니다.”
감탄을 터뜨리는 아인델프를 보니 양심이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나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엣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직 저는 배울 게 많군요.”
“으흠, 할 수 있다면 최대한의 준비를 해야만 위기에 빠질 확률이 줄어드는 법이지.”
아, 너무 찔린다.
***
양심까지 팔아가며 아인델프에게 허세를 부리기는 했지만, 비상시를 대비한 준비 같은 것은 그냥 헛수고로 끝나는 것이 좋다.
그 준비가 쓸모가 있어졌다는 말은 비상시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말이다.
“으아아아!”
“잡아! 잡, 우어억!”
“저거 묶은 놈 누구야! 다 풀리잖, 아아아악!”
쿠우우웅!
촤아악!
바다 위에 있음에도 기묘한 부유감을 주던 오트라스 호가 머리부터 바다에 처박히며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센 비바람으로 인해 이미 속옷까지 다 젖은 판이지만 찝찔한 바닷물을 뒤집어쓰니 안 그래도 별로였던 기분이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비켜!”
이미 방위고 뭐고 구분도 할 수 없는 상황, 나는 균형을 잃고 타륜에 매달리다시피 한 조타수를 거칠게 밀쳐내고 직접 타륜을 잡았다.
파도의 방향은 아직도 약간 왼쪽, 이대로 계속 파도를 맞다가는 계속 방향이 돌아갈 거고, 그러다가 측면에 제대로 한 방을 맞으면 전복되는 수가 있었다.
나는 잘 돌아가지 않는 타륜을 젖 먹던 힘을 다해 돌려가며 선수가 파도가 오는 방향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견시! 견시!”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와중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견시수를 불렀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인지, 이미 기절한 것인지, 혹은 떨어진 건지 견시수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 선교에 붙어있는 우르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런 악천후에 마스트 꼭대기에 있는 견시대에 오르는 것은 매우 성공률이 높은 자살행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한 우리의 위치를 볼 때, 이미 선고를 뛰어넘은 거대한 파도에 의해 시야가 막힌 갑판이 아니라, 더 멀리 볼 수 있는 견시대에서의 상황 파악은 필수였다.
“우르타! 견시대 올라가!”
“어?! 지그으음? 으아악!”
“근처에 여울이 있을 수 있어! 누군가는 그걸 봐서 위치를 알려줘야 해!”
우르타는 네이선과 함께 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다.
당연히 위험한 일은 시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판이고, 가장 적당한 사람은 우르타였다.
“어푸푸푸! 어차피, 올라가도, 안 보일 것 같은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보면 돼! 빨리!”
“으으, 알았어!”
파도가 이렇게 치는데 여울이라고 물의 흐름이 그대로일 것 같지는 않지만, 재수 없게 그쪽에 와류(소용돌이)라도 생겼다면 거기에 휩쓸리는 순간 침몰 확정이다.
“갑판장! 네이선! 어디 있어!”
“여깁니다, 선장님!”
“갑판 아래쪽 침수 확인 좀 해봐!”
“윽, 알겠습니다!”
내가 다시 타륜을 붙잡고 기를 쓰고 있는데, 매듭이 풀리려던 돛줄을 잡아매던 아인델프가 소리쳤다.
“선장님! 또 옵니다!”
급히 머리를 들어보니 눈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파도가 나를 압도했다.
“온다! 모두 엎드려! 우르타, 조심, 크으윽!”
쿠우웅!
촤아아악!
다시 한 번 바닷물이 흩뿌려지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헉, 헉, 헉, 선, 선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런 씨발! 보면 몰라?! 폭풍이잖아!”
나는 언제 올라왔는지 선교에서 돼지새끼마냥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조나단에게 욕을 퍼부었다.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놈이 뭐 한다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난리야?
그때 용을 써도 계속 오른쪽으로 조금씩 밀리던 타륜이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갑판장, 아니, 부선장님?!”
“못난 놈아! 혼자 못하겠으면 누굴 부르든가 해야지!”
“에이씨, 지금 누굴 부를 상황이 아니잖아요!”
“힘 좀 써! 이제 관 짜야 할 늙은이보다 힘을 못 쓰면 어떡하냐?!”
“말 걸지 마요!”
우리는 힘을 합쳐 겨우 타륜을 돌려 방향을 맞추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헥, 헥, 여기, 헥, 원래 이래요? 헥헥!”
“헉, 헉, 헉, 바다가, 제 멋대로인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그건 그렇지.
아직 한참은 더 이럴 것 같은데 리버티 호는 잘 따라오고 있으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