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거절할 수 없는 유혹
“먼저, 다시 한번 사과하겠소. 나이가 들다 보니 요즘 체력이 안 좋아서 말이오.”
허락 없이 내 테이블의 의자에 앉은 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사실 거기까지는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 원래 뱃사람들 사이에서 그 정도는 무례 축에도 못 끼는 거라서 말이다.
무례라고 하면, 적어도 다짜고짜 돌아가신 부모님을 소환하고 쌍욕 정도는 박아줘야 무례지.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신 적도 없으신 분이 제게 부탁할 일이 있다니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내가 상황이 조금 급해서 말이오, 듣기로는 지금 로렌 조선소의 도크에 들어가 있는 선박이 리안 선장의 배라고 하던데 맞소? 이름이, 아! 오트라스 호라고 하던데.”
“네, 제가 오트라스 호의 선장입니다.”
나는 살짝 긴장을 풀며 대답했다.
나에 대해 정확하게 모른다면 진짜 그의 말대로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 그 배에 나를 좀 태워줄 수 있겠소?”
뜬금없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되물었다.
“그… 아무리 봐도 뱃일을 하실 분으로는 안 보이는데, 혹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50대의 나이에 10대, 20대 철부지들처럼 ‘바다의 사나이, 대양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 진짜 삶이지!’라면서 신입 선원이 되겠다는 것은 아닐 테니 내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질문을 받은 제먼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군. 배에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잠시 태워줄 수 있냐는 말이었소. 물론 합당한 대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소.”
나는 조금 더 찬찬히 그를 살펴보았다.
누가 봐도 오트라스 호는 여객선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도크에서 수리 중인데, 비전문가들은 도크에 들어간 배의 수리가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힘들다.
그저 막연하게 부두에서 적당히 하는 수리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오트라스는 하부 쪽의 손상 점검을 위해, 리버티 호는 키 수리를 위해 도크에 넣기는 했지만, 손상이 생각만큼 심하지 않아 사흘 후에 수리가 완료될 예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외부인이 알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러니까 굳이 승객으로 배에 타려면 나를 찾아와서 ‘부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어디까지’도 아니고 ‘잠시’라는 것도 말이 조금 이상하다.
마치 목적지는 어디라도 상관이 없다는 말투 아닌가?
우리는 이런 경우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바로 ‘밀항’이지.
“죄송합니다만, 오트라스 호는 상선입니다. 화물을 취급하죠. 승객은 태우지도 않고, 원하는 곳으로 가 드릴 수도 없습니다. 다른 배편을 알아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일단 원론적인 말로 거절해 본다.
밀항은 불법적이기는 해도 상당히 괜찮은 수입원이지만, 나는 밀항자의 복장이 고급스러워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왕녀님을 태웠던 고드실카 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지.
오트라스 호라고 그 뒤를 잇지 말라는 법이 없는 거다.
“선장의 배가 상선이고 지금 수리 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상선이라도 나 한 사람 정도는 탈 자리는 있을 것이고, 수리도 사흘 후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아주 맹탕은 아니군.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번 일을 맡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말이다.
“조사는 많이 하신 것 같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군요. 죄송하지만 다른 배편을 알아….”
짤랑.
테이블 가운데에 노랗게 빛나는 금화가 떨어졌다.
나도 몇 번 본적 없는 필로스 금화다.
일반인은 거의 볼 일이 없고, 대형 거래에서나 쓰이는 개당 3만 로스에 거래되는 초고액 화폐.
“선금이오. 나를 무사히 내려주면 두 개를 더 드리겠소.”
내가 겸손을 떨어서 그렇지, 난 사실 지금도 상당한 부자다.
수백만 로스의 가치를 가지는 오트라스 호의 선주이고, 개인 자금도 상당한 데다가, 공금으로 운용하는 금액도 백만 단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하나 태워주는 대가로 9만 로스라는 유혹은 이기기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이런 거액을 제시하실 정도면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것 같은데, 최소한 그 위험이 뭔지는 알아야 제가 리스크를 감수할지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황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내가 타협안을 내놓자,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일레드 왕립학회 소속 마공학자요.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벨로키나 왕국으로의 망명을 원하는 상황이오. 어차피 선장의 배는 벨로키나 왕국의 소속이니 언젠가는 벨로키나 왕국으로 향할 것 아니오? 그러니….”
나는 손을 들어 제먼의 말을 막았다.
마공학자라면 각국에서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인적자원이고, 국가적 기밀이다.
그런 사람을 빼돌린다고?
왕녀님 밀항시키는 것에 비해도 난도가 높으면 높았지, 낮을 리가 없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만 일어나 주시지요. 고작 금화 몇 개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잠깐!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오. 부탁이오.”
“휴우, 선생님. 저는 일개 상선의 선장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과 엮였다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일레드 왕국에 충성할 필요는 없으니 신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부탁은 못 들어드리겠습니다.”
나는 거의 움직이는 시한폭탄처럼 보이는 그에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괜히 기분 나쁘게 했다가 앙심을 품고 나중에 잡혀서 내 이름이라도 떠들면 큰일이잖아.
“그러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주시오. 이 항구에 있는 배들은 죄다 일레드 왕국 소속이라서 선장의 배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소. 그리고 나는 아직 휴가 중이라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요.”
그럴 리가.
아무리 휴가 중이라고 해도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사람을 그냥 방치했을 리가 없잖아.
지금도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아냐?
만약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을 누군가가 봤다면, 거래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망한 거다.
내가 아무리 모르는 일이라고 우겨도,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해도 상대가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가 잡히는 쪽이 내게는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보기만 해도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뒤돌아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노던테라, 그곳에 대한 정보를 드리겠소.”
“…!”
거짓말처럼 내 몸이 멈췄다.
돈 몇 푼 따위의 유혹이야 못 이길 것도 없다.
하지만 정보는 아니다.
노던테라,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발견하고, 내 손에 쥐어야 하는 땅.
하지만 정보를 얻는 방법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막힌 우연처럼 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은 정보라도 좋았다.
대략적인 위치와 지형 정도만 알아도 맨땅에, 아니, 망망대해에 박치기하는 것보다는 성공할 확률이 100배쯤 올라갈 거다.
“관심이 있을 줄 알았소. 젊고 능력 있는 선장이니 미지의 땅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심지어 그 땅이, 향료 제도보다 더 가치가 있다면 어떻소?”
내 반응을 본 제먼이 한결 느긋해진 말투로 쐐기를 박았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대로 떠들어도 증명할 사람이 없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심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았다.
“선장은 모르겠지만 일레드 왕국은 노던테라를 발견하고 그곳을 독점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소. 나 역시 일부는 알고 있지. 내가 말했다시피 아직 왕국에서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착각하지 마세요, 선생. 전쟁을 준비하는 이 민감한 시기에 왕립학회 소속의 마공학자를 방치할 정도로 일레드 왕국이 허술할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이번에는 그가 놀랄 차례였다.
일레드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고 기밀이었겠지.
나도 확신을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고 그냥 찔러 본 것이니 말이다.
“그걸 어떻게…!?”
그의 반응을 보니 일레드 왕국은 진짜 전쟁을 준비중인 모양이다.
도대체 어디랑 싸우려고...?
하지만 나는 놀란 마음을 숨기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관둬요, 괜히 당신과 엮여서 좋을 것 같지는 않으니. 앞으로 보지 맙시다.”
나는 크게 말하며 화장실에 가는 척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그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
일단 나와 그가 만났다는 것을 일레드 왕국이 안다는 가정 하에, 그를 어떻게 하면 빼돌릴 수 있을까?
최소한 일차원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무사히 넘어갈 리가 없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무리 일레드 왕국이라고 해도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대놓고 우리를 핍박할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
오늘도 대낮부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술고래 네이선이 약간 벌겋게 변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 받아주려고?”
“으음…. 받아주나 안 받아주나 똑같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잖아.”
“에이, 그런데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리안 혼자만의 생각이잖아.”
우르타가 회의적인 표정으로 반론한다.
이 녀석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낙관했다가는 뒷수습 자체가 불가능하다.
“흐으음…. 고드실카 호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이야기했지?”
“네, 알고는 있지만 상황이 좀 그렇네요. 고드실카 호 때처럼요.”
부선장님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지만, 내 설명을 듣고는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야지. 사실 고드실카 호도… 막말로 그때 너희를 다 죽였다면 화를 피할 수 있었겠지.”
“윽!”
“무섭게 왜 그래요….”
우르타와 네이선의 목이 움츠러들 정도로 무서운 말이기는 했지만, 부선장님 말이 맞다.
내가 왕녀를 밀항시켰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선장님이 나와 가담한 일행을 모두 죽여버렸다면 소문을 낼 사람이 없으니 고드실카 호는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살벌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박수를 한 번 치며 주의를 모은 부선장님이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무슨 기막힌 잔머리로 이번 난관을 빠져나갈 생각이냐? 한번 들어나 보자.”
“아직 조금 세세하게 다듬어야 하기는 한데….”
“대략적인 것만이라도 들어보자.”
나는 계획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를 하려다가 곧 마음을 바꿨다.
아침에야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고, 종업원도 특별히 부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손님이 너무 많았다.
이 중에 누가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테이블에 안 들릴 정도로 작게 소곤거리면 감시하는 사람에게 ‘나는 매우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꼴이다.
나는 일부러 약간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는 그냥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다들 내 얼굴을 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내 말을 들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에 이럴 때 눈치 없이 초를 치는 녀석은 없다.
우르타가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눈치가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또 귀신같이 처신을 잘한다.
“일단 배에 태워준다고 한 다음에 신고할 겁니다.”
“응?”
“어?!”
“신고한다고?”
“쉿, 쉿!”
내 말이 너무 의외였는지 모두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세 사람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자와 접촉한 것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대로 입을 다물더라도 그자가 없어지면 그냥 공격당할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자가 잡히면 우리는 누명을 쓸 일이 없죠. 게다가 잡는 데 공까지 세운다면?”
내 말에 반론을 제기하려던 부선장님의 발을 지그시 밟으며 고개를 미미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부선장님은 괜한 헛기침으로 하려던 말을 지우고 다른 말을 꺼냈다.
“…하긴 그렇지. 불쌍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자의 입장까지 고려할 상황은 아니니까 말이야.”
“리안… 진짜 나쁜 놈….”
“뭐?”
“아냐!”
내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중얼거리던 우르타가 내 날카로운 한 마디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고개를 내 저었다.
그러면서 네이선을 보니 약간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것이 뭔가 이상한 것 같기는 한 모양이다.
나는 네이선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가볍게 말했다.
“너무 고민하지 마, 어차피 너나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그냥 평소처럼 하면 돼, 평소처럼. 그 남자가 의심하지 않도록 말이야.”
“어, 그, 그래. 알았어.”
***
다음 날 아침, 나는 홀로 대구 요리를 파는 식당을 향했다.
한산하기는 했지만 두어 명의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 중에 제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사람들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조용히 식당의 문이 열리며 제먼이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한눈에 봐도 어제보다 더 초조해하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제먼 씨. 미리 식사를 주문해 두었으니 함께 식사하시죠?”
“안녕하시오, 리안 선장. 식사 말고 대답을 먼저….”
“하하,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일단 숨부터 좀 돌리시고, 아, 식사가 나오는군요.”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제먼은 잠자코 내 말을 따랐다.
하지만 식욕이 돋지는 않는지 먹는 속도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항해 중에는 이보다 못한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요.”
“아니요, 조금 식욕이…. 어? 그 말은?”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던 제먼은 힘없이 대답하다가 내 말을 이해하고 눈을 번쩍 떴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출항은 사흘 후 아침입니다. 동틀 무렵에 오트라스 호로 조용히 나오시면 배에 태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오? 고맙소! 여기! 이건 전에 주지 못한 선금이오.”
나는 그가 급하게 내미는 금화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식사하실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이만 헤어지도록 하죠. 괜히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것 없으니 말입니다.”
“그, 그럽시다.”
그는 얼떨결에 내가 내민 손을 붙잡았고,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하게 웃은 뒤, 마주 잡은 손을 몇 번 흔들고 놓아주었다.
내가 주머니에서 몰래 꺼낸 쪽지는 그의 손에 무사히 넘어간 뒤였다.
***
이틀이 지난 늦은 오후, 수리가 완료된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가 8번 부두에 나란히 정박했다.
간부들과 함께 수리된 부분을 점검하고 있는데, 지시한 일을 마친 아인델프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일은 잘 해결했어?”
“네. 내일 아침 출항 허가도 받았고, 지시하신 대로 내일 새벽에 밀항자가 오트라스 호 앞으로 오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반응은?”
내 말에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아인델프가 대답했다.
“심드렁한 반응이던데요? 마지못해 부하들을 파견하겠다고 하더군요.”
“흠…. 시간은 못 들었고?”
“네.”
나는 하늘을 보고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항구관리관은 아직 모르는 것이 확실하고, 이 이야기가 제먼을 감시하는 조직에게 들어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인원이 배치된다고 해도 한밤중,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그렇다고 첩보나 암행 훈련을 받지도 않은 사람에게 밝은 대낮에 움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제먼을 감시하는 조직이 없다면?
그러면 오히려 더 좋다.
나중에 제먼의 행적이 들통 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우리의 결백을 입증할 증인들은 자연스럽게 확보될 테니 말이다.
위험도는 오히려 더 낮아지는 셈이지.
아인델프에게 나머지 점검을 부탁한 뒤, 리버티 호의 갑판장, 왓킨을 따로 불러냈다.
“왓킨, 오늘 해가 지면 손님이 하나 올 거야. 그러니 어제 말한 대로 선미 쪽에 몰래 줄사다리 내려놓고, 직접 손님 좀 받아 줘. 어떻게 숨기는지는 이해했지?”
“물론입니다, 제독.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가...”
“지금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잘 좀 부탁할게. 갑판장 말대로 잘못하면 진짜 망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야.”
“걱정 마십시오. 그나저나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해 놓으신 겁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미리 준비해 두면 언젠가 요긴하게 써먹더라고. 자주 하던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