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군
아오, 일부러 낮에 잤는데도 오랜만에 현문 당직을 서려니 힘들고 피곤하구만.
나는 내 옆에서 바짝 긴장해 있는 가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 좀 빼, 뭘 그리 긴장하고 있어?”
“힉! 서, 선장님.”
“쉿! 선장님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나는 지금 선원 말콤이야. 실수할 것 같으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네, 넷!”
“‘응’이나 ‘알았어’라고 해야지!”
“으응, 알았어!”
아이고,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처음 생각대로 오펜을 데리고 왔어야 했나…?
하지만 나를 그냥 선원처럼 대하라니까 기겁을 하는 녀석을 데리고 올 수도 없고….
“그런데 가빈, 자네는 원래 술을 안 마셔?”
“원래는 마십니… 아니, 마시는데, 아무래도 술을 마시면 돈을 모으기 힘드니까….”
여전히 말꼬리도 흐리고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뭐 하려고? 배라도 살 거야?”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의 평민들이 돈을 모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처참한 교육 수준에 의한 저축 개념의 부족도 있지만,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재산권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처럼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힘없는 평민이 악착같이 돈을 모아봐야 삶이 윤택해지거나 신분이 상승할 확률보다 범죄자(혹은 권력자)의 맛 좋은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아껴가며 돈을 모아봐야 억울하게 가족이 씨몰살당하고 재산이 압류당하거나 어느 날 강도에게 목숨을 빼앗길 확률만 높아지는데 누가 돈을 아끼려고 하겠는가?
“어머니가 아픕니다. 아니, 아파. 동생은 아직 어린데다가 몸도 약하고. 내가 세 사람 몫을 벌지 못하면 우리는 다 죽거든.”
“아….”
나는 민망함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놈의 세상은 뭔가 좀 깊게 파기만 하면 다 비극이다.
이런 것도 다 신이 말한 대로 세상이 멈춰서 그런 건가?
그럭저럭 화제를 돌려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가빈에게 눈치를 준 뒤, 구석에 숨겨둔 부싯돌을 이용해 램프에 불을 붙였다.
이놈의 부싯돌 진짜 너무 불편하다.
테일러가 다 써버린 라이터만 있었어도….
예상대로 발소리는 우리 배 근처에서 멈추었고, 나는 램프를 들어 올려 현문 근처 부두에 서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평상복을 입은 남자와 두 명의 항구 경비대원이었다.
“누구냐!”
“오트라스 호 맞나? 선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오트라스 호가 맞기는 한데, 누, 누구신지…?”
날카로운 질문에 내가 움찔하는 척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새벽에 밀항자가 탑승할 것이라는 신고를 받고 왔다. 현문 내려.”
“헉! 아, 알겠습니다!”
나와 가빈이 부랴부랴 현문으로 사용하는 널빤지를 내려서 고정시키자, 평상복의 남자가 뒤에 선 경비병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너는 저들 뒤에 숨어서 내가 올 때까지 대기해.”
“알겠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한 경비대원이 재빨리 현문을 건너 우리 뒤쪽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저쪽에 정박한 배가 리버티 호 맞나?”
“네, 네! 맞습니다!”
“좋아, 선장 불러오고, 현문은 철거한 상태로 기다리도록.”
“선장님 말입니까?”
내가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그는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리버티 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제먼은 감시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미리 이야기한 대로 가빈에게 선장님, 그러니까 선장 역할을 하기로 한 네이선을 불러오라고 한 뒤,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제먼과 왓킨이 일을 잘 처리했겠지?
***
리버티 호 현문 쪽에서 잠시 소란이 있은 후, 평복차림의 남자는 혼자서 돌아와서 다시 현문을 내리라고 했다.
이번에는 네이선이 그를 맞이했다.
“오트라스 호의 선장, 리안입니다.”
“반갑소, 리안 선장. 귀하의 철저한 신고 정신에 대해 왕국을 대표하여 감사드리겠소. 불편하겠지만 밀항자를 체포할 때까지 협조를 부탁드리는 바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잭이라고 부르시오.”
“알겠습니다, 잭. 귀빈실을 비워두었는데 잠시 차라도 한 잔….”
“아니, 난 현장 지휘를 해야 해서.”
내가 지시한 대로 네이선이 그를 꼬셨지만, 그는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망할 놈의 잭.
이놈이나 저놈이나 툭하면 잭이로군.
가명을 지으려면 나처럼 좀 성의라도 가지란 말이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당황하는 네이선에게 몰래 눈짓을 했다.
괜히 저놈이 여기에 있어 봐야 좋을 게 없다.
어디까지나 ‘젊은 선장’이라는 컨셉에 맞는 사람 중에 그나마 얼굴이 덜 팔렸고 믿을 만한 녀석이라 대타로 내세웠을 뿐, 특별한 임기응변이나 연기실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저, 혹시 제가 도움을 드려야 할 부분이라도?”
“괜찮소. 아! 선장은 굳이 여기에 있을 필요 없소. 혹시 그자와 특별한 신호 같은 것을 약속했소?”
“아니요, 일등항해사에게 전달한 대로 동틀 무렵에 이쪽으로 오라고만 했습니다.”
“그럼 선장은 쉬셔도 상관없겠군. 나도 그자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이선의 확인 질문에 그는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마, 말콤. 최대한 협조해 드리게. 특별 수당은 따로 챙겨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선장님.”
나와 눈빛을 주고받은 네이선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선장실로 향했다.
네이선이 완전히 사라지자, 잭이 나를 보며 물었다.
“말콤이라고? 선장이 꽤 믿는 선원인 모양이군?”
“네? 아, 아무래도 선장님 밑에서 꽤 오래 일해서….”
“흠, 선장이 이름을 알 정도라. 그런데 그 램프는 원래 켜 놓는 건가? 다른 배들은 켜지 않는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이건 선장님 지시로!”
“그렇다면 끄지. 밀항자가 괜히 이상한 눈치를 챌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램프를 끄고 다시 구석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남자 네 명이 함께한 공간은 숨 쉬는 것도 뻑뻑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해가 뜨려면 얼마나 남았지? 벌써 죽을 맛이군….
아무래도 가빈에게 수당을 넉넉히 챙겨줘야겠다.
***
당연하게도, 해가 완전히 뜨고 선원들이 하나씩 나와 갑판을 어슬렁거릴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쩍 잭의 얼굴을 훔쳐보니 눈에서 독기가 줄줄 흐르는 것이 한바탕 난장을 피우게 생겼다.
때마침 에른스트 부선장과 아인델프 일등항해사를 뒤에 단 네이선이 선원들을 모두 선실로 들어가라고 내쫓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 음… 잭 씨?”
“리안 선장.”
“밀항자는 잡으셨는지….”
“잡았다면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러고 있겠소?”
네이선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버버를 시전했다.
“그, 그럴 리가, 분명히 그, 그렇게 전달을 했는데….”
“제기랄, 그자는 이미 밤부터 자신의 숙소에서 보이지 않았소. 선장, 똑바로 말하시오. 뭘 숨기는 거요?”
대놓고 짜증을 내는 잭에게 내 신호를 받은 네이선이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말씀이 과하시군요. 거, 어디 소속인지 대충 감은 오는데, 아무리 그래도 타국 상선의 선장에게 이래도 되는 거요? 나는 최대한의 협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봐요, 리안 선장. 협조를 하려고 했다면 그자를 잡아서 왔어야지!”
“뭐?! 이보쇼, 내가 일레드 왕립학회 소속 마공학자를 두들겨 패고 포박해서 ‘이놈이 밀항하려고 했습니다!’라고 했으면 당신들이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내가 바보로 보이는 거요?”
내가 몇 번이나 암기시킨 반론을 네이선이 훌륭하게 주워섬기자 할 말이 없어진 잭은 작은 목소리로 욕을 지껄이며 고개를 돌렸다.
좋아, 지금이다.
“이만 하선해주시오. 우리도 이제 출항 준비를 해야 하니.”
“뭐라고?”
“이미 교역품은 어제 다 적재했고 출항허가도 얻었으니, 이만 출항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했소.”
그때, 멀리서 뛰어온 경비대원 하나가 부두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잭에게 보고했다.
“수사관님, 지금까지 그자의 숙소에 드나든 자는 없고, 역시 숙소는 비어있습니다!”
“이런 젠장.”
정말 화가 났는지 난간을 세차게 내리친 잭이 이를 갈면서 네이선에게 통보했다.
“일레드 왕국 정보부 수사관의 권한으로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의 출항을 24시간 연기하겠소. 왕국의 반역자를 잡기 위한 것이니 협조를 부탁드리오.”
“뭐?! 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발작하려는 네이선을 에른스트와 아인델프가 양팔을 잡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에른스트가 네이선을 끌고 자리에서 사라지자, 아인델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사관님, 수사관님의 지금 행동은 일레드 왕국과 벨로키나 왕국 간의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트라스 호는 벨로키나 왕국의 스코타 후작 각하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스코타 후작이라는 말에 잭의 눈매가 움찔했다.
외교적 문제라는 말에도 여유롭던 녀석이 움찔하는 것을 보니, 후작의 힘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쪽은?”
“일등항해사 아인델프입니다.”
“좋소, 아인델프 일등항해사. 나도 내 무례를 사과하지. 하지만 우리 역시 사안이 심각하니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에 대한 수색은 해야겠소.”
“…….”
아인델프가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자 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수색이 끝나고 이상이 없다면 출항 연기는 취소하겠소.”
“좋습니다. 그걸로 깔끔하게 혐의가 벗겨진다면 어쩔 수 없지요.”
“크흠.”
그도 답답하겠지.
요주의 대상은 종적이 사라진 데다가, 제보를 받고 매복한 곳에는 대상이 코빼기도 안 비췄으니 뭐.
하지만 이쪽도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어쩔 수 없지.
***
잠시 자리를 비운 잭은 경비대원과 평상복을 입은 남자가 뒤섞인 십여 명의 인원을 이끌고 오트라스 호에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사람이 숨을만한 곳이면 닥치는 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선원들의 걸쭉한 욕설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들에게 시비를 거는 정신 나간 선원은 없었다.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것이다.
나는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은근슬쩍 그들이 찾는 곳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선장으로 알려졌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나를 보는 선원들이 움찔움찔하는 것만 제외하면 꽤 자연스러웠다.
역시 내가 직접 리버티 호로 가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나마 나를 자주 볼 수 있는 오트라스 호 선원들도 이 모양인데, 리버티 호 선원들은 더 할 것 아냐?
내가 리버티 호가 잘 보이는 선미 쪽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씩씩거리는 잭이 일행들을 이끌고 배에서 떠났다.
그리고 그 뒤를 아인델프와 행크가 따르고 있었다.
선미 갑판에 서서 리버티 호로 몰려가는 잭 일행을 구경하고 있는데, 리버티 호 선수에 왓킨의 얼굴이 보였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한쪽 팔을 위로, 한쪽 팔은 아래로 쭈욱 펼치며 기지개를 켜는 척을 했다.
그리고 왓킨을 보자, 그가 몸을 돌려 현문 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기지개를 켤 때 한쪽 팔이 올라가면 1번, 두 팔이 올라가면 2번, 두 팔이 아래로 내려오면 3번 장소라는 뜻이었다.
***
두 배를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밀항자인 제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잭은 별수 없이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잭이 떠남과 동시에 우리는 바로 출항절차에 들어갔다.
괜히 더 있다가는 다른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차라리 빨리 배를 띄우겠다는 말에 잭 역시 대답할 말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찾지 못했고, 이미 출항한 배에 밀항자가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영으로 배에 접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고, 대낮에 보트 따위로 접근하는 것을 다른 배나 항구에서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가 놓친 것이라면 닥터 롱베르가 오트라스에서 리버티 호로 옮겨 탔다는 것이지만, 만약 알았다고 하더라도 밀항자와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었으리라.
오트라스 호도, 리버티 호도 환자들이 바글바글하거든.
***
“선원들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일레드 왕국 정보부와 마찰이 있었다구요?”
“마찰은 무슨, 괜한 누명을 쓰기 싫었을 뿐입니다.”
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은 조나단을 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진짜 선원들 중에 첩자라도 심어둔 건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거야?
“정보부 수사관이 직접 왔다고 하던데요? 밀항하려는 마공학자를 잡으러 왔다고.”
“그런 자가 접근을 해서 내가 신고했소.”
“어째서요? 학회 소속 마공학자라면 본국으로 빼돌릴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 될 텐데요?”
벨로키나 왕국이나 후작에게는 좋은 일이겠지.
내가 그들 좋으라고 목숨을 걸겠어?
후작에게야 비밀로 할 수 없지만, 역시 이놈에게는 숨기는 것이 좋겠다.
“엄청난 일이나 마나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쩌란 거요? 그럼 그쪽이라도 다시 에쉬노르 항구에 내려드릴까?”
“그런 의도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봐요, 조나단 씨. 태우지도 않은 남자를 잡겠다고 정보를 준 우리를 그렇게까지 귀찮게 한 녀석들이오. 만약 태웠다면 지금 나나 당신이 이렇게 평온하게 이야기나 나눌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시오.”
“그래도 제게 상의 정도는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상의? 당신과? 왜? 잊은 모양인데, 나는 후작 각하께 당신을 태우라는 명령도 못 받았고, 당신은 분명히 항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이건 항해에 관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콰앙!
“그렇다고 당신이 결정할 일도 아니지!”
내가 테이블을 양손으로 내리치며 벌떡 일어서자, 조나단 역시 질수 없다는 듯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서 나를 노려보았다.
똑똑똑.
“선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노크를 한 행크가 정중하지만 약간 빠른 말투로 내게 물었다.
“아니야, 돌격대장. 무슨 일이야?”
“선원들 훈련 관련해서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 문 쪽을 가리켰다.
“들으셨죠? 일이 바쁘니 이만 나가주시죠.”
“……알겠습니다.”
그가 나간 뒤 안으로 들어온 행크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야, 타이밍 좋게 잘 와줬어. 선원들 분위기는 어때?”
얼마 전까지 일반 선원이었던 행크는 간부들 중의 누구보다도 선원들의 동향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펜 앞에서조차도 선원들은 말을 조심하는 편이니 말이다.
이건 오펜을 편하게 대하는 것과 조금 다른 문제였다.
누가 봐도 오펜은 선장인 나의 총애를 받는 ‘선장 편’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습니다. 정보부나 경비대를 욕하는 녀석은 많지만 일단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니까요. 대략적인 내용이 퍼지면서 선장님의 판단력에 감탄하는 녀석도 있구요.”
행크의 말에 나는 약간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좀 안 좋은데….
나 사실 제먼 빼돌렸단 말이야.
지금 뒤에 따라오는 리버티 호 한구석에 탑승… 그걸 탑승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오고 있을 걸?
마공학자라고 무슨 마법을 써서 몸을 강화하고 그런 것은 아닐 테니 지금쯤 상당히 고생하고 있겠지만, 걸려서 다 같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뭐.
힘들어도 일레드 왕국의 경비 구역을 벗어날 때까지는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다.
혹시 몰라 닥터도 보내 놨으니 별일 없을 거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