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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09화 (210/420)

209화. 마도구가 안 팔리는 이유

우리는 제먼이 꺼내놓은 기괴한 디자인의 ‘다기능 담요’에 모여들어 호기심을 푸는 중이었다.

크기는 대략 가로 120cm에 세로 200cm가량, 그리 크지는 않았다.

두께도 그리 두꺼운 편은 아니었고, 심지어 한쪽 면은 재질이 약간 뻣뻣해서 ‘이불, 담요’라는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런 주제에 무게는 상당히 무거워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이쪽은 방수기능을 넣으려고 재질이 이런 겁니까?”

“으음, 나도 부드러운 재질을 쓰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마력 효율이 좋지 않아서 말이오. 대신 방수기능은 확실하다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했소.”

방수가 잘된다니 우비 대용으로 쓰면 좋기는 하겠다.

“그런데 여기 이 부분은 뭡니까? 안에 모래 같은 것이 들었는데.”

“앗, 거기는 만지지 마시오! 마력을 보급하는 마정석 가루가 들어간 곳이야. 괜히 찢어지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거든.”

마정석이라는 말에 나는 찔끔하며 얼른 손을 떼었다.

마법의 에너지원이 되는 마력을 담고 있다는 마정석은 생산량이 굉장히 적었고, 덕분에 가격도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략물자로 지정될 정도로 일반인이 보기 힘든 것이었다.

“마정석이 들어가요?”

내 질문에 제먼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도구에 마정석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그래도 이건 효율이 좋아서 약간의 가루만 넣어도 거의 20시간이나 유지되지!”

이쯤 되면 모든 사람이 궁금할 만한 질문이 생긴다.

“혹시 이거… 제작에 얼마나 들었습니까?”

“가격이라, 딱히 신경 쓰고 만든 녀석은 아니라서. 어디 보자…. 대충 25만 로스 정도 들어간 것 같소.”

“어, 얼마요?”

“으허허허….”

미친, 25만이라니?

아무리 봐도 사이즈 애매한 보온 담요 수준인데 가격은 마차 한 대 값이다.

발열 기능이 있다고는 하는데 대충 손난로 수준에 불과하고, 굳이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쓸 필요가 있나 싶다.

갑자기 몰로스 제국에서 몇십 년째 개발 중이라는 마법 포탄이 생각나는군.

그것도 가격이 눈알 튀어나오도록 비쌌지 아마?

가격만 괜찮으면 우비 형태로 몇 개 제작을 의뢰할까 했던 나는 깨끗하게 포기하고 그 끔찍한 가성비의 물건을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뭐, 어찌 되었건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다른 것보다 건강이 가장 걱정되었거든요.”

“그거야 선장이 자세히 써 두어서 미리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대체 어떻게 안 것이오? 스스로 멍청한 인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선장의 치밀한 계획을 보면서 몇 번이나 감탄을 했는지 모르오.”

결국 참지 못한 발드 선장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도 궁금합니다. 저는 선장인데도 리버티 호에 그런 장치가 되었는지 몰랐단 말입니다. 심지어 매일 그 장소를 갔는데도 말이죠.”

이 말을 들은 왓킨은 약간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하하,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청소할 때 발견했거든요!”

“어? 이봐, 갑판장. 그런데 왜 나에게 보고를 안 했나?”

발드 선장이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를 추궁하자, 얼굴이 벌겋게 변한 왓킨이 우물쭈물하더니 작게 대답했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다른 배들과 좀 다르다고만 생각했죠. 애초에 화장실 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뭐가 중요합니까?”

왓킨의 말이 워낙 설득력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발드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의 콩트 같은 상황을 보다가 손을 들어 상황을 진정시켰다.

“두 사람 다 그만 해요. 나도 만들어 놓고 깜빡 잊고 있었으니까. 제먼 씨가 아니었다면 나도 계속 잊고 지냈을 겁니다.”

그렇게 한동안 밀항과 사람을 숨기기 좋은 장소, 이번 수색이 얼마나 빡빡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제먼이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선장.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소. 그때 그 쪽지로, 나보고 집에서 탈출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만 해서 시장의 모종의 장소에 갔다가 오라고 했지. 그 장소의 입구와 출구까지 그려서 말이오. 이건 마치 선장이 내 탈출을 미리 준비한 것 같아서 솔직히 좀 두려운 생각까지 들던데….”

“이제 다 끝났으니 말씀드리지만….”

***

노던테라라는 화려한 미끼에 넘어간 나는 제먼을 받아주기로 마음을 먹은 후에도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만약 그가 감시를 당하고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감시를 떼어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감시를 떼어 낼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예전에 에쉬노르 항구의 시장에서 뒷골목 사람들의 추격전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가게에 뒷문이 있는 것은 흔하지만, 그 가게는 뒷문의 위치가 교묘해서 감탄했더랬지.

그래서 추격전이 끝나고 그 가게의 뒷문을 이용해 봤는데, 특별히 감시하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기했었다.

그래서 제먼에게 전해 준 쪽지에 그 가게의 위치와 뒷문 위치를 알려주고, 탈출 준비가 끝나면 반드시 그곳을 통과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감시 인원들을 떼어내라고 알려 준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감시 인원을 떼어내도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감시 인원이 가게 안까지 들어오지 않고, 뒷문을 모른다고 하면 30분쯤 되겠지만, 감시 인원이 가게 안까지 따라 들어왔고 뒷문의 존재를 안다고 하면 길어봐야 1분 정도.

그러니까 제먼은 뒷문을 통과하고 1분 안에 완전히 사라져야만 했다.

그런데 무슨 첩보 요원도 아니고 학자에 불과한 제먼에게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즐거우셨습니까?”

내 짓궂은 질문에 제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 굳이 꼭 그곳이어야만 했나?”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은 몇 군데 있지만, 가장 가까운 곳은 거기더라구요.”

“어흠….”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는 제먼과, 대놓고 낄낄거리는 왓킨, 피식거리는 발드, 눈이 반짝거리는 롱베르…. 응? 아니, 저 아저씨는 눈빛이 왜 저래?!

내가 제먼에게 몸을 숨기라고 한 곳은 시장 근처의 창관(娼館).

여러 가지 취향을 맞춰줄 수 있는 다양한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그만큼 제먼같은 멀쩡해 보이는 신사(?)가 들어가도 의심받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물론 내가 가본 것은 아니고, 그냥 들은 이야기다.

진짜야.

하여간 거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해가 질 때까지 거기에서 자는 척을 하다가 해가 지면 바로 리버티 호로 오라고 한 것이다.

아마 처음 제먼을 놓친 후에는 위에 보고를 하기보다 일선에서 찾으려고 노력할 터였고, 해가 질 때쯤이면 윗선까지 보고가 되며 난리가 날 터였다.

그렇다면 그때 어떤 식의 대응을 할까?

당연히 제일 먼저 봉쇄되는 곳은 그의 거주지이고, 그리고 그가 자주 가는 곳이 밀착 감시 대상이 될 것이다.

종적을 놓친 곳은 시장이지만, 이미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시장 안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변태들이나 주로 가는 창관이라고?

마공학자라는 드높은 자존심을 생각하면 대낮부터 거기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걸?

그러니까 만약에 발각이 되더라도 제먼이 변명할 여지는 충분했다.

괜히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 싫어서 일부러 그렇게 뒷문을 이용했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

물론 마공학자 중에 변태가 없다는 뜻이 아니고, 마공학자쯤 되면 변태 짓을 해도 굳이 그렇게 공개된(?) 곳에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마 제먼도, 내가 쪽지 내용을 따르지 않으면 절대 받아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운이 좋았는지 내 예상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제먼은 무사하고, 우리는 ‘자진 신고’라는 강수를 둠으로써 혹시 모를 오해나 의심의 여지를 지워버렸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제먼이 혀를 내두를 법도 하지.

“뭐, 이제 제 배인 오트라스 호로 모실 수도 있지만, 이쪽에 귀찮은 녀석이 하나 있어서 말이죠. 발드 선장님, 귀빈실은 비어있죠?”

“물론입니다, 제독. 입항할 때마다 청소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먼 씨는 당분간 이름은 말콤으로 바꾸시고 이곳에서 델라 항구까지 리버티 호를 타기로 한 손님으로 행세하시죠. 발드 선장님이 재량으로 태우신 것으로 하시구요.”

“알겠습니다.”

나는 제먼에게 가명을 쓰고 이곳에서 탄 것으로 행적을 위장하자고 말하고는 발드 선장에게 제먼을 부탁했다.

사진이 없는 세상이라, 이름과 행적만 바꿔도 말단의 첩보원들은 당사자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제먼 씨?”

“말씀하시오, 리안 선장. 아니, 제독이라는 말이 맞겠군. 허허허.”

내게 대답하던 제먼이 발드 선장을 힐끔 보고는 ‘제독’이라는 말로 정정했다.

오, 외부인 중에 최초로 나를 ‘제독’이라고 불러주신 분이다.

앞으로 잘 모셔야지.

“약속하신 잔금은 발드 선장에게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생은 발드 선장이 하는 것이니.”

내 말에 제먼은 고개를 끄덕였고 발드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고생한 사람이 돈을 받는 게 맞잖아요. 선장님이 잔금 받으셔서 고생한 사람들 상여금 좀 쥐여주세요.”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고, 제먼 씨는 저와 저녁 식사 함께하시죠. 다른 사람들은 이만 돌아가도 좋고.”

애초에 금화 한두 개가 욕심이 나서 제먼을 받은 것이 아니다.

제먼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아도 제먼이 사라지면 일레드 왕국의 의심을 살 위험이 높았고, 무엇보다 노던테라에 대한 정보가 욕심이 났기 때문이지.

정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법,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으니 둘만 있을 때 슬쩍 정보를 넘겨받아야겠다.

***

“식사는 어떠셨습니까? 그래도 항구에 들어와서 제법 괜찮은 편이었는데요.”

“하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리 좋지는 않소만, 그래도 이리저리 들었던 것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소. 그보다 차라니, 제독에게 이런 고상한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소.”

“고상이랄 것까지 있습니까, 저도 평소에는 술을 마십니다.”

향이 진한 것은 좋은데, 이 세상의 차는 너무 쓰다.

녹차에 진한 커피의 쓴맛을 더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입을 개운하게 하는 데는 최고지.

나는 가끔 마시지만, 배를 타는 다른 사람들은 중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주 즐기지는 않는다.

너무 비싸기도 하고….

“이제 약속하신 밀항 비용을 받아볼까요?”

내가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작은 해도를 가져와서 펼쳐놓자, 피식 웃은 제먼이 물었다.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소. 다음 목적지가 벨로키나 왕국의 델라 항구라고 하던데, 혹시 제독이 아는 사람 중에 내 신변을 보호해줄 만한 사람이 있겠소? 염치없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두려움이 생겨서 말이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전부터 몇 번이나 생각해봤지만, 다른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방법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우연찮게 스코타 후작 각하와 안면이 있습니다. 이번 항해가 끝나면 한번 찾아가야 하니,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작이라면 제먼 씨를 보호할 능력은 충분하고, 능력에 맞는 대우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스코타 후작이라면, 오!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고맙겠소. 그럼 제독이 원하는 것을 드려야겠지. 어디 보자….”

잠시 해도를 보던 제먼이 약간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선원이 아니오. 딱히 항해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서 이런 지도를 보면서 뭔가를 설명하기가 좀….”

이미 예상했던 말이기 때문에 나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노던테라는 대륙입니까,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입니까?”

“탐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레드 왕국이 확보한 지역은 넓은 땅인 것으로 알고 있소. 대륙이거나 큰 섬이겠지.”

“그렇다면 위치는 대략 이쯤…. 혹시 일레드 왕국의 왕복선이 어디서 출발하고 갔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십니까?”

“왕국 동해안의 1함대 본거지인 레비테 항구에서 탐사를 진행하는 것 같소. 기간을 잘 모르겠지만, 일 년에 두 번 정도 교역이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소.”

조금 애매하군.

일 년에 두 번만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 왕복 6개월이 걸린다는 뜻은 아니다.

노던테라에서 보내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바다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배를 띄울 수 없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지.

만약 왕복 6개월이 걸린다면, 그러니까 편도가 적어도 2개월쯤 걸린다고 하면, 사실상 일레드 왕국을 경유하지 않고는 노던테라에 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내해 안쪽에서 출발하면 편도만 4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아무리 배짱이 좋은 선원이라도 편도 4개월짜리라면 욕설을 내뱉고 내뺄 테니까.

“정보가 많이 애매하네요. 혹시 대략적인 형태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디 보자, 거리는 정확하지 않지만, 전에 슬쩍 본 기밀문서를 보면 대략 이런 형태였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여기, 이쯤을 기점으로 탐사를 못 하고 있는 모양이오.”

나는 제먼이 찍어 준 지점을 응시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가 찍어준 위치는 에쉬노르 항구에서도 한참 동쪽인 부분, 이러면 내 계획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계획은 울부짖는 바다 안쪽에 있었던 섬을 중계점으로 해서 북쪽으로 향하는 것인데, 제먼의 말대로라면 섬의 정북 방향은 노던테라에 속한 땅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섬을 중계점으로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방향을 북쪽이 아니라 북동쪽으로 잡고 가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우회가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는 울부짖는 바다를 우회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에쉬노르 항구에 입항하기 전에 만났던 폭풍 덕에 확인한 대로 울부짖는 바다의 범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섬의 북쪽 상황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확실한 것은, 내가 표류했던 섬을 중계지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내해에서 노던테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듣기로 그곳은 대륙보다 상당히 추운 곳이고, 엄청난 양의 침엽수림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오. 그 목재가 아마 지금 최고의 목재로 취급받는다지? 그리고 야생동물들의 모피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런 정도로 일레드 왕국에서 그렇게까지 기밀을 유지할 리가 있겠소?”

“그럼?”

계획을 수정하느라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나는 제먼이 풀어놓는 설명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바로 마정석이오. 엄청난 크기의 마정석 광산이 있다고 하더군. 알다시피 대륙의 마정석 광산은 얼마 되지도 않지만 이제 그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요. 그런데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던 대륙이니 당연히 엄청난 양의 마정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다구요?”

“뭐, 원주민이 약간 있는 것 같은데 그 정보는 얻기 어려웠소.”

별것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제먼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게 다 지구 지식의 잔재다.

지구에서도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 자신들보다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얼마나 많은 민족과 문화권이 멸망당했는가?

지구의 14세기 정도 사회, 문화를 가진 이곳도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향료 제도의 원주민들도 대부분 몰살당했다지 않는가.

나름 최고의 지성을 가진 엘리트라는 제먼조차 원주민은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표류했던 섬은 다른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니, 내가 가지지 못하면 영원히 비밀로 묻어두는 쪽이 좋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그 섬을 발견하고 페리아 족과 조우한다면…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 섬’, ‘내가 표류했던 섬’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뭔가 적당한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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