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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13화 (214/420)

213화.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하하하하….”

쾌활하게 인사를 마친 제먼의 어색한 웃음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웃음을 배경으로 파르르 떨리는 눈가와 비틀려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막고 있는 입꼬리가 보기에 아주 좋다.

아주 상쾌한 반응이야, 좋아.

“리안 선장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조나단 씨?”

“…설명이 조금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노려보는 눈초리가 꽤나 매섭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한껏 올라간 내 기분을 망칠 수는 없지, 흐흐흐흐.

어색한 웃음의 유효기간도 끝나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 되어버린 제먼 씨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국에서 무려 왕립 학회 마공학자를 빼내온 일을 남의 공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후작에게 빅딜을 신청해야 하는 판이니, 내 손패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저는 제 마차에 신원도 모르는 사람을 태우고 싶지 않습니다.”

딱딱한 표정으로 조나단이 최후의 반항을 시도했지만, 딱 그 정도일 뿐이다.

지금까지 제먼의 존재를 몰랐다는 점에서 조나단은 이미 이 싸움에서 진 것이니까.

“말을 이상하게 하시는군요? 제가 누구와 동행하는지는 온전히 제 재량입니다. 그리고 마차가 조나단 씨의 것은 아니잖아요? 후작 각하의 문장이 이렇게 박혀있습니다만?”

내가 능글맞게 웃으며 마차의 문에 선명하게 새겨진 후작가의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자, 조나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쾌하다.

그동안의 지랄 맞은 항해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야.

나는 내친김에 무너지는 조나단의 멘탈에 스트라이크 하나를 더 박아 넣었다.

“아! 혹시 낯선 사람과 동행이 불편하시다면 저는 마차를 따로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조나단이 후작에게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몰라도, 나와 따로 복귀했다가는 무능한 놈으로 낙인찍혀서 버려지지 않을까?

잠시 나를 노려보던 조나단은 결국 마차의 문을 열었다.

멍청한 녀석은 아니다 보니 계속해봐야 자기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 것이다.

조나단이 먼저 마차에 들어가고 내 옆에서 쭈뼛거리던 네이선이 냉큼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아, 이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제먼을 조나단 옆에 앉힐 수는 없는 거잖아?

“하하, 먼저 타시죠, 제먼 씨.”

“아니요, 선장이 먼저….”

아직 더울 시기는 아닌데 식은땀이 살짝 배어 나온 이마를 보니 새삼 더 미안해진다.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암.

생각해보니 그 꼴을 보고도 제먼이 먼저 들어가서 네이선 옆에 앉는 것도 민망하겠다 싶어, 나는 사양하지 않고 먼저 마차에 들어갔다.

역시나 네이선은 조나단의 대각선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있다.

“저리 붙어 이 자식아.”

“왜, 왜요?”

“제먼 씨랑 조나단 씨가 마주 보고 가게 할 셈이야?”

“아….”

네이선은 풀죽은 표정을 하고는 마차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평소보다 쪼그라든 어깨가 조금 처량해 보인다.

내가 조나단의 옆자리에 앉을 때쯤, 제먼이 쭈뼛거리며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4인승 마차이기는 해도 내부는 꽤나 넓게 만들어진 고급 마차라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살결을 느끼면서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에 성인 남자 네 명이 앉아있는데 답답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마차를 빌려온 당사자가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다면 말 다 했지, 뭐.

후작 저택까지는 조용히 갈 수 있겠군.

***

언제는 예상대로 된 적이 있나 싶지만, 이번에도 역시 내 예상은 틀렸다.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조나단은 자기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온화한 얼굴로 제먼에게 말을 건 것이다.

아마도 후작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제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낼 생각이겠지.

달리는 마차 안이 대화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을 못 할 수준도 아니고 제먼도 지은 죄(?)가 있다 보니 대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뭐, 제먼에게 ‘대답하지 마세요.’라고 할 명분도 없었고….

“제먼 씨라고 하셨던가요? 제가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그러는데, 혹시 소개를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하하하, 네, 그러니까….”

입맛이 썼다.

분명히 멘탈이 나가서 후작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할 줄 알았는데.

말꼬리를 흐린 제먼이 애타게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요구해 왔다.

쩝….

“제먼 씨는 벨로키나 왕국에 망명하기 위해서 제게 밀항을 요청하신 분입니다. 기밀을 요구해야 하는 일이라서 제가 리버티 호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내 대답에 조나단의 표정은 다시 냉랭하게 바뀌면서 나를 향해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저는 제먼 씨에게 여쭤본 것 같은데….”

“일단 제가 지금은 제먼 씨를 보호하는 입장이니 소개 정도는 제가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뻔뻔하게 나가야겠다.

내가 이놈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와는 별개로, 조나단은 충분히 똑똑한 녀석이다.

괜히 이런저런 정보를 마음껏 캐게 놓아둘 수는 없지.

“하, 제가 후작 각하의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 마차는 후작 저택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보호까지 한다고 하십니까? 선장님의 일은 이미 끝난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여기서부터는 후작가 사람인 제가 보호자를 칭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먼 씨는 벨로키나 왕국에 망명하고 싶으신 것이지, 후작 각하께 몸을 의탁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왕국을 대표해서 제먼 씨를 맞이할 자격이 있는 후작 각하께 제먼 씨를 인도하기 전까지는 제가 책임을 지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뭐지? 표정이 왜 저래?

“그렇군요. 그렇다면 후작 각하를 모시는 제 입장에서는 후작 각하께 소개할 사람에 대해 최대한 알아보는 것이 도리겠지요? 일단 망명하시려는 분의 정체와 망명 사유를 좀 알아야겠습니다만?”

쩝, 확실히 만만한 녀석은 아니야….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어차피 조나단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 이 정도 정보는 넘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제먼 씨는 일레드 왕국의 마공학자십니다.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일레드 왕국에 회의를 느끼고 벨로키나 왕국으로 망명하고자 하시죠. 이만하면 답이 되었습니까?”

대답은 내가 했지만 ‘마공학자’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조나단의 눈길은 제먼 씨를 향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제먼 씨. 인사가 너무 늦었군요. 스코타 후작 각하를 모시는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인 망명을 선택하셔야 할 정도면 일레드 왕국에서 꽤 높은 위치셨겠군요. 실례지만 소속이 어디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반갑소, 조나단 씨. 그러니까….”

어색하게 인사를 마친 제먼 씨가 슬쩍 내 눈치를 보길래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제먼 씨는 왕립 학회 소속 마공학자시오. 이만하면 후작 각하께서 직접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겠소?”

“으음… 뭐, 그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왕립 학회 소속이셨다면….”

아, 오늘의 마차 여행은 유독 더 힘들게 생겼다.

***

순간적으로 내가 발을 삐끗해서 비틀거리자, 옆에서 걷던 네이선이 급히 내 팔을 잡았다.

“괜찮아?”

“어, 고맙다. 괜찮아. 조나단은?”

“아까 다른 길로 빠지던데?”

“흠, 다른 곳에서 보고를 받겠다는 것인가?”

“뭘?”

“아냐.”

후작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전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이 조나단과 눈치 게임을 하느라 정신력이 다 소모되어 버렸다.

혹시 이전에 방문했을 때처럼 쉴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앞장서서 안내하는 집사의 꽁무니를 쫓아 도착한 곳은 후작의 집무실이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괜히 감금해두고 반응을 살피거나 하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제기랄….

“어서 오게, 리안 선장. 그렇지 않아도 꽤 늦어져서 걱정하던 중이었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지시하신 일에 대해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내가 시킨 일 때문이라? 그게 일레드 왕국을 돌아올 정도의 일이었던가?”

어휴, 이 사람의 정보력은 도대체가….

우리가 기항하는 항구마다 쉰 시간도 있고, 배 자체가 절대적인 속도로 보면 육상보다 느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육상에서 배보다 빨리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배는 느리더라도 밤낮없이 움직이며, 육상보다 지형의 영향도 덜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작이 우리가 일레드 왕국을 들러서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정보망이 그만큼 치밀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시논 섬의 보안 수준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도저히 뭔가를 알아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잠깐, 그보다 선장 옆에 계신 분에 대한 소개가 먼저일 것 같은데? 보아하니 자네 부하는 아닌 모양인데.”

좋지 않다.

벌써부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름을 자기가 가져가려고 하는 걸 봐라.

아 참, 네이선은 들고 있는 물건이 있어서 집무실 밖에서 대기 중이라, 지금 내 옆에는 제먼 씨 밖에 없다.

“네? 아, 이쪽은 제먼 씨입니다. 일레드 왕국 왕립 학회 소속 마공학자로, 망명을 원하셔서 후작 각하께 소개를 시키고자 모시고 왔습니다.”

“왕립 학회 소속 마공학자시라? 이거, 귀한 분을 모시고 왔군. 반갑소,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조금도 놀랍지 않다는 표정으로 놀라움을 가장하며 후작이 제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접견실에 들어오며 약간 굳어있던 제먼은 후작이 말을 걸자 오히려 약간 긴장이 풀린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스코타 후작 각하. 제먼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나라에 제 인신의 안위를 부탁하고자 하는데, 작은 도움을 베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물론이오, 제먼 씨. 우리 왕국은 언제나 현자를 환영하지.”

활짝 웃으며 제먼을 환영하던 후작이 갑자기 애매한 미소로 표정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 당장 공식적으로 제먼 씨를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일이오. 물론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지금 당장이 문제겠지. 괜찮으시다면 내 저택에서 머무시겠소? 정식 망명이 끝날 때까지 보호해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신 것은 다 준비해 드리리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후작 각하.”

후작의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본래 목적 자체가 제먼이 후작 저택에 머물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셋 중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지 않는 것뿐이지.

“허허허, 감사는 무슨! 집에 현자를 모시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니 내가 더 감사할 일이지. 이런,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을 테고 여행에 피로도 쌓였을 테니 조금 쉬시는 것은 어떻겠소? 내 사람을 시켜 목욕물을 데워두라 하였소.”

언제 목욕물을 데우라고 시켰겠어?

그냥 하루 종일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겠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후작의 말이 명백한 축객령이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외부인인 네가 듣는 것을 원치 않으니 이 방에서 나가달라는 뜻이 되겠다.

“그것참 반가운 이야기군요. 감사합니다, 각하.”

후작의 말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한 제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우아하게 후작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정말 고맙소, 리안 선장. 덕분에 이렇게 안정을 찾게 되었구려. 내 언젠가는 꼭 이 답례를 하겠소.”

“아닙니다, 제먼 씨. 어디까지나 돈을 받고 한 의뢰니까요. 부디 앞으로는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오. 조만간 좋은 모습으로 다시 봅시다. 그럼 이만.”

어느새 우리 근처로 다가온 시종을 따라 제먼이 떠나자, 침묵을 유지하던 후작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내가 사람을 잘 본 모양이야.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 앉지, 리안 선장.”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그래, 일단 편지를 좀 보고 싶군.”

“네.”

나는 품 안에 고이 모시고 온 시논 총독의 편지를 공손하게 후작에게 건네주었다.

편지를 받은 후작은 날카로운 눈으로 편지 봉투 전체를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봉인을 뜯었다.

…괜히 봉인 뜯어보겠다고 장난쳤다가는 큰일 날 뻔했군.

내가 앉은 위치에서 편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리 내용이 길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후작은 금방 편지를 다시 접어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고 돌아왔다.

“궁금하지 않은가?”

“네? 무엇이…?”

“편지의 내용 말일세. 단 한 번도 묻지 않는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제게 필요한 내용이라면 각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굳이 알아봐야 명만 재촉할 뿐이죠.”

“으하하하, 그래, 좋은 자세로군. 이번에 조나단과 꽤나 불편했다지?”

“으음, 그것이….”

뭐야?

우리가 조나단보다 먼저 만난 것 아니었나?

다른 길로 갈라지기는 했어도 우리는 바로 접견실로 온 것인데?

슬쩍 네이선을 보니 녀석도 당황했는지 눈이 두어 배쯤 커졌다.

“젊은 사람들끼리 투닥거리는 일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두 사람은 감정이 꽤 상한 것 같더군?”

“어디에서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조나단의 능력과는 별개로, 그는 손님으로서의 자세를 지키지 못하더군요. 각하께는 우습게 보이실지 몰라도 저는 선장입니다. 권위가 무너진 선장이 이끄는 배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죠.”

“그놈이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 뭐, 그렇다면 다른 일을 시켜야겠군. 그건 그렇고,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화제 전환 속도가 눈이 부시구만.

잠깐만 정신 놓았다가는 끝까지 휘둘리게 생겼다.

“그 내용이 저와 관련이 없다면 굳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하, 서신의 내용이 무엇이건 시논 총독을 믿으시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오, 자네. 그 말은 꽤 선을 넘은 것 같네만?”

말은 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그의 표정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좋아, 아직까지는 괜찮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시논 섬의 보안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죠.”

“뭘 알아냈나?”

“시논 섬이 외부인에게 무엇인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과, 최소한 일개 함대 급의 해군 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후작의 눈빛이 변했다.

“함대 급의 해군 전력이라? 확신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함대라…. 최소한 20척 이상의 전투함이라는 뜻인데.”

“물론 일레드 왕국이 내해에서 운용하는 2함대나 3함대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함대가 아닐까 합니다만.”

“어째서?”

“각하께서는 일레드 왕국 함대의 움직임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후작은 계속하라는 듯 고갯짓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각국의 해상전력은, 매우 공개적입니다. 후작 각하쯤 되면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 굳이 각하의 사절인 제게 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비밀리에 운용하는, 혹은 소집된 전력이라면 제게 숨겨야 할 이유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짝짝짝.

“좋아.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말대로 일레드 왕국의 2함대와 3함대는 시논 섬 근방에 있지 않았네. 그놈들이 비밀에 싸인 일레드 왕국 1함대가 아닌 이상, 자네 말대로 새로운 전력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레드 왕국에 직접 가본 건가?”

보아하니 후작도 시논 섬에까지 정보력이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일레드 왕국에 도착한 이후의 일만 강조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닙니다. 아무래도 케르빈 군도의 섬들이 일레드 왕국에게 완전히 복속 당한 것 같아서 이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케르빈 군도의 해적들 말인가?”

“네.”

후작의 표정이 미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뭐야, 갑자기?

“그래…. 해적들이라, 어떻던가? 모두 죽었던가? 아니면 일레드 왕국에 항복했던가?”

나는 찜찜한 느낌 때문에 대답을 급히 변경했다.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폭풍에 휘말리는 바람에 그만.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었습니다만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폭풍을 만났군. 혹시 자네가 표류했던 섬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

순간 쇳덩이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타이밍에 그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대응할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빨리 고개를 테이블 앞까지 내리며 사과했다.

“용서해주십시오, 후작 각하.”

“으응? 갑자기 왜 이러나?”

“일전의 거짓말은….”

“그래, 거짓말이었군. 하긴, 말이 안 되지. 배를 직접 움직여서 이곳까지 온 사람이, 자기가 출발한 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잘못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야. 허허허.”

역시 다 알고 있었어.

“그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물어보지. 어디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 서랍을 뒤지던 후작은 잠시 후 무엇인가를 양손에 들고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이것과 이것, 그 섬에서 구한 것이 맞나?”

그가 테이블에 내려놓은 것은 섬을 나오면서 가지고 왔던 것들이었다.

바로 목재와 침대 내장재로 쓰는 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왕녀님이 후작과 후작 부인의 침대를 만든다고 저 풀을 다 사 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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