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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21화 (222/420)

221화. 싸움의 발단

나보다 먼저 앉아있었던 에른스트 부선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눈짓으로 물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포격 지휘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기는 했다.

우르타 외에 딱히 포격을 지휘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 클라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쩐지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든다.

“클라톤 씨, 저는 상인이고 제가 이끄는 선단은 용병 함대가 아닙니다. 후작 각하께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함께하신다면 포를 쏘기는커녕 일 년 내내 대포만 닦으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클라톤 씨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쪽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서요.”

괜히 후작이 쓸데없는 바람을 집어넣었다면 그 바람을 빼던가,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그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끝까지 들은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른 나이에 퇴역한 군인이 사회에서 할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의 전향적인 태도는 조금 위화감이 있었다.

물론 이른 나이에 퇴역을 한 것 자체도 마음에 걸리고 말이야.

대포와 화약이라는 것이 워낙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포병 장교라면 육해군을 막론하고 상당한 엘리트에 해당한다.

그러니 사지 멀쩡한 사람이 이른 나이에 퇴역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군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서 써먹기 쉽지 않은 세상이고, 군에 남아 있으면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쿠샤 왕국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벨로키나 왕국과 적대 관계였던 나라 아닌가?

타국 군인까지 포섭하다니, 후작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물론 이번에 후작 각하께 받은 선박의 포대를 운용할 사람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포병대장으로 있으실 때와 많은 부분이 부족할 겁니다.”

내 말에 클라톤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군을 떠난 몸이 타국에까지 와서 얼마나 대단한 대우를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뱃사람입니다. 다시 배를 탈 수만 있다면, 거기에 대포까지 만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자조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반칙인데요….

왠지 주변 온도가 한 2도쯤 떨어진 느낌이 난다.

이러면 거절하기도 어렵잖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클라톤 포술장.”

“포술장입니까?”

“네, 군함의 포병대장과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상선의 특성상 포병대를 따로 구성하실 수는 없고, 필요한 인원을 갑판장에게 할당받아서 훈련 정도는 시키셔도 됩니다. 물론 전시에는 포대를 책임지시면 되구요.”

“이해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독.”

클라톤의 채용 문제를 마무리 짓고 소소한 이야기로 친분 쌓기를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갑판장입니다, 선장님.”

“열려있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네이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항해사로 지원하고자 온 사람이 있습니다. 선장님이 아는 사람이더군요.”

오호라, 그놈이군?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오펜을 야만인이라고 비하할 때부터 항해사가 아닐까 싶었고, 어린 나이에 깨끗한 장비로 봐서 초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잘생겼다고는 하지만 우르타나 그 남자의 외모는 뱃사람들에게는 그리 선호되는 외모가 아니다. 애초에 남자 100%인 사회에서 잘생겼다는 것이 무슨 어드벤테이지가 되겠는가?

그런 녀석이 우리 배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으니, 용무야 뻔한 것 아니겠나?

나는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래? 한번 보도록 하지. 지금 배에 남은 항해사들 다 불러줘.”

“알겠습니다.”

“그럼 클라톤 포술장도 배를 탈 준비를 하고 오시죠. 그때 함께할 동료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제독. 앞으로는 말씀을 편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러도록 하죠.”

아무래도 군인 아저씨들은 말을 놓기가 좀 어렵다….

***

클라톤이 떠나고, 선장실에 에른스트, 아인델프, 바우어, 네이선과 문제의 항해사 지원자가 모였다.

이미 내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 에른스트 부선장님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항해사시라고?”

“네….”

“경험은 있나?”

“그게… 어, 없습니다.”

아이고, 처음부터 너무 몰아붙이시네.

나는 부선장님께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고 물었다.

“그래요, 우리 배에서 일을 하고 싶으시다고?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닐 테고… 이름이 뭡니까?”

“크리스티앙입니다.”

“다른 건 집어치우고, 중요한 것부터 물어봅시다. 왜 하필이면 우리 뱁니까? 다른 배도 많은데.”

단도직입적인 내 질문에 크리스티앙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쯧, 대충 예상이 된다.

“다른 배들은 항해사를 구하는 곳이 없어서….”

그건 아니지.

다른 배에서는 거절당했을 것 같은데?

항해사는 어찌 되었건 선원들을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이다.

그런데 저렇게 곱상한 얼굴로는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경력까지 없으면 말 다 했지, 뭐.

참고로 우리 배의 항해사들도 최다 선이 굵은 남자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잘생겼다고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르타나 크리스티앙과는 조금 결이 다른, 매우 남성적인 잘생김이다.

나도 만약 크리스티앙의 놀라운 싸움 실력을 보지 않았다면 대충 응대하고 내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싸움과 전투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타고난 신체 능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고, 나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내가 배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몰라도, 이 배가 내 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이 배를 타고 싶다는 건가요? 우리가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선장님, 더 이상 볼 것도 없습니다. 이만 꺼지라고 하시죠. 오펜 항해사가 아직도 자리에 누워있는데 저런 놈을 고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말이 답답했는지 네이선이 불퉁거리며 끼어들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아인델프와 바우어는 이제야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를 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실례했습니다.”

우리의 말을 듣고 있던 크리스티앙이 고개를 떨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이 자리가 자신을 가지고 놀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슬슬 호기심이 생기는데?

“포기?”

내 도발에 그의 몸이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고용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난 아닌데.”

“그럼 채용할 생각입니까?”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선장!”

내 말에 네이선이 진심으로 반발했다.

말은 안 했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아직 채용하지도 않았다, 이 자식아.

“해결할 문제가 뭡니까?”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우리 항해사랑 풀어야 할 일이 있잖아요? 한솥밥 먹어야 하는 선배님인데.”

크리스티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끄는 배가 세 척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배의 항해사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했겠지만 말이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생각을 하던 크리스티앙은 조용히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눈빛이나 태도를 볼 때 완전한 거절은 아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자마자 네이선이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설마 저놈을 채용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선장님? 오펜이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애들끼리 싸우면서 크는 거지, 뭐.”

“저도 갑판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분란의 씨앗을 들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씩씩거리는 네이선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려는데, 아인델프가 네이선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뒤를 이어 부선장님의 의문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아무래도 제대로 대답을 해야지 넘어가겠군.

“근성. 나와 오펜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끝내 채용해 달라고 찾아왔잖아요. 그리고 몸놀림도 좋은 편인 것 같고. 뭐, 시야가 좁고 성격이 조금 급한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젊은이의 치기로 봐줘도 되는 부분이잖아요? 충분히 나아질 여지도 있고.”

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부선장님이 중얼거렸다.

“선장님도 내가 보기에는 아직 애송이입니다만….”

이 노인네가 정말?

에른스트를 흘겨보고 있는데 생각에 빠져있던 바우어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저는 선장님 의견에 찬성입니다.”

“으응?”

“뭐?”

“에엑?!”

다른 세 사람은 의문이 담긴 외마디를 토하며 그를 돌아보았고, 나 역시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바우어는 약간 당황하면서도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어차피 단점이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도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 선장님 아닙니까? 방금 나간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저 역시 함께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아니! 이등항해사님이랑은 다르죠! 무슨 일이 있었냐면!”

네이선이 급하게 반박하려 하는 것을 제지한 나는 바우어에게 물었다.

“그것뿐이야?”

“네….”

“아니라는 말이군. 뭔데?”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내 독촉에 계속 시선을 피하던 바우어는 결국 할 수 없다는 듯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보입니다. 크리스티앙이라는 젊은이가 얼마나 절박한지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자존심은 얼마나 상했을지 보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별일 아냐. 술집에서 오펜에게 야만인이라고 했고, 둘이 싸웠고, 오펜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어.”

물론 나에게 욕을 한 것도 있기는 한데, 그건 뭐… 사소한 일이니까.

“그래서 편협하다고 하신 것이군요.”

“아니, 나는 그런 말 안 했어. 시야가 좁다고 했는데?”

“같은 말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야만인이라,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대충 알겠네요. 저런 외모라면 항해학교에서도 꽤나 힘들었을 겁니다. 싸움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힘들게 항해학교를 나왔는데 채용이 안 되니 꽤나 자존감이 떨어졌겠죠. 그런데 자기보다 어린 향료 제도 출신 항해사가 나타난 겁니다. 질투심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죠.”

오, 가재는 게 편, 아니, 왕따의 마음은 왕따가 안다는 건가?

소심하기 그지없는 바우어가 이렇게 열변을 토할 정도면 꽤나 동병상련이 느껴진 모양이다.

덕분에 네이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 그래도 오펜 항해사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기 전에는 안 됩니다!”

***

그레이그와 클라톤이 짐을 챙겨서 배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항구에서 놀고 있던 항해사 세 사람을 만나 보았다.

한 놈은 알콜 중독자라서 도저히 쓸 수 없었다.

한 놈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그가 떠난 뒤 술집 주인이 와서 귀띔을 해줬다.

저놈 미친놈이라고, 술을 마시다가 행패를 부려서 여러 번 경비대에 잡혀갔다고 말이다.

마지막 한 놈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해서 계속 캐물었는데, 항해사가 아니었다.

스스로 항해사라고 떠들고 다녔을 뿐, 항해학교를 나오기는커녕 항해술 자체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녀석이었다.

“사람이 없네, 사람이 없어.”

마지막 녀석 때문에 진이 빠져서 뱃전에 기대어 술을 축내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선장님.”

“어? 오펜! 몸은 좀 괜찮아?”

“헤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그래도 부기가 빠지니까 좀 낫네. 특별히 아픈 데는 없고?”

“네, 선의님이 잘 돌봐주셨어요.”

“다 나으면 네이선에게 부탁해서 몸 쓰는 법 좀 더 배워. 그렇게 허약해서 어디다 쓰겠어?”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북북 긁으며 오펜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반성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기….”

“어? 할 말 있어? 말해봐.”

“저랑 싸웠던 사람이요.”

“응.”

“배에 타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어, 어. 그런데 안 오네? 너에게 사과할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 옹졸한 놈이랑은 같이 못가지.”

“제가 먼저 잘못했어요.”

“…응?”

이러면 또 상황이 재밌어지는군.

생각해보니 내가 본 상황은 사건의 시작은 아니었다.

이미 그 전에 몇 마디 말이 오간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선장님 오시기 전에 같이 술을 마시다가 서로 항해사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술을 좀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만.”

“뭐라고 했는데?”

“선장님이 제 재능을 알아보고 항해사로 키워주셨다고….”

“그게 잘못한 일은 아니지.”

“항해학교 따위 나와도 소용없다고….”

“…….”

바우어의 말대로 힘겹게 항해학교를 나왔는데 취업이 안 돼서 고민 중인 사람의 명치를 때린 꼴이다.

이건 편들어주기도 애매하네.

내 배라는 것을 알고도 채용해 달라고 찾아올 정도로 배짱 좋고 절박했던 녀석이 오펜에게 사과하라는 말에 여태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도 알만하다.

자기가 먼저 사과를 하기에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너, 내가 술 마시지 말랬지?”

“죄송합니다….”

***

오펜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깔끔하게 크리스티앙을 포기했다.

이쪽이 먼저 잘못했는데 선장이라는 놈이 사건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갑질을 한 꼴이라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 입수한 피오렐 호의 선장은 아인델프, 이등항해사는 바우어, 갑판장은 모르아, 포술장은 클라톤, 이렇게 하도록 하지. 사람이 많이 부족하지만 아인델프 선장이 잘 이끌어주었으면 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독.”

“발드 선장님, 돌격대장 없어도 큰 문제없죠?”

“물론입니다, 제독.”

“그리고 오트라스의 일등항해사는 여기 그레이그 항해사를 임명하도록 하겠어.”

“감사합니다, 제독! 탁월한 선택입니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훑어본 나는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체적으로 부족하기는 해도 이만하면 맨몸으로 이뤄낸 성과치고는 꽤 괜찮지 않은가.

똑똑똑.

“무슨 일이냐?”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부선장님이 날카롭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선장님을 만나겠다는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이라고?”

“전에 왔던 사람이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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