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얌전한 고양이
아무리 이쪽이 일방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다른 배의 선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오는데 아무나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갑판으로 나가서 손님을 맞이했다.
오트라스 호의 근처까지 다가온 단정에서 세 사람이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오트라스 호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장 두 번째로 올라오는 선장 복장의 중년 남자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 남자도 황급히 인사를 했다.
“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시엘라 호의 선장, 안톤이라고 합니다.”
“오트라스 호의 선장 리안입니다.”
“아, 네….”
내가 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자 안톤은 미묘하게 머뭇거리더니 곧 내 손을 맞잡았다.
대충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너무 젊어서 놀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나이에 대단하시군요. 이만한 선단을 이끄시다니.”
내가 너무 꼬아서 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저 말은 ‘젊은 놈이 이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군. 금수저냐?’ 정도로 해석이 된다.
그래도 원래 목적을 잊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은 아니라서 곧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먼저 저와 신시엘라 호의 승조원들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큰 신세를 졌습니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야지요. 그보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을 텐데, 함께 하시죠. 선상이라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허기를 때울 정도는 될 겁니다.”
“이러려고 온 것은 아닌데, 염치 불고하고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도 손님이 오셨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항해의 목적이 교역이 아니라서 식료품을 넉넉하게 채워서 다행이다.
***
선장실에서 식사를 함께하게 된 사람은 게스트인 안톤 선장과 발드 선장, 아인델프 선장, 그리고 에른스트 부선장이었다.
손님을 모셔놓고 우리 사람들만 가득 채울 수는 없었기에 다른 간부들은 따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희 선단은 바흐카덴에서 출항하여 로제 항구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겨울 동안 잠잠했던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해서요.”
“의약품과 화약을 공급하려고 하셨군요.”
“역시 잘 아시는군요. 이왕이면 필라비스나 롤레앙으로 가는 게 더 좋겠지만, 아무래도 전선과 너무 가까운 곳은 위험하니까요.”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목숨이 사라지고 전쟁이 벌어진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것이 바로 전쟁인데, 상인들은 오히려 돈벌이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왕녀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애초에 자신의 오빠와 동생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타국의 도움을 얻어 조국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설정만 들어도 나는 벌써 어질어질하다.
“선단이라면?”
“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신시엘라 호는 게브너 상단이라는 작은 상단에 소속된 상선입니다. 이번에 같은 상단 소속의 상선 세 척과 함께 항해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척짜리 선단이라는 말인데… 그 정도 규모를 공격할만한 해적이 있습니까?”
비록 신시엘라는 중형치고는 좀 작은 크기의 선박이지만, 선단 전체가 신시엘라와 같은 크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처럼 중형 중에서 큰 편에 속하는 선박이 두 척만 있어도 고작 한두 척의 해적선으로는 공격할 엄두를 못 낼 텐데?
“말도 마십시오, 보아하니 그놈 같더군요. 최근에 이름을 날리는 놈 있지 않습니까? 외날의 라프나라고.”
…….
라프나라고? 어우! 지긋지긋해.
빨리 토벌이나 당할 것이지, 해군들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갑지 않은 이름이 나왔지만, 나는 재빨리 구겨지는 인상을 펴고 표정 관리를 했다.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놈이 그렇게 포악하다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그 자라고 해도 네 척짜리 선단을 공격하는 것은 좀….”
굳이 아는 티를 낼 필요는 없겠지.
내 의문에 안톤 선장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도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해적선이 무려 다섯 척이나 되더군요. 이번 한 번만 뭉친 것인지, 원래 함께 행동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한숨을 쉰 안톤 선장은 곧 말을 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대형을 유지할 상황이 아니라서 무장이 빈약한 신시엘라는 도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장님이 격퇴하신 그놈이 기를 쓰고 따라오지 뭡니까? 다행스럽게도 저희는 화물이 모두 약초였던지라 속도가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아서 살아남기는 했습니다만, 선장님께서 조금만 늦게 도와주셨어도 아마 나포당했을 겁니다. 계속되는 포격 때문에 선원들이 겁에 질려있었거든요.”
“다 여기 아인델프 선장이 일찍 발견한 덕분입니다. 참전하자는 제안도 아인델프 선장이 먼저 했거든요.”
내 말에 안톤 선장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인델프를 보더니 재차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인델프 선장님.”
“아, 아닙니다! 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갑작스럽게 관심이 집중되자 민망했는지 아인델프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살짝 더듬었다.
“그나저나 피해가 큰 것은 아니신지 걱정이군요.”
“다행히 화물에는 피해가 없었습니다. 선원이 몇 죽거나 다치기는 했습니다만, 죽을 뻔했던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지요.”
“불행 중 다행이군요.”
많은 선장들의 인성이 쓰레기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안톤 선장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말도 잘하는 편이었고, 상대가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이야기를 들을 줄도 알았다.
하지만 돈을 인명보다 중시하는 것이 자꾸 드러나는 그의 말은 식사 내내 내 마음을 살짝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겠지만….
전생이 아니었다고 해도 지구의 기억과 지식이 내 성격과 가치관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듣는 다른 사람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전황은 어떻다고 합니까? 들은 소식이 있으신지요?”
“프레티아 왕국 내전 말입니까?
“네. 술집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야 들었습니다만….”
술집에서 여러 가지 소문이야 돌지만, 실제로 그게 정확한 정보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카더라 통신’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문들을 정보기관이나 정보업체에서 수집하는 이유는, 그것을 기반으로 조사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상단쯤 되면 정보를 다루는 담당자나 협력업체 정도는 있을 테니, 나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늘 하는 말이지만, 정보는 힘이 된다.
“저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저희 상단이 특정 편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제가 듣기로 반란군이 약간 유리해진 모양입니다. 애초에 국왕인 에논 왕자, 아니, 왕이 선왕을 시해했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 그런 이야기는 이미 동네 술집에도 파다하더라.
도대체 에논이라는 놈은 정보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쯧쯧….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소문만 가지고 전쟁이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지난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알라시아의 영주인 체르먼 백작이 반군을 이끄는 데이먼 4왕자에게 전향한 모양입니다.”
“알라시아라면?”
“남부 쪽에서 일레드 왕국과 접하고 있는 영지지요. 지금까지 그쪽을 통해서 일레드 왕국의 지원이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알라시아가 막히는 바람에 일레드 왕국은 한참 북쪽으로 돌아서 지원을 해야 할 판이니, 반군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죠.”
기억이 난다.
왕녀님이 반군에 합류했을 경우에 결혼하게 될 확률이 가장 높은 두 명 중의 한 명이었지.
“로자렌스 지방군 사령관인 페이트 백작이 중립을 표명한 이상, 프레티아 왕국 남부는 조만간 반군에게 온전히 넘어갈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이후로 안톤은 한동안 프레티아 왕국 내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마 내가 전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
식사를 마친 후에도 안톤 선장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자신의 배로 돌아갔다.
설마 저렇게 말로만 때우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그런데 큰 사례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개인 선박이 아닌 이상 상단의 소유인 선박과 화물, 자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선장의 개인 재산으로 감사를 표시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뱃사람들 씀씀이가 워낙 헤퍼야지.
모아놓은 돈이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참, 선장님.”
“네?”
선교에 올라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부선장님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나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신시엘라 호가 바흐카덴 항구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쩝, 바흐카덴의 상황을 조금 물어볼 걸 그랬군요.”
“아…!”
얼마 전에 바흐카덴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지.
쇼콜라인지 다시마인지 하는 남작 놈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아주 기를 썼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발레아스 아저씨의 딸, 이름이 뭐더라…?
“케일린.”
“그래, 맞아! 케일린이었지!”
“…….”
으앗?! 어떻게 아셨지?!
설마 뇌종양으로 인해 독심술 같은 초능력이 생기신 건가?
나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케일린이라니, 무슨 소리세요?”
“지금 그 아이를 생각한 것 아닙니까?”
“제가요? 왜요?”
나름대로 시치미를 뗀 건데 전혀 안 먹힌 모양이다.
“어휴, 알겠습니다. 이왕이면 그쪽 정보를 좀 얻을 걸 그랬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바흐카덴 항구에 기항하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선장님이 말을 마쳤다.
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여자 생각이 났지?
“케이, 아니! 어차피 항구에 도착하면 다시 봐야 할 테니 그때 물어보도록 하죠.”
그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오펜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선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 뭔데?”
“예전에 바흐카덴을 떠나고 나서 위장한 해적선에게 기습을 받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었지.”
이스트렐리아 호였던가?
덕분에 이렇게 선단을 이끌게 되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당연하잖아.”
“네?”
“그때야 우리가 가진 배라고는 리버티 호 하나였고, 무장도, 인원수도 빈약했지.”
“아하, 그래서.”
“그래, 지금 신시엘라는 우리 선단 가운데에서 움직이고 있잖아. 혼자서 뭘 어쩌겠어? 기습? 괜히 까불다가는 역으로 다 털릴 게 뻔하잖아. 설혹 이스트렐리아 호처럼 꿍꿍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쯤 깨끗하게 접었을 걸?”
역시 오펜 이 녀석은 좀 더 배워야겠어.
그런데 어째 오펜이 당직을 자주 서는 것 같다?
일등항해사는 당직을 서기는 하는 거야?
***
중간에 파도가 약간 높아졌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사건 없이 멜라나인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적한 어항에 상선이 네 척이나 한 번에 들어와서 그런지 항구가 약간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리안 선장님!”
계류를 마치고 부두에 내려오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안톤 선장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유, 계속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이번에는 제가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언제쯤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수리도 맡기셔야 할 텐데, 오히려 제가 선장님 시간을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하, 별말씀을요. 그보다 이런 어항에서 제대로 수리가 될지 모르겠군요.”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겠네요. 이래 봬도 제 선박 중에 하나를 소유하고 계시는 선주님이 여기에서 조선소를 하고 계시거든요?”
진짜 수리가 걱정이었는지 얼굴이 약간 그늘져있던 안톤이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상선의 선주나 되는 분이 운영하시는 조선소라면 믿을 만하겠죠. 제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저도 어차피 그분을 뵈러 온 참이니 함께 가시죠.”
으음, 드웰 씨가 조선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데, 굳이 그런 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
***
조선소는 한산했다.
손바닥만 한 어선 두 척이 보이기는 했지만, 수리가 끝난 것인지, 그냥 일을 미뤄두고 있는 것인지 일을 하고 있는 조선공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시엘라가 등장하자 곧 조선소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외관이었다면 지나가는 선박이려니 했겠지만, 육안으로 봐도 여기저기 망가져 있는 배가 굳이 조선소 방향으로 오는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조선소에 딸린 부두에 계류를 마치고 나와 안톤 선장이 현문을 나서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낯익은 조선소 주인과 드웰 씨가 우리를 반겼다.
“어? 자네가 왜 거기에서 나오나?”
“드웰 씨, 잘 지내셨어요?”
“그래, 오늘 입항했다는 상선단이 자네… 응? 네 척이라고 하던데?”
“하하, 여기 안톤 선장님의 신시엘라가 해적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같이 왔습니다. 수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얼떨떨해하는 드웰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리라는 말이 나오자 조선소 주인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확실히 그때 내게 받은 돈으로 빚은 다 갚으셨는지 전보다 얼굴이 좋아졌다.
“아이고, 물론이죠. 오트라스 호처럼 아주 깔끔하고 멋지게 고쳐놓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안톤 선장님?”
“리안 선장님이 알고 지내는 곳이라면 믿을 수 있겠죠. 이곳에 수리를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톤 선장님이라고 하셨지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계약서를….”
두 사람이 떠난 뒤, 나와 드웰은 천천히 조선소를 걸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설마….”
“설마 뭐요?”
“…아닐세. 그럴 리가 없지.”
왜 말을 하다 말아?
“혹시 그 노트 아직도 가지고 계세요?”
“응? 갑자기 무슨 노트?”
“섬에서 나오는 길이랑 방법 써 놓은 노트요.”
“어? 그건 왜 묻나? 아니, 그런 건 없다니까?”
“이제 다 끝났는데 뭐 하러 거짓말을 해요?”
“글쎄 내 머릿속에 다 기억했던 거래도?”
“몰래 노트 보는 거, 제가 다 봤어요.”
“음….”
민망한지 잠시 먼 바다를 보던 드웰이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노트는 왜 찾나? 설마?”
“네, 그 설마 맞아요. 다시 가보려구요.”
“…미쳤나?”
드웰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내가 미쳤는지 걱정하는 표정이다.
“아, 그렇게 보지 말아요. ‘울부짖는 바다’의 범위가 줄어든 것 같아서 가보려는 거니까.”
“뭐?”
“일단 제가 보기에 줄어든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 요즘 서해 항로를 끼고 있는 폭풍 해역들 범위가 줄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울부짖는 바다’라고?”
“아이참, 어차피 그건 제가 할 일이니까 노트 있는지나 말해줘요.”
사실 드웰의 노트는 굉장히 중요하다.
섬의 근처는 기상의 문제도 있지만, 암초도 꽤나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거든.
이클로나를 타고 향료 제도 북쪽의 암초 지대를 무사히 통과한 적은 있지만, 그건 사실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맨정신으로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짓이지, 그럼.
“가지고는 있네만,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떤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잖나?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겠나?”
“어휴….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상황이 좀 그래요. 안 가면 죽게 생겼어요.”
“도대체 무슨 일인 건지 원.”
죽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부선장님이고, 가도 죽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렇다.
이후로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던 드웰은 거듭되는 내 재촉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게. 그때 주도록 하지. 식사도 함께하고 말이야. 데보라가 좋아하겠군.”
“아, 맞다. 데보라 양은 잘 지내요? 말씀 편하게 하시는 걸 보니 친해지신 것 같은데.”
“어, 음, 잘 지낸다고 해야 하나? 저녁에 보면 알게 될걸세.”
“뭔데요?”
“보면 안다니까?”
“그러니까 뭔데요?”
“그게, 임신했네.”
“헐, 몇 달이나 지났다고 벌써? 남편은요? 설마 강간당하거나 한 건 아니죠?”
“뭐?! 그런 놈이 있으면 내가 살려 뒀을 것 같나?!”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시는데?
뭐지?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남편은 누군데요? 제대로 된 남자는 맞아요?”
“그, 글쎄? 자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예?”
이게 무슨 소리람?
“네이선이 애 아빠일세.”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뭐라구요?”
“네이선이 애 아빠라고 했네.”
“…하, 하, 하, 되게 재미없는 농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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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서어어어언! 네 이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