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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25화 (226/420)

225화. 삭제된 기억

임신 3개월짜리 조카가 생긴 삼촌(?)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사회 일이 급하다 한들 조카 소식보다 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일반적인 삼촌들과 같이 바람처럼 오트라스 호로 달려갔다.

“네이서언! 아니, 갑판장! 이 개만도 못한 새끼 어디 갔어?!”

평소라면 갑판장의 권위와 위엄을 존중해 주었겠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선장님, 갑자기 무슨….”

현문 당직을 서고 있던 선원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바로 바닥에 대가리를 박은 채 모르는 체했지만, 갑판장의 직속 부하에 해당하는 돌격대장 행크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사정 따위가 눈에 들어올 상황이냐고 지금!

“갑판장! 갑판장 어디 갔어?!”

“아직 배에 있… 으어어억!”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황급히 고급 선실 방향에서 뛰어나오던 네이선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뭐, 뭐야?! 선장님?”

물론 때리는 것에는 실패했다.

분명히 허겁지겁 나오는 것 같았는데 귀신같이 내 주먹은 피하더라고.

솔직히 내 명치에서 3cm 정도 떨어진 주먹, 아니, 지금은 내 배를 살짝 어루만지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서늘한 살기를 느꼈던 네이선의 오른손을 생각하면 네이선이 많이 봐준 거다.

비명을 지른 행크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선장이자 선단장인 내가 네이선의 얼굴을 주먹으로 쥐어패는 상황이나, 네이선이 나를 엉겁결에 쥐어패는 상황이나 똑같이 위험한 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내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지.

왜 분노했냐고 묻지 마라,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나는 바로 네이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어리둥절한 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더 밉살스럽다.

“너 이 새끼, 말 똑바로 해. 너 데보라 양이랑 무슨 관계야?”

그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르타와 함께 심심하면 연애한다고 놀리고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애라니! 임신이라니! 이건 너무 많이 갔잖아?! 기승전결이 아니고 기 다음 결이냐?!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하시는 겁니까? 이러지 말고 자리를 좀….”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행크와 현문 당직을 서던 선원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던 몇 선원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참자, 공개적으로 터지면 진짜 큰일이다.

“후우, 후우, 당장 내 방으로 따라 와.”

데보라 양에게 못된 짓을 하려던 선원들이 죽어 나간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장과 가장 친한 사람 중의 한 명이자 간부인 네이선이 그녀를 임신시켰다는 것이 알려지면….

자칫 내 입지마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강간 미수범이었던 세 선원과, 데보라와 연인관계인 네이선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원들에게는 네이선이 데보라의 연인이라는 것 따위보다는 선장과 가까운 사이인 네이선이 무려 데보라를 ‘임신’까지 시켰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것이다.

누구는 시도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는데 말이지.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네이선은 한편으로는 불안한 표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한 표정으로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전혀 짐작을 못 하는 것 같다.

임신은커녕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너 이 새끼, 데보라 양이랑….”

“잠깐, 리안. 아까부터 왜 자꾸 데보라 양에 관해서 묻는 거야?”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네이선이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먼저 질문을 던졌다.

표정을 보니, 아무리 친구고 선장이라도 내 연인을 왜 네가 관리하냐는 표정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퉁명스럽게 폭탄 같은 말을 던졌다.

“임신했다더라.”

“뭐?”

“임신했다고.”

“누가?”

“데보라 양이.”

“응?”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네이선이 갑자기 기함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 누가 뭐, 뭘 했다고?!”

“아악! 어깨! 어깨! 부서진다! 놔, 놔! 하극상이냐?!”

무슨 인간의 악력이…?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내 어깨를 쥔 네이선의 강철같은 손등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건 확실히 멍들었다.

“아앗, 미, 미안!”

내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빠르게 어깨에서 손을 뗀 네이선이 재차 물었다.

“데보라가 임신을 했다고?”

“그래, 이 쓰레기 새끼야. 너 이제 아빠가 된다고.”

“그래도 쓰레기는 좀…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 간다!”

“가라, 가버려!”

쾅!

네이선은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람처럼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힘없이 흔들리는 문짝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화가 좀 가라앉으며 뒷일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예상이라도 했어야 수습할 방법을 찾을 텐데, 예상은커녕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지만 네이선이 이제 배를 그만 타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네이선이 배를 계속 탄다고 해도, 가족 한 명 없이 낯선 곳에 임신한 애인을 내버려 두고 위험천만한 항해에 네이선을 끌고 다니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지도 모르겠고….

가족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닥터한테는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선장님?”

“응?”

조용히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반쯤 열린 문밖에 우르타의 머리가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방 안에 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르타가 총총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나 들어가도 돼?”

“이미 들어왔잖아.”

“히힛, 그런데 네이선은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그 새끼……. 어휴, 아니다. 말을 말자.”

“응? 뭔데? 뭔데?”

“아, 몰라. 궁금하면 그놈한테 직접 물어보던가.”

“쳇, 치사하게 왜 나만 안 알려줘?!”

볼이 잔뜩 부어서 심통을 부리는 우르타를 보니 골치가 아파져 온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람이 평생 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평생의 반려 없이 창녀에게 욕망만 해소하다가, 가족도 없이 늙어가는 것도 못 볼 꼴이고.

평생을 그렇게 산 부선장님을 봐라.

내가 없었으면 지금쯤 어느 항구의 후미진 골목에서 쓸쓸하게 죽어있을 것이다.

“야, 우르타. 너는 언제까지 배를 탈 생각이야?”

“응? 언제까지라니?”

“평생 배를 타지는 못할 것 아냐? 언젠가는 배에서 내려서 육지에서 사람답게 살아야지.”

“어….”

맹한 얼굴로 고민을 하던 우르타는 곧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는데? 그냥, 막연하게 배를 타다 보면 언젠가는 죽지 않을까, 그런 생각?”

“죽기는 왜 죽어?”

“다들 그렇게 죽잖아?”

“…….”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우르타의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우르타의 커다란 눈이 공허하게 보이는 것은 착각이겠지.

***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한 갑판장을 대신해서 돌격대장인 행크에게 선원 관리를 지시하고 저녁 일정을 전달한 뒤, 에른스트, 닥터 롱베르, 우르타, 아인델프를 대동하고 드웰의 마을로 향했다.

안톤 선장이 대접하기로 한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드웰과의 일을 먼저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어서 오게, 이제 막 식사 준비가 끝났는데 시간 맞춰서 잘 왔군.”

“신시엘라 호 수리는요? 일하실 시간 아닌가요?”

“제대로 된 수리는 내일부터 시작할 거야. 오늘은 전체적인 파손 파악과 자재 준비만 할 테니까 굳이 나까지 필요 없네.”

“그래요?”

마침 밖으로 나왔던 드웰이 우리를 발견했고,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드웰의 딸과 사위, 딸처럼 생각하는 데보라 양, 그리고 문제의 그놈이 있었다.

“으응?! 네이선? 언제 왔어?”

“갑판장님, 벌써 와 계셨습니까?”

“하하하….”

“데보라! 오랜만… 응?”

“흐음…?”

우르타와 아인델프가 의문을 표하고, 부선장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으며, 오래간만에 만나는 제자에게 반갑게 인사하던 닥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이선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고.

“이거야 원, 이보게, 선주 양반.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요?”

“데, 데보라!”

붉게 물든 데보라의 얼굴과 아랫배에 살포시 올라간 손.

이런 쪽으로 완전히 문외한인 내가 봐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

“이보게, 갑판장. 이게 도대체….”

분노인지 흥분인지 닥터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 네이선.

아직 장인어른은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널 죽이려는 노인네가 셋쯤은 되는 것 같구나.

***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연신 문지르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는 것이, 네이선은 정신이 반쯤 나간 모양이다.

네이선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벌써 934번째 괜찮냐고 물어보는 데보라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내게 필요 없는 것이니 주기는 하겠네만, 다른 방법이 없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가 거기에 살아서 도착했던 것도, 살아서 나온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네.”

“이름도 정해졌어요, 폰테 섬이라고. 내가 정한 것은 아니고 후작이 정한 것이지만 말이죠.”

“후작이라면… 설마 스코타 후작 말인가?”

“우리가 알만한 후작이 그 사람밖에 더 있나요?”

“귀족과 깊게 얽히는 것은 좋지 않아. 친자식만큼 잘해주다가도 하루아침에 목에 칼을 꽂는 종자들이 귀족일세.”

“인간이 다 그렇죠, 뭐.”

내가 적당히 대꾸하자 드웰이 진중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보게, 리안 선장! 지금 내가 농담하는 줄 아나?”

“아이고, 선주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좀 그래요. 자세하게 설명 드리기에는 좀 그렇고….”

“무슨 일이기에?”

나는 드웰에게 최대한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정보는 드웰이 사는 데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괜히 이것저것 알았다가는 괜히 이상한 사건에 휘말릴 확률만 높으니 말이다.

“으음, 일이 거기까지 진행되었다면야….”

“아, 그렇지 않아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응?”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드웰의 딸 비올라와 사위 뤼샨은 식사 준비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사람은 에른스트, 롱베르, 드웰, 네이선, 우르타, 아인델프, 데보라였다.

에른스트 부선장님이야 딱히 비밀을 지켜야 할 사람은 아니고, 드웰, 네이선, 우르타, 아인델프는 폰테 섬에서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닥터 롱베르와 데보라가 조금 걸리기는 하는데, 이 상황에서 두 사람만 빠지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겠지?

“허허, 내가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인가?”

내 시선이 닥터에게서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었던 모양이다.

분위기를 눈치챈 닥터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물어보시면 냉큼 ‘네!’라고 대답하기에는 좀 그런데.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 어깨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개들 돌리니 부선장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선의 양반은 우리를 배신할 이유도, 의심할 거리도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섬에 가면 알게 될 텐데 뭘 그리 숨기느냐?”

“그렇기는 하죠.”

나는 데보라를 슬쩍 보고는 그냥 말을 꺼내기로 했다.

네이선과 가족이 될, 아니, 지금 꼴을 보면 이미 가족인 사람이다.

데보라까지 의심해서야 세상 어떻게 살겠어?

“드웰 씨, 혹시 폰테 섬에서 네이선과 싸웠던 것, 기억나세요?”

“갑판장과?”

“네, 그때 제가 없어져서….”

“아! 물론이지! 그때 네이선 저 친구가 나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했었지. 내가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그걸 잊겠나?”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치는 드웰을 보는 척을 하며 아인델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아인델프의 표정이 영 이상했다.

“아인델프 선장, 표정이 왜 그래? 기억 안 나?”

“아, 제독님. 그게 잘….”

“뭐?”

드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아인델프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하하하, 아무래도 그 자리에 제가 없었던 모양인데요?”

“그럴 리가?! 분명히 그때!”

“잠시만요!”

기가 막혀서 소리치는 드웰을 재빨리 제지한 나는 진지하게 아인델프에게 다시 물었다.

“아인델프 선장,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전혀 기억이 안 나? 내가 실종되었던 것이랑, 네이선과 드웰 씨가 대판 싸웠던 것 말이야. 실종된 나를 찾으러 가자고.”

“제독,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독이 실종되었다니요? 언제 말입니까?”

“우리가 섬에 표류했을 때 말이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던 아인델프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실종될 정도의 사건, 특히나 실종된 사람이 제독인 사건을 제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데…?”

“이게 무슨….”

나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페리아 족은, 기억이 나?”

“네? 페리아 족이라니요? 전설에나 나오는 종족 아닙니까?”

이 정도면 확실하군.

***

아인델프의 기억을 여러 가지로 확인한 결과, 아인델프는 폰테 섬을 단순한 무인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를 구한 것도, 탈출을 위해 준비를 한 것도 모두 드웰이 혼자서 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알려준 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그에게 내 이야기도 해주었다.

페리아 족의 정신 교란 마법(?)으로 그들의 마을까지 제 발로 걸어갔던 이야기를 말이다.

“세상에, 지금 내가 들은 것이 모두 사실인가?”

“네, 닥터.”

“그, 그렇다면 이번에 그 폰테 섬으로 가면 나도 그들을 만나볼 수 있겠나?”

자신의 기억이 조작당했다는 것이 상당한 충격인 듯 반쯤 넋이 나가버린 아인델프와 달리, 닥터는 아까부터 몸이 달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데보라 양 역시 호기심을 숨길 수 없는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솔직히 닥터가 그들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급격히 실망하는 닥터의 말 뒤로 허탈한 부선장님의 독백이 이어졌다.

“이 나이를 먹도록 배를 타고 나니 더 이상 바다에서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기가 막히는군.”

“이 이야기는 이 방에 있는 사람들만 아는 겁니다. 괜히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아시겠죠?”

“허허, 나 같은 노인이 뭐라고 하건 사람들이 신경이나 쓰겠나? 그저 늙은이가 허풍을 떤다고 생각하겠지.”

드웰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이야기를 하셨건 간에 앞으로는 절대로 안 돼요. 드웰 씨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위험해진다는 말입니다.”

“아, 알았네, 알았어. 지금까지 이야기한 적도 없어.”

민망해하는 드웰을 한번 바라본 나는 하나를 더 부탁했다.

“아, 드웰 씨. 내일 시간이 되시면 배에 한 번 들러주세요.”

“응? 내일부터는 자네가 소개해준 배를 수리해야 돼서 시간이 안 날 텐데? 급한 일인가?”

“아, 그렇다면… 수리는 오래 걸려요?”

그는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대답했다.

“대충 나흘쯤? 보기보다 부서진 곳이 적으면 하루 정도 더 줄어들 수도 있고.”

“그럼 수리 끝나고 한번 와주세요. 부탁드릴 게 있어요.”

“그러지. 그런데 자네 오늘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아직 배도 안 꺼졌는데! 할 수 없지, 다들 일어 섭….”

…….

아, 진심으로 때리고 싶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말을 하려는데 한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시선을 돌리니, 네이선과 데보라가 신파극을 찍고 있었다.

데보라를 딸처럼 생각해서, 기어이 네이선의 눈에 주먹을 꽂아 넣었던 닥터의 표정이 떨떠름할 지경이니, 얼마나 눈꼴 신 장면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 드웰 씨, 조만간 배에서 뵙도록 하죠. 다들 일어나. 도움을 줬으면 감사를 받아야지!”

“나는 굳이 안 받아도 되는데. 딱히 한 일도 없고.”

비 맞은 개처럼 처량한 눈빛을 쏘아내는 네이선이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나는 가뿐하게 무시하고 그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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