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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27화 (228/420)

227화. 실패

나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친밀한 대장장이가 하나 있다는 것이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봤나?

당장 전성관뿐만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라고!

“물통이야 백 번도 빌려주지, 그런데 그 아버님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말해봐.”

“네? 갑자기 그건 왜 그러십니까?”

“어허, 선장쯤 되면 부하들의 부모님 안부도 좀 물을 수 있고 그런 거야.”

“네에…?”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슬레어에게 재빨리 어깨동무하며 선장실 방향으로 이끌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자네를 얼마나 아끼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제독.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그래서 자네 고향이 어디라고?”

“고향 말입니까? 고향은….”

“그러니까 부모님이 계시는 곳 말이야. 이제 제법 의젓한 바다의 사나이가 되었으니, 부모님께 안부 인사도 한 번 하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굳이 그렇게까지는….”

내 질문에 열심히 대답하다가 결국 내 물통을 얻은 슬레어가 돌아간 후, 나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일단 왕립 아카데미라는 곳이 개나 소나 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슬레어의 집안에 돈이 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단순하게 대장장이라고는 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제법 규모 있는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

“위치가 니파 항구 근처의 바크렌 시라고 했던가?”

내륙 도시라 가보지는 못했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근처에 있는 철광산과 주석광산 덕택에 발전한 공업 도시로, 니파 항구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광물 주괴나 철제 제품을 실질적으로 공급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 중의 하나가 철인 만큼, 프레티아 왕국에서 상당히 예민하게 관리하고 있을 게 뻔한 곳이었다.

일단 데이먼 왕자의 반군이 아직 남부에 머물고 있으니 중부에 있는 바크렌 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역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안톤 선장의 말에 의하면 최근에 전황이 반군에게 상당히 유리해졌다고 했으니, 언제 전화에 휩쓸릴지 모르는 지역이기도 했다.

내가 데이먼 왕자라도 중부를 공략할 때 수도 다음으로 높은 순위의 공격 대상이 바로 바크렌 시일 테니까.

몰랐다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도의적으로도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슬레어의 부모님들이 안전한지는 확인을 하게 해주는 것이 도리겠지.

***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니, 새벽부터 드웰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이것 좀 보게.”

“이게 뭔데요?”

나는 그가 들고 온 지름 15cm, 길이 1m 정도 되어 보이는 나무통을 보며 물었다.

원래 속이 비어있는 나무인 모양인데, 지구의 대나무와는 좀 다른 형태였다.

애초에 대나무는 중간 마디마다 다 막혀있기는 하지만….

“자네가 만들고 싶다는 게 이런 거 아닌가?”

“비슷하기는 한데, 일단 나무잖아요. 그리고 너무 큰데?”

“잘 보게.”

그는 왠지 모르게 신이 나 있었다.

남자들이란….

무거운 통을 돌려서 한쪽은 자신 쪽으로, 반대쪽은 내 쪽으로 향하게 한 그는 통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어떤가?! 이러면 충분하겠지?!”

웅웅거리는 드웰의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울림으로 인해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일단 들리기는 한다.

그런데 크기가 너무 큰데?

“아, 알았어요. 좀 치워요, 나잇살 드신 양반이 이게 뭐 하는 거야?”

“으허허, 자네는 정말 이런 재밌는 생각을 어떻게 해냈나?”

웅- 웅- 웅-

아오, 귀 아파.

나무통을 한쪽으로 치워낸 나는 딱딱하고 거친 나무의 겉면을 만져지며 말했다.

“장난 그만 치시고, 이게 문제가 좀 있어요. 먼저 아시다시피 거리가 이렇게 짧지 않아요. 선미 하부 갑판과 선교만 해도 이런 나무통 몇 개로는 택도 없잖아요. 그리고 나무라서 곡면 처리도 어려울 테고, 여러 개를 연결해야 할 텐데 공기가 안 빠져나가도록 연결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리고 이 통은 너무 굵어요, 절반만 돼도 충분할 것 같은데. 게다가 나무는 기본적으로 굵기 같은 게 다 다르잖아요?”

내가 여러 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자, 드웰의 표정이 금방 시무룩하게 바뀌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그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걸 설치하려면 선박 구조의 특성상 여러 개의 격실을 통과하는 관을 만들어야 한다.

못 한두 개 박는 수준의 공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사 자체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철거 후 원상 복귀도 어렵다.

그런데 막상 설치를 다 해놓고 보니 제 기능을 못 한다면?

“바로 하기는 그렇고, 꺾이는 부분 서너 곳을 포함해서 한 10m 정도를 먼저 만들어보죠. 그게 괜찮으면 공사 시작하구요.”

“흐음… 좋은 방법이군.”

그 이후로 우리는 세부적인 테스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나무끼리의 연결부는 청동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구리보다는 아무래도 합금 쪽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연결되는 양쪽 두 나무 사이의 굵기가 달라도 문제가 없고, 방향을 바꿔줄 수도 있다.

물론 각 연결부마다 개별 제작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

테스트 구조물은 단 이틀 만에 만들어졌다.

배 안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서 특별히 크기나 방향 같은 외부적인 요소를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테스트 시간.

나는 내가 하는 짓을 호기심 반, 한심함 반으로 바라보던 부선장님과 늘 호기심이 많은 우르타, 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오펜과 함께 테스트장을 찾았다.

“와, 신기하게 생겼다!”

신이 난 우르타가 달려가고, 마지막 점검을 하던 중이었는지 이음새를 살펴보던 드웰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왔나? 마지막으로 새는 부분이 없는지는 잘 확인했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아는 사람은 없죠?”

알고 나면 별것 아니라고 해도, 발상 자체가 선박 위의 통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괜히 여기저기 소문이 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이지. 이음새를 만든 대장장이들이야 이런 것을 왜 만드나 싶은 정도일 거고, 다른 인부들은 이 근처에 못 오게 했었네. 오늘도 마찬가지고.”

“다른 날보다 오늘이 더 중요해요.”

“걱정 말게. 오늘은 신시엘라 호 마무리 작업 때문에 이쪽에 신경 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야.”

“그렇군요.”

나도 여기까지 오면서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충분히 주의 깊게 살폈기 때문에, 드웰의 말에 약간 안심이 되었다.

만약 이전에 이 구조물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해도, ‘드웰이 노망이 났나?’ 정도로 넘어가겠지만, 오늘 테스트 과정이 노출되면 어린아이라도 이 구조물이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오늘의 보안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자, 자. 빨리 끝내고 갑시다. 괜히 시간 늘려봐야 신경 쓸 것만 많아질 테니.”

내 말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우르타였다.

“나! 나! 내가 할게!”

“크흠, 그럼 반대쪽은 내가 맡도록 하지.”

“그럼 드웰 씨랑 제가 저쪽으로 가죠. 부선장님, 이쪽을 부탁드릴게요.”

“그래,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만….”

반대쪽에 준비가 된 것을 확인 한 나는 드웰과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는 시커멓게 뚫린 테스트 기관의 한쪽을 붙잡고 말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입 주변을 손으로 막은 뒤 적당한 크기로 말했다.

“여기는 선교, 포갑판 들리나?”

말이 끝난 뒤, 우리는 침을 삼키며 전성관에 귀를 가까이 대었다.

“…….”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전성관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리#^[email protected]%#하#@$야?”

기괴하게 울리는 소리는 인간의 언어와 닮아있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적당히 유추는 가능했다.

‘리안, 뭐라고 하는 거야?’

정도라고 말한 것 같다.

저쪽도 그리 잘 들리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이 정도 정확도로는 전성관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최소한 ‘좌’와 ‘우’, 숫자 1과2 정도는 구분이 돼야 통신수단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망한 것 같죠?”

“그렇군….”

돈을 낸 것도 나고, 실패한 것도 난데 왠지 드웰 씨가 더 서글퍼 보였다.

“아무래도 진짜 통 금속관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적당한 내구성까지 갖추려면 돈도 돈이지만, 무게도 만만치 않을 걸세.”

“그래봐야 얼마나 한다고….”

“쯧, 지금 이 관만 해도 성인 남자 혼자서 들 무게가 아니네. 한 번 들어보게.”

그래봐야 대충 10미터 조금 넘는 나무관이 얼마나 무겁다고.

나는 드웰의 말에 냉큼 나무관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의외로 관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어? 진짜 무겁네요?”

“그래. 일단 형태상 인간이 들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도 하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아. 그런데 이걸 다 금속으로 채우면 얼마나 무겁겠나?”

“으음….”

“아마 배에 설치를 한다면 밸런스라던가 그런 부분도 많이 고려를 해야 할 걸세.”

“알겠어요. 그럼 이건 일단 파기해주세요. 다음에 제가 금속 주괴를 구해오건, 대장장이를 구해오건… 그때로 다시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우리가 씁쓸한 마음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는데, 기다리다 지쳤는지 우르타가 팔랑팔랑 뛰어왔다.

그 뒤는 오펜이 따르고 있었다.

“리안! 뭔가 들리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래, 망한 것 같아.”

“어? 진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르타가 물러나고 난감한 표정의 오펜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선장님!”

“그래, 고맙다, 오펜.”

…그러지 마. 네가 그러니까 내가 진짜 몽상가나 사기꾼 같잖아?

어디서 들고 왔는지 망치로 구조물을 두들겨 부수는 드웰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잘 참던 부선장님도 결국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러길래 내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 않느냐? 에잉….”

애초에 나도 나무로 만드는 것은 반대였다구요.

이론이 틀린 게 아니고 재질의 문제라니까?

***

신시엘라 호의 수리가 끝나고, 우리는 바로 출항하기로 했다.

당장은 전성관 제작이 힘든 이상, 괜히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폰테 섬으로 가기 전에 니파 항구에 들러서 슬레어의 가족들 소식도 알아봐야 하니 말이다.

임신한 연인을 두고도 별 말없이 날 따라와 준 네이선이 좀 고맙기도 하고 해서, 오늘은 오래간만에 내 방에서 네이선과 우르타와 모여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쯤이었지? 그 인어들 만났던 곳이.”

“아, 여기쯤이었나?”

네이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긴, 이 녀석은 해도를 보지 않으니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아, 인어 말하니까 인어 보고 싶다!”

“너는 그 끔찍한 꼴을 또 보고 싶냐?”

네이선은 진저리를 치며 우르타를 타박했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바다 위에 조용히 수백의 머리통이 떠 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좀 소름 돋는 광경이기는 하다.

“아, 이번에는 먹을 것 담은 양동이, 안 줘?”

“벌써 내가 띄워 보내고 왔다.”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고마운 마음에 음식을 담은 양동이를 몰래 띄워 놓기는 하는데, 그들이 그걸 가지고 가기는 하는지, 우리가 준 것은 아는지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정박을 했던 해상은 지금 지나는 곳보다 남쪽으로 훨씬 더 내려간 해안에 가까운 부분이기도 하고.

특별히 뭔가를 바란다기보다는 그냥 의도치 않게 불공정 거래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마음의 위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니파 항구는 왜 가겠다는 거야? 델라에서 바로 에쉬노르로 가서 보급한 다음 그 섬, 뭐라고 했지?”

“폰테 섬.”

“그래, 그 폰테 섬으로 간다며?”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슬레어 항해사의 부모님이 니파 항구 근처에 사시는 모양이야. 선원까지는 못 챙겨도 항해사 정도까지는 챙겨줘야지.”

“뭘 챙겨?”

우르타가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이 다시 격렬해지고 있다잖아. 니파 항구는 중부 도시고.”

“전쟁은 남부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남부가 곧 반군의 손에 떨어질 것 같다고 안톤 선장이 말해줬잖아. 남부가 떨어지면 반군이 제일 먼저 어디를 노리겠어?”

“어? 그, 글쎄… 수도?”

“어휴….”

똑똑똑!

뭐야? 노크 소리가 좀 다급한데?

나는 우르타의 무지를 질책하는 것을 멈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물었다.

“누구야?”

“선장님, 가빈입니다. 지금 선교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사방이 어두운 밤에는 아무래도 이벤트가 적다.

그런데 굳이 선장인 나를 호출할 정도면….

“가자.”

내가 말을 하며 일어서자, 이미 준비를 마친 네이선이 내 코트를 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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