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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28화 (229/420)

228화. 미스터리한 사건

“무슨 일이야?”

내가 네이선과 우르타를 뒤에 달고 선교에 올라가자,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표정의 그레이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선장님.”

“괜찮아, 무슨 일인데?”

내 말에 그레이그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한 손으로 망원경을 받으며 살펴보니 돛이 절반 이상 내려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배는 점점 추진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도대체 왜?

나는 그레이그가 주는 망원경을 돌려주고 품에서 내 망원경을 꺼냈다.

어두워서 큰 차이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또렷하게 보이는 게 좋겠지.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몇 번이나 발광신호를 보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멀쩡하게 보이는 배 한 척이 조용히 떠 있었다.

그래,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간 이상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일단 돛의 상태가 이상했다.

제대로 올린 것도, 내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야간 항해의 위험성 때문에 돛을 다 올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상태는 너무 이상했다.

지금도 바람을 제대로 안지 못해서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선상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것이, 만약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수습하려고 했다면 돛을 완전히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저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거리가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횃불 몇 개나, 갑판 위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지나가는 다른 선박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이쪽의 발광신호를 놓쳤을 리가 없고.

“접근합니까?”

“으음…. 다른 선박들에게는 전달했나?”

“네. 일단 대형은 유지하고 속도는 늦추라고 전달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네이선을 한 번 보고는 결정을 내렸다.

“최대한 조심해서 접근한다. 갑판장, 단정 준비해. 돌격대원들 전부 무장시키고.”

“알겠습니다.”

“일등항해사, 피오렐에게 전달. 전투 배치 상태로 주변을 경계할 것.”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급히 선교를 떠났고, 나는 남아있는 우르타에게 말했다.

“포술장, 포격 준비.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내 지시가 없어도 공격해.”

“알겠습니다!”

야간 포격의 명중률이라는 것이 눈감고 쏘는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근거리에서는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저 괴선박보다는 오히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적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기도 하고.

우르타가 급히 자리를 뜨는데, 부선장님이 빠른 걸음으로 선교에 올라왔다.

“무슨 일입니까?”

“정선 중인 선박을 발견했습니다. 반응이 없네요.”

“으음?”

망원경으로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부선장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해적들에게 털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전투 흔적은 못 찾겠던데….”

해적은 약탈이 목적이기 때문에 포격을 자제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혀 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단 상선을 제압해야 약탈이건 뭐건 할 것 아닌가?

당연한 말이지만, 해적과 조우했다면 선체가 저렇게 멀쩡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해적이 승리한 다음 선박 자체를 나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적어도 증거 인멸을 위해 자침 정도는 시켰을 테니까, 확실히 해적에게 당한 형태는 아니었다.

선상 반란일까? 아니면 전염병?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결국 고개를 내 저었다.

이곳은 망망대해… 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육지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다.

전염병이 아무리 지독해도 이렇게 손 쓸 시간도 없이 선원이 전멸했을 리가 없고, 선상 반란이라면 최소한 몇 명이라도 살아 있겠지.

반란으로 인한 전투 결과 양패구상…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이 되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부상 악화로 모두 죽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고.

***

우리가 꽤나 요란스럽게 접근했음에도 역시나 괴선박에서는 전혀 생명 반응이 없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가지.”

네이선이 내게 다가와 다부지게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왔고, 나는 경계 태세를 갖춘 피오렐과 리버티 호의 위치를 확인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부선장님이 내 앞을 막기 전까지 말이다.

“안 됩니다.”

“부선장님?”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에른스트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집스럽게 내 앞길을 막은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제독이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선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선장님은 여기 계시죠.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레이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언제 준비한 것인지 전투 준비를 다 갖춘 상태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네이선도 단호하게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을 막았다.

“저,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크리스티앙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들었고, 오펜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들 유령선에서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내가 가는 것은 기를 쓰고 막으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직접 가기 어려울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갑판장이….”

“선장님! 갑판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판장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레이그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유사시를 대비해 갑판장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현장을 지휘할 사람은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게 부선장님까지 동의하자 나로서는 더 이상 반박할 말이 부족했다.

***

한참을 서로 가네, 마네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그레이그와 네이선, 크리스티앙이 돌격대원 12명과 함께 괴선박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따로 선발한 선원 7명과 돌격대장 행크는 유사시에 바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대기했다.

드디어 네이선 일행이 탄 단정 두 척이 괴선박에 접현하고, 줄 갈고리를 던져 15명이 모두 배 위에 올라섰다.

별문제가 없는 듯 네이선이 내가 빌려준 랜턴으로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괴선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한참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괴선박에 집중하고 있는데, 조용히 다가온 오펜이 나를 불렀다.

“선장님, 잠시 이쪽으로.”

“응?”

우현이 잘 보이는 선교 한쪽으로 나를 끌고 간 오펜이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입니다.”

“뭐?”

“그, 인… 어 말입니다.”

나는 의외의 말에 깜짝 놀라 급히 그가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파도 사이에 살짝 드러난 동그란 머리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자세하게 살펴보았지만, 확실히 인어가 맞는 것 같았다.

“뭐, 뭐지…?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어?”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방금 전에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저렇게 있었습니다.”

비록 첫 만남에서 우호적인 분위기였다고 하지만, 우리가 ‘인어’라고 부르는 이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은 미지의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인적이 보이지 않는 선박 근처에서 발견되는 그들이라니.

뭔가 의식의 흐름이 한쪽으로 쏠리기에 충분한 정황 아닌가?

나는 급히 다른 바다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우리를 포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개체를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처음 찾았던 개체마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선원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

“네. 만약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조용하지 않을 겁니다.”

나와 오펜이 바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갑판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선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요?”

“탐사대가 복귀 중입니다. 지금 단정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호는요?”

“우리 쪽에 특별하게 문제는 생기지 않은 모양인데, 신호는 ‘경계 유지’입니다.”

으음….

오펜이 인어를 발견하기 전까지 ‘함정’이 아닐지 걱정을 했었다.

거의 가능성은 없지만, 해적들이 일부러 빈 배를 띄워놓고 우리가 스스로 탐사를 한다고 기동력을 상실할 때까지 기다려서 기습하는 그런 함정 말이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기습이라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전술이었고, 이런 함정을 굳이 밤에 팔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무슨 수로 알리겠는가?

나처럼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유일한 방법이 빈 배에 숨어있던 자가 자기 편에게 발광신호 같은 것을 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걸 누가 하려고 하겠어?

신호를 보내자마자 정작 신호를 보낸 당사자는 사망 확정인데.

“우리 인원이 모두 복귀할 때까지 긴장 늦추지 말라고 해주세요. 피오렐 호로부터는 소식 없나요?”

“네, 견시수가 지속적으로 확인중입니다.”

설마 저 선박, 인어들에게 공격을 당한 걸까?

***

잠시 후, 무사히 복귀한 탐사대를 대표해서 그레이그가 보고를 했다.

“선장님, 일등항해사 그레이그 외 14명,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수고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복귀한 사람들을 하나씩 집중해서 확인했다.

사람 수를 확인하는데 등골이 오싹오싹하는 것이 나도 그때(유령선 사건) 놀라긴 놀랐었던 모양이다.

“특이사항은?”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레이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주었다.

“항해일지?”

“네. 선장실에서 발견했습니다. 선박의 선명은 뮬리아네, 9일 전에 론 항구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가…. 시체도 없다고 했나?”

내가 항해일지를 받아들며 묻자, 그레이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선장실에서 하시지요.”

그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나는 행크에게 현재 경계 상태를 유지하라고 지시한 뒤, 부선장님, 그레이그, 네이선, 오펜, 크리스티앙과 선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선장실에서 자리를 잡기 무섭게 크리스티앙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조금 굳기는 했지만 나름 평온한(?) 표정이었다가 워낙 급격하게 표정이 변해서 오히려 깜짝 놀랐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당황해서 묻자, 그레이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최근에 선상에서 무슨 일이 있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네이선이 말을 받았다.

“확실히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전투라고?”

“네. 확실히 공격을 받기는 한 모양인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레이그의 대답에 나는 긴장의 끈을 더욱 조였다.

“자세하게.”

“일단 적지 않는 양의 핏자국, 부서진 집기 따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배 위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혹시 어딘가에 모아두었나 싶어서 꼼꼼하게 탐색했습니다만, 시체는 찾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혈흔은 그 양으로 볼 때, 그만한 양을 흘린 사람은 절대로 살아있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무거운 보고를 들은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탈출 흔적은?”

“단정 하나가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 정도 크기의 배를 움직일 인원이라면, 단정 하나로는 탈출할 수 없죠.”

“시체도 없고, 전원이 탈출하지도 않았다?”

“네. 더 이상한 것은 약탈당한 흔적이 애매합니다.”

“응?”

없으면 없는 것이지, 애매한 건 또 뭐야?

내 질문에 이번에는 네이선이 대답했다.

“뭐랄까, 눈에 보이는 곳을 뒤진 흔적이 있는데, 약탈을 했다고 보기에는 제법 가치 있어 보이는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표정을 수습한 크리스티앙이 재빨리 부연 설명했다.

“심지어 누구나 알법한 중요한 곳인데도 뒤지지 않은 곳도 많았습니다.”

이 정도 되면, 나와 동일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슬쩍 오펜을 살펴보니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것이, 나와 비슷한 추론을 한 모양이다.

공격을 당한 것은 확실한데, 배는 파손시키지 않고 선상에서 백병전만 벌였다.

인간이라면 욕심을 낼 만한 물건들을 약탈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체는 없다.

…아, 좋지 않은 쪽으로 자꾸 상상이 되는데?

“화물이나 뭐 그런 것은?”

“약간의 향료와 멜레스 약초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금인 것 같습니다.”

“화물 손상도 없고?”

“네. 몇 상자는 강제로 열려서 상품성을 잃은 것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괜찮습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물었다.

“혹시 식료품 같은 것에 문제가 있었나?”

내 말에 크리스티앙이 대답했다.

“조리실과 식료품 창고를 살펴보았는데, 탈출 시 가지고 간 것인지 식료품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은데…?

***

다른 사람들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 상황이 예상이 되다 보니 오히려 조금 대담해질 수 있었다.

나는 회의를 마무리 지으며 뮬리아네 호를 예항할 것을 명령했다.

“불길하지 않으냐?”

조심스럽게 접현하여 화물을 빼내고 있는 선원들을 보며 부선장님이 조용히 물었다.

“에이, 유령선도 아닌데요, 뭐.”

확실히 유령선이라고 하기에 뮬레아네 호는 너무 상태가 양호했다.

굳이 예항할 것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만 채워 넣으면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나는 솔직히 좀 불안하구나. 저 배의 선원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지 않느냐? 아무런 대책 없이 욕심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저들과 같은 꼴이 될 수도 있다.”

“어, 음…. 잠시 이쪽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금 자리를 옮긴 나는 주변에 선원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예전에 봤던 그 인어들에게 습격당한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아까 오펜과 함께 그 인어를 봤어요. 금세 사라졌지만.”

“하지만 그때 우리는….”

“네, 우리는 공격당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먼저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거고. 만약 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적대 행위를 했다면요?”

“으음….”

“물론 다 추측이기는 한데, 아마 별일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부선장님에게 두 가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시체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추측.

그리고 두 번째는 어쩌면 우리가 준 음식으로 인해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이전에 그들이 상선을 공격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식료품이 사라진 것은 아마 우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식료품뿐만 아니라 사라진 시체들….

도대체 뮬리아네 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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