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29화 (230/420)

229화. 그레이그와 크리스티앙

화물이야 어찌저찌 옮겼지만 예항을 위한 결속 작업까지 하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선원들의 피로도도 높아서 일단 정박한 상태로 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오트라스 호만 뮬리아네 호의 옆에서 정박하고, 리버티 호는 근거리에서, 피오렐 호는 원거리에서 경계 상태를 유지했다.

다른 두 선박의 선원들도 피곤하기야 하겠지만 오트라스 호 선원들처럼 육체적인 노동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룻밤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원이 몇 시간씩 눈을 붙였지만, 그럼에도 몇 명은 밤을 꼴딱 새워야 했다.

아무리 주변에서 다른 배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트라스 호 자체에서 불침번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어, 일등항해사. 특이사항은?”

“으하하, 겨우 하루 안 잤다고 고생이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특이사항으로 두 척으로 이루어진 상선단이 근처를 통과하면서 문제가 있냐는 신호를 보내기는 했지만, 접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대충 날이 밝아오는 것 같은데 결속 작업 지시할까요?”

그레이그의 말에 나는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다.

혹시라도 지나갔던 상선단이 해적선의 척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동서남북 어디에도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속 작업 시작을 명령했다.

“갑판장에게 지시해서 결속 작업 시작하라고 하지.”

“알겠습니다.”

***

단잠을 자다가 끌려 나온 네이선 이하 선원들이 툴툴거리며 결속 작업을 하는 동안, 이를 구경하던 크리스티앙이 질문을 던졌다.

“선장님, 저 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힐끗 보니 눈에 기대감이 가득한 것이 떡고물을 원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어젯밤에 항해일지를 대충 살펴보았는데, 뮬리아네는 케이라 왕국 국적의 상선이었다.

억지를 부린다면 뮬리아네가 우리 쪽을 상대로 약탈을 시도했다고 말하고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기본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던 세 척짜리 선단을 상대로 뮬리아네가 해적질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한 설정이다.

선단 전체는커녕 오르라스 호와 1:1로 붙어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규모의 무장 수준(선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안의 흔적으로 볼 때 대략 50명 전후로 추정된다)을 가지고 선공을 하다니, 설득력이 전혀 없잖아.

게다가 입이 가볍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원들이 내 거짓말에 모두 동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바보 같은 짓이다.

같은 배에 있어도 단속이 어려울 텐데 다른 배에 있는 선원들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가스벨에 도착하는 대로 항구관리관에게 인계할 거야.”

“네에? 아니, 그렇다면 굳이 귀찮게 예항을 할 필요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이 크리스티앙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으억!”

갑작스러운 기습에 거의 엎어질 뻔한 크리스티앙이 발끈하며 뒤를 돌아보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으음, 그렇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떤 노…으?”

“뭐야? 남자 새끼가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계속해봐.”

그곳에는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그레이그가 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야?

“이, 일등항해사님….”

“크리스티앙 항해사. 지금 뭐라고 했나?”

“그, 그게, 일등항해사님인 줄 모르고 그만….”

“그딴걸 묻는게 아니야! 선장님, 이 녀석을 좀 교육시켜도 되겠습니까?”

“어? 아, 그, 너무 세게 하지는 말고….”

하지만 그레이그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크리스티앙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럴거면 왜 물어 본거냐고.

“귀찮게 왜 예항을 하냐고? 그럼 애송이 너는 저 배를 그냥 두고 가야 한다는 말이냐? 저 배를 기다릴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대로 저 배를 놔두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엉?! 유령선의 전설이 왜 생기는 줄 알아? 바로 너처럼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뱃놈들 때문이지! 어떻게 저 불쌍한 뮬리아네를 앞에 두고 사소한 이익을 따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해! 그렇게까지 뭐라고 할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유령선이랑 저 배가 무슨 상관이야?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그레이그를 말린 나는 그에게 부탁했다.

“대충 결속 작업 끝난 것 같은데 일등항해사가 최종 점검 좀 해줘. 크리스티앙 항해사도 그 정도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을 거야.”

“후우, 알겠습니다, 선장님. 하지만 저런 글러 먹은 생각은 빨리 고쳐줘야만 합니다!”

“알았다니까. 그러니 자네는 내가 부탁한 일부터 확인해주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던 그레이그가 쿵쾅거리고 떠나자, 나는 의기소침해 있는 크리스티앙의 어깨를 두들겼다.

우르타가 처음 배를 탔을 때, 우르타에게 성추행을 시도하던 놈을 두들겨 패준 네이선이 우르타를 혼구멍 냈을 때가 떠오르는군.

그때 네이선은 실컷 구해준 우르타에게 멍청하게 당하기만 하냐고 화를 냈었지.

우르타의 눈가가 빛나는 것을 모른 척 하느라고 참 힘들었는데 말이야.

“크리스티앙 항해사,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그레이그 일등항해사의 말대로 우리가 이익만을 좇는, 그런 쓰레기는 아니잖아?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돈이 먼저이기는 하지만, 뮬리아네 호는 어찌 보면 큰 사고를 당한 거잖아. 우리도 언제 당할지 모르는 그들의 불행을 앞에 두고 우리의 이익만 먼저 생각한다면, 해적 놈들과 우리가 다를 게 뭐겠어?”

사실 해적이나 선원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이기는 한데, 그래도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초보 항해사에게 사실을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 좋게(?) 선창이 거의 비어있었던 관계로 꽤 비싼 교역품인 향료와 멜레스 약초, 소금도 잔뜩 챙겨서 만족스럽기도 하고, 선박까지 꿀꺽하기에는 훗날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좋은 말로 포장하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앞으로 차차 배워 가면 되는 거지. 가서 결속 작업 확인하는 것이나 옆에서 지켜보게.”

“네?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그레이그와 마주하는 게 껄끄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가장 자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직속상관과 앙금이 남아서야, 생활이 편할 수가 없다.

“일등항해사가 말은 저렇게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한번 혼났다고 계속 불편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 자네가 먼저 다가가라고.”

승조원들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선장의 몫이기는 하지만, 이런 일은 정말이지 불편하다.

***

사흘 후, 가스벨 항구에 입항한 나는 즉시 그레이그를 대동하고 항구관리소를 찾았다.

잠시 기다린 끝에 우리는 항구관리관의 집무실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반갑소, 리안 선장. 내게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최근 가스벨의 북서쪽 바다 위에서 선원이 없는 선박을 발견했습니다.”

“아, 검문을 나갔던 아랫놈에게 이야기는 들었소. 그렇지 않아도 외관이 망가지지 않은 멀쩡한 배가 예항이 되어 들어오는 통에 아랫것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지.”

“이미 알고 계시다니 따로 설명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이것….”

나는 품에서 뮬리아네 호에서 발견된 항해일지를 꺼냈다.

“뮬리아네 호의 항해일지입니다. 케이라 왕국의 상선으로 보이는데, 상세한 내용은 직접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흐음… 좋소. 뮬리아네 호는 우리 항구에서 처리를 하도록 하지. 처리 결과는 어디로 통보하면 되겠소?”

쯧, 얼굴에 욕심이 가득 들어찬 꼴을 보아하니, 대충 주인 찾았다고 하고 자기가 꿀꺽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괜히 문제가 잘못되면 내가 옴팡 뒤집어쓸 확률이 너무 높으니까 말이다.

“델라 항구의 스코타 후작 저택으로 기별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응? 지금 뭐라고…?”

“스코타 후작 저택말입니다. 델라 항구 근처에 있습니다만.”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스코타 후작 가문의 인장이 그려진 깃발을 슬쩍 꺼내서 보여주었다.

항구관리관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그, 스, 스코타 후작 가문의 사람이셨소?”

“후작 각하께 꽤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어허허허, 그러셨구만. 걱정 마시오. 내 이번 일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처리하라고 할 테니.”

“물론 항구관리관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바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소.”

나는 항구관리관에게 뮬리아네 호의 처리에 대한 확인서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 확인서는 혹시라도 모를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를 변호할 수 있는 최소의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

개운한 표정으로 배로 돌아가는 길에 그레이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놈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꼴을 보아하니 어디에 대충 팔아먹고 남을 위인으로 보이는데요.”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하겠어?”

“어휴, 선장님. 그렇게 안심하실 일이 아닙니다! 저 항구관리관이라는 놈들이 얼마나 더럽고 야비한 놈들인지 아십니까?”

응, 나도 잘 알아.

“아무리 더럽고 야비한 놈이라고 해도 내가 스코타 후작 이야기까지 했는데 다른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을걸?”

태평스러운 나의 대답에 그레이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색했다.

“여기는 스코타 후작의 영지도 아닌데요?”

나는 그런 그에게 가소롭다는 듯이 손가락을 흔들어주었다.

“바로 옆 동네지. 아무리 귀족들끼리는 이런 사소한 일로 부딪히기 어렵다고 해도, 왕국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코타 후작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귀족이 있을까? 그것도 이웃 영지의 귀족이? 게다가 내가 스코타 후작 저택으로 기별을 보내 달라고 했잖아. 수신자는 나지만, 만약 그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스코타 후작을 기만했다는 죄목을 씌우기에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오지.”

말을 그럴듯하게 했는데, 솔직히 나는 항구관리관이 뭘 얼마나 해 먹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거나 오해를 사는 것을 대비한 것일 뿐이니까.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항구관리관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만 한다면야, 그가 뮬리아네 호를 찜쪄 먹건 구워 먹건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레이그는 뭔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하지만 저는 걱정이 됩니다. 뮬리아네 호는 정당한 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놈은 절대로 일을 그렇게 처리할 것 같지 않아서요.”

정의의 사도께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구만.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내가 뮬리아네 호의 주인을 찾겠다고 저걸 예항해서 케이라 왕국의 항구를 모조리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후작 저택에 기별은 보내야 할 테니 말이야. 우리가 받아야 할 보상금도 있을 테고.”

그레이그가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보상금까지 받으실 생각이십니까?”

받을 생각인데… 그대로 말하면 저 표정이 경멸로 바뀔 것 같다.

“아, 아니! 그거 얼마나 된다고! 교역품을 챙긴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어디까지나 저 항구관리관이라는 놈이 반드시 연락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한 거야.”

“역시 그렇군요. 제가 선장님을 크게 오해할 뻔 했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선장님처럼 의리 있는 뱃사람이 그렇지 않아도 불행한 일을 겪은 유가족에게 보상금까지 뺏어낼 거라고 생각하다니! 제가 정말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젠장, 내가 일등항해사의 눈치를 봐야 하다니….

***

멜라나인 항구에서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 굳이 오랜 시간 쉴 필요는 없었지만, 뮬리아네 호의 문제 때문에 선원들의 피로가 조금 쌓인 듯하여 하루 더 쉬기로 했다.

특히 유령선 사태를 겪었던 선원들 중에 몇 사람은 스트레스가 꽤 컸는지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는 녀석들마저 있었다.

그들을 진찰한 닥터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것이 분명하다.

두통은 몰라도 복통은 혹시라도 전염병이나 식료품의 오염, 변질 문제일 수 있어서 조금 긴장했는데 다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좋다고 들었는데?”

“말도 말게, 반군의 기세가 얼마나 흉흉한지 왕국군이 연신 밀려나고 있다는구만.”

“허어, 그렇다면 전쟁이 더 길어질 수도 있겠군?”

“길어지기만 하겠나? 듣기로는 반군이 이길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는군.”

“그렇다면 다시 론 항구로 돌아가는 쪽이 좋으….”

항구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나는 뒷 테이블에서 떠드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모습이 이상했는지 우르타가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선장? 왜 그래요?”

“어? 아냐.”

“이거 안 먹을 거면 내가….”

“포크 치워라, 죽고 싶냐?”

“쳇.”

하나, 둘, 셋… 이 새끼, 벌써 하나 집어 먹었잖아?

감히 내 접시를 탐한 우르타를 응징한 후,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한 게론드에게 물었다.

“회계사, 우리 식료품 상황이 어떻지?”

내 질문에 냅킨으로 입을 닦은 게론드가 대답했다.

“식료품 말입니까?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대략 5~7일분 정도는 있을 겁니다. 어차피 델라 항구까지는 사흘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특별히 보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혹시 지금 배에 남는 공간이 없나?”

이번에는 게론드가 인상을 찡그리면 한참을 고민했다.

“몇 가지 계약한 물건은 있지만, 어느 정도 공간은 남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가스벨은 델라 항구와 가까워서 교역용으로 괜찮은 물건이 별로 없으니까요. 공간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그럼 남는 공간에 식료품 최대로 적재하면 얼마나 가능하겠어?”

“어?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응징당한 우르타를 놀리던 네이선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아무래도 델라 항구를 들르지 않고 바로 니파 항구로 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내 말에 네이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후작에게 출발 전에 알려줘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후작이 꽤나 싫어할 텐데요.”

“으음, 그렇기는 한데….”

물론 후작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슬레어가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에 대한 최근 전황을 들으면 속이 바짝 탈 것 같다는 말이지.

뒤에 상인들이 하는 말로 미루어볼 때 남부를 평정한 반군이 중부지방을 정신없이 몰아치는 모양인데 말이야.

잠시 동안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선단을 쪼개야겠다.”

“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리둥절한 세 사람의 질문을 무시하고 나는 명령을 내렸다.

“회계사는 교역품 재분배해서, 델라 항구로 가야 할 상품은 오트라스에 최대한 채우고, 나머지는 피오렐과 리버티 호에 나눠서 싣도록 해. 피오렐과 리버티 호는 바로 니파 항구로 갈 테니까 식료품도 넉넉하게 챙길 수 있도록 하고.”

“아, 알겠습니다.”

“포술장은 선원들 시켜서 선장들 호출해. 그리고 갑판장은 선원들 동원해서 회계사 좀 도와주고.”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슬레어 항해사를 최대한 빨리 니파 항구로 보내야 할 것 같아.”

***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불구하고 즉시 오트라스 호로 모인 발드 선장과 아인델프 선장은 나의 뜬금없는 말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황이 좀 그래요. 발드 선장님은 슬레어 항해사가 프레티아 왕국 출신인 거 알고 계시죠?”

“네, 뭐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뱃놈들에게 국적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슬레어 항해사의 가족들이 니파 항구 근처 바크렌 시에 거주하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소문을 들어보니 바크렌 시도 전쟁 때문에 위태로운 모양이고.”

“으음….”

내 말에 두 사람은 침음성을 삼켰다.

그러나 아인델프는 끝까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제독의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선단을 쪼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특히 혼자 남은 오트라스 호가 혼자서 장거리 항해를 하다가 불상사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일단 델라 항구에 입항을 하게 되면 시간을 많이 지체할 수밖에 없어. 후작 저택에 사람을 보내고, 탐사를 시작한다고 보고를 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말이야. 만약 너무 지체되서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슬레어 항해사에게 너무 심한 일이잖아.”

이번만큼은 두 선장의 고집이 대단해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절대로 오트라스가 혼자 항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고, 결국 내가 한발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피오렐의 바우어 항해사랑 리버티의 슬레어 항해사가 당분간 서로 소속을 바꾸고, 피오렐 호에 이번에 입수한 멜레스 약초와 향료만 담아서 먼저 니파 항구로 가는 것으로 하지. 화물이 가볍고 양이 적으니 혹시 모를 위험을 회피하기도 좋을 테고, 혼자서 움직이면 속도도 빠를 테니 말이야.”

“으음, 괜찮은 방법이군요.”

“저도 그 의견이라면 찬성입니다.”

말을 마치며 슬쩍 아인델프의 눈치를 보았지만, 꽤 어려운 일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한 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아인델프 선장, 매번 어려운 일을 부탁해서 미안하네.”

“무슨 말씀을요, 제독이 아니었다면 이미 물고기 밥이 되었거나 별 볼 일 없는 항해사로 전전하고 있었을 접니다. 게다가 특별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네요. 아시다시피 피오렐의 전투력이나 속도가 어디서 얻어맞고 다닐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휴,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내일 바로 출항할 테니 다들 빠르게 준비합시다.”

갑판까지 함께 나온 두 선장은 내게 인사를 마치고 바쁘게 자신의 배로 돌아갔고, 나는 네이선을 호출하여 다시 화물 정리를 시켰다.

본의 아니게 일을 두 번 시키게 되었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끌려 나온 선원들이 걸쭉한 욕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나에게 안 들리게 작게 한다고 한 모양이지만, 나도 선원으로 살아온 세월만 5년이 넘는다.

입 모양만 봐도 무슨 욕을 하는지 다 보인다.

저러다가 네이선에게 걸리면 뒤지게 맞… 이크, 벌써 맞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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