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멀어지는 그녀
“안녕하십니까, 후작 각하.”
내 독촉 덕분인지 해 질 무렵 만나게 된 후작은 꽤나 피곤해 보였다.
심지어 뭐가 그리 바쁜지 지금도 신중하게 서류를 읽다가 서명을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고, 접객용 테이블에는 나무로 만든 색색의 사람 모양의 인형들과 배 형태의 모형들이 정신 사납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장난감(?)들 밑에 반으로 접혀있는 커다란 종이가 대륙 지도라는 것에 내 왼쪽 손목을 걸어도 될 것 같다.
의문인 것은 굳이 이런 모습을 내게 왜 보여주느냐는 것이겠지.
내가 갑자기 들이닥친 것도 아니고, 이런 것을 치우는 일을 후작이 직접 할 리도 없으니 충분히 치울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접혀져 있는 지도와 아무렇게나 흩어진 모형들의 상태로 볼 때, 굳이 이렇게 내가 볼 수 있도록 놓아둘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왔나? 보다시피 그리 안녕하지는 못하네. 정신없겠지만 일단 그쪽에 앉지.”
내 인사에도 한 박자 늦게 대답한 후작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그렇게 우리가 소파에 착석한 후에도 한동안 서류와 씨름을 하던 후작은 우리가 약간 민망해할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정도 되면 후작이 정말 바쁜 것인지, 평생 동안 해온 정치적 행동의 연장인지 구분이 안 된다.
“자네가 바쁘다고 해서 시간을 내기는 했지만, 술이나 차를 대접할 여유는 없군. 그래, 피오렐이 보이지 않는다던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알고 있었군.
“긴급을 요하는 일이 있어서 먼저 출발을 시켰습니다. 걱정을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미 자네 배인데 내게 죄송할 게 무어 있겠나. 그보다 피오렐의 성능은 어떻던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양호합니다. 물론 상선으로서의 성능은 애매합니다만….”
“그래, 잘 이야기했네. 자네 생각대로 애초에 상선이 아니라 호위대에 편성하기 위해 설계된 선박이지.”
“각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본국의 정책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외람된 말이긴 하군. 아직 자네가 논할 정도의 일은 확실히 아니야. 자네는 그저 성능이 어떤지만 보고하면 되네.”
“알겠습니다, 일등항해사?”
내 말에 다른 세 사람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후작의 시선이 처음으로 그레이그를 향했다.
오펜과 크리스티앙은 몰라도 그레이그만큼은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야 하기에 일부러 이 일은 그에게 맡겼다.
후작이 내게 성능을 보고하라고 따로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굳이 새로운 선박을 내게 맡긴 이유가 뭐겠나?
이정도는 척하면 척이다.
“안녕하십니까, 후작 각하. 오트라스 호의 일등항해사 그레이그입니다.”
후작과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떨리기는커녕 표정까지 편안하기 그지없는 그레이그를 보던 후작의 표정에 흥미롭다는 듯 호기심이 어린다.
“그래, 새로 뽑은 일등항해사로군.”
“피오렐 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처음 대면하는 고위 귀족 앞에서도 당당하게 미리 준비한 피오렐의 성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레이그를 재미있게 관찰하던 후작은, 그의 보고가 끝나자 남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잘 들었네. 혹시 준비된 자료가 있다면 나갈 때 집사에게 전달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나머지 두 사람은?”
“오트라스 호의 항해사들입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전령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기에 위치를 알려줄 겸 데리고 왔습니다.”
“흐음….”
재미있다는 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보던 후작이 이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입항하면 바로 탐사에 나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바로 움직일 생각인가?”
“일단 프레티아의 니파 항구로 가서 피오렐과 합류한 뒤, 가능하면 일레드 왕국의 에쉬노르 항구에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발할 생각입니다.”
“에쉬노르라…….”
후작은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나무 모형들을 한쪽으로 쓸어버린 뒤 반으로 접혀져 있던 종이를 펼쳤다.
내 예상대로 그 종이는 상당한 크기의 대륙 북부 전도였다.
향료 제도나 노던테라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마다카트 섬이나 울부짖는 바다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울부짖는 바다의 좌측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표시된 몇 개의 점이 보였다.
아마 몬테 섬의 위치를 추정해서 그려 넣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 아무래도 직선거리로 볼 때는 에쉬노르가 가장 좋기는 하겠군. 잠깐, 흐음….”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고민하던 후작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 제먼 선생을 밀항시킨 곳이 아닌가? 적잖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던데.”
“네, 그것 때문에 분위기를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어렵다면 차라리 벵가로쉬 항구에서 출발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하필이면 프레티아 왕국이라는 말이지.”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후작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엘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순간적으로 등짝에 전율이 흐르고,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에, 엘리안 아가씨 말씀이십니까?”
“그래, 저번에도 그 아이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지?”
머릿속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잘못하면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목숨까지 위험할 것 같다.
나는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어 내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상하게 대답했다.
“아가씨께서는 짧게 겪은 밖에서의 일에 여운이나 환상 같은 것이 남은 모양입니다. 도피 중의 생활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텐데도 말이죠. 음, 어쩌면 제가 아가씨의 도피 생활에서 유일하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호의? 밀항을 시켜준 것 말인가? 그 대금은 넘치도록 받은 것으로 아네만?”
뭘 또 넘치도록 받았다고 표현하시나.
그 일 때문에 고드실카 호는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우리 부선장이 원래 복수를 위해 왕녀님을 암살하려고 했었다구요.
“밀항은 거래일 뿐이죠. 제 호의는 아가씨와 알렌 경이 도주할 때 쓸 은화와 동화 약간을 제공한 것을 말하는 겁니다.”
다, 다행이다.
당황한 와중에 던진 변명치고는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후작을 보니, 그의 눈매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이럴 때 쐐기를 박아야지, 최대한 돈에 미친 놈처럼….
“돈이란 호의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척도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때 상황에서는 아무리 비싼 사치품이라도 처분이 어려웠을 테니 제가 제공한 돈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잠시 탐색하듯이 나를 훑어보던 후작은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깜빡했는데, 앞으로 그 아이를 만날 수는 없을걸세. 자네와의 관계를 빌미로 파혼이 되었으니 말이야.”
“…….”
이 노인네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물론 언감생심 내가 왕녀님을 뭐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다시 만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이 타이밍에서 나는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이해를 못 한 것은 아닐 테고, 재미있군. 태연함을 가장했다면 그 나름대로 상당한 자제력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좋아, 말했다시피 내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혹시 출항 전에 필요한 것이 있나?”
태연함을 가장했다기보다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약간 고장 난 느낌이었지만, 후작은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씨발!
죄 없는 사람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으면 최소한 정확하게 무슨 내용인지 설명이라도 하라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충격과 분노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항구에 각하께서 해적 토벌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혹시 이에 대해 제가 알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까?”
미리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기를 썼고, 다행스럽게도 내 머리는 화제를 돌릴 수 있는 정답을 도출해 냈다.
“흐흐, 무슨 소문이 돌던가?”
“후작 각하의 선단이 외날의 라프나에게 공격을 당했고, 후작 각하께서는 크게 노하셔서 해적 토벌을 명하셨다는 소문입니다.”
“흐음, 외날의 라프나에 대한 소문?”
아차! 그건 제먼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나?
“네, 그냥 해적이라는 말도 있고, 외날의 라프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왕 엎질러진 물,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원래 소문이라는 것이 정확하기 어려운 법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살이 붙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제먼 씨를 만났다는 사실 정도야 이미 알고 있을 테니, 그가 말해줬다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괜히 제먼 씨에게 불똥이 튀면 미안한 일이지.
내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후작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지,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여러 가지 소문을 퍼트려서 한몫 잡아보려고 모이는 모양이지만. 그런데 자네는 지금 할 일이 있지 않나?”
“…알겠습니다.”
돌려서 말했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럼 이만 일어나지. 급하다고 하여 마차를 준비시켰네만, 자네가 원한다면 아침에 출발해도 좋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후작 각하.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피오렐을 따라잡아야 하니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
돌아가는 마차는 올 때보다 확실히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제대로 된 포장도로도,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낮과 같은 속도로 달린다는 것은 자살하는 좋은 수단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진동도 좀 적어서 올 때보다는 쾌적한 편이다.
비록 아무리 진동이 줄고 피곤하다고 해도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후작과 대면한 이후로 평소와 조금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레이그가 물었다.
“아까 받으신 것은 뭡니까?”
“아, 이거?”
나는 품에서 집사에게 받은 주머니를 꺼내서 그레이그에게 가볍게 던져주었다.
“웬 돈입니까?”
열어볼 것도 없이 단지 주머니 너머로 전해지는 감촉만으로 정체를 눈치 챈 그레이그는 바로 내게 주머니를 던지며 물었다.
어두워서 지금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금화라는 것을 알면 더 깜짝 놀랄걸?
“탐사 지원금. 피오렐도 그렇고, 자기 지분을 확실히 하고 싶은가 봐.”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글쎄….”
정말 그럴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이 돈이 언제 내 목을 옭아맬 밧줄이 될지 모르는 일이지.
“그보다 선장님, 후작과 꽤나 친밀한 관계이신 것 같군요. 예상외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호위를 위해 기병대를 붙여 줄 줄이야. 게다가 저 기사와도 안면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냥 적당히.”
내가 나름 친근하게 알렌 경에게 인사하는 것을 눈여겨본 모양이다.
하긴, 안면만 있는 정도가 아니지.
초면에 내 목에 칼을 들이댔던 사람이고, 바로 어제도 만났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만나본 인간 중에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리 친근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알렌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러니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거다.
저런 괴물 같은 인간조차도 고작 호위대를 이끄는 잡일에 동원할 수 있는 게 바로 후작이다.
그런데 라프나가 후작의 상선대를 건드렸다고?
막말로 지금 마차 옆을 달리는 알렌만 배에 태워도, 라프나 따위는 백병전이 걸리자마자 토막 내버릴 수 있을 텐데?
물론 라프나가 후작이 데리고 있는 자 중에 알렌이 있다는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와 비슷한 힘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거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 아닌가?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아직도 후작 저택에서 받은 충격이 남아있어 보이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때? 후작 저택에 방문한 소감은?”
“어, 뭐, 뭐랄까요… 전 사람이 그렇게 화려한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 아니! 후작 각하시니까 당연히 국왕 폐하처럼 화려한 곳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니까….”
허둥지둥 말을 정리하지도 못하는 오펜이 귀엽다.
아무리 다 큰 척을 해도 아직 애는 애다.
크리스티앙은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평소에 하는 것을 보면 제법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후작 같은 최고위 귀족과 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오펜보다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해져 있는 꼴이, 충격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
“여기서 우리는 돌아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알렌 경. 밤이 늦었는데 쉬었다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좋은 여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선장의 호의는 고맙게 받겠지만, 이미 항구관리관이 연락을 받아 숙소를 준비했을 것 같군. 그럼 이만. 이랴!”
별 기대 없이 던진 내 요청에 알렌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건조하게 거절했고, 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레이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 선장님과 친한 것 아니었습니까?”
“귀족이 평민 나부랭이와 친해질 일이 뭐가 있겠나?”
“어, 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돌아가지. 다행히 알렌 경이 항구관리관에게 출항허가가 빨리 나오도록 언질을 주겠다고 했으니, 내일 새벽에 출항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
“알겠습니다.”
달이 기울 정도로 늦은 밤에 건장한 남자 넷이 접근하는데 현문에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횃불을 챙겨 들었다고 하지만, 그게 멀리서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
“정지! 더 접근하면 공격하겠소!”
“나 선장이다.”
“에? 선장님?”
암구호 같은 것이 없는 세상이니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횃불을 들고 있던 오펜이 홀로 앞으로 나섰다.
“삼등항해사 오펜이다. 확인하도록.”
단 한 명만 비무장으로 앞으로 나서자 현문 근처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선원 한 명이 부스럭거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어? 진짜 오펜 항해사? 왜 이 시간에…?”
“선장님이 돌아오셨어. 빨리 현문 내려.”
“아, 알겠수다.”
다급히 현문이 내려오고, 나는 가장 먼저 현문을 통과하며 좋은 경계 상태를 유지한 두 사람에게 살짝 치하를 건넸다.
탁탁탁탁!
“선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항해사들이 모조리 자리를 비운 관계로, 선교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행크가 급한 걸음으로 뛰어오며 물었다.
“음, 별일 없었지? 선원들은 다 복귀했어?”
이미 후작 저택으로 출발하기 전에, 언제 출항할지 모르니 낮에는 외출을 허용하되, 밤에는 모든 선원을 복귀시키도록 명령해 둔 터였다.
물론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라서 분명히 전체 선원 중의 70% 정도는 지금쯤 고주망태가 되어 뻗어있겠지만, 그 정도야 내일 아침이면 대부분 회복될 것이다.
“해 질 녘에 인원을 점검한 결과 미복귀 인원이 6명이었습니다.”
“쯧, 날 밝는 대로 잡아 오도록 하고, 그놈들 없어도 항해에는 지장 없지?”
“물론입니다.”
“리버티 호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원을 보내서 알아 오라고 할까요?”
항구가 너무 붐벼서 이번에는 리버티 호와 꽤 떨어져서 정박을 했다.
우리는 4번 부두, 리버티 호는 7번 부두다.
엄청 멀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걸어서 움직이려면 왕복 30분은 걸릴 거리다.
게다가 밤이라서 사람을 보내기도 좀 그렇다.
“이 시간에 무슨. 저쪽에서 보고해 왔을 것 아냐? 보고는 부선장님이 받았어?”
내 질문에 행크가 약간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마지못해 작게 대답했다.
“갑판장이 보고를 받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뭐? 왜 보고를 갑판장이 받아? 부선장님은?”
“몸이 좀 안 좋으셔서 선의님이 이틀 정도는 푹 쉬라고 했답니다.”
끄응, 진짜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부선장님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으니.
나와 함께했던 항해사들에게 내일 출항을 위한 준비를 대충 마치고 자라고 한 뒤, 네이선의 방으로 향했다.
내가 네이선의 방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자, 행크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끙끙거리며 잠시 쫓아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직속상관을 한밤중에 깨우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살짝 깨워서 리버티 호 보고 상태만 확인하면 되는 건데 뭐, 괜찮겠지.
똑똑똑.
“네이선, 자냐?”
“…….”
“네이선?”
“리, 리안?!”
“어, 문 열어봐.”
“자, 잠깐만!”
우당탕탕!
“끼약!”
“…?”
내가 지금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야, 네이선. 뭐해?”
“어, 어, 그, 그러니까, 아! 나 오, 옷을 벗고 있어서!”
“장난하냐? 네놈의 더러운 몸 따위 관심 없으니까 문 열어.”
내 재촉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린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헥, 하하, 리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뭐지, 이 자식? 왜 이렇게 수상하게 굴어?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숨기지 않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아니고, 언제 왔냐고 물어보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닐까?”
“아, 그, 그렇지! 언제 온 거야?”
어쭈? 이놈 봐라?
“지금. 야, 마차를 오래 타서 엉덩이 아파. 들어가자.”
“어? 지금? 왜?”
“뭔 헛소리야? 비켜.”
솔직히 네이선의 방에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왠지 지금 저 방안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사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기분인데, 이걸 확인하지 못하면 오늘 잠자기는 틀린 거다.
“아, 안 되는데?!”
“…미쳤어?”
“아침에 이야기하자. 내가 지금 몸이 좀….”
이 새끼, 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
“명령이다, 갑판장. 지금 당장 문 열어.”
싸늘한 내 말에 네이선의 얼굴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아니, 지금 꼭, 그러니까, 왜 벌써….”
이 새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