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일벌백계(一罰百戒)
문을 반도 채 못 열고 당황해하는 네이선.
나는 이를 악물고 문을 힘껏 밀어젖혔다.
물리력으로 막으려고 하면 네이선이 나를 못 막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미 내가 선장의 권위를 내세운 이상, 문을 막으면 항명이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잠시 저항하던 문은 결국 활짝 열리고 말았다.
힘없이 밀려나는 네이선을 거칠게 밀쳐내고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불빛 한 점 없었지만,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으로도 사물을 어렴풋이 분간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이질적인 형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겨우 속옷만 걸친 채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고 있는 여자.
씨발씨발씨발씨발… 네이선 이 미친 새끼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급격하게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히고 여자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 사이에 이불을 끌어 내려 몸을 대충 감싸고 있는 여자.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체형을 봐서는 다행히 내가 생각한 사람은 아니다.
“휴우….”
부지불식간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오며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상황이 만만치는 않았다.
“설명해봐.”
“그게, 미안….”
“갑판장! 휴우… 아니다. 이제 와서 어쩌겠냐. 날 밝으면 저 여자 내보내고, 근신하고 있어. 처분은 아침에 내리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미안한데 이게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네이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창녀로 보이는 저 여자를 내보내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한밤중에 여자 혼자 내보내는 것도 못 할 짓이다.
게다가 여자를 보낸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
너무 흥분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배에 창녀를 들이면 안 된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에 창녀를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냐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일단 일반 선원들은 같은 선실을 수십 명이 같이 쓰고 제대로 된 침상도 없으니, 창녀를 데리고 와도 거사를 치르기 어렵다.
개인실을 쓰는 간부들이라도 마찬가지.
아무리 싸구려 여관이라도 선실보다는 낫고, 굳이 배에까지 여자를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창녀들이 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이선이 저 여자를 불러들이는 데 돈을 얼마나 썼을까?
돈이 많으니까 아주 별짓을 다하는구나.
하여간 규정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냐 싶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두 번째, 세 번째 케이스가 생겨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게 왜 문제냐고?
다른 배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배는 크고 작은 숨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선원들의 은행 역할을 하게 되면서 다른 배들보다 현금 보유량도 압도적으로 많다.
일반적인 창녀들의 도덕성은 믿을만한 수준이 아니고, 외부인이 자주 들락거리면 보안은 허술해진다.
그래서 외부인의 출입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편이기도 하고, 선원들에게도 자주 외부인을 경계하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선원들의 기강 유지와 특권에 대한 불만이 문제다.
나는 공정하고 공평한 사람이 아니다.
선장은 배 위에서 절대적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부선장님을 윗사람 대하듯이 존중해 주는 것도 그렇고, 네이선과 우르타에게 ‘친구’라고 대놓고 특혜를 제공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선장에게 반말하고 투정 부리는 승조원이 두 놈 말고 또 어디 있겠나?
그리고 오펜도 선원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예뻐하고 있지.
나는 나와 친한 사람, 내 사람들이 더 편하고 즐겁게 지내기를 원하는, 아주 지독하게 이기적인 놈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가 누군가를 특별히 생각하고 편애를 하더라도 선원들이 ‘저 사람은 선장과 친하니까’라고 넘어갔던 이유는, 그 사람들이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의 친분을 빌미로 월권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핍박하거나, 규칙을 어기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일조차 그냥 넘어가면, 분명히 선원들 사이에서 ‘선장과 친하다고 제멋대로 한다’라는 말이 나올 게 뻔하다.
거기에다가 네이선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않고 다른 선원들은 외부인을 배에 들이는 것에 대해 까다롭게 굴면 선원들에게 신망을 잃는 것은 순간이다.
발정기 온 짐승도 아니고, 평소에는 안 그러던 녀석이 왜 갑자기… 어휴.
***
나에게도, 또 몇몇 사람에게도 악몽 같았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태양이 빼꼼 머리를 내밀었고, 오트라스 호의 갑판은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굿모닝은 개뿔, 결국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선장님….”
일찌감치 선교에 올라 몇몇 사람에게 필요한 지시를 내린 뒤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행크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여자는?”
“당직 서는 인원들이 보기는 했습니다만, 해가 뜨기 전에 내보냈습니다.”
“어차피 알 사람 다 아는데 숨겨서 뭐 해. 눈감아준 선원들 다 추려놨지?”
“네….”
“한 놈이라도 빼놓지 마. 어차피 선원들에게 큰 처벌을 내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자네는 어느 정도 처벌을 감수해야겠지만.”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후우, 자네도 이제 가서 근신하고 있어.”
체념한 표정의 행크가 선교를 떠나자, 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이건….”
“오펜 항해사.”
“네, 선장님.”
“나와 친하니까 적당히 편하게 지내는 것은 좋아. 자네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이번 일은 선장인 내 지시사항을 공식적으로 어긴 거야. 그것도 무려 갑판장이라는 놈이 말이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오트라스 호는 내부로부터 무너질 거야.”
“네….”
“명심해, 부드러운 리더는 부하들에게 사랑받지만, 자기의 기준조차 없다면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펜에게 리더에 대한 내 개똥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계단 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리안!”
“‘선장님’이겠지.”
“네, 선장님.”
“무슨 일인가, 포술장?”
“어, 아…. 그러니까….”
냉정하게 포술장이라는 직책을 부르는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급하게 올라온 우르타가 버벅거렸다.
보나마나 네이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왔겠지.
맨날 티격태격해도 친구는 친구인 모양이다.
“혹시 포술장도 갑판장의 행동을 알고 있었나?”
“에엑?! 아, 아니! 아니요! 그러니까 나는, 저는 그 여자한테 붙잡혀서… 너무 피곤했고,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냥 자고 있었는데… 모, 몰라요!”
“그럼 지금 갑판장과 돌격대장이 모두 근신 중이니 선원들 지휘 좀 하지. 부탁해.”
“네, 선장님….”
자기 마음 좀 알아달라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 우르타가 몇 번이나 나를 돌아보았지만, 나는 무심하게 그 눈빛을 무시했다.
이번에는 떼를 써서 될 일이 아니다, 우르타.
***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완연한 아침이 되었을 때쯤, 리버티 호의 발드 선장, 바우어 항해사, 왓킨 갑판장이 선교에 올라와서 내게 인사했다.
“음, 발드 선장님. 리버티 호 출항 준비는 끝났나요?”
“네, 제독. 지시하신 내용은 빠짐없이 준비했습니다.”
“좋아요. 잠시 기다리시죠.”
시간이 더 흐르고 출항 허가를 위해 항구관리소에 갔던 그레이그가 복귀하자, 나는 크리스티앙에게 말했다.
“부선장님 방에 가서 상태 어떠신지 물어보고, 괜찮으시다면 모시고 나와.”
“네, 선장님.”
그렇지 않아도 무겁던 선교의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일등항해사, 갑판장, 돌격대장, 그리고 동조한 선원 네 명 모두 끌고 와. 선원들 모두 집합시키고.”
“알겠습니다.”
크리스티앙에 이어 그레이그도 선교를 떠나자, 발드 선장이 내게 다가오며 조용히 말했다.
“제독,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발드 선장님.”
“네, 제독.”
“리버티 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트라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리버티 호의 금고에도 현금이 꽤 있잖아요. 외부인이 활개를 치면 보안은 허술해집니다. 그나마 낮이라면 돌아다니는 선원들이 많으니까 좀 낫지만, 밤에 외부인을 들이는 것은 제 지시를 정면으로 어긴 셈입니다. 만약 오늘 같은 일이 다른 배에서도 발생한다면, 반드시 제게 보고하세요.”
“으음, 알겠습니다. 제독.”
잠시 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부선장님이 크리스티앙과 함께 선교에 올라왔다.
“크흠, 죄송합니다, 선장님. 무슨 일입니까?”
“몸은 좀 어떠세요?”
“늙으면 원래 여기저기 아픈 법이죠.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나는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닥터, 부선장님 상세는요?”
“제가 처방한 약이 잘 들은 모양입니다. 괜찮아 보이네요.”
“고마워요, 닥터. 부선장님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어제….”
나는 부선장님에게 설명해주는 형태를 취했지만, 선교에 모인 간부들에게 마지막으로 정확한 상황을 전달했다.
***
반항의 의지가 없고 살인 정도의 중범죄도 아닌지라 손만 묶인 여섯 남자가 선교 아래 갑판에 무릎 꿇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선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몇몇은 리버티 호에서 온 녀석들인 모양이다.
나도 얼굴을 아는 녀석이 태반인 것을 보면, 경력 좀 되는 숙련 선원들로 보였다.
“오트라스 호 선장, 리안이다. 모두 그대로 들어.”
“…….”
웅성거리던 선원들이 하나씩 입을 다물고,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젯밤 내가 부재중인 틈을 타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바로 확인되지 않은 외부인을 선내로 끌어들인 것이지. 나와 함께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몇 번이나 외부인에 대해서 강조했다는 것을. 특히 이번 일의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내가 부재중이었다는 것, 배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상급자인 부선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중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침을 삼킨 나는 억지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감히 나와의 친분을 빌미로 제멋대로 내 명령을 어겼다는 점에서 매우 악질적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장님!”
내 마지막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네이선이 고개를 번쩍 들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래, 나도 알아.
네가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
하지만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겠지.
그래서 내가 조금 미안하다.
“입 다물어, 갑판장.”
“…….”
내가 냉정하게 네이선의 말을 막자, 선원들이 살짝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분위기다.
“처벌을 결정하겠다. 먼저 갑판장의 이런 행동을 알고도 돈 몇 푼에 입을 다문 네 사람은 채찍 3대씩이다.”
생각보다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는지 무릎 꿇고 있던 네 명의 선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우리 배에서 쓰는 채찍은 여느 무식한 배처럼 매듭이 있거나 돌조각이 매달린 것은 아니라서, 3대 정도로 피를 볼 정도는 아니다.
“네 사람은 직속상관인 갑판장과 돌격대장의 직위에 의한 협박이 있었을 것을 감안해서 감형해주었지만,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채찍 10대와 함께 방출하겠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최소한 상급자에게 보고라도 하도록.”
“네, 선장님.”
“알겠습니다, 제독.”
“감사합니다, 선장님.”
“감사합니다!”
내 말에 네 사람이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 돌격대장 행크. 갑판장의 이번 행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으니 채찍 10대와 다음 기항지까지 절반 감봉이다. 불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말해. 방출로 바꿔줄 테니.”
“…감사합니다, 선장님.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감봉이라는 말에 행크의 얼굴에 난색이 보였지만, 그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저놈, 이번 일이 곱게 넘어가면 다음에는 자기가 여자를 데리고 올 생각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네?
“네이선 갑판장. 채찍 30대와 2개월간 절반 감봉이다. 이의 있나?”
“헉!”
“30대?”
“미… 흡…!”
내 뒤에 있던 간부들은 물론 선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냥 20대만 할 걸 그랬나?
아니야, 일벌백계라고 했다. 어차피 닥터에게 미리 준비도 부탁했으니 괜찮을 거다.
내 말이 끝나자 맨 앞에 꿇어 앉아있던 네이선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던 네이선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네이선.
“…일등항해사, 집행해!”
“네.”
***
짜악!
“아악!”
짜악!
“윽!”
짜악!
“흡!”
짜악! 짜악!, 짜악!
네 명의 선원이 먼저 채찍을 맞고 울상을 지으며 물러서고, 행크가 열 대를 다 맞을 때쯤에는 그레이그도 약간 지쳐 보였다.
전력을 다해서 채찍질을 스무 번도 넘게 했으니 지칠 만도 하다.
결국 열대를 다 맞고 등짝 여기저기가 터진 행크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향하고, 마지막으로 상의를 탈의한 네이선의 양손이 묶였다.
“줘.”
“네?”
어깨와 팔목을 주무르던 그레이그가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채찍 달라고.”
“서, 선장님. 그건 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레이그가 바보도 아니고 나와 네이선의 친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곤란한 그의 표정이 제발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힘들잖아. 괜히 살살 때리기라도 하면 나중에 말 나와.”
“괜찮습니다, 아직….”
“줘. 명령이야.”
“휴우….”
명령이라는 말에 그레이그가 마지못해 내게 채찍 손잡이를 넘겨주었다.
어디까지나 그레이그가 힘들어 보여서 이러는 것이다.
어차피 미안하게 된 것 원망이라도 마음껏 하라거나, 내 친구가 남한테 맞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때리겠다는 그런 얄팍하고 감성적인 이유는 절대 아니다.
짜악!
짜악!
짜아악!
“큭.”
“…….”
짜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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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잔뜩 성이 난 넓은 등판에 붉은색 줄이 죽죽 그어지더니, 어느 순간 파랗고 검은 부분이 피어오르고, 끝내 새빨간 선혈을 토하기 시작했다.
쩌어억.
쩌억.
쩌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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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 절은 채찍은 더 이상 경쾌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끈적하고 소름 끼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릴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채찍이 닿을 때마다 꿈틀거리던 네이선의 등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해! 다 때렸잖아!”
“선장님! 그만하십시오!”
“선장님!”
기계적으로 다시 채찍을 들어 올리는데 우르타가 눈물범벅이 되어 나를 끌어안았다.
어? 드디어 끝났나?
세상에, 언제부터인지 숫자 세는 것을 까먹었다.
씨발, 저 새끼 괜찮겠지? 너무 세게 때린 건가?
“뭣들 해?! 당장 갑판장 데리고 의무실로 가!”
부선장님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선원들이 허둥지둥 네이선의 결박을 풀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된 네이선의 등짝은 차마 못 볼 꼴이었고, 바지 전체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저 정도면 출혈 과다로 쇼크 오는 거 아냐?
“포술장, 선장님 모시고 선장실로 가게. 일등항해사가 출항 지휘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부선장님.”
“발드 선장도 리버티 호 인원들 데리고 복귀해서 출항하시죠.”
“알겠습니다, 부선장님.”
나는 눈물샘이 터진 듯한 우르타의 울먹이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우르타와 오펜이 이끄는 대로 힘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걸까.
***
“으음, 응?!”
나는 몸을 뒤척이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다행히 선장실이다.
그런데 나 언제 잠이 든 거지?
옷도 그대로인 걸 보니 그냥 바로 잠든 모양인데….
복장을 살펴보다가 오른쪽 소매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검붉게 물든 옷소매가 보인다.
벌떡.
나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네이선이…!
의무실 방향으로 황급히 뛰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부선장님이 보였다.
“부선장님!”
“아, 선장님. 일어나셨습니까?”
“네이선, 네이선은요?!”
“쯧,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방으로 가시지요.”
“네?”
엉겁결에 부선장님에게 손목을 잡혀 내 방으로 돌아오자, 문을 잠근 부선장님이 자연스럽게 술을 꺼내 따르며 나무라듯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서 뭣 하러 그렇게 심하게 때렸누?”
“아니, 그게… 살살하면 괜히 말 나올까 봐.”
“네 녀석은 너무 걱정이 많아. 쯧쯧….”
“아, 잔소리는 나중에 하시고, 네이선은요?”
“걱정 마라, 찢어진 곳이 많기는 해도 근육이 상한 곳은 없다고 하니까.”
“그럼…?”
“그래, 며칠 누워있으면 괜찮아진다니까 걱정 말거라.”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워낙 튼튼한 녀석이라 괜찮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꼴이 워낙 엉망이었어야지.
“다른 사람들은요?”
“행크 녀석만 당분간 격렬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고, 다른 놈들은 괜찮다.”
“……후우, 선원들 분위기는 어때요?”
내 말에 나를 쏘아보던 에른스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방식이지만, 대충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것 같다. 갑판장과 돌격대장이 부재중인데도 아주 빠릿빠릿해.”
“그럼 지금 갑판장 대행은 누가 하고 있어요?”
“누구겠냐?”
“설마.”
“그 설마다.”
“우르타?”
“그놈도 그동안 어깨너머로 본 게 있는데 못할 것은 또 뭐냐? 내가 좀 도와줬다만 그럭저럭 잘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갑판장 우르타는 너무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