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미안해, 내 잘못이야
“아파? 아파? 흐잉… 으으, 징그러워….”
“야! 뭐가 징그럽, 으윽! 아파, 이 자식아!”
“…….”
“허허허, 보다시피 멀쩡하네.”
“고마워요, 닥터.”
“환자 너무 괴롭히지 말고 적당히 하고 나오게.”
“응? 리안?”
“으어어엉! 리안 이 나ㅃ…! 흡!”
어색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셋이 함께하게 된 이후로 가장 어색한 것 같다.
우르타의 꼴을 좀 봐라, 눈물범벅의 꼬질꼬질한 얼굴로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저 손, 매우 짤 것 같은데.
“너는 환자를 만나려면 최소한 손은 씻고 와야지 인마.”
“나, 나?”
우르타가 깜짝 놀라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여기에 환자랑 나랑 너밖에 더 있냐?”
“나는 안 때릴 거지…?”
“너를 내가 왜 때려! 진짜 한 대 맞기 전에 빨리 가서 손 씻고 와!”
“아, 알았어!”
우르타는 내 말에 후다닥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어, 음… 그러니까….”
아오,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너무 세게 때려서 미안해?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미안하면 약이나 좀 발라줘, 등은 손이 안 닿아서 말이지. 우르타 새끼, 손도 안 씻고 약 바른다고 설친 거였어?”
걸레짝이 된 등을 훤히 드러내고 엎드려있던 네이선이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우르타가 징그럽다고 할 정도로 그의 등은 엉망진창이었다.
붕대를 풀다가 다시 상처가 벌어졌는지, 다시 피가 흐르는 곳도 몇 군데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우르타가 놓고 간 약을 집어 들고 물었다.
“많이… 아프지?”
“조금? 그렇게 미안할 거면 좀 살살 때리지 그랬냐. 어우, 막판에는 정신까지 놔버렸네.”
“나 원망 안 해?”
“원망? 내가 잘못했는데 뭘. 솔직히 좀 밉상이기는 한데, 괜찮아. 이렇게 사과하러 왔잖아.”
나는 천천히 그의 등 전체에 약을 골고루 펴 바르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까지 세게 때릴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나중에 말 나오는 것보다는 좀 세게 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 그렇지. 괜히 살살 때리면 봐줬네, 말뿐인 처벌이네 엄청 떠들 거야. 잘했어. 그런데 30대는 좀 많더라. 나도 한 20대까지는 생각했는데.”
그러게, 그냥 20대만 할걸.
“그래도 덕분에 선원들 기강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너만 잘 회복하면 돼.”
“이따위 스친 상처쯤이야 내일이면, 으어억!”
부선장님 못지않은 허세를 부리려던 네이선은 내가 손에 약간 힘을 주자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부선장님한테 이상한 거 배우지 말고 닥터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이대로 있어.”
“뭐? 적어도 닷새는 이러고 있어야 한다던데?”
“응, 그냥 있어. 까불지 말고.”
“그것도 명령이야?”
“그래.”
“알겠수다, 선장 나으리.”
약을 다 바른 나는 옆에 준비된 붕대로 상처를 감았다.
음, 이게 맞는 건가?
그냥 닥터에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아악, 살살! 살살 좀 해!”
“어? 미안, 미안.”
우르타 이놈은 왜 안 들어와?
“그나저나 이유나 좀 들어보자. 갑자기 왜 그랬어? 최음제라도 먹었어?”
“아니야, 그런 거.”
“그럼 뭔데?”
“아, 그냥, 좀 그랬어. 할 말 없다. 벌써 매까지 다 맞았는데 뭘 그리 캐물어?”
행크에게 대략적인 상황 진술을 받기는 했다.
원칙적으로는 네이선 이 녀석에게 직접 들어야 했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선원들이 둘이 입을 맞췄다고 오해할까 봐 직접 대면은 피해왔다.
만약 행크의 진술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그런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네이선을 심문했겠지만… 글쎄.
네이선과 행크, 벌을 받은 네 명의 선원들은 낮부터 함께 술을 마셨고, 복귀하기 직전에 네이선이 어딘가에서 창녀를 데리고 왔으며, 내가 복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는데 의문을 가질 곳이 어디 있겠냐고.
심지어 다른 선원들은 모르게 했다는 점에서 이미 치명적이었다.
스스로 잘못된 일임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행했다는 말이니까.
“…데보라 양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이익! 그 이야기는 반칙이잖아!”
“반칙은 개뿔. 똑바로 말 안 하면 오늘 일을 그대로 가서 말해버리는 수가 있다.”
“아, 진짜….”
짜증과 갈등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네이선은 결국 백기를 내걸었다.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나는 그녀를 책임질 거야. 하지만….”
“하지만 뭐?”
“아! 임신 중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손도 못 대게 하잖아! 난 아직 젊다고! 그래도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좋아, 올해 들어본 개소리 중에 가장 개 같았어. 계속해봐.”
발끈하던 네이선의 고개가 힘없이 쳐졌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볼일 보러 갔다가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걸려서 끌려가는 아가씨가 있길래 살짝 도와줄 생각이었지.”
“하아,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변명 아니야! 변명을 하려면 맞기 전에 했겠지.”
“그러니까 그래서 구출한 아가씨를, 아니! 애초에 창녀인 줄 몰랐어?”
“…알았지.”
“그래서 그 아가씨가 ‘오, 나의 왕자님, 저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던?”
“비, 비슷했어!”
“…….”
“돈이 좀 부족하다고, 자기를 사달라고….”
“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유혹에 넘어갔다는 말이잖아?
어이가 없어서 소리치며 벌떡 일어서는데 갑자기 거세게 문이 열렸다.
“안 돼! 이제 그만 때려! 또 때리려고…!”
문을 열고 들어온 우르타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씩씩거렸다.
이거야 원, 왜 맞은 놈은 멀쩡한데 맞지도 않는 놈이 트라우마가 생긴 거야?
***
울먹이며 화를 내는 우르타를 겨우 달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여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지?”
“응….”
“혹시 없어진 물건 같은 것은 없어? 그 여자, 네 방에서 한 번도 안 나온 것 맞지?”
“그렇다니까?”
네이선의 방에 특별히 대단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확인을 마친 나는 문을 열었다.
멀쩡한 것처럼 말은 해도 무려 기절할 때까지 맞았던 사람이다.
출혈량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 지금도 상당히 피곤한 상태겠지.
생기를 잃고 파랗게 변한 네이선의 입술이 유독 눈에 밟힌다.
“넌 안 나와?”
“나? 나는 왜?”
네이선에게 뭐라고 속닥거리던 우르타가 움찔하며 되물었다.
귀찮음 절반, 어이없음이 절반인 네이선의 표정으로 보니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환자 괴롭히지 말고 빨리 나왓!”
“알았어! 소리 지르지 마!”
뭐가 또 불만인지 징징거리는 우르타의 뒷덜미를 붙잡고 닥터와 인사하고 의무실을 나서는데, 우리와 마주친 행크가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 선장님, 포술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돌격대장. 몸은 좀 어때?”
“하하, 뭐 이정도야 술 한 잔 마시고 자면 다 낫습… 어어억!”
도대체 이런 허세는 누가 자꾸 가르치는 거야?
너스레를 떨던 행크 역시 내가 옆구리를 슬쩍 찌르자 기묘한 비명을 지르며 침몰했다.
등짝이 찢어졌으니, 옆구리만 세게 눌러도 여기저기가 다 아플 거다.
“까불지 말고 닥터에게 치료 잘 받아.”
“하하, 네, 선장님.”
바람도 좋고, 이번 항해도 예정보다 하루 정도는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마 피오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마음 같아서는 무전기에다가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최소한 수백km의 차이가 있을 피오렐까지 전파가 닿지는 않을 거다.
***
- 하루 전, 델라 항구 인근 주점 -
꽤나 도수가 높은 진(gin,곡물을 원료로 하고, 향료로 향을 첨가한 증류주)이 담겨있던 잔을 호쾌하게 테이블에 내려놓은 네이선이 기분 좋게 인상을 찡그렸다.
“크으! 이 맛이지!”
그 꼴을 본 행크는 잔이 완전히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에 그걸 다 드셨습니까? 거참, 한 잔 더 시켜요?”
“아, 거, 우리 갑판장님 술고래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돌격대장은 뭘 또 놀라고 그러슈?”
“그러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진을 마시는 갑판장보다 맥주를 마시는 돌격대장의 잔 수가 더 적을 수가 있냐고? 낄낄낄!”
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선원들이 낄낄거리며 웃자, 얼굴이 불콰해진 행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희라고 뭐 달라? 나보다 몇 잔이나 더 마셨다고?! 어이, 아가씨!”
행크가 선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지나가는 점원을 불러 세우자, 네이선이 손짓으로 그것을 막았다.
“부를 거 없어.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자.”
“네?”
“엑? 이제 시작인데?”
“갑판장님 지금 뭐라고 하셨수?”
행크와 선원들의 의문에 입맛을 다시던 네이선은 괜히 빈 잔을 입에 한 번 털어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장님이 언제라도 출항할 수 있게 밤에는 들어와 있으라고 하셨잖아. 해도 저무는 것 같고, 오늘은 그만하고 일어나자고. 혹시 더 마실 놈이 있으면 한두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으니 더 마시던가. 난 들어갈 거야.”
단호한 네이선의 말에 제 새끼라도 되는 양 자기 앞의 술잔을 붙들어 잡은 선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하하호호거리는 자기들의 갑판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는 그들에게 네이선의 말을 무시할 배짱은 없었다.
“술을 사가지고 가서 더 마시는 건 상관없겠죠?”
“당연하지. 나 물 좀 빼러 다녀올 테니까, 남은 술 비우고 맥주 두 통 가지고 가게 준비해 달라고 해. 그거까지 내가 산다!”
휘이이익!
짝짝짝!
네이선의 선언에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와우!”
“역시 우리 갑판장이라니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갑판장님!”
행크와 선원들의 호들갑을 뒤로 하고 주점을 나온 네이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으슥한 곳을 찾았다.
새빨갛게 물든 태양이 오늘의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는 중이다.
평소보다 조금 덜 마셨지만, 그래도 큼지막한 잔으로 열 잔쯤 마신 터라 기분이 삼삼했다.
지금의 아쉬운 마음은 배에 복귀해서 오늘 멤버들과 맥주나 한잔 더 마시며 풀면 될 것이다.
“이, 이러지 마세요!”
“어허, 거참 더럽게 말 안 듣네.”
“적당히 하고 따라와, 귀찮게 하지 말고.”
볼일을 보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별로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서 바라보니, 주점가 뒷골목의 흔한 풍경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매춘을 업으로 하는 여자, 그리고 두 명의 질 나쁜 건달들.
대충 화대를 떼먹으려는 중이거나, 떼먹었거나, 떼먹을 계획이겠지.
배를 타게 되면서 리안에게 배운 첫 번째 철칙,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
예전 같으면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남자들을 때려눕혔겠지만, 지금은 현실을 알고 있었다.
떠나면 그만인 자신과 달리 저 여자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하는 일이 일인 만큼 뒷골목의 건달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테고, 괜히 여기서 네이선이 나서면 오히려 저 아가씨의 인생에는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저무는 태양 빛에 반사된 날붙이의 번쩍임만 없었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성인 남자 둘이서 힘없는 여자 하나를 협박하는데 굳이 날붙이를 꺼낸다고?
상식적이지 않다.
“어이, 뭐야? 형님들 바쁜 거 안보이냐? 돌아가라.”
마음을 정한 네이선이 그들에게 향하자, 한 남자가 이미 경계하고 있었는지 바로 네이선에게 경고했다.
“바쁘면 그 아가씨 놓고 가지. 괜히 힘겹게 몸 쓸 필요는 없잖아?”
스릉.
네이선은 최대한 정중히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말을 제대로 섞기도 전에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 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보아하니 선원 놈인 모양인데, 말로 할 때 뒤로 돌아서 꺼져. 남의 동네일에 상관하는 거 아니라고 너희 갑판장한테 못 배웠냐?”
“미안, 내가 갑판장이라.”
아무리 술을 마셨기로니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제대로 몸을 쓰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일반인(?)들이 네이선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네이선의 몸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어? 어?’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한 놈은 관자놀이를 맞아서 곱게 쓰러졌지만, 여자의 허리춤에 단도를 대고 있던 녀석은 안면으로 주먹을 막는 바람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물론 남자가 맞는 즉시 기절한 덕분에 여자는 옆구리 옷만 살짝 찢어지는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아, 아… 이, 이런….”
네이선이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쓰러진 두 남자를 보면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꼴을 본 네이선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리안이 가끔 하는 말을 빌리자면, 아무래도 X 된 것 같다는 것을 말이다.
겨우 정신 나간 여자를 채근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퍽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집창촌의 지배권을 두고 뒷골목 패거리끼리 싸움이 난 모양인데, 마침 출근하던 그녀는 상대방 패거리 녀석들에게 딱 걸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뭘 어쩌자고 칼까지 들이밀고 협박을 하던 중이었는데요?”
“…그게, 업소를 옮기라고….”
“흠….”
매춘부들을 사고파는 것이야 합법적이지 않다 뿐이지 흔한 일이다.
당연히 거래는 포주들끼리 이루어지고, 거기에 당사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감히 종업원(?)이 자기 마음대로 업소를 옮긴다? 그 여자의 미래는 안 봐도 비디오다.
강제로 옮겨간 쪽이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나마 쌓인 빚이 늘어난 정도로 그치겠지만, 떠나온 쪽이 이기면 숨을 그만 쉬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망연자실한 그녀와 떨어져 잠시 고민을 하던 네이선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을 하고 해결하는 것은 리안의 역할이지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리안이 후작 저택까지 가 있는 상황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네이선은 두 남자를 더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옮겼다.
“지, 지금 뭐하세…요?”
“지금 난감한 상황인 거죠?”
“…네.”
당연하겠지.
당장 조직원이 떡이 되었으니, 조직에서 그녀를 그냥 놓아둘 리가 없었다.
그게 그녀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네이선에게 화풀이를 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만든 일이니, 해결도 해 드릴게요.”
“네?”
“뒤 돌아요,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려도 이쪽 보지 말아요.”
불안해하는 그녀가 시야에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한 네이선은 두 남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옷을 어디에다가 쓸 것도 아니라서, 벗긴다기보다는 찢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좋아,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더러운 속옷까지는 차마 손대지 못한 네이선이 잠시 주저하다가 들었던 발을 힘껏 내리찍었다.
퍼억!
퍼억!
쩌억!
쩌어억!
두 사람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것을 확인한 네이선이 주워온 단도를 뽑아 남자들의 경동맥을 잘라냈다.
이것으로 사건을 아는 사람은 두 명이 되었다.
바닥에 신발을 비벼 대충 피를 닦아낸 네이선이 여자에게 돌아가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두 눈에는 공포가 가득하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어나요, 당신은 저들에게 끌려가다가 지금 우리 일행에게 납치당한 겁니다. 저들이 우리와 시비가 붙어서 두들겨 맞는 것까지만 보고 기절한 거죠. 이해했어요?”
“네? 네, 네….”
시원치 않은 대답에 몇 번이나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한 네이선은 한참 만에 그녀를 데리고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일단 으슥한 곳에 그녀를 세워 둔 네이선은 주점으로 들어가 급하게 계산을 마쳤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요?”
“변비라도 생기셨나?”
“갑판장님, 바닥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똥이 안 나왔수? 클클클.”
“다들 닥치고 일어나. 어서 복귀하자, 많이 늦었어.”
여전히 네이선을 놀리는 일행들을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잠시 기다리게 한 네이선은 여자를 찾아서 일행에게 돌아갔다.
“엥? 누굽니까?”
“돌아갈 거라면서요?”
“창녀 같은데….”
“설마, 아니죠? 선장이 싫어할 텐데?”
그녀를 보고 처음에는 웃으며 농담을 던지던 선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보통 하루 정도는 있다가 오니까, 선장은 오늘 안 들어올 거야.”
“갑판장님, 아무리 그래도….”
“피치 못할 상황이 있어. 너희는 그냥 모르는 척해. 혹시라도 걸리면 내가 강제로 데리고 왔다고 하고.”
“거, 이거는 걸리면 아무리 갑판장님이라도 쉽게 못 넘어 갈 텐데?”
“아무리 여자 생각이 나도 오늘은 참읍시다, 갑판장님.”
“데리고 올 거면 인원수 맞춰서 데리… 억!”
헛소리를 하던 선원이 다른 선원들에게 응징을 당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의 행크의 어깨를 두드린 네이선이 말했다.
“그러지 않는 게 좋겠지만, 혹시라도 잘못되면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해. 진짜 아는 거 없잖아? 그냥 내가 여자를 데리고 온 거고.”
공포에 질린 여자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