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아름다운 거짓말
- 현재, 오트라스 호 의무실 -
“갑판장님, 좀 괜찮으십니까?”
리안과 우르타가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행크가 들어왔다.
계속되는 손님 때문인지 살짝 인상을 찡그린 네이선이 툭 쏘듯이 대답했다.
“괜찮겠어?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선장님이랑 포술장은?”
“입구에서 마주쳤습니다. 포술장은 또 울었습니까? 눈물 자국이 아주 꼬질꼬질….”
“어이구, 말도 마. 누가 보면 나 죽은 줄 알겠다니까. 으흐흐으으윽!”
실소를 터뜨리던 네이선이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어우, 더럽게 아프네. 내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진짜 엉망진창이지?”
남의 일처럼 묻는 네이선에게 행크가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때리는 선장님도 독하고, 그걸 다 맞는 갑판장님도 독하고…. 전 처음에 갑판장님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채찍 30대로는 잘 안 죽어.”
행크는 기가 막혔다.
물론 네이선의 말대로 채찍 30대를 맞아서 사람이 ‘잘’ 죽지는 않는다.
‘많이’ 혹은 ‘절반쯤’ 아니면 ‘재수 없으면’ 죽을 뿐이지.
채찍 맞고 바로 죽지는 않더라도 후유증으로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저렇게 또렷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다.
고작 10대를 맞은 자신조차 걸을 때마다, 아니, 숨 쉴 때마다 등짝이 아픈데 말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선장님 성격이라면 충분히 벌을 줄여 주셨을 텐데요.”
행크의 투덜거림에 네이선이 그를 쏘아보았다.
네이선은 문득 행크가 하도 귀찮게 하는 통에 간략하게나마 상황을 이야기해 준 것이 잘한 짓인가 싶어졌다.
이 사건은 정말 죽을 때까지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사실을 알고 나면 리안의 여린 마음이 어떻게 되겠냐는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괜한 소문 퍼지면 너라도 가만두지 않아. 리안은, 아니, 선장님의 권위는 늘 확고해야 해. 이번 기회에 선장님이 나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르지.”
네이선은 리안처럼 논리적으로 뭔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분명히 리안도 특별하게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네이선은 리안을 따라 하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하지만 남자들의 세계에서 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밑에 있으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잘 된 거다.
똑똑한 리안이라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 그 여자를 보호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배에 데리고 온다는 선택지를 고르고 나서도, 최대한 비밀을 지키다가 리안이 복귀하면 직접 보고하고 벌을 받을 생각이었다.
너무 일찍 복귀한 리안에게 딱 걸리는 바람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는 했지만.
‘아, 평소에는 하루 자고 왔을 녀석이 그 시간에 올 건 또 뭐야? 그리고 왜 나를 찾아와?’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리안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꼬여버린 상황에 자체에 대한 원망이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뭐?”
“그, 했습니까?”
“…….”
“아아니! 거 그렇잖습니까? 딱 보니까 그 여자 눈에 하트가 휘날리던데, 성인 남녀가 그 비좁은 방에 있었으면….”
“나가.”
“네?”
“나가라고 이 자식아!”
“히익!”
엎드려있던 네이선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행크는 인사도 없이 쏜살같이 방에서 사라졌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진짜 위험하기는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속옷만 입고 달려드는 여자를 거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데보라의 임신 소식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 새벽에 리안이 찾아오지만 않았더라도 뭔가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에에이, 어차피 내 취향도 아니었어!”
괜히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해보는 네이선이었다.
***
- 다음 날, 오트라스 호 선장실 -
“어때요? 전에 있던 차는 향이 좀 약한 것 같아서 이번에 바꿔봤는데.”
“으음, 괜찮군. 그래, 한밤중에 자려던 사람을 불러낸 이유는 갑판장 때문이겠지?”
접대용으로 준비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닥터 롱베르가 짓궂게 웃음을 흘렸다.
거참, 다 아는 사람이.
“그것도 있고, 부선장님도 마음에 걸리고 해서요.”
“아, 그렇구만.”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머쓱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던 닥터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먼저, 갑판장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네. 자네가 미리 준 약 덕분에 발열이나 염증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이대로 상처만 다 아물면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나도 정확하게 모르지. 사람마다 회복 속도는 조금씩 차이가 나니까. 그래도 아직 젊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말하는 걸 보면 아주 멀쩡하던데요?”
내 말에 닥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네만, 앞으로 갑판장을 보러 오는 것은 자제하게.”
“네?”
“자네 앞에서 멀쩡하게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아나? 자네가 가고 나면 아주 난리가 아니야. 갑판장을 굳이 내가 치료실에서 내보내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네.”
이 미친 새끼가?!
닥터의 말을 들어보니 내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괜찮은 것처럼 연기를 했던 모양이다.
망할 놈이 더 미안하게….
“……크흠.”
괜한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감춘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돌격대장은 문제없죠?”
“물론이지, 그 친구는 갑판장과 상황이 다르지 않나. 게다가 자네의 약을 조금 복용시켰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걸세. 그런데 그 약 진짜 어디서 구했는지 말해줄 생각 없나?”
사실대로 말해도 믿지도 못하실 테고, 어차피 다시 못 구한다니까요.
선상 생활이 워낙 거칠기도 하지만, 최근 내 상황이 한편의 액션 스릴러 수준이라 항생제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제 유리병의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이러다가 나중에는 약이 없어서 구할 수 있는 사람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건 이미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보다 부선장님 상태는 어때요? 제가 후작 저택에 갔을 때도 거동을 못 했다고 하던데?”
“아, 거동을 못 한 것은 아니고, 통증과 경련이 심해져서 남 앞에 나서려고 하지 않으셨을 뿐이네. 내 약이 잘 들어서 지금은 자네가 본 것처럼 많이 호전되었지.”
보통 사람이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내가 지구의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면, ‘의사가 치료를 해서 괜찮아졌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구의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더라도, 상식 수준으로 뇌종양이라는 것이 고작 약물 따위로 치료되거나 근본적인 상태가 호전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부선장님이 숨겨달라고 하셨어요?”
“응? 뭘 말인가?”
천연덕스럽게 반문을 했지만, 닥터 롱베르의 눈빛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심한 건데요?”
“내 치료가 잘 먹혀서 호전되었다니까?”
“농담 그만하시구요. 부선장님의 병이 그렇게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
단정적인 내 말에 시선을 회피한 닥터가 다시 찻잔을 잡았다.
“씁, 차가 식으니까 못 마시겠구만.”
“말씀해주세요.”
“후우, 다만 절대로 부선장님에게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 하네.”
“알겠어요.”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던 닥터가 결국 입을 열었다.
“한쪽 눈은 거의 시력을 잃었고, 악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네. 경련은 옷 위로 느껴질 정도로 심해졌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은 거의 마비되었어. 도저히 상세를 숨길 수 없는 상태더군.”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던데요.”
“약을 썼네.”
침울하게 약을 썼다고 말하는 닥터의 표정을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닥터를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이클로나 호를 타고 있던 시절, 이 세상의 마취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독을 희석해서 쓰고 있으며, 사람에 따라 용량이 달라야 하고, 오용으로 인한 사고도 많고, 영구 손상 같은 심각한 후유증도 있다고 말이다.
“마취제를 쓰셨군요.”
“조금… 아니, 많이 독하게 썼네. 지금이야 괜찮아 보이지만 더 빠르게 몸이 망가지는 중이겠지.”
잠시 말을 쉬던 닥터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잘해드리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실 게야.”
“…부선장님도 알고 계세요?”
“내가 그 약을 그 정도로 쓰면서 환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을 정도로 미친놈은 아닐세.”
“후우…. 그럼 요즘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는 건…….”
“아마 소화기 쪽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겠지. 약이 들어가는 곳이 입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나?”
…빨리, 빨리 폰테 섬으로 가야겠다.
***
- 12일 후, 니파 항구 인근 해상, 오트라스 호 선교 -
해도실에서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온 나는 오늘도 혼쭐이 나고 있는 크리스티앙과 그레이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이고, 일등항해사.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적당히 좀 해.”
“선장님! 선장님이 자꾸 감싸고도시니까 저놈이 똑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또 언제 크리스티앙을 감쌌다고 그래?
항해학 수업을 아무리 열심히 들었다고 해도, 실습 몇 번을 제외하면 배에 타본 적도 없는 초보 항해사들에게 지휘를 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펜이 나이나 경력에 비해 능숙한 것은 본인이 열의가 있고 똑똑한 것도 있지만, 짧으나마 수습 선원부터 선원을 거치며 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의 실력만 놓고 보면 오펜보다 크리스티앙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렇지, 애가 얼굴이 다 죽어가잖아.
우르타만큼 잘생긴 얼굴에 그늘이 지니까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다.
최근에 우르타가 질질 짜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자네 식사도 안 했지? 가서 식사하고 좀 쉬어. 선교는 내가 맡지.”
“휴우, 알겠습니다. 선장님.”
내 말에 씩씩거리며 뒤로 돌아서 몇 발자국 걷던 그레이그가 뒤돌아보며 마지막까지 엄포를 날렸다.
“크리스티앙 항해사! 방금 말해준 부분은 다시는 틀리면 안 될 거야. 그때는 이렇게 쉽게 안 넘어갈 테니까.”
“…네, 일등항해사님.”
이것 참, 이 정도면 사적으로 싫어하는 거 아냐?
“어…, 크리스티앙 항해사?”
“네! 선장님.”
“많이 힘드나?”
“아닙니다!”
힘들 것 같은데….
본인이 아니라는데 계속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색한 분위기를 바꿀 궁리를 하고 있는데, 약간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선원 한 명이 선교로 올라왔다.
“선장님, 견시대에서 수신한 신호 내용입니다.”
“응? 뭔데?”
프레티아 왕국의 중부에 위치한 니파 항구 근처까지 온 터라 다른 선박들이 꽤 눈에 띄고 있었다.
침로로 봐서는 니파 항구에서 출항한 배들도 꽤 되는 것 같고.
이렇게 근처를 항해하는 선박이 많다 보면 서로 간에 신호가 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만 수기 신호라는 것이 긴 문장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말 필수적인, 예를 들어 해적, 폭풍, 암초, 와류같은 위험에 대한 경고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안전이 확보된 지역에서는 신호라고 해봐야 견시수끼리 장난이나 농담, 평범한 인사가 대부분이라서 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올 내용이 많지 않다.
“수신된 내용이 ‘위험, 반군 북상.’입니다.”
“…….”
그레이그와 크리스티앙의 불화(?)에도 담담하게 타륜을 잡고 있던 조타수의 어깨가 움찔하며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약간의 공포가 떠올라 있었지만, 그나마 내가 잘 아는 녀석이었다.
“어, 가빈. 자네가 타륜 잡고 있었어?”
“네, 선장님. 그런데….”
“아, 아, 걱정 마. 아무리 반군이나 프레티아 왕국 정규군이라도 감히 타국 선박을 상대로 장난질을 치지는 못 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핀의 절도사건에서 내 덕에 누명을 벗게 된 가빈은 꽤나 충성심이 높은 녀석이다.
그런 가빈조차 내 말을 듣고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을 정도니, 전쟁이나 반군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반군이 다가오는 니파 항구로 가야 하는 내 입장은 좀 난감하지만….
“침로 유지하고, 돛은 5도만 좌측으로 돌려. 반군이 도착하기 전에 피오렐을 빼내 와야 할 것 아냐?”
“네, 선장님. 조범수! 좌로 5도!”
크리스티앙이 내 말을 받아서 조범수에게 명령을 내리고, 갑판 위에서 선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의 움직임이 어색한 것을 보니 소문을 막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리버티 호도 분명히 신호를 수신했을 텐데, 발드 선장은 괜찮으려나 모르겠군.
***
“쯧, 난장판이군.”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그레이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항하는 배가 우리밖에 없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심각하군요.”
휑할 정도로 비어버린 니파 항구의 부두는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배들이 급히 떠나면서 남겨진 쓰레기와 온갖 오물이 가득한 것을 보니, 부두를 관리해야 할 사람들조차 통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 갑판장의 상태가 좋지 못하니까 일등항해사가 선원들 통제 좀 확실하게 해줘. 회계사가 외출할 때도 실력 좋은 녀석으로 여섯 명쯤 붙여주고.”
“네, 선장님은…?”
“잠깐만.”
잠시 그레이그의 질문을 막은 나는 견시대를 향해 소리쳤다.
“포술장! 피오렐 찾았어?!”
내 말이 끝나도 한동안 침묵하던 우르타는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소리를 질렀다.
“이 근처 부두에 정박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없어요!”
다시 그레이그에게 다가온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못 찾았다니 항구관리소에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 시키시지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니까 내가 가야지. 애들을 어떻게 믿어?”
항구관리소에서 말빨이 좀 먹히려면 최소한 항해사를 보내야 한다.
물론 바로 옆에 리버티 호가 기항한 관계로 선택지는 많았지만, 다들 결격 사유가 하나씩 있다는 것이 문제다.
먼저 발드 선장은 제외, 무려 선장인데 내 심부름(?)을 할 짬밥은 아니잖아.
바우어는 항해술 외에는 기대 이하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오펜이나 크리스티앙은 직책도 그렇고 나이나 경력이 이런 심부름을 하기에 적절하지 못했다.
남는 것은 그레이그와 나뿐인데, 남아서 배를 단속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 그냥 내가 직접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끄응…. 알겠습니다.”
“대신 돌격대장이랑 선원 몇 명 데리고 갈게.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쩝, 갑판장의 몸이 괜찮았다면 큰 도움이 되었겠습니다만….”
“그 말은 그만하지.”
“네. 죄송합니다.”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네이선의 회복은 생각보다 더딘 상태였다.
닥터의 말에 의하면 상처 면적이 너무 넓어서 재손상이 자주 발생하는 바람에 회복이 느리다고 한다.
아마 다 낫더라도 흉터가 상당히 심할 것이라고….
하여튼 네이선은 아직도 의무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이 일 때문에 밤마다 우르타가 방으로 쫓아와서 날 쪼아대는데, 아주 딱따구리가 따로 없다.
***
입항이 끝난 뒤, 필요한 사항을 전달한 나는 돌격대장 행크와 우르타… 그리고 선원 네 명을 대동하고 현문을 나섰다.
“일단 항구관리소로 가자.”
“네, 선장님.”
“그런데 선장님, 지금 반군이 여기를 점령한 건가요? 왜 이렇게 난리지?”
“아니, 반군이 점령한 상태는 아냐. 그렇다면 부두에 반군 병사들이 있을걸?”
“왜요?”
“약탈하려고.”
“에엑!”
“자국 상선에게는 물자 징발을 가장한 약탈, 타국 상선은 특별 세금을 빙자한 약탈.”
질린 표정을 짓던 우르타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할 텐데?!”
“당연하지.”
“그래도 한다구요? 뭔가 이상한데….”
“항의 좀 받는다고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 전쟁에서 이긴 다음에 배상금이나 보상금을 줘도 되는 거고.”
“지면?! 아, 지면 상관없겠구나.”
“그렇지.”
전쟁에서 지면 높은 확률로 그 짓을 저지른 자(명령권자)의 목이 달아날 테니, 지는 경우는 가정할 필요도 없었다.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우르타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꽤 멀어진 오트라스 호를 돌아보았다.
“으아악! 그럼 우리 배는?! 어, 어떡하지?!”
“아오, 포술장! 호들갑 좀 그만! 너 계속 이러면 돌려보낸다?”
“하지만….”
“말했잖아. 아직 반군이 들이닥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준비도 해 놨으니까 괜찮아.”
“준비? 아! 그래서 후작가 문장기 올리라고 하신 건가?”
“그래.”
아무리 반군 놈들이 미쳤어도 벨로키나 왕국의 실세인 스코타 후작 가문의 깃발이 달린 배를 상대로 심한 짓은 못 할 거다.
물론 나는 반군 따위가 들어오기 전에 이 항구를 떠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