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긴급 출항
웅성웅성.
인적이 드문 부둣가와 다르게 항구관리소 앞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들 경계 철저히 하고 선장님 보호해.”
“알겠습니다.”
“넷!”
행크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내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네이선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믿음직스럽다.
선원들의 물리력을 동원한 도움으로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니,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구관리소 입구에는 십여 명의 경비대가 칼까지 뽑아 들고 군중들을 위협하고 있었고, 항해사나 선장, 혹은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경비대를 상대로 차마 무기를 뽑지 못하고 욕설만 날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싯팔! 비키라고! 지금 나가야 한다니까!”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나는 비얀코 상단의….”
“어? 제독!”
어라? 뭔가 익숙한 음성이 들린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오른쪽에 있던 선원이 잽싸게 허리춤의 칼 손잡이를 움켜쥐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잠깐! 피오렐의 갑판장 모르아다!”
“어? 모르아 갑판장?”
“제독!”
인파를 헤치고 나타난 사람은 피오렐 호의 갑판장, 모르아였다.
모르아의 얼굴을 확인한 선원이 경계를 풀자, 가까이 다가온 모르아가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는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방금.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보다 피오렐은 무사하지?”
모르아 갑판장이 멀쩡하게 있으니 당연히 피오렐 호도 별문제가 없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네. 저희는 닷새 전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챙!
“으악!”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남자의 비명이 울리고, 소란은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의를 집중해도 흙먼지와 난잡하게 움직이는 인영들, 꽥꽥거리는 소음만 고막을 때릴 뿐, 시각과 청각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시죠!”
“그래!”
모르아는 재빨리 데리고 온 선원 두 명을 선두에 세웠고, 우리는 우격다짐으로 인파를 헤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 와중에 주먹다짐이 몇 번 있었고, 핏물도 조금 튄 것 같지만 어차피 누가 했는지는 못 찾을 거다.
어렵게 그 자리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으로 뛰어든 우리는 급하기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모르아가 데리고 온 선원 중 한 명은 한쪽 눈이 벌겋게 부은 데다 다리까지 절고 있었다.
“이봐, 자네 괜찮아?”
“괜찮습니다, 제독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살짝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사람이 좀 다친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라 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려 모르아에게 물었다.
“모르아 갑판장,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을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해봐.”
방금 입항한 우리보다는 닷새나 머물렀던 모르아가 아는 것이 더 많은 것은 당연했다.
“후우, 사흘 전에 바크렌 시가 반군에게 함락당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여기가 난장판이 된 것이고요. 대충 알아보니 수도로 전력을 집중하는 것처럼 위장했던 반군이 전격적으로 바크렌 시를 공격한 모양입니다. 반나절 만에 수비대가 전멸하고 시민들은 대부분 탈출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모르아의 말을 끊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이야기는 여유 있을 때 자세히 하고, 방금 전에 항구관리소 앞에 사람들이 왜 모여 있었던 거야?”
새삼스럽게 골목 주변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모르아가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항구관리관이 이틀 전에 도주한 모양입니다. 정보가 빠르거나 판단이 빠른 상선들은 첫날 빠져나갔지만, 아직 남아있는 상선들은 난리가 난 것이죠. 저도 아인델프 선장이 출항 허가를 받아 오라고 해서 온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군요.”
쯧, 인간의 욕심이란.
피오렐 호는 우리를 기다려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다른 배들은 아마 욕심 때문에 배를 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이제 와서 발을 빼려고 하니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고.
그나마 여기에서라도 욕심을 버린다면 출항 허가 없이 그냥 바다로 나가면 된다.
꼴을 보아하니 연안경비대도 혼란에 빠진 것 같고, 그렇다면 어렵지 않게 니파 항구를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놈의 출항 허가가 자꾸 발목을 잡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출입항 허가 기록이 정상적이지 않은 선박은 해적으로 지목될 수도 있고, 범법 행위를 했다는 오해를 받거나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니파 항구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다음 기항하는 항구에서 적당히 뇌물을 찔러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적당한 뇌물’이 아깝다 보니 저렇게 출항 허가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입항할 때도 뭔가 정상적이지 않기는 했다.
일단 연안경비함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입항 검문도 형식적으로 너무 대충하고 넘어가기는 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면 검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아인델프가 슬레어 항해사가 아닌 모르아 갑판장을 내보낸 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소심한데다가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닐 슬레어 항해사를 보냈다면, 상황이 심각하게 꼬였을 수도 있었다.
“모르아 갑판장, 지금 피오렐 호가 정박한 위치는?”
“17번 부두 B구역입니다.”
니파 항구의 부두 배치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나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복귀해서 아인델프 선장에게 피오렐 호를 이끌고 3번 부두로 오라고 전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출항 허가나 정박 위치 변경으로 항구 쪽 인물과 충돌이 발생한다면 선조치하라고 전하고.”
거기까지 말한 나는 모르아를 바짝 끌어당겨서 조용히 속삭였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전기를 켜서 말하라고 전해. 나는 복귀 즉시 피오렐이 올 때까지 무전기를 켜 놓을 테니.”
내 말에 항구관리소 방향을 힐끗 본 모르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독.”
“그리고 너랑 너.”
모르아를 다시 밀쳐낸 내가 갑자기 나를 따라온 선원 중 두 사람을 지목하자,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이 바짝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모르아 갑판장을 따라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해서 최대한의 자위권을 행사해도 좋다. 필요하다면 사람을 죽여도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르아 갑판장을 피오렐 호로 복귀시키도록.”
“네! 제독님.”
“알겠습니다, 선장님.”
“뭐해?! 당장 움직여!”
“잠깐!”
내가 모르아와 선원들을 독촉하는 순간 갑자기 행크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나를 보며 빠르게 말했다.
“선장님! 선원을 절반이나 줄이면 선장님이 위험합니다!”
그의 말에 모르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행크 돌격대장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사람을 따로 붙여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에서 3번 부두까지의 거리보다 17번 부두까지의 거리가 족히 세 배는 길어. 게다가 우리는 방금 전에 오면서 거리에 별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했고. 무엇보다, 세 사람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겠어?”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실질적인 백병전 능력자들이 모두 오트라스 호에 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직접 지휘하지 않는 피오렐 호가 포격과 백병전 모두 오트라스 호를 압도하는 상황은 영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최고의 훈련 교관인 네이선이 오트라스 호에 타고 있기도 하고.
모르아 갑판장도 나름 엄선해서 선원을 데리고 왔겠지만, 수개월 동안 네이선에게 지옥 훈련을 받은 돌격대에 비하면 실력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선장님, 그래도 선장님이 너무 위험합니다.”
행크는 끝까지 내게 명령 철회를 부탁했지만, 나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만약 모르아가 잘못된다면?
상황을 알지 못하는 피오렐이 어떤 꼴을 당할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오히려 피오렐 호를 잃는 것은 뼈아프기는 해도 수습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온전히 내 배라고 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아인델프 이하 승조원들을 잃는 것은 정말 수습하기 힘든 손해다.
게다가 상황이 그렇게 흐르면 기약 없이 피오렐 호를 기다려야 하는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도 위험해질 수 있다.
“명령이다. 당장 움직여!”
내가 명령이라는 말까지 동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모르아와 네 명의 선원이 골목을 빠져나갔고,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다 칼 뽑아. 이런 곳에서 고작 소요사태에 휘말려 죽을 수는 없지.”
스릉, 스릉, 스릉.
아무리 막 나가는 선원들이라도 대낮에 날붙이를 뽑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 날붙이가 고작 20cm 남짓한 짧은 단도나 단검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항구경비대에서 그 미친놈들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는 것은 물론, 그들이 소속된 배에도 엄청난 불이익을 안겨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지금 니파 항구의 상황을 볼 때, 우리가 나체로 도로에서 춤을 춰도 항구경비대가 개입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칼을 뽑고 명령을 내리자 엉겁결에 다 같이 칼을 뽑았지만, 행크와 두 선원에게 어색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가자. 오트라스 호까지 최단 거리로 주파한다.”
***
험상궂은 네 남자, 아니, 세 남자와 멀끔한 한 남자가 골목에서 칼을 들고 등장하자,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하던 거리는 난리가 났다.
남자들은 빠르게 도망쳤고, 몇 명 안 되는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넘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우리 때문에 거리의 혼란이 가중된 꼴이라 다소 양심에 찔리긴 했다.
그래도 괜히 칼 안 뽑고 있다가 대응이 늦어서 누가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다.
평소였다면 경비대가 출동할 일이었지만, 어차피 이런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거리의 소요사태를 누가 일으켰는지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약간 민망하게도, 그 난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트라스 호의 현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칼을 뽑아 든 채로 기진맥진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는지 오트라스 호에서 긴급한 타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리버티 호에서도 한 박자 늦게 타종 소리가 울리며 부두가 소음으로 가득 찼다.
두 배의 갑판 위에서 선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전투 배치’라는 외침이 계속 터져 나왔다.
.
.
.
아니야,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라고!
***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현문 앞에 도착하자 십여 명의 선원들이 무장을 마치고 우르르 내려와 우리를 감쌌다.
그리고 대여섯 명과 현문을 봉쇄한 그레이그가 나를 마중하며 물었다.
“선장님! 무슨 일입니까?!”
“저기, 전투 배치 해제부터 해. 별일 아니야….”
“네? 그런데 왜 칼까지 빼 들고 뛰어오신 겁니까?”
그만해.
민망하다고!
“……빨리 다시 경계 태세로 돌리기나 해, 일등항해사.”
“아, 알겠습니다.”
머쓱한 표정이 된 그레이그가 손짓으로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선교 쪽에서는 부선장님이, 무기고 방향에서 네이선이 뛰어나왔다.
“괜찮습니까, 선장님?”
“선장님! 무슨… 어?”
부선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몸을 훑어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나온 네이선이 나를 보고 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네, 괜찮아요, 부선장님.”
“야! 너는 몸도 시원찮은 애가 뭣 하러 나왔어?”
내 대답에 부선장님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부두 쪽을 노려보았고, 네이선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으려고 손을 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팔도 제대로 못 드는 녀석이 뭐 하러 나온 거야?
“전투 배치인데 갑판장이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쩝,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
“하여간! 간부들은 지금 당장 선장실로 모이고 전투 배치는 해제! 대신 경계 태세는 계속 유지해. 리버티 호에도 전달하고, 발드 선장은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해.”
“저기 오고 있군요.”
부선장님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그의 말처럼 리버티 호에서 일단의 무리가 무장한 채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발드 선장과 왓킨 갑판장이 있었다.
하여간 눈치들은.
***
이미 여기까지 온 왓킨 갑판장까지 총 열 명의 간부가 선장실에 모였다.
“상황이 급하니까 빠르게 전달할게. 조만간 반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 때문에 지금 니파 항구의 상황이 엉망진창이야. 다행스럽게도 피오렐 호와 연락이 닿았고 일단 이쪽으로 이동하라고 전달했어. 우리는 피오렐 호가 도착하는 즉시 출항할 거야. 갑판장들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출항 준비 마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제독.”
“네, 선장님.”
두 사람이 단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발드 선장이 바로 손을 들었다.
“제독, 하지만 출항 허가를 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항구관리소 앞은 난장판인 데다가 기능을 상실했어요. 출항 허가는 받을 수 없을 겁니다.”
내 말에 발드 선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배가 징발당하거나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으음….”
발드 선장을 설득한 나는 게론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회계사, 혹시 보급은 했나?”
물론 기대를 하고 물은 것은 아니다.
물자 보급은 출항 직전에, 빨리하더라도 출항 전날 하는 것이 관례니까.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장님. 교역소도 이미 난장판입니다. 다행히 가지고 온 물자가 전쟁 특수를 누릴만한 녀석들이라 매각에는 어떻게 성공했습니다만, 물자 확보는 실패했습니다. 식량이고 맥주고 죄다 동이 났습니다. 몇몇 상인들이 몰래 접근은 했지만, 가격을 20배 이상 부르더군요.”
“뭐? 20배?!”
“미쳤군.”
“20배면 도대체 얼마야?”
게론드의 말에 좌중은 난리가 났다.
탕탕!
나는 책상을 두드려서 사람들을 집중시킨 후에 바로 네이선과 왓킨을 보고 지시를 내렸다.
“갑판장들은 지금 당장 나가서 최대한 식수 확보하고 출항 준비시켜. 움직여!”
식량이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식수라면 편법으로라도 구할 수 있었다.
선내에 빈 통은 충분하고, 귀찮고 힘들기는 해도 물도 가까운 우물에서 떠 오면 되니까.
하지만 당연히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인지라 일단 두 사람을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이 급히 선장실을 나가고, 나는 게론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오트라스 호와 리버티 호의 식료품 상황은 확인했어?”
“네, 오트라스 호는 3일, 리버티 호는 8일 정도 버틸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재분배를 하면 4일분밖에 안될 겁니다.”
오트라스 호의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식수 확보가 끝나고 피오렐이 도착하면….”
그때, 내가 선교에서 가지고 온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피오렐, 제독님, 들리십니까?”
하던 말을 멈춘 나는 재빨리 무전기를 낚아채서 대답했다.
“리안이다. 말해.”
“죄송합니다, 제독. 명령하신 대로 그쪽으로 움직이는 중입니다만, 연안경비대 소속 경비함이 뒤에 붙었습니다. 정선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젠장, 젠장, 젠장!
하필이면 보이지도 않던 해군 경비함이라니!
나는 짧은 시간 수많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일단 어느 나라의 해군이라도 충돌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군인지 반군인지 모를 저들에게 붙잡히면 물자 징발은 기본이고 선원들이 차출당하거나 선박 자체가 징발당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전투함으로 충분히 가용 가능한 피오렐 호라면 더욱 그렇겠지.
“경비함 재원은?”
“…350톤 정도의 군용 캘리언 급 선박으로 보입니다. 선수포가 하나, 현측포는 12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체적인 스팩은 피오렐이 우세했다.
그래봐야 군함과 정면으로 싸우라는 미친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따돌릴 수는 없을 것 같고, 여기까지 이동은 가능하겠어?”
“하지만 그곳에 도착할 때쯤이면 거의 따라잡힐 겁니다. 오히려 제독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일단 명령을 정정한다. 3번 부두로 이동하지 말고 이쪽 부두에서 동쪽 해안으로 나가는 해상으로 이동해. 상대가 만약 무력으로 도발할 경우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저항하도록. 무전기가 있으니 해상에서도 만날 수 있을 거다. 우리도 바로 출항하겠어.”
“…알겠습니다, 제독.”
“좋아, 통신 끝.”
무전기를 내려놓은 나는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간 간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포술장! 지금 당장 나가서 갑판장에게 식수 조달 취소하고 선원들 복귀시키라고 전해! 발드 선장도 마찬가지! 그리고 복귀 즉시 긴급 출항하도록! 서둘러!”
“네, 제독!”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등항해사! 긴급 출항한다! 선원들 복귀하는 대로 계류색 다 끊어! 치명적이지 않다면 선박 파손도 감수해! 모두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