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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38화 (239/420)

238화. 해상 봉쇄

“피오렐! 혹시 선박에 이상이 있는가?”

“아닙니다, 제독. 자세한 이야기는 상황이 해결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현재 속도를 더 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선박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뭔가를 많이 실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뭘 싣고 온 거지?

생각해보니 피오렐의 흘수가 꽤나 깊게 잠겨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내 궁금증을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그래도 우리와 조우할 때까지 해군 함정에게 따라잡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좋아, 285도로 변침하도록. 뒤에 붙은 해군은 우리가 해결하겠다.”

“알겠습니다.”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나라고 굳이 해군과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군함의 진행 경로에 파고들 것 같은 기동을 보여주거나, 개방된 포구를 조준하는 것 같은 액션만 취해줘도 알아서 피하지 않을까?

물론 대포를 겨냥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군을 상대로 포문을 여는 것 자체가 중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많다.

사소한 잘잘못을 따지거나 평판에 신경 쓰기보다는 당장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일등항해사, 우리도 변침한다. 210도 잡아.”

“210도로 변침합니다. 조타수, 좌로 15도!”

잠시 후, 피오렐과 피오렐을 뒤쫓는 군함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피오렐과 1:1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오트라스까지 노골적으로 적대적으로 나오니 움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난리가 난 판이다 보니 연안경비대 입장에서는 별다른 개장 없이 군함으로 전용할 수 있는 피오렐 호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피오렐 호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쫓아야 할 중대한 적인 것도 아니고, 피오렐 호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아도 징발을 가장한 약탈을 할 만한 선박은 주변에 충분히 많았다.

피오렐과 오트라스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쯤, 그 뒤를 쫓던 해군 군함은 아예 함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를 포기한 모양새였다.

“휴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이제 한숨 돌려도 되겠습니다.”

계속해서 군함을 살피던 에른스트 부선장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베테랑인 부선장님도 해군과 엮이는 것은 긴장되는 일인 모양이다.

어쩌면 옛날 일에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완전히 긴장을 놓을 수는 없어요. 아직 해안포대의 사정거리 안쪽이고, 무엇보다 다른 연안 경비함들은 다 어디 간 걸까요?”

해안포대가 침묵하는 이유는 납득이 간다.

아무리 막장스러운 상황이라도 적대 행위를 하지도 않는 타국의 상선들이 있는 곳에 포탄을 날려댈 수는 없으니까.

물자를 약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타국과 적대관계만 되는 일을 왜 하겠어?

그런데 적어도 중소형 선박을 10척 이상 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니파 연안 경비함들이 죄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글쎄요, 지금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항구를 벗어나서 안전이 확보되면 피오렐 호에서 사람을 불러 상황 파악부터 하시죠.”

“그래야겠어요. 크리스티앙, 교전기 내리라고 전해.”

“네, 선장님.”

“오펜, 포갑판으로 가서 장전은 유지하고 포문은 닫으라고 전해.”

“네, 선장님!”

크리스티앙과 오펜이 내 명령을 받아 빠르게 선교를 내려가자 부선장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일단 보급 상황이 좋지 않으니 근처의 다른 항구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휴… 골치가 아프네요. 일단 서쪽으로 쭉 나아가죠. 이대로 벵가로쉬 항구로 가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겠죠?”

벵가로쉬 항구는 니파 항구의 북쪽에 위치한 프레티아 왕국의 항구이다.

북쪽이기에 아직 반군의 세력이 미치는 곳은 아니지만, 니파 항구에서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출항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보니 여러 가지 불리한 일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일단 우리가 나올 시점에서 니파 항구는 엄연히 프레티아 왕국 정부군의 수중에 있었고,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자국의 항구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탈출(?)한 것이니 말이다.

“선장님! 전방! 전방을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해군입니다!”

갑자기 견시수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급히 망원경을 들어 전방을 확인하니, 먼 바다로 나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곶과 섬의 사이에 보이지 않던 연안경비함들이 봉쇄를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아니, 봉쇄를 하려는 것 맞나?

“일단 다섯 척. 200톤에서 500톤 사이군.”

최대한 크고 강력한 군함으로 구성하는 정규 함대와 달리, 연안 경비함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운용비용 측면에서도 그렇고, 먼바다보다 수심이 얕으며 빠른 기동이 필요한 해안 항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함대전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해상 검문이나 해적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저게 지금 봉쇄를 위한 움직임이라면 우리 아무리 용을 써도 못 지나간다.

우리보다 앞서 나가던 상선들이 급하게 돛을 내리고 선회하려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배짱이 좋아도 군함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시도하려는 멍청이는 없는 것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어지럽게 신호기가 휘날리는 것 같은데, 자세하게 알아보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조금 더 다가가야….

“피오렐에서 신호입니다! 명령 하달 요망!”

밑으로 내려갔던 크리스티앙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신호를 전달했다.

“일단 방향을 돌리시죠, 선장님.”

부선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언을 한다.

하지만….

“일단 현 상태 유지.”

“네?!”

“선장님!”

“잠시만요, 확인할 게 있어요.”

나는 급하기 품에서 망원경을 다시 꺼내며 오펜에게 물었다.

“오펜 항해사, 아까 피오렐을 따르던 해군 함정, 어느 쪽이지?”

“그 군함이라면… 저쪽입니다. 저쪽에서 다른 상선을 노리고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오펜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자 나는 빠르게 망원경으로 그 근방을 훑었다.

그리고 금방 목표로 한 군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와 정 반대 방향으로 침로를 돌리고 있는 녀석을 말이다.

좋아, 그렇다면 도박을 해볼 만하다.

“침로 유지, 피오렐에도 전달해. 리버티는 얼마나 따라붙었어?”

“선장님?”

“어서!”

“…네!”

“리버티 호 현재 위치 선미 쪽 160도, 거리 250 정도입니다.”

“좋아, 리버티 호에도 신호 보내, 그대로 뒤따르라고.”

부선장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신 내 표정과 눈앞의 바다를 메운 여섯 척(한 척이 추가되었다)의 연안 경비함대를 번갈아 가면서 보더니, 잠시 후 감탄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리보다 앞서던 세 척의 상선이 함대 사이로 진행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요?”

“저들이 우리를 보내 줄 것이라는 것을요.”

“아, 확신까지는 아니고, 피오렐을 쫓던 녀석 있잖아요? 그 녀석이 꽁지를 빼더라구요. 그래서 알았죠. 피오렐을 쫓던 녀석이랑 지금 우리 앞을 막은 녀석들이 서로 적대관계라는 것을요.”

내 설명을 들은 부선장님, 그리고 그것을 엿듣던 그레이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신 겁니까?”

갑판장님의 조용한 반론을 약간 흥분한 듯한 그레이그의 말이 따라붙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소리라도 지를 기세다.

“원래 군대의 존재 이유와 첫 목표는 적의 섬멸이지, 민간인 약탈이 아니야. 그리고 명백한 적대 세력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고. 고작 여섯 척으로는 여기를 완전히 봉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우리 뒤쪽까지 적어도 스무 척은 넘은 상선을 다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눈앞의 적을 놔두고 약탈을 한다?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아마 저들이 저렇게 봉쇄하듯이 움직인 이유도 피오렐을 쫓던 녀석의 탈출을 막으려고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죽기 살기로 피오렐을 쫓던 녀석의 이유도 대충 짐작이 된다.

군함은 너무 눈에 띄니, 그나마 전투력이 있어 보이는 피오렐을 타고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굳이 피오렐이 아니더라도 상대하기 더 쉬운 다른 상선을 나포하는 게 쉽지 않았을까 싶은데, 해군 놈들 머릿속의 요상한 생각까지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

***

여러 가지 방향에서 안전함을 확인했지만 역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해군 함정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은 심장이 쫄깃한 일이었다.

심지어 포문은 죄다 열어놓고 프레티아 왕국의 해군기 밑에 새빨간 교전기를 걸어놓았으니, 쫄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심지어 양 현에서 수십 명의 병사들이 노골적으로 지나가는 우리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황이 좋지 않아서 보내는 주지만, 육안으로라도 검문을 하려는 것 같았다.

다행히 별다른 우발적 사건 없이 리버티 호까지 해군의 봉쇄망을 지날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해군 함정들은 상선들이 다 통과하자 바로 항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군인가 봐.”

“네?”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아까 지나온 해군들 말이야.”

“그럴 리가요, 분명히 프레티아 왕국 해군의 깃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뭘 쓰겠어?”

“당연히 반군의 깃발을…… 아?”

혼자서 떠들던 그레이그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우리는 쉽게 왕국군 혹은 정부군과 반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프레티아 반군에게 반군이라고 하면 엄청 화낼걸? 그들은 그들이 진정한 왕실의 후계자가 이끄는 왕국군이라고 여길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

프레티아 왕국의 내전은 본질적으로 현 왕가나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모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 국왕을 반역자라고 규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군 구성도 지방 영주의 사병과 일부 중앙군이니 ‘정부군과 반군’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약간 본질과 맞지 않았다.

그러니 ‘반군’들이 굳이 프레티아 왕실 깃발이 아닌 다른 깃발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반군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저는 오히려 이곳 니파 항구의 연안경비대일 확률이 높은 것 같은데요.”

부선장님이 조용히 물었다.

“니파 항구의 연안경비대는 맞을 겁니다. 하지만 반군으로 돌아선 것이겠죠.”

“그걸 어떻게…?”

“아직 니파 항구가 반군에게 함락된 것은 아니잖아요. 분명히 우리가 나올 때까지는 정부군의 관할하에 있었고, 병력을 차출해 약탈, 아니, 징발을 할 정도면 아직 반군과 조우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만약 저들이 정부군이라면 항구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해안포대와 함께 외곽을 경계하는 게 맞죠. 하지만 반군이라면 빠르게 항구에 진입해서 양동작전을 펼치든가 해서 육군이 전투를 수월하게 하도록 돕는 것이 옳구요. 제 추측대로 저들이 지금 막 반군 쪽으로 갈아탄 연안경비대라면 뭔가 내밀만한 전공이 필요할 테니 어떻게든 전투에 한 자리 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

사방에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니파 항구의 먼바다, 세 척의 상선이 옹기종기 모여서 투묘한 채로 떠 있었다.

“바다의 부랑자가 따로 없군.”

“뱃놈의 인생이 다 그렇죠, 허허허.”

“이왕이면 물자 재분배까지 한 번에 하려고 했는데, 정말 안 도와주네요.”

“아무래도 파도가 높으면 접현은 위험하니까요.”

현재 파고는 1.5미터가량. 솔직히 접현을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무거운 물자들을 옮기기에는 위험한 높이다.

줄과 도르레로 안전하게 물건을 옮기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정말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한쪽 배의 승조원들이 굶고 있고, 파도가 좋지 않은 상황이 아니고야 쓸만한 방법이 아니지.

“선장님, 우현에서 리버티 호의 발드 선장과 바우어 항해사가 승선 요청을 했습니다.”

“응, 올라오라고 해. 피오렐 호에서는?”

“선장님! 좌현에서 피오렐 호의 아인델프 선장과 모르아 갑판장이 승선을 요청합니다!”

타이밍 죽이네.

“그래, 그쪽도 올라오라고 하고 모두 선장실로 모이라고 해.”

두 선원이 각각 좌현과 우현으로 뛰어가자 나는 부선장님을 보고 말했다.

“부선장님이 애들 좀 데리고 와 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준비 좀 할게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그나저나 왜 모르아 갑판장이 왔지?

원래 슬레어 항해사가 와야 하는 건데?

잠시 후, 나는 오랜만에 아인델프와 해후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볼이 움푹 들어갔다.

“아인델프 선장! 고생했어!”

“제독,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도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표정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상황이 꼬여서 쉽지 않은 명령이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아인델프는 내 명령을 완수한 것이다.

“일단 좀 앉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좀 많아.”

반갑게 맞이하기는 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씩 보면 큰 이상은 아닌데, 뭐랄까 뭔가 좀 이상하기는 하거든.

그리고 그 불안감의 정체가 곧 밝혀졌다.

***

“다시 말해봐. 몇 명이라고?”

“총… 104명입니다.”

“백… 백사아아명?! 그 인원이 자기 세간을 가지고 탔다고?!”

“그게… 면목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고, 식량은? 식수는? 그 사람들 재울 곳은 있어?”

“최대한 준비는 했습니다만, 식량은 이틀분 밖에….”

이럴 수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다.

아인델프라면 선장으로서 충분히 제 몫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지, 선장으로서의 몫이 문제가 아니라 군인 출신 치고 인정이 많은 건가?

무슨 피난민을 104명이나 태우냐고?!

피오렐 호의 총원이 60명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외부인원을 태운 셈이다.

심지어 타국의 피난민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외교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피난민들을 다독이느라 슬레어 항해사는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거고?”

“아무래도 슬레어 항해사의 가족이 피난민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까요.”

“그런데 잠깐만! 무슨 피난민? 슬레어 항해사의 부모님이라면 바크렌 시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 함락된 지 고작 이틀 지났다던데? 그 사이에 피난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와?”

“사흘입니다. 그리고 함락 전에 피난을 온 터라….”

슬레어 항해사의 가족이 무사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피난민 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피난민 촌에 갔다가 극적으로 부모님과 상봉을 했다니, 운도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아인델프는 선장의 직권으로 슬레어 항해사의 가족들을 배에 승선시키기로 결정했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원 중의 한 명이 자기 동생을 피난민들 사이에서 발견했고, 다른 사람은 부모님을 발견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한 선원의 가족들은 니파 항구 근처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함께 떠나기를 원했다.

거적때기로 대충 잘 곳을 만들어 살고 있는 피난민 촌에 소문이 도는 것은 금방이었고, 다음날부터 수많은 피난민들이 항구로 몰리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이 항구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뒤이어 반군이 근처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떻게 사실과 근접한 소문이 돈 것 같은데, 솔직히 반군들도 엄청 당황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처음에는 헛소문이었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이 난장판의 시작이 바로 피오렐 호였던 것이다.

순진한 우리 아인델프 선장님께서는 밀려 들어오는 피난민들의 호소를 매몰차게 물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사정이 불쌍하다고, 아파 보인다고, 나이가 어려서,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하나씩 받아들인 피난민이 무려 104명이 되어버린 것이지.

순간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아픈 사람이라고 했어?!”

“네? 아, 네….”

망할, 전염병!

피난민 촌의 위생 상태가 열악했을 것이라는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피난민들의 영양 상태가 좋았을 리도 없다.

그리고 불결한 환경, 따뜻한 날씨, 빈약한 신체, 인구밀도가 높은 공간… 이런 것들이 합쳐지면 대재앙이 발생한다.

전염병이라는 대재앙 말이다.

“닥터! 닥터는?”

“네? 닥터요?”

“항해 일정에는 관심이 없다고 안 오셨습니다.”

갑자기 내가 닥터를 찾자 어리둥절한 오펜이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시간 낭비를 그만두고 벌떡 일어서서 아인델프와 모르아에게 소리쳤다.

“두 사람은 당장 피오렐로 복귀할 준비 해! 닥터가 합류하면 바로 출발한다!”

“네?”

“선장님!”

“제독?!”

당황스러운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급박한 상황은 아닐지 모르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고 여유 부릴 상황은 확실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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