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팬입니다, 교수님!
의무실에서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던 롱베르 씨는 대략적인 내 설명에도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래서 선내에 머문 지는 얼마나 되었다던가?”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잠시 계산을 한 나는 최대한의 근사치를 제시했다.
“최대 5일, 최소로 잡아도 3일이요. 그런데 피난민 촌에 있었다고 했으니, 이미 전염병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죠.”
“으음, 어서 가지.”
이미 진료 가방을 챙겨 들고 뛰다시피 하던 닥터 롱베르와 나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갑판에는 이미 아인델프와 모르아가 준비를 마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그나마 행동은 빠릿빠릿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제독.”
“뭐해?! 먼저 내려가!”
뛰어오면서 소리를 지르자 아인델프와 모르아가 민첩하게 줄사다리를 타고 단정으로 내려갔고, 뒤이어 도착한 우리도 행동을 서둘렀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아인델프, 피난민들이 언제부터 선내에 머물렀지?”
노를 젓기 위해 대기 중이던 선원들을 재촉하고 아인델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인델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며 겨우 대답했다.
“슬레어 항해사의 가족들을 찾은 날부터니까 나흘째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제까지 계속 받아주는 바람에… 월권을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제독.”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네이선의 경우처럼 규율을 바로 세워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배의 선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모든 일을 사사건건 내 명령대로만 움직여서야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아인델프의 자존감도 떨어지고 융통성도 떨어지니, 인재 육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최악이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고 말을 건넸다.
“휴우, 지금 피난민을 받았다고 질책하는 건 아냐. 선장이 그 정도는 재량껏 판단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중에 병자가 있다고 했지?”
“네, 그렇지만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실 정도로 병세가 심한 것은 아닙니다.”
내 말에 표정이 살짝 밝아진 아인델프가 조심스럽게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물론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걸리자마자 ‘꽥!’하고 죽거나 바로 병색이 완연하다면 전염병이 그렇게까지 무서울 리가 없다.
전염병은 잠복기가 길수록, 증상 발현이 천천히 일어나고 눈에 띄지 않을수록, 사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감염률이 올라간다.
“아인델프, 전염병이 보통 어디에서 생기지?”
“네? 그, 글쎄요? 그것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 아인델프.
아인델프를 탓할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염병을 신의 저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세상이니 말이다.
물론 일부 지식인이나 관료들이야 병균의 존재는 모르더라도 전염병이 자주 발생하는 조건 정도는 알겠지만, 해군 장교였던 아인델프가 알만한 내용은 아니다.
의사라는 놈들도 전염병이 발병하면 일단 튀고 보는 세상인데, 뭘 바라겠어?
“지금 피난민들이 전염병을 발생시키기 가장 좋은 상태야. 약해진 체력, 비위생적인 환경, 비좁은 공간 말이야.”
“아!”
아인델프는 물론이고 모르아까지 당황, 감탄, 의혹이 섞인 애매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들로서는 단 한 번도 깊게 고민해 보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리안 제독의 말이 맞네. 거의 대부분의 전염병은 빈민가나 난민촌에서 시작되지. 그리고 이런 곳들은 정말 제독이 제시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지.”
전문가인 롱베르 씨가 내 말에 동의하자, 그제서야 두 사람이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아인델프가 새파랗게 질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서, 설마! 지금 피, 피오렐에?!”
갑작스러운 아인델프의 움직임에 단정이 당장이라도 뒤집어질 듯이 요동쳤다.
“앉아! 앉으라고!”
내가 기겁하며 그의 팔을 잡아당기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빠르게 주저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속단하지는 마.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있는 것이니까.”
아인델프를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전염병이 시작되었다면 현실적으로 대응 방법이 없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종류의 전염병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치료제가 없으니 감염자들을 격리해서 관리하며 증세가 호전될 때까지 건강관리를 해줄 수밖에 없는데, 시간, 공간, 인력 모두 부족하다.
아무리 닥터 롱베르라도 혼자서 백여 명의 사람들을 한 명씩 진단하고, 관리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국가 단위의 대응도 고작 발병지역 격리 폐쇄 정도에 불과한 세상에서, 개인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처음 맡게 된 배에 전염병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하니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아인델프와 달리, 그나마 정신을 차린 모르아 갑판장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제독, 선원들은 괜찮겠습니까?”
“혹시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선원이 있었나?”
모르아는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최근 상황이 좋지 않아 선원들을 제가 직접 관리했거든요. 물론 작정하고 숨겼다면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사망자가 있었거나, 현재 있나?”
“사망자는 확실히 없습니다.”
“선원들과 피난민들의 접촉 정도는 어때?”
“피난민 중의 절반가량이 여자라서 선원들의 사적인 접근은 막았습니다. 슬레어 항해사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건 정말 잘했네. 아프다는 사람은?”
“그게 조금 애매한데, 본인들 말로는 원래 좋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억나는 증상이 있어?”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고, 기침을 하는 노인, 낯빛이 좋지 않은 남자, 다리를 저는 여자 등이 있었습니다.”
“으음….”
모르아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선원들은 아직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기침을 하고 육안으로 병색이 보일 정도로 아픈 사람은 충분히 위험했다.
“세상에, 누가 보면 제독이 의사인 줄 알겠군요.”
“…네?”
뜬금없는 말에 돌아보니, 닥터 롱베르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전문가를 옆에 두고 너무 나섰던 것 같다.
“아, 미안해요, 닥터. 제가 너무 흥분했나 보네요.”
“아니요, 정말 적절한 질문이었습니다. 일단 선원들은 뒤에 보아도 되겠군요.”
“네, 그리고 무엇보다 닥터가 조심해요. 닥터가 쓰러지면 우리 전멸인 거 아시죠?”
“허허, 제독이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십니다, 그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크게 웃지 못한 닥터가 말을 흘리는 사이, 우리가 탄 배는 피오렐의 우현에 도착했다.
줄사다리가 내려오고 우리는 급히 피오렐에 올랐다.
모르아 갑판장에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올라서자 갑판 위에 모여 있던 선원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독인 내가 굳이 배에 오를 일이 뭔가 싶은 거다.
특히 피오렐 같은 경우 리버티나 오트라스를 타다가 이동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원이 새로 고용된 선원이라 내 얼굴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한몫 했으리라.
“오셨습니까, 제독.”
“제, 제독님?”
미리 나와 있던 포술장 클라톤과 슬레어 항해사가 의아해하며 나를 맞이했다.
“어, 다들 고생 많았어. 모르아 갑판장은 선원들 통제하고 이상 증상 있는 사람 다시 한번 확인해 줘.”
“네, 제독.”
먼저 모르아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클라톤과 슬레어에게 악수를 권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피난민들은?”
“아, 이쪽입니다.”
“가지. 닥터, 이쪽이랍니다.”
“닥터라면, 앗!”
슬레어가 마지막으로 올라온 롱베르 씨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닥터는 클라톤과 눈인사를 나누고, 급하게 슬레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준 후, 아인델프를 따랐다.
***
“그쪽은…?”
“아히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히르 씨. 그런데 지금 뭘 하시는지…?”
“보시다시피 제가 몇 가지 약초를 가지고 있는데, 마침 여기 이분의 상처에 좋은 약이 있어서 준비 중이었습니다. 노인들은 단순한 타박상도 오래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
선창 두 개에 나누어 수용된 민간인들의 위생 상태나 영양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양호했다.
선박이라는 특성상 비좁은 곳에 모여 있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최소한 공기만 마셔도 병에 걸릴 것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을 예상했던 나와 닥터는 솔직히 꽤 당황하고 말았다.
아인델프가 세심하게 신경을 잘 썼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그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여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슬레어 항해사에게 위임을 했었다고.
그렇다고 우리를 따라 들어온 슬레어 항해사의 공도 역시 아니었고, 여기 아히르라는 남자의 공이었다.
사실상 피난민들의 리더로 취급되는 슬레어의 부친인 허비 씨의 도움을 받아 선창을 적당한 구획으로 나누고, 피난민들의 여벌 옷을 수거한 뒤 분배해서 더러운 의류를 파기하게 했으며, 식사 배급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챙겨온 약초로 피난민들의 자잘한 병증을 봐주던 남자였다.
“혹시 원래 이런 일들을 자주 하셨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군의로 잠시 종군한 적이 있습니다.”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 리더쉽과 체계적인 관리능력은 고작 군의로 잠깐 전쟁터 다녀왔다고 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웠기에 나는 감사의 표정을 숨기지 않는 슬레어의 부친, 허비 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피난민들의 위생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군요. 허비 씨. 누구의 생각입니까?”
“아, 그것도 여기 아히르 씨의 생각입니다. 저같이 무식한 놈들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해야 병이 잘 안 생긴다고 하더군요. 제 아들놈의 열병도 고쳐주신 용한 의원님이라 일단 따르게 했습니다.”
내 시선이 다시 아히르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아히르가 쑥스럽다는 듯이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제 생각은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쓴 책에서 읽은 내용이죠.”
“존경하는 분이요?”
“네, 몰로스 제국 황립 대학의 교수이신 롱베르라는 분인데, 그분이 쓰신 ‘현대 의학과 위생’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죠. 그분이 그 책에서 가장 강조하신 부분이 바로 위생입니다. ‘의사는 치료에 앞서 환자의 위생 상태를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죠.”
“…….”
“…어흠.”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눈을 돌리는 닥터의 옆구리를 찔렀다.
“닥터, 진짜에요?”
“어허허허, 그게… 나도 젊을 때가 있었잖나. 아니,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 젊은 치기에 썼던 것인데….”
닥터는 꽤 당황했는지 다른 간부들 앞에서는 거의 지켜주시던 존댓말까지 깜빡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잠시 돌아가는 꼴을 보던 아히르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서, 설마, 롱베르 교수님이십니까?!”
“어허허허….”
“이럴 수가!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교수님을 뵙게 될 줄이야!”
“이제 교수가 아니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수님이야말로 이 시대 의학의 선구자이십니다! 교수님이, 교수님이 아니라면 감히 누가 교수라는 호칭을 받겠습니까?!”
“어허허허….”
***
빠릿빠릿한 신병 같은 태도로 우리를 안내하는 아히르의 도움을 받으니 104명의 피난민을 간단하게 검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애초에 아히르 씨가 잘 관리해준 것도 있었고, 이상 증세를 미리 파악해둔 덕분이었다.
“일단 알려진 전염병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으니 철수해도 되겠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아히르 씨는 당분간 이곳에 계셔야 하니, 아까 주의하라고 말씀드린 분들은 잘 좀 지켜봐 주시오.”
“걱정 마십시오, 교수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0대 아저씨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열정에 차서 대답하는데, 내가 닥터라도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허비 씨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곳에 머무르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만, 배라는 공간이 원래 조금 그렇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곧 안전한 곳에 내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못난 아들놈이 배를 탄다고 집을 뛰쳐나갔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하는 것을 보니 뿌듯합니다. 아들놈을 돌봐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제 가족들까지 배려해주시니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평생을 대장간에서 살아온 남자답게 새카맣게 그을리고 화상으로 얼룩진 피부의 허비 씨가 연신 허리를 굽혔다.
슬레어 항해사의 나이를 감안하면 아직 50도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외모로만 보면 60도 넘어 보일 정도였다.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선실을 나오면서 나는 아인델프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피난민들 외부로 나오지 못하게 했지?”
“물론입니다.”
피난민을 데리고 가는 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걸 외부에까지 공개하겠나?
아인델프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피난민들의 건강에는 치명적이겠지만 말이다.
“내일부터는 그룹을 나눠서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줘. 좁은 선창에 계속 있으면 없는 병도 생기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제독.”
“닥터, 선원들도 한 번 봐야겠죠?”
“으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이상 증세가 있는 선원을 먼저 보도록 하죠.”
“슬레어 항해사, 갑판장에게 내용 좀 전달해.”
“네!”
***
피난민에 이어 선원들에게도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리버티 호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모르아가 아니라 슬레어 항해사가 동행했다.
아무래도 자기 가족의 처우가 결정되는 자리이다 보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자 일단 피난민들은 확인했고, 덕분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졌네.”
내 말이 끝나자 부선장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의 한 지점을 짚으며 말했다.
“일단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는 기항할 만한 항구까지가 너무 멀고, 남쪽은 반군 때문에 위험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북쪽인데, 현재 식량 상태를 보면 벵가로쉬 항구 외에는 답이 나오지 않는군요.”
선장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벵가로쉬 항구를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기가 영 께름칙했던 것이다.
이제 막 니파 항구가 반군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니, 상당히 북쪽에 치우친 벵가로쉬 항구는 아직 정부군의 수중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우리가 니파 항구에서 정상적인 절차 없이 출항했고, 심지어 프레티아 왕국의 피난민들까지 태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자국의 피난민을 태워다 주신 고마운 선장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국이건 타국이건 어떤 도시도 피난민을 반기지도 않고, 오히려 배신자나 반역자를 도와줬다거나 첩자를 심으려 한다는 근거 없는 공격을 당할 확률도 있었다.
“피난민들을 들키지 않는 것은 어렵겠지요?”
“무슨 소립니까? 피난민들을 벵가로쉬에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피난민을 내려놓으면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겁니다.”
한동안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던 간부들은 하나둘 입을 닫고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결론은 내가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봤는데, 일단 피난민들의 의견부터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제독, 그들이 원한다고 해도 언제까지 배에 태워 돌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해군도 구조선도 아닙니다. 상선이죠.”
발드 선장의 말은 냉정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저들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손해인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일단 식량이 여유가 없으니까 바로 벵가로쉬로 이동하자. 출항 허가 못 받은 것은 피난민들을 내세우면 적당한 가격으로 후려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인델프 선장은 돌아가는 대로 벵가로쉬에 내리고 싶은 사람은 몇 명인지,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보도록 해. 내일쯤 기회를 봐서 직접 이야기를 하든가 무전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제독.”
“자, 빨리 움직이자고, 괜히 쫄쫄 굶어가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본격적인 탐사는 시작도 못 했는데 벌써부터 아주 난리로군.
그나저나 그 아히르라는 남자, 탐이 나는데 말이야.
오늘 밤에는 생각할 거리가 좀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