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47화 (248/420)

247화. 늙은 해적이 남긴 것

“으아아악! 사, 살려… 컥!”

나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해적 놈의 가슴에 박힌 칼을 한 번 더 깊게 찔러넣었다.

“헉, 헉, 씨발…. 너는 우리 애들이, 후우, 살려달라면 살려줬냐?”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네이선은 해적들이 널빤지를 넘어오는 족족 다시 바다에 밀어 넣었고, 행크가 이끄는 돌격대는 순간적으로 밀리는 곳을 찾아 뛰어다니며 전선이 밀려나는 것을 막았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 바리케이트로 장애물까지 만들어 놨으니, 해적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공격자가 수적 우세를 점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체력은 전투라는 극한 상황에서 정말 빠르게 떨어진다.

목숨이 걸린 판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근로기준법도 인권선원도 없는 세상에서 현장 숙식형 직업을 가진 인간들이 악덕 업주(?)에게 얼마나 갈려 나갈지 상상이 되는가?

이런 세상에서 매일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선원들의 체력이 좋지 않으려야 좋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선원들의 최초 전투력 유지 시간은 5분 미만이다.

물론 전투가 5분 만에 끝나는 것은 아니고, 그 이후로는 그냥 정신력으로 싸우는 거다.

고도의 긴장 상태에서 무호흡 운동을 반복하면 근피로도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심하면 일시적 마비나 경련이 오기도 한다.

지금처럼 전투 개시 후 15분쯤 지나면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칼을 피하거나 쳐내지 못해 죽거나 다치고, 다리가 풀리며 바다에 빠져서 익사하고, 둘이서 헉헉거리며 눈싸움하다가 옆에서 날아온 칼에 맞아 죽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이쯤 되면 네이선과 몇몇 정도나 이를 악물고 싸우지, 보통 선원들은 개전시 전투력의 반,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진다.

하지만 해적들 중 지친 놈들은 죽거나, 죽을 예정이거나, 죽음을 위장하고, 그 뒤로 쌩쌩한 놈들이 계속 밀려들었다.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어 보았다.

비릿한 피 냄새와 사람이 죽으며 싸지른 오물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늘 코에 맴돌던 바다내음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절반 이상 붕괴된 전장을 살펴보니, 나름 가려 뽑은 돌격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저기 흩어져 산발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힘과 체력이 적을 압도하지 못하다 보니 급한 곳을 제압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어쩔 수 없이 돌격대를 쪼개고, 그러면 제압 속도는 더 느려지는 악화의 무한루프에 걸린 것이다.

그나마 그들 덕분에 아직 전선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나는 가장 큰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최강자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네이선과 라프나.

이 괴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무시무시한 기세로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선장님! 우현 해적선과 거리 50 미만입니다!”

때마침 선교에서 그레이그가 더 암담한 소식을 전했다.

지금 상황에서 뺄 선원도 없는데, 이대로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우현에 3마스트 해적선이 접현하면 바로 전멸 확정이다.

외통수였다.

승산이 희박한 싸움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밀릴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네이선이라는 전략무기에 너무 의존한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 선장님!”

“어?!”

나는 포갑판 쪽 해치가 요란하게 열리며 튀어나온 머리통을 보고 반색했다.

우르타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포갑판에 있던 선원들이 커트라스를 꼬나 쥐고 살기등등하게 튀어나왔다.

내 앞까지 달려온 우르타가 급하게 물었다.

“우린 어디로 갈까? 저기? 저기? 응, 응? 으악, 네이선!”

아오, 정신없어.

나는 스무 명쯤 되는 팔팔한 선원들을 보고 다시 희망의 불씨를 피워올렸다.

“절반은 포술장이 데리고 전선 지원해! 해적 놈들이 바리케이트를 치우는 것을 우선적으로 막아! 무조건 놈들에게 발 디딜 공간을 주면 안 돼!”

“넵! 1포부터 4포까지 나를 따른다, 가자! 해적 놈들을 죽이러!”

“우와아아아아!”

우르타가 잠깐 시간을 버는 사이 네이선이 라프나를 죽이면 이긴다.

그리고 저쪽은….

“선장님! 저놈들도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 우현을 넘기면…!”

이제 선교에서 더 이상 볼일이 없기에 뛰어 내려온 그레이그를 보고 피식 웃은 나는 일부러 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일등항해사는 이 친구들 데리고 가서 지친 녀석들과 교대해줘. 그리고 지친 놈들은 우현에 배치해. 조금이라도 쉬면 저놈들 상대로는 버티겠지. 보아하니 아직 침몰 안 한 것도 기적이구만.”

그동안 포성이 몇 번이나 울리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는데, 우르타가 해적선을 아주 걸레짝을 만들어 놓았다.

포격 범위에 들어있던 녀석들의 좌현이 긴급 수리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박살 난 것은 물론이고, 미즌 마스트는 밑동이 꺾여서 날아간 상태였다.

물론 마스트라는 구조물이 대포 한 방에 바로 꺾이는 수수깡은 아니지만, 각도가 휘기만 해도 운항에 엄청난 장애를 준다.

아마 재수 없게 맞은 포탄으로 마스트가 많이 휘어버리자 스스로 제거한 것으로 보였다.

포어 마스트에 걸린 돛은 힘을 잃었고, 미즌 마스트까지 그 꼴이 되어버렸으니, 외견상으로는 이미 진작 백기를 올렸어야 할 모양새였다.

물론 얼굴이 새빨개져서 뭐라고 욕을 주워섬기는 해적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레이그는 늦지 않았다.

놈들이 내가 숨어있는 바리케이트 쪽으로 쇠뇌를 쏘아붙이며 줄갈고리를 던지기 시작할 때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십여 명의 선원들을 데리고 내게 다가온 것이다.

“다들 지쳤겠지만, 이놈들에게 뚫리면 우리 다 죽는 거 알지? 한숨 돌리고 갑판장이 저 해적 놈 목 딸 때까지만 버텨보자.”

“네, 선장님!”

삶에 미련을 버린 것인지, 초탈한 것인지, 대답이 귀찮은 것인지 선원들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여 있는 것이 좋은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바리케이트가 뚫릴 거고, 그러면 그다음 남은 것은 포위 전멸이니 어쩔 수 없다.

우르르르르르.

“뭐야?!”

이질적인 소리에 내가 시선을 돌리자, 선미 쪽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우리 배에 타고 있던 피난민 남자들이었다.

10대 소년부터 60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까지.

오트라스에 젊은 여자들을 태운 상황이라 일부러 젊은 남자들은 최대한 줄였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여자들의 가족 중 일부만 태웠을 뿐이다.

“들어가요! 위험합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가 한창이 좌현으로 달려갔다.

그들 중 딱 한 명,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만 나를 보고 똑바로 다가왔다.

“리안 선장님, 어차피 선장님이 지면 우리는 죽고 우리 가족들은 구차한 삶을 살아야 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싸우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다고!”

평범하게 치고받는 일상의 싸움이 아니다.

잠깐 방심하면 내 목숨이 날아가고, 그걸 피하려면 마주한 ‘사람’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전쟁이다.

크리스티앙이 첫 살인을 하고 얼떨떨해 있는 것을 오펜이 구해주는 것도 두 번이나 봤다.

훈련을 받은 크리스티앙도 그 모양인데 민간인들은 뭐, 말할 것도 없지.

“허허허, 저쪽을 보니 나도 한 몫 정도는 하겠구려. 그럼 나도 이만 가보겠소. 혹시 내가 죽으면, 선장님이 내 손녀는 잘 돌봐 주리라고 믿소이다.”

아, 도대체 뭘 보고….

나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좌현으로 휘적거리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그가 눈을 빛내며 보던 방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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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뭘 보는 거야?

노인네가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노망이 났나, 뭐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보는 곳에 널빤지를 질주하는 구미호, 아니, 꼬리가 두 개니까 이미호인가? 여튼 뒤에 불을 매단 남자가 뛰어가고 있었다.

왼손에는 뭔가가 담긴 통을 들고 있다.

익숙하네, 저거 화약 담아두는 통 아냐?

…….

우르타 이 새끼, 내가 화약 관리는 반드시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미친 듯이 달리는 회백발의 노인네가 앞을 가로막는 해적의 목덜미에 번개 같은 속도로 칼을 꽂아 넣고 발로 차버린다.

등짝에 매단 횃불이 미친 듯이 춤추며 산발이 된 그의 머리카락을 태워 먹었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널빤지를 건넌 노인은 왼쪽에서 공격하는 해적에게 왼쪽 상박을 내어주고, 오른손에 들린 칼로 오른쪽 해적과 마주 칼을 찔렀다.

노인의 칼은 해적의 가슴을 헤집고, 해적의 칼은 노인의 목덜미를 스쳤다.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저 해적 놈들은 허수아비인가, 왜 늙고 병든 노인네 하나를 못 막아서 저렇게 다 고꾸라지는 거지?

그리고, 저 노인네가 왜, 왜… 왜!!!

파지직!

그래, 알고 있다.

심지에 불이 붙는 소리 따위, 여기까지 들릴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왠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쩌렁쩌렁한 노인네의 목소리가 전장의 소음을 압도하며 울려 퍼졌다.

“내가! 붉은모래 해적단의 도살자다, 이놈들아! 바다의 사나이가 떠나기 좋은 날이구나! 같이 가자, 후배놈들아! 으하하하하! 리아아안! 고마….”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콰과과광!

눈부신 섬광과 함께 강렬한 폭음이 수차례나 터져 나왔다.

에른스트가 서 있던 곳은 해적선의 선수포에 사용하기 위한 화약과 포탄이 쌓여있던 곳, 유폭을 일으킨 것이다.

저 정도면 선수 부분이 아주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거다.

“엎드리십시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나를 우악스럽게 찍어 누르는 그레이그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

***

삐이이이….

그레이그가 내 어깨를 흔들며 뭐라고 하는데 영 알아먹을 수가 없다.

뭐라는 거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방금 보지 말아야 할 걸 본 것 같은데….

내가 가만히 있자, 그레이그는 성난 표정으로 이를 악물더니 나를 내팽개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냥 하는 짓을 보니까 그런 것 같다.

그 있잖아, 무성영화를 봐도 장면을 보면 소리가 상상되는 거, 대충 그런 느낌인 거지.

“선장님! 선장님, 정신 좀 차리십시오!”

“……어?”

나는 이명이 가시고 드디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나를 흔드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 가빈?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니요? 지휘를 하셔야죠!”

“응? 무슨 지휘?”

“선장님!”

잠깐만 기다려봐, 나 이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상황 파악할 시간은 줘야… 으아악! 미쳤네, 나 지금 전투 중에 정신줄을 놓은 거야?

너무 지쳐서 기절했었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려고 하다가 휘청하고는, 몸을 옆으로 돌리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두들겨 패가면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빈에게 말했다.

“상황은?!”

“우현에 접근하던 해적선은 지금 줄을 자르고 도주 중입니다. 좌현은 보시다시피 소강상태입니다.”

내가 그의 손짓에 따라 우현을 살피자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선원들과 해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아름다운 광경이 보였다.

선수 부분이 형체를 찾기도 힘들 정도로 박살 난 갤리선이 앞쪽으로 기울며 천천히,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침몰하는 중이었다.

저건 수리는 개뿔, 탈출도 힘들다.

그다음 시선이 향한 곳은 유일하게 챙챙거리는 쇳소리가 울리는 곳이었다.

거의 온몸에 피칠갑을 한 네이선이 라프나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정말 거칠게, 평소와 다르다.

네이선은 의외로 섬세한 남자라서 싸울 때도 굳이 힘을 낭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전투에서 더 괴물 같은 것도 있다.

남들이 보면 너무 쉽게 상대를 죽이면서, 체력도 어마무시하거든.

그러니까 지금 네이선의 모습은, 평소와 너무 다르다.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했다는 말이고, 그것은 위험신호였다.

“멍청이들아! 당장 저 도끼 든 놈부터 죽여! 네이선이 죽으면 너네는 무사할 것 같아?!”

내가 소리를 지르자 갑작스럽게 전투가 재개되었다.

선원들은 어떻게든 네이선을 지원하기 위해 꾸역꾸역 그쪽으로 다가가려고 하고, 해적들은 그것을 저지한다.

내 배 위에서 우리 편이 공세를 취하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너희는 뭐해?! 당장 뛰어가지 못해?!”

나는 내 뒤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던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어차피 도주를 결심한 저 걸레짝 해적선 따위,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선원들과 함께 좌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릎과 허벅지가 몇 대 맞고 정신을 차렸는지 제법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런데 내가 지금 중요한 걸 놓친 것 같단 말이지.

***

다시 재개된 전투는 1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자신의 기함이 등 뒤에서 침몰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데, 평정을 유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네이선이 라프나의 옆구리에 꽤 깊게 한칼을 먹이는 것에 성공했고, 어느새 좌현 끝까지 밀렸던 라프나는 중심을 잃고 바다에 빠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해적들이 아무리 독종이라도 자신들 위에 군림하던 괴물 같은 라프나를 이긴 최종병기 네이선과 싸울 배짱은 없었다.

온몸에 피를 바른 것도 모자라 내장과 뇌수로 추정되는 건덕지까지 드문드문 붙어있었기에, 외견부터 공포 그 자체다.

몇몇은 버티다가 죽었고, 운 좋게 바다와 가깝게 있던 해적들은 재빨리 바다에 뛰어들었다.

거대한 배가 침몰 중인 바다에 빠지면 죽을 확률이 99% 정도지만, 지금 오트라스 호 위에 남아있으면 반드시 죽을 테니까.

그렇게 해적들이 모두 소탕되자 몇몇 선원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쇠뇌를 들어 낑낑거리며 장전했다.

바다에 빠진 해적 놈들을 쏴버릴 생각인 게 뻔하다.

그래도 피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이긴 것만도 기적에 가까운데, 아직 멀쩡하게(피를 좀 흘린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으니까) 서 있는 사람이 꽤 된다.

기운이 없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까지 합치면 죽은 사람이 의외로 적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어차피 뒤질 해적 놈들은 냅두고 혹시라도 빠진 우리 애들 있으면 구출해! 그리고 돛 올려! 그딴 쓰레기들 치우는 것보다 리버티와 피오렐을 구하는 게 더 급하다! 포술장! 당장 닥터 모셔 와서 부상자 수습하고, 갑판장은 항해 준비해! 일등항해사! 선교로 올라가지.”

나와 항해사들이 몸을 돌려 선교로 향하는데 다들 어디에서 힘이 솟았는지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이겼으면 좋아해야지.

더 크게 소리 질러. 저 멀리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을 피오렐에까지 들리도록 말이야.

***

“피오렐! 응답하라!”

“치이이이이….”

“여기는 오트라스, 피오렐! 응답하라!”

“치이이이….”

몇 번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피오렐은 응답이 없었다.

“선장님, 리버티는 해적선을 따돌리고 이쪽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피오렐은?”

“여전히 접현 상태입니다. 아직 전황은 알 수 없습니다만.”

바람을 한껏 받은 돛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너덜거리는 미즌 마스트 쪽이 조금 거슬리는데, 저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

“피오렐까지 거리는?”

“2,400정도입니다.”

흠, 잘하면 소리는 들리겠군.

“견시! 타종해!”

잠시 조용하던 견시수가 머리를 내밀며 소리쳤다.

“네?”

“타종하라고! 최대한 시끄럽게! 저 새끼들이 우리 볼 수 있게!”

“알겠습니다!”

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

잠시 후 메인 마스트의 견시대에서 격렬한 종소리가 터져 나왔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황하는 선원들에게 내가 소리쳤다.

“피오렐에게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자! 저 해적 놈들도 다 바다 속에 처박으러 우리가 왔다!”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나는 이길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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