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전설의 진실
비가 그친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비위가 상할 정도로 냄새가 올라오던 물이 적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 싹 다 갈아버렸다.
다들 빗물로 깔끔하게 몸도 씻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빨래들도 처리했음은 물론이다.
미처 다 씻어내지 못했던 갑판 위의 핏자국이 지워진 것은 덤이다.
“선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근엄한 척하는 우르타의 말이 들려온다.
“농땡이.”
“나아도 농땡이 피우고 싶다아아….”
“냐아아옹!”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어서 고개를 돌려 우르타를 보니, 품에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우르타의 품에서 나를 노려보는 꼴이 꽤나 깜찍하다.
쥐도 못 잡는 게 꼴에 맹수라고.
그렇게 30초나 지났을까?
뒤쪽에서 으르렁거리는 진짜 맹수의 소리가 들렸다.
“포. 술. 장.”
“에에엑?!”
“지금 여기 뭐 하는 거지?”
“아아니, 나는 그러니까, 어, 맞아! 나 선장님 면담….”
“선장님?”
“포술장 농땡이 피우는 중이야. 데려가, 갑판장.”
뒤쪽에서 바람이 휙 부는 것 같더니 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야야야얏! 놔, 놔! 이거 안 놔?!”
“화약 관리를 해야 할 놈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청소하지 못해?!”
“선원들이 알아서, 으갸갸갸갹!”
슬쩍 고개를 돌리니 네이선에게 한 쪽 귀를 잡혀서 게걸음으로 끌려가는 우르타가 보였다.
애쓴다.
저 녀석들 일부러 그러는 거다.
요즘 들어 내 눈치를 엄청 보거든.
잠시 후,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난간에 팔을 얹었다.
“갑판장님 생각해?”
부선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기는 한데, 그냥 그날 이후로 우리끼리는 에른스트 부선장을 갑판장님이라고 부른다.
그게 제일 익숙하고, 뭐랄까, 익숙한 향기가 난다고 할까?
“아니, 그냥 이런저런 생각. 너는 일 안 하냐?”
방금 우르타를 무자비하게 잡아간 녀석이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
“농땡이 피우는 놈 잡는 게 내 일이야.”
그러면서 아주 묘한 눈으로 나를 힐끔거린다.
…내가 선장이라서 다행이다.
잠깐 그 불순한 눈알에 교훈을 내려줄까 하다가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갑판 위라서 보는 눈도 많은데 괜히 선장의 위엄에 손상을 입힐 필요는 없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놈들 우리 소식 듣고 일부러 그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쪽은 끽해봐야 일레드 왕국 해군이나 수송선이 다니는 곳인데, 그게 얼마나 자주 있다고 거기에서 영업질을 했겠어?”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도 뭐, 이제 끝났으니까. 그나저나 그놈을 생포하거나 목이라도 땄으면 현상금 좀 두둑하게 챙겼을 텐데 말이야.”
“미안,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아니,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고.”
최근 내해 최고의 해적이라는 ‘외날의 라프나’를 잡은 거다.
후작도 공격을 받았다고 했으니 이 소식을 싫어하지는 않을 텐데….
문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
배가 침몰했으니 증거품은 물론, 그놈의 갤리선에서는 건진 게 아무것도 없다.
적당히 후작에게 보고하면 공치사나 받을 수 있겠네.
“그런데, 어쩌면 살았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내가 옆구리에 칼 맞고 바다에 빠지는 걸 봤는데.”
“좀 얕았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부러 떨어지는 느낌?”
“…….”
짝!
나는 괜한 말을 하는 녀석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었다.
“윽! 아직 다 안 나았거든?!”
“어디서 거짓말이야? 닥터에게 다 들었는데.”
“쳇, 그래도 아직 맞으면 아파.”
응, 원래 사람의 모든 신체가 맞으면 아프단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 얕게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친 것은 확실하잖아?”
“그건 그렇지.”
“지치고 옆구리에 큰 상처까지 입은 사람이 침몰하는 배 옆으로 빠졌는데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
“그렇기는 한데… 숨통을 제대로 못 끊은 게 영 마음에 걸리네.”
배가 침몰하면 주변의 바닷물이 함께 휩쓸려 들어간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할 경우 최소한 50m 정도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기적적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더라도 구해줄 배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라프나라는 괴물 같은 놈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선장님, 곧 베타 포인트입니다!”
선교에서 크리스티앙이 이쪽으로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어! 올라갈게!”
마주 소리쳐서 대답한 나는 네이선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당부했다.
“이번에 변침하면 곧 예전에 ‘울부짖는 바다’였던 곳에 진입할 거야. 선원들에게 주의 시켜.”
“네, 선장님. 걱정 마시고 올라가십시오~.”
네이선이 장난스럽게 인사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
나와 그레이그는 해도실에서 현 위치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후우, 정말 울부짖는 바다의 규모가 축소된 모양이군요. 이쯤이면 벌써 먹구름이 보여야 할 텐데요.”
“음, 나도 일시적 현상이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네.”
“이대로 진행하면 내일 아침에는 여기, 꽤 안쪽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간 당직은 삼등항해사들에게 맡기고 자네도 좀 쉬지. 내일 항해는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선장님도 이만 쉬시지요.”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선교에 올랐다.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 몇 시간 내로 섬이 보일 수도 있었다.
“선장님, 나오셨습니까?”
“응, 별일 없었지?”
“넷!”
“파도가 좀 치네. 파고 얼마나 돼?”
“방금 전에 2m였습니다.”
“언제부터?”
“동이 틀 때부터 천천히 높아지는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망원경을 꺼내 사방을 둘러보았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구름 외에는 눈에 잡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늘 사방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선박이라는 것 자체가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 불가능한 탈것이라서, 모든 상황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황천 대비를 시킬까요?”
오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하늘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상 변화는 늘 주시하고. 파고 체크를 계속한 건 잘했어.”
내 칭찬에 오펜 녀석이 활짝 웃는다.
이 정도면 조금 이르지만 제 몫을 하는 항해사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
내 예상대로 정오가 되기 전에 수평선 끝자락에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전부터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드웰의 노트는 어디까지나 섬에서 나간다는 한 가지 목적으로 제작된 기록이었다.
그리고 폰테 섬 근처의 위협은 사시사철 몰아치는 폭풍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저 앞이네! 005도, 거리 150에 포말!”
“어, 아! 확인했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을 확인한 그레이그가 신중하게 타륜을 돌렸다.
평소였다면 암초 따위, 발견과 함께 최대한 멀리 돌아가겠지만, 지금은 표시도 되지 않은 다른 암초에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라 주의해야만 했다.
“오펜 항해사! 지금 암초 위치들 제대로 표시하고 있지?”
“네넷!”
항구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이쪽 암초 지대가 아닌 다른 쪽에 항구를 만들거나, 안전한 길부터 확보해야 할 것 같다.
매번 출입항을 할 때마다 이런 난장판을 벌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풍덩!
촤아아악!
무거운 추를 단 부표가 던져졌다.
폭풍이 몰아치지 않는 이상 이 부표들은 훗날 소형 선박으로 정확한 암초의 위치를 표시할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사람은 살지 않지만, 원주민은 있는 섬, 폰테 섬에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섬의 존재를 확인하자 선원들이 눈에 띄게 안도하는 것이 보였다.
물론 아직 식량은 충분했고, 얼마 전에 식수도 확보했지만, 망망대해에서 미지의 섬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선원들에게도 정신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해도라도 볼 수 있는 몇몇 간부들과 달리, 선원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몇 날 며칠 동안 변화라고는 전혀 없는 바다뿐이니 말이다.
오트라스의 뒤를 따르는 피오렐에서는 작게나마 환성이 올랐을 정도였다.
“쩝, 여기를 내 의지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섬이 제법 큽니다. 이 정도면 이곳보다 더 입지가 좋은 곳도 있었을 텐데, 드웰 님은 왜 굳이 이런 곳을 선택했을까요?”
“아, 그때는 암초 따위보다 폭풍이 더 무서웠거든. 일등항해사가 그걸 못 봐서 그래.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때 배를 띄웠나 싶다니까?”
“그 정도였습니까? 하긴 그 울부짖는 바다의 일부였으니 대충 상상은 갑니다만….”
내 말을 들은 오펜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펜에게도 그때의 기억은 그리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
무려 네 척으로 구성된 내 선단은 무사히 폰테 섬에 정박했다.
접안 시설이 없는 관계로 해변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예전 리버티 호를 수리하던 곳을 찾아 최대한 해안가 근처까지 배를 가지고 들어갔다.
리버티 호가 수리되던 이곳은 450톤급 리버티 호가 떠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깊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니 말이다.
“해가 저물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레이그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배끼리 서로 엮고, 닻까지 내려 안정적으로 정박은 했지만, 아직 뭍과는 거리가 조금 있어서 단정으로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날라야 했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고작 8명, 10명이나 탈 수 있는 단정으로 작업을 하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최소한 두 명은 노를 저어야 하니, 왕복 횟수가 많아질수록 선원들의 체력 소모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오늘은 각자의 배에서 쉬도록 하지. 지금 일 시작하면 날을 꼬박 새우게 생겼어. 그리고 각 배의 조리장들 보고 내 방으로 오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잠시 후, 조리장 비에론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며 리버티의 조리장 베니르와 피오렐의… 응?
“어, 이름이 그러니까….”
“카드먼입니다, 제독.”
“그래, 오펜과 함께 수습 선원 하던.”
“기억하시는군요!”
통통한 청년이 활짝 웃으며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조리장이 오라니까 이 녀석이 왜 왔어?
분명히 피오렐 호의 조리장은 40대 아저씨였는데?
“그런데 왜 네가 왔어? 조리장은?”
“그게, 전투 중에 사망했습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카드먼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조리장의 필수 능력에도 재능을 보였던 아이로 기억한다.
아마 죽었다는 조리장은 카드먼에게 스승 비슷한 존재였겠지.
“그래서 대신 온 것이냐?”
“제가 임시로 조리장을 맡고 있습니다.”
“셈은 잘하고?”
“네, 아직 배식을 틀린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
조리장의 필수 스킬은 요리가 아니라 수학이다.
“오늘 이렇게 세 사람을 불러 모은 이유는 식량 재고를 알아야 해서야. 먼저 오트라스부터 보고하지. 아, 물은 보고하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수원지가 있으니까.”
“네, 오트라스 호의 재고 사항입니다….”
***
“꼭 지금 가야겠어?”
“잔말 말고 좀 따라와.”
“졸린데….”
묵묵히 노를 젓는 네이선과 달리 쉴 새 없이 쫑알거리는 우르타에게 대꾸를 해주다가 결국 주먹을 들었다.
“으아앗! 또 때리려고! 폭력적이야!”
“지금 아니면 그들과 조용히 접선할 시간이 없잖아. 그때야 인원이 30명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200명이 넘어. 게다가 내가 머무는 곳 근처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겠냐?”
“그런가?”
“그리고 혹시라도 그들이 저번처럼 뭔가를 알고 미리 준비해 두었다면 내가 알아놔야 할 필요도 있고.”
어렵게 우르타의 입들 다물게 만들고 우리는 폰테 섬의 해변을 밟았다.
“진짜 여기를 다시 올 줄이야.”
네이선이 바위에 단정을 묶어두고는 처음으로 툴툴거렸다.
이곳에서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사람이 네이선이니, 이 녀석이 툴툴거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우리 어디로 가?”
“일단 전에 묵던 곳으로 가볼까?”
“엑? 거기 집은 리안이 다 부셨잖아!”
“아, 좀! 그냥 따라와!”
“아야야야얏! 놔, 놔! 놓으라니까!”
***
기억을 더듬어 우리가 거주했던 임시 거주지로 가자, 휑한 벌판이 우리를 반겼다.
알 수 없는 잡초가 잔뜩 자란 것이, 그 이후로 인공적인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모양새였다.
“아무것도 없네.”
“그러… 응?”
우르타의 심드렁한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네이선이 갑자기 한 쪽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뭔가 싶어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허리춤의 칼 손잡이를 잡은 네이선이 조용히 말했다.
“거기 있는 것 같은데, 모습을 드러내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무 위에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와의 거리는 대충 30m 정도, 달빛을 받은 그녀의 긴 금발이 환상적으로 반짝인다.
“어, 어, 다, 다가온다!”
우르타가 내 팔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어느새 나무에서 뛰어내린 그 여자는 천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확실히 페리아 족은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그 강렬한 모습의 외모를 잊을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그녀는 뭐랄까, 달빛을 받아 약간 창백해 보이는 그녀는 그러니까….
“처, 천사님?”
그래, 천사 같다.
응?
“다들 정신 차려!”
“흡!”
“멈춰!”
챙!
내가 소리를 지르자 우르타가 급히 숨을 들이켰고, 네이선은 번개 같은 속도로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침없이 그대로 다가와서 우리와 5m 정도 거리를 두고 멈췄다.
“아… 아… 아… 아….”
그리고 작은 입을 벌려 다른 톤으로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이크 테스트라도 하는 건가?
“어서 오세요, 리안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환대의 말이었지만, 나는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인간이었다.
그것도 매우 아름다운.
지금까지 나는 왕녀님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녀는 말 그대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빚어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너무 이상적이라서 차라리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너무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닮아가고, 당신들은 닮게 하지요. 옛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드디어 오셨군요,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운명의 길을 보여주려 하십니까?’
‘그분께서 이미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신전을 방문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디 두 종족의 미래에 평화를.’
‘잊혀진 우리의 기다림이 당신으로 인해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나는 네이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칼 내려. 그들이야.”
“어? 그들이 누, 누군데?”
네이선은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딱 봐도 저건 견제나 긴장이 아니라 그냥 남자의 본능이다.
“헤에에….”
우르타 얘는 이미 맛이 가서 무장해제로군.
“페리아 족이라고.”
“그렇구나.”
“헤에에….”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두 바보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페리아 족?!”
“그때 그 못생긴?!”
그러자 가만히 있던 그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인간의 관점은 이상하지요. 당신들은 자신과 닮은 것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되었어요. 당신들과 가장 비슷한 모습, 당신들이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모습. 어떤가요?”
그래, 전설이 완전히 거짓일 리가 없잖아.
분명히 고대에도 저들은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천상의 미모라는 말이 나왔겠지.
“으어어,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진짜 예쁘다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정중하게 물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음성으로 뭔가를 확인받아야 안심이 되어서 말이죠. 우리가 이 섬에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항구와 개척마을을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처음으로 입술을 제외한 안면근육을 움직여 작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정말 아찔하군.
“모든 것은 그분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으억?!”
“아앗!”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나는 한심한 마음을 담아 두 녀석의 뒤통수를 때렸다.
“잘들 한다. 그만하고 잘 자리나 알아보자.”
“어? 여기서 잘 거야?”
“그레이그에게 여기 원주민 마을까지 갔다 온다고 했어. 지금 돌아가면 이상하잖아.”
“으응….”
***
밤이 늦었기에 적당히 잡초를 베어내고 잠이 들었던 우리는, 눈을 간질이는 새벽 햇살에 잠이 깨었다.
아무리 풀을 깔았다고 해도 맨바닥에 자서 그런지 온몸이 삐그덕거린다.
“아야야야… 힝, 허리가 너무 아파.”
“아으윽, 나도 온몸이 뻐근하네.”
“배 안 고프냐?”
내 말에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에서 나올 때 육포 쪼가리라도 들고 올 걸 그랬다.
앞으로는 입단속을 해야 했기에 어제 재회한 페리아 족의 놀라운 미모에 대해 열정적인 토론을 하며 복귀하던 우리는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서 기가 막힌 광경을 보았다.
“저, 저게 뭐야?”
“우리쪽 단정이 접근 중인 것 같은데?”
“잠깐, 도대체… 얼마나 큰 거지?”
원래 네 척이 있어야 할 바다, 그곳에 한 척과 네 척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