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막을 수 없다면 키워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참전’ 또는 ‘참전 거부’.
다른 경우라면 리스크만 큰 참전 따위, 일고의 가치도 없겠지.
심지어 성공한 경우에 대한 보수도 명확하지 않아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결코 좋을 수 없는 선택지다.
막말로 일 끝나고 후작이 ‘허허, 자네가 원하던 칭찬과 인정을 해주지. 대단한 실력이네.’이러면 어쩔 거냐고.
하지만 다른 선택지인 ‘참전 거부’의 결과가 확실한 파멸이라면, 상대적으로 ‘승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참전 쪽으로 저울이 기울 수밖에 없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솔깃한 대화가 들려왔다.
“결국 그렇게 되었나?”
“그렇지, 결국 자네 말대로야. 겨우 손실만 면했다니까?”
“그러길래 내 말을 듣지 그랬나? 니파 항구가 넘어간 이상 승패가 확실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크흐흐흐.”
“제기랄, 그러니까 오늘 술값은 우리 위대한 예언자님이 내시는 건가?”
“무슨 개소리야? 술값은 틀린 놈이 내는 거지.”
내가 마시던 술잔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자, 오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장님, 아직도 고민하고 계세요?”
“쉿. 오펜 잠시만 조용히 해봐. 티 내지는 말고.”
내가 오펜에게만 보이도록 작은 손가락질로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
오펜이 눈만 돌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상인 둘이 앉은 테이블을 확인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넵.”
술값을 내는 것으로 잠시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곧 다시 화제를 돌렸다.
“뭐야?! 내가 정보까지 알려줬는데 이럴 거야?!”
“클클, 누가 물어봤나?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끝났을 수도 있겠군.”
“그렇지 뭐. 내가 떠날 때 이미 반군이 수도를 포위한 지 열흘도 넘었다고 했으니.”
“작은 전쟁이 끝나니 큰 전쟁이라니, 골치 아파.”
슬쩍 고개를 돌리며 그들의 얼굴을 살피니 대화내용대로 표정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전쟁이라는 것이 상인들에게 큰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군수물자를 대거나 하는 큰 상인들의 이야기다.
보통 상인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저렇게 앞으로 교역 루트가 망가지고 교역품의 구매가 제한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그러게나 말이야. 게다가 이번에는 세 나라가 얽혀들어 가서 난리가 아니라고. 게다가 당분간 프레티아 왕국은 제대로 된 교역을 못 할 테니 나도 난감하다니까?”
“그래도 해적 놈들은 이번에 확 줄어들지 않겠어? 이왕이면 그 ‘라프나’도 말이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급하게 다시 우리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쌔 한 기분이 든다.
지금쯤 우르타가 한마디를 해야 할 타이밍인데…?
“히힛, 우리가 라프나를 잡았는데!”
“조용해, 멍청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던 상인들은 대화를 멈추고 우르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르타 녀석이야 자랑스러워서 한 말이겠지만, 라프나가 이끄는 해적선단의 소멸은 정치, 군사적으로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고급 정보다.
단순하게 소문이 도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유효성이… 잠깐만!
하긴, 이 녀석이 아니더라도 선원들이 이미 신나게 무용담을 펼치고 있겠구나.
나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그렇지! 외날의 라프나라더니 도끼질 솜씨가 아주 엉망이더라!”
“어? 어, 어… 그, 그랬나?”
욕을 먹고 풀이 죽어있던 우르타가 갑작스러운 나의 태세 전환에 오히려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렇지! 그 거대한 도끼가 갑판에 박혀서 안 빠질 때는 진짜, 흐흐흐, 내가 도끼에 죽는 게 아니고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어? 갑판에 박혔었어?!”
“너 그거 못 봤어? 아, 그때 포갑판에 있었었나?”
“하하, 그때 포술장님은 아직 백병전에 참여하기 전이었잖아요. 당연히 못 보셨겠죠!”
오펜, 네가 우르타보다 이쪽으로는 백만 배는 낫구나!
나는 오펜의 어시스트에 힘입어 신나게 허풍을 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고작 세 척의 해적선으로 우리 선단에게 덤비다니, 가소로운 일이었지. 심지어 죄다 중소형 범선이었잖아?”
“그, 그랬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우르타가 어색하게 맞장구를 쳤다.
“진짜 운만 조금 따라줬다면 한 척 정도는 나포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지?”
“으응!”
“그랬죠! 해적 놈들 라프나가 죽으니까 허둥지둥하는 꼴이라니!”
“그러니까 말이야! 고작 그런 놈이 내해 최고의 해적이라니!”
“으하하하하하!”
그때 옆 테이블의 상인들에게 입질이 왔다.
“이봐요,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정말 외날의 라프나를 그쪽이 죽였소?”
나는 쾌재를 부르며 일부러 으스대는 표정을 지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렇소. 그 건방진 해적 놈이 감히 우리 선단을 공격하지 않았겠소? 그래서 우리 갑판장이 단칼에!”
“그 라프나를 단칼에?”
“그놈, 지금까지 떨친 악명에 비하면 아주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더구만?”
내가 그 정도 말을 하자, 말을 걸었던 상인은 대놓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아직 테이블에 앉아있던 상인은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라프나가 탔던 배가….”
“한 400톤급 정도 되나? 구형 전투함 같던데. 뭐, 제법 빠른 범선이었소.”
내가 으스대며 말하자, 다른 테이블 몇 곳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호기심이 싹 사라진 심드렁한 표정이 된 상인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그쪽의 상단이 한 400톤쯤 되는 구형 전투함을 탄 대형 도끼를 든 외날의 라프나를 죽였다는 말이오?”
“거,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셨구만. 아마 지금쯤이면 어느 술집을 가도 비슷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을 것이오. 우리 선원들이 신나서 떠들고 있을 게 뻔하거든. 그나마 내가 선단장이라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그치들의 허풍까지 더하면 해적선은 한 열 척쯤 되고, 해적은 한 만 명쯤 될 거요. 흐흐흐.”
오펜은 내 허세 가득한 거짓말에 차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접시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고, 우르타는 입을 ‘헤~’하고 벌린 채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으음, 조금은 창피하군.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소문이 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허풍이라고 생각할 근거를 마련해 주는 쪽이 수습하기 편하니 말이다.
라프나가 워낙 유명한 만큼 뜬소문도 적지 않지만, 정말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라프나의 기함이 대형 갤리선이고, 최소한 5척의 해적선을 이끄는 대형 해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더 깊게 안다면 라프나가 엄청난 거구이고, 커다란 도끼가 아니라 평범한 크기의 손도끼 한 쌍을 사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런데 거기에 대고 선단장이라는 사람이 해적선단이 중소형 범선 세 척이고, 라프나라는 놈이 대형 도끼를 썼다고 하면 무슨 소문이 돌까?
높은 확률로 ‘짝퉁’ 라프나를 이긴 것으로 으스댄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이 정도 되면 선원들이 정말 담백하게 사실을 떠들어도, 결국 제대로 된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들은 선원들의 말은 허풍이고 공신력 있는(?) 선단장의 말이 사실이라는 쪽에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거 라프나를 죽였다니 혹시 목도 가지고 오셨소? 현상금을 받으려면 필요할 텐데.”
그때까지 테이블에 앉아 날 노골적으로 무시하던 상인이 동료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조 자체에도 비웃음이 서려 있다.
이런 것은 아주 감정대로 대응해도 되는 부분이다.
“허 참, 내 말을 못 믿는 모양이군? 그놈이 물에 빠지는 바람에 목은 못 건졌지만, 놈이 타던 배는 침몰하고 나머지는 꽁지가 빠져라 하고 도망쳤다니까?”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자, 처음 말을 걸었던 상인이 얼른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오! 어디까지나 저 친구가 말투가 좀 그렇소. 미안하오.”
“거,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가쇼!”
내가 축객령을 내리자 두 사람은 부랴부랴 종업원을 불러 계산을 청했다.
물론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무식한 뱃놈들(나, 우르타, 오펜)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제스쳐였다.
***
식사를 마치고 술을 조금만 마시는 척하고는 가게를 나온 우리는 오트라스 호를 향했다.
“선장님, 혹시 술을 마신 선원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헛소문으로 만들려고 하신 건가요?”
“어, 정확히 봤네. 어차피 선원들 입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라프나가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다면 금방 들통나게 될 겁니다.”
“상관없다, 이 이야기를 후작에게 보고하기 전까지만 보안이 유지되면 되니까.”
나와 오펜의 대화를 듣고있던 우르타가 질린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리, 리안…. 난 가끔 리안이 무섭다아….”
이후로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오트라스 호 근처에 도착했을 때, 해군 정복을 입은 한 남자와 해군 병사 대여섯 명이 우리 앞길을 막았다.
“오트라스 호의 리안 선단장님 되십니까?”
나는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반사적으로 내 앞을 막아선 우르타와 네이선의 팔을 잡고 뒤로 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일단 저들의 태도가 매우 정중하고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후작의 비호를 받는 나를 델라 항구에서 해치려는 정신 나간 해군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제가 리안입니다만.”
“반갑습니다, 리안 선단장님. 다름이 아니라 저희 제독께서 내일 점심시간 이전에 본 함대의 임시 정박 지역으로 방문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임시 정박지역이라면, 저쪽 군함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을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함대에서 제독 호칭을 받으려면 적어도 함대 사령관이나 부사령관이라는 뜻인데, 그런 거물이 뭐하러 나를 부른거지?
이유는 몰라도 벨로키나 왕국의 국적기를 계속 달고 싶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해군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표로 나선 남자에게 은근하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가슴의 계급장을 보니 대위다.
낮은 계급이 아닌 만큼 나를 부르는 이유 정도는 알 법도 한데….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뒤에 도열한 병사들을 힐끗 보더니 내 앞으로 두어 발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선단장님 외에도 현재 항구에 정박 중인 선단장, 용병함대장들이 같은 시간에 소환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군요. 그런데 왜 이런 정보를?”
그렇잖아.
물론 내가 먼저 물어봐 놓고서 이렇게 말하면 진짜 이상하기는 하지만, 저 친구 입장에서는 굳이 이렇게 부하들의 귀를 피해서까지 내게 정보를 줄 이유는 없을 텐데?
혹시 내가 이 친구를 내가 어디서 봤던가?
가만 보면 언제 본 것 같기도 하고….
속삭임을 마친 그는 다시 내게 한 발 떨어져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동생이 선단장님의 배를 탔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팔을 크게 다쳐서 다시 배를 타지는 못합니다만, 선단장님이 주신 위로금 덕분에 작은 가게를 내서 제 밥벌이는 하고 있지요. 동생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아….”
살짝 고개를 숙인 대위는 쑥스러운지 그대로 뒤로 돌아 멀어져 갔다.
…….
어, 음, 그러니까, 조금, 아주 조금인데, 되게 막 가슴이 따듯하고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맞춰 아인델프와 발드 선장을 대동한 채 해군의 임시 정박지에 들어서자, 경계를 서고 있던 해군 소속 병사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정지, 이곳은 임시 군사 지역입니다.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뭐지?
기선제압 같은 건가?
초대를 해놓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매너 없는 짓이람?
하지만 내가 나서기도 전에 군 출신(사실 나는 군 출신이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잖아)인 아인델프가 앞으로 나섰다.
“리안 상선단을 이끄시는 리안 선단장님이시다. 오늘 방문할 것이라고 전달을 받았을 텐데?”
딱딱하고 묵직한 어조로 말하며 병사들을 노려보는 아인델프는 내가 봐도 카리스마가 있었다.
뭐랄까? 원래 햇병아리 소위에 불과했던 아인델프였지만, 그간의 경험과 관록이 더해져 풍기는 기운은 영관급 장교 뺨치는 것 같다.
우리 선단이 해군이었다면, 피오렐 호의 선장 정도면 중령 정도는 충분히 되기는 하지.
각설하고, 고압적인 아인델프의 태도에 병사들을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아마 상부에서 받은 지시랑 상황이 달라져서 그럴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그나마 짬밥을 많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상병 계급장을 단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크흠,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지시받은 것은 리안 선단장님뿐인데, 동행하신 분들은 누구십니까?”
이번에는 내가 아인델프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 둘은 내 선단의 선장들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제독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선단에 연관된 일일 텐데, 선단의 선장들도 대동할 수 없나?”
내가 병사들을 무시해서 고압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굽실거리며 병사에게 ‘네, 네.’ 하면 아인델프 입장이 뭐가 되겠어?
물론 저들이 나를 내치지 못하리라는 계산이 있기도 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상부에 전달하고….”
“관두지.”
“네?”
나는 상병의 말을 끊고 미련 없다는 듯이 뒤로 돌았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곱게 모셔가도 모자랄 판인 것 같은데 감히 장난질을 쳐?
뒤에서 당황하는 상병의 얼굴이 안 봐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발드 선장은 내 의도를 알았다는 듯이 한쪽으로 자연스럽게 비켜서며 내가 지나가기 편하게 해주었다.
하나.
둘.
셋.
“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빙고.
챙!
“거기에서 이야기하지.”
뒤를 돌아보니 패용하고 온 단도를 뽑아 든 아인델프가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온 상병의 목젖을 30cm 정도 차이를 두고 겨누고 있었고, 상병은 몸이 반쯤 굳어 있었다.
오늘따라 아인델프가 패기가 넘치네?
그런데 칼을 뽑아서 위협을 하는 것은 약간 선을 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참작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상병의 목 근처에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다는 정도일까?
챙챙챙챙챙!
상병의 뒤쪽에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병사들이 칼을 뽑아 드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우리에게 넘어왔고, 난 네놈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만, 아인델프 선장. 칼 집어넣지.”
“네, 선단장님.”
내 말을 들은 아인델프가 고작 3m쯤 떨어진 곳에서 병사들이 뽑아들고 있는 번쩍이는 날붙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로 단도를 회수해 칼집에 집어넣었다.
네이선도 봤다면 박수를 칠 정도로 깔끔하고 재빠른 납도 실력이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몸이 굳어있는 상병에게 한 발 다가가서 그의 뒤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제독의 뜻이라고 보면 되나?”
“아, 아닙니다! 세 분 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항복 선언에도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상병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듯 얼굴을 붉히며 뒤로 돌아서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 칼 집어넣어! 제독 각하의 손님들이시다. 안으로 모셔!”
그제야 병사들은 허둥지둥 칼을 집어넣었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병사 하나는 칼에 손이 베어서 피를 철철 흘리는 추태까지 보였다.
나만 불렀다면 몰라도 선단주와 용병함대장들을 몽땅 불러 모았다면 제독이라는 작자가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데, 처음부터 만만하게 보일 수는 없지.
어쩌면 그자는 기선제압의 의미도 있고, 오늘 모이는 사람들의 성향 같은 것을 테스트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의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