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복수할 수 없는 원수
멘탈이 탈탈 털린 채로 복귀한 나는 항구관리관으로부터 후작이 저택에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음 날 견본으로 베르엘바 한 상자를 들고 후작 저택을 방문했다.
“클클클. 그래, 그런 일이 있었나?”
“각하, 아무래도….”
알센더트고 뭐고 솔직히 무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단 그놈이 사령관 자리를 꿰찬 의용 2함대에 배속된 이상, 그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군은 상명하복이 생명이고, 사령관이 내린 명령이 상식에서 벗어난 수준만 아니라면 일단 명령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지.
“그래, 내가 어찌 도와주기를 바라는가?”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스코타 후작에게 한참 동안 징징거리던 나는 슬쩍 본론을 꺼내 놓았다.
“혹시 샌더슨 제독에게….”
“미리 말하지만, 함대의 일에는 내 말이 잘 먹히지 않네. 배속을 바꿔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제, 젠장. 노인네, 눈치는 더럽게 빠르네.
별수 없이 나는 차선책을 택했다.
“이번 토벌전에서 후작 각하의 깃발을 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미 깃발을 받아 놓았으니 해적질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내 마음대로 후작가의 깃발을 걸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허가를 받게 되면 후작에게도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것이 생긴다.
상황이 조금 나쁘게 흘러가더라도 나를 손절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후작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유능함은 이 풀, 베르엘바라고 했나? 이것으로 이미 증명되었지. 자네 뜻대로 하게. 그러라고 준 깃발이니. 필레로페 남작(샌더슨)에게도 서신 정도는 써주도록 하겠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후작 각하.”
견본으로 가지고 온 베르엘바를 만지작거리던 후작이 갑자기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괜찮으십니까?”
“쿨럭, 크흠, 괜찮아.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군.”
“다음에는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클클클… 쿨럭!”
새삼스럽게 후작을 보니 확실히 전보다 조금 더 마른 것 같았다.
물론 그전에도 조금 마른 체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세히 보면 안색도 조금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개척은 어떤가? 보고서도 좋지만 아무래도 자네 말로 듣고 싶군. 프레티아에서 피난민들을 데리고 갔다지?”
“네, 원래 개척민들은 다음 방문 때부터 데리고 갈 생각이었습니다만, 피난민들 중에 승조원의 부친이 끼어있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첫 장조차 넘기지 않은 보고서를 힐끔 보았다.
확실히 우리 배에 후작의 첩자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일단 보고서에는 트리토나와 페리아 족, 북동쪽의 다른 섬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았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트리토나와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을 확률이 높다.
“그랬나? 뭐, 가족이라는 것이 버리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 그런데 라프나 녀석과 한 판 붙었다고? 벌써 항구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네, 소문은 라프나를 사칭하는 가짜일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진짜 라프나가 맞습니다. 그의 기함인 대형 갤리선을 침몰시켰고, 라프나 역시 큰 부상을 입은 채 바다에 빠졌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자네의 솜씨겠군. 조금 투박하지만 나쁘지 않았어. 확실히 지금 라프나가 토벌되었다고 알려지는 것은 좋지 않지. 이번 토벌전의 가장 큰 이유가 그놈이니 말이야.”
“보잘것없는 말장난일 뿐입니다.”
“겸손 떨 것 없네. 자네의 말대로라면 케르빈 제도 토벌은 조금 더 수월하겠군. 일레드 왕국에서 긁어모은 사설함대가 파견될 수도 있지만, 그 라프나가 없다면 해적 놈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테니 말이야.”
“사설… 함대입니까?”
내 말에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지도를 향해 걸었다.
나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랐다.
“본국의 3개 함대와 쿠샤 왕국의 2개 함대가 동원되는 상황일세. 아무리 일레드 왕국이라도 정규 함대를 의용함대에까지 파견할 여력은 없어. 그렇다면 그쪽 역시 가외 전력을 편성할 수밖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이 조금 굳었던 모양이다.
내 안색을 살피던 후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그래봐야 의용함대와 비슷한 수준이겠지. 케르빈 제도를 토벌할 의용 2함대는 본국에서 확보한 모든 용병함대가 편성되었고, 근래 최고의 해적이라는 라프나마저 물리친 자네까지 있지 않나? 전과를 기대하겠네. 편지에서 약속한 대로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할 테니까.”
“…네, 후작 각하.”
몸을 돌려 창밖의 태양의 위치를 가늠해 본 후작은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 말대로 베르엘바는 내가 사람을 시켜 전량 수거하도록 하지. 이만 나가봐도 좋네.”
“그럼 좋은 소식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나는 후작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어째서 트리토나에 대해서 묻지 않는 거지?
원주민은?
하다못해 라프나와의 해전에서 나포한 콘베르테 호에 대해서라도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설마 페리아 족이 이번에도 기억 조작을 한 걸까?
후작의 집무실 밖으로 나서자 낯익은 늙은 집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오자 부산스러운 앞뜰이 보였다.
“나오셨습니까, 제독.”
“응, 무슨 일이야?”
내 말에 약간 상기된 표정의 아인델프가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후작 각하의 하사품이라고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 궤짝, 전부 금화입니다.”
아인델프의 말이 끝나자 늙은 집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후작 각하께서는 리안 선단장님의 이번 성과에 대해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또한 혹시라도 돌아가시는 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호위병을 붙여드리라 하셨습니다.”
집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택 모퉁이에서 십여 명의 병사들이 말을 끌고 나타났다.
하인 두 사람이 끙끙거리며 들어서 옮길 정도의 궤짝이 다 금화라니, 확실히 우리 후작 각하께서는 통이 크시다니까.
베르엘바를 가지고 올 짐마차가 준비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집사의 요청 때문에 아인델프와 함께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저택의 대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어딘가 익숙한, 분노를 끌어올리는 얼굴.
나도 모르게 증오스러운 그의 이름이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르만….”
나를 발견한 남자도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리안 부함장, 아니, 이제 선단장인가? 오랜만에 보는군.”
테일러의 마수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나의 원대한 통수치기 계획에 똥물을 뿌린 놈.
터져 나오는 분노로 일그러진 나를 보면서도 그는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허리의 단도를 뽑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신을 여기에서 볼 줄이야.”
그는 부들거리는 내 손을 힐끔거리더니 피식 웃었다.
“일전에는 미안하게 되었군. 하지만 이제 같은 편이니 그렇게 인상을 쓰지는 말아줬으면 하는데.”
“네놈…!”
밖에서 만났다면 문답무용으로 칼부림부터 했을 녀석이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놈도 그것을 믿고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내 앞으로 다가온 것이겠지.
움찔!
툭, 툭.
그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손을 뻗더니 내 어깨를 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래도 당신 덕분에 재미있었으니 나중에 보답을 하도록 하지. 그리고 당신도 결론적으로는 내 덕에 이만큼 성장한 것 아닌가? 내가 아니었다면 선장이 될 수도, 폰테 섬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야.”
“개소리를 아주 정성껏 하는군.”
“하하하, 여유가 있다면 자네의 원망을 조금 더 들어주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다음에는 웃는 얼굴로 보았으면 좋겠군.”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몸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 집사 하나가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부장님, 후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아, 각하께 이거 큰 실례를 할 뻔했군. 갑시다.”
내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자, 아인델프가 조용히 물었다.
“누굽니까?”
“음, 악연으로 얽힌 녀석. 부장이라는 것을 보니 벨로키나 왕국 정보부 소속인 모양이야.”
“정보부… 말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일은 아인델프에게 알려서 좋을 게 없다.
나를 따르기 전까지만 해도 몰로스 제국의 충실한 군인이었던 아인델프에게 굳이 내가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알릴 필요는 없지 않겠나.
실제로 테일러의 제국 1함대가 일레드 왕국 해군에게 기습을 당한 것도 내 탓일 확률이 높으니 말이야.
“창피한 일이라서 굳이 들추고 싶지 않아. 후작 저택만 아니었다면 말 섞을 것도 없이 배에 칼침부터 놔줬을 텐데.”
“정보부와는 얽히지 않는 것이 좋죠.”
“그러게 말이야. 대충 준비가 끝난 모양이네. 이만 출발하자.”
***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수십 대의 마차와 함께 항구에 도착한 나는 선창에 고이 모셔놓은 베르엘바 풀을 모조리 꺼내 기병 호위대 대장이자 총책임자인 기사에게 인계했다.
“리안이라고 했나? 짧은 시간에 꽤 거물이 되었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튼 경.”
피식 웃는 젊은 기사는 이튼 제르넹.
예전에 후작 저택으로 가는 길에 도적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 나와 일행들을 구해준 기사였다.
첫인상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귀족 가문 출신에 스코타 후작의 총애를 받는 잘나가는 기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저 정도 배경에서 살아 온 인물이 나 같은 평민을 인간 이하로 보는 거야 뭐, 당연한 일이지.
내가 최근에 아무리 후작과의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해도, 그런 평민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셨으니 괜찮은 사람 맞다.
“이 풀 쪼가리가 뭔지는 모르지만, 각하께서 유출에 주의하라 하셨을 정도면 꽤 귀한 것일 터. 괜히 시간을 끌 필요 없겠지.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쉬었다 가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화물은 선원들에게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빈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대거리를 해주는 것도 배알이 꼴린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토벌전에 참가한다지? 부디 후작 각하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처신에 주의하도록.”
그는 냉소를 짓고는 그대로 말을 몰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선장님?”
“어?”
어느새 다가온 네이선이 쭈뼛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이제 외출해도 됩니까?”
아, 이 녀석 화물 지키느라 그동안 나가지도 못했지?
“그러지 말고 우르타 불러서 같이 가자. 고생했는데 오늘은 내가 살게.”
“어? 어, 어, 그러니까 술을 산다구, 요?”
최근 들어 술을 내가 산적이 없던가?
…없구나. 이 자식이 술을 워낙 퍼마셔야지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산다. 출전까지는 여유가 있고 후작에게 돈도 잔뜩 받아왔으니. 회계사에게 금고 최대한 비우라고 하고 선원들도 최소 인원만 남기고 다 내보내. 혹시라도… 배에서 내리겠다는 녀석들은 두말없이 내리게 해주고.”
술을 산다는 말에 희희낙락하던 네이선이 이어지는 뒷말에 우려를 표했다.
“이탈자가 너무 많으면 선박 운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미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숨기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항구에 이미 소문이 파다한데 어쩌겠나.
선박 은행을 이용하는 녀석들에게 아직 인출하지 않은 돈을 인질 삼아 강제로 태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네이선의 말대로 엄한 일에 목숨을 걸기 싫은 선원들이 대거 이탈하더라도 그냥 감수해야지 뭐.
그리고 이럴 때마저 돈을 내어주게 되면 아직 선박 금고를 이용하지 않는 선원들에게도 꽤 신뢰를 줄 수 있을 테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갑판장님이 어렵게 살린 목숨들을 전쟁터에 강제로 끌고 가서 죽이고 싶지 않다.
***
“으하하하하!”
“우리의 화끈한 제독을 위하여!”
“승리! 승리! 우리에게는 승리뿐이다!”
“나는 벌써 선장님과 함께 참여한 전투만 열다섯 번이라고! 엉? 나처럼 실력만 있다면 생채기 하나 없이….”
“헛소리하네! 네놈이 오줌을 질질 싸는 걸 내가 봤는데?”
“어떤 놈이야!”
“낄낄낄! 싸워! 싸워라!”
…뭐야, 이 난장판은?
난 네이선에게 술을 산다고 했지, 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운 알콜중독자 집단에게 술을 산다고 한 게 아니라고.
“이것 참, 내일 속 좀 쓰리시겠습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변한 모르아 갑판장이 건들거리며 놀렸다.
당신이 문제잖아!
처음에는 네이선과 우르타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오펜과 그레이그가 합류했고, 행크가 왓킨을 데리고 합류했다.
그리고 왓킨은 발드를, 발드는 아인델프와 바우어를, 바우어는 모르아를….
그래, 여기까지는 다 고생한 간부들이고 몇 명 안 되니까 괜찮았다.
그런데 모르아 갑판장이 신나서 갑판에서 떠든 게 문제였다.
이야기를 들은 선원들에 의해 빛의 속도로 소문이 퍼지고, 나는 간부만 입이고 선원은 주둥아리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 무서워 선원들도 받기로 했는데….
선원만 대충 80여 명이 왔다면 믿을 수 있겠어?
어쩌다 보니 결국 이 술집 안의 모든 인원이 다 우리 선단의 인원이 되어버렸다.
술값이 얼마나 나올까? 적어도 5만 로스는 나오지 않을까?
계속되는 주문에 술집 종업원의 얼굴은 갈수록 썩어 갔고, 반대로 바를 지키고 앉아 있는 주인의 험상궂은 얼굴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애로운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대기업 회장님의 마음으로 회식비 플렉스 좀 해보자!
후회는 내일의 내가 해주겠지.
오늘 회식이다!
***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되면 이 술집은 우리가 전세를 낸 꼴이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가도 기가 질려서 나가게 마련이고, 아쉬울 것 없는 주인도 나가는 손님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오, 예쁜이! 오늘 나와 뜨거운 밤을 보내겠어?”
“풋, 아저씨는 이미 뜨거워서 곧 식을 것 같은데?”
“더러운 손 치워라 이 자식아. 얘는 오늘 나랑 놀. 억!”
“뭐라는 거야, 못생긴 놈이?”
옷인지 천 조각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무엇인가를 걸치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수금을 하고 있는 여자들.
저, 저 멍청한 놈들이 술값을 내주니까 그 돈을 여자한테 들이붓는구나.
이러면 내가 선원들에게 술을 사주는 건지, 창녀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오빠 오늘 나랑 놀래? 오빠는 공짜로 해줄게.”
“으헤헤헤!”
“저런 주름 자글자글한 언니 말고, 오빠, 나는 어때?”
“뭐?!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어우, 성질머리도 봐, 내가 더 낫지?”
“아아니, 나는 그러니까….”
얼씨구?
한쪽에서 헤롱거리는 우르타를 보니까 왠지 배가 아픈 것 같다.
“오빠는 진짜 잘생겼다. 몇 살이야?”
“네? 아, 저, 저는….”
“꺄아아! 얼굴 빨개진 것 봐! 왜 이렇게 귀여워? 선원 맞아?”
“선원 아니고 항해사….”
“어머나, 항해사야? 어쩜….”
“저기 이것 좀… 으앗! 미, 미안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어때? 부드럽지? 응? 생각 있어?”
크리스티앙?
이것들이 진짜….
“그쪽이 선장이오?”
“이 자식들아! 적당히… 네?”
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발작하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었고 그는 당황한 눈으로, 나는 민망한 눈으로 서로를 확인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선장이라고 하던데….”
“으흠, 네. 그런데 누구신지?”
그는 불신의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탈리스라고 하고, 이쪽은 에오멕이오. 항해사를 구하고 있다던데.”
뭐야, 입사희망자들이 눈빛이 왜 이래?
구직자가 감히 회식 시간에 찾아와서 회장님께 그런 불손한 눈빛을 보내다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아무래도 정의 구현이 필요하겠어.
“아앗?! 항해사? 탈 배를 구하고 있다면 잘 오셨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일단 고용해서 엄청 힘들게, 지금 이 순간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굴려줄 테다!